▲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지난주간에는 정말 분주했다. 주일에 행복축제를 마치고, 화요일에는 울산에 세미나를 갔다. 세미나 중 장례가 났다는 보고를 받았다. 수요일 입관예배를 드리는 날 또 다른 장례소식이 들려왔다. 금요일에 두 번째 장례를 마치고 곧바로 구역장 권찰 야외예배 장소로 출발했다. 구역권찰 산행을 마치고 서울에 도착하니 금요 합심기도회 시간이 다가왔다. 합심기도회를 마치고 난 후 집으로 와서 주일 설교 두 편을 준비해야 했다. 토요일에는 아침 9시부터 정책당회가 진행되고, 11시에는 우리 교회에서 노회 여전도회 실행회와 찬양대회를 가졌다. 그때 설교도 해야 한다. 정책당회를 6시 30분까지 하고 난 후에 오후 7시부터 학습세례 문답식을 해야 했다. 한 주간이 눈코 뜰 새 없이 분주하게 지나갔다.

두 건의 장례 중 한 가정의 장례는 연세 드신 권사님의 장례였는데, 기쁨으로 천국에 보내드렸다. 그런데 한 가정의 장례는 달랐다. 올 연초부터 그 가정에는 인생의 썰물이 다가왔다. 가정적으로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그런데 부인되신 여집사님이 교통사고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아직 66세밖에 되지 않았다. 더 큰 썰물이 닥쳐온 게다. 이게 우리네 삶의 현장이다.

“오른손이 없다고 해서 피아니스트가 될 수 없다는 선입견은 제 꿈을 방해할 수 없어요. 비록 남들보다 신체적으로 약간 불리하다 할지라도 음악을 통해 희망을 전파하는 피아니스타가 될 거예요.”

‘팔꿈치 피아니스트’ 최혜연 양이 하는 말이다. 그는 오른쪽 팔꿈치 아래가 존재하지 않는다. 왜? 3살 때 부모님 가게에서 일어난 기계 사고로 오른팔에 장애를 입었기 때문에. 그러나 그는 꿈을 먹고 살았다.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5살 때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그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인지. 건강한 사람도 어려운 일인데.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그런 몸으로 피아니스트가 되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도 꿈을 먹고 사는 사람은 포기하지 않는다. 그에게는 인생의 모델이 한 사람 있었다. 바로 희아 씨다. 그를 보면서 꿈과 희망을 키웠다.

꿈을 가졌다고 쉽게 이루어지는 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꿈을 꾸지만 그 꿈을 현실로 이루지는 못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그는 이루어냈다. 하루 10시간 넘는 피나는 노력으로. 여섯 손가락 피아니스트의 드라마를. 그는 “장애는 불가능이 아니라 불편함”이라는 다부진 신념을 갖고 있었다. 장애에도 불구하고 낙담하지 않았다. “장애는 편견일 뿐.” 그게 그의 소신이다.

어떤 일 앞에서도 여간 해서 절망하지 않는 그였지만, 그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게 있었다. 사람들이 ‘다르다’고 쳐다보는 시선이었다. 실제로 그는 혼자서 집안 살림도 척척 해낸다. 설거지도 하고, 부모님께 드리려고 뜨개질도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다. 그게 힘이 들었다. 사람들이 꿈을 성취하는 데는 자신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도움 역시 중요하다. 그가 꿈을 성취하는 데는 선생님의 도움이 컸다. 피아노 선생님은 주먹을 쥐고 팔꿈치 모양으로 가르쳐 주셨다. 그에게 밀물이 다가오게 만든 환경적 요인이다.

유다 백성들에게도 썰물과 밀물이 밀려왔다. 예루살렘은 바벨론에게 침공을 당해 비참하게 되었다. 왕족을 위시한 귀족들과 백성들이 바벨론으로 사로잡혀갔다. 그들은 포로 생활을 해야 했다. 인생의 썰물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내가 그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할 때가 있다”고 말씀하신다. 그때는 폐허가 된 예루살렘 땅이 다시 회복된다. 이방인에게 짓밟혔던 시온은 다시 의로운 땅, 거룩한 산으로 회복될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그들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신다. 여호와께서는 ‘피곤한 심령’을 상쾌하게 하시고, ‘연약한 심령’을 만족하게 하신다(렘 31:23-26). 유다 백성들에게 인생 밀물의 근원은 여호와이다.

실패, 실직, 실연과 같은 인생의 썰물은 우리가 가진 것들을 무자비하게 짓밟고 빼앗아간다. 돈도, 건강도, 사랑도, 희망도.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들마저도 몰인정하게 빼앗아간다. 그래서 쓰리고 아프다. 낙담되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하다. 외롭고 고독하다. 서운하기도 하고, 원망스럽기도 하다. 때때로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좌절감과 패배의식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그런데 썰물이 밀려올 때 기억할 사실이 몇 가지 있다. 1) 썰물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나만 당하는 일이 아니다. 2) 썰물 때 빼앗긴 것이 ‘다’가 아니다. 아직 남은 것이 많이 있다. 뿐만 아니라 썰물이 있다면 반드시 밀물도 있다. 3) 때로는 썰물로 인해 불필요한 것들을 청소해 낸다. 그래서 하나님이 기뻐하는 인생을 만들어 가신다. 4) 썰물이 몰려왔을 때 소중한 게 있다. “왜 나에게 썰물이 다가왔는가?”를 깨닫는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맺으셨다. 그러나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들을 흩으시고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가게 하셨다. 결국 유다 백성에게 썰물이 다가온 원인은 그들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였다(렘 11:8). 그렇다면 우리 역시 점검해 봐야 한다. 혹시 나의 죄 때문에 이런 썰물이 다가온 건 아닌지? 화내고 분노하기보다 원인을 분석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자신을 살피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그렇다면 인생에 썰물도 필요함을 발견하게 된다. 아니 썰물이 왔음에 감사할 수도 있다. 썰물 때 빼앗기는 것을 통해 어쩌면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다. 인간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끼기에, 주님을 더 의지하게 된다. 우리가 추구하고 쫓아가는 것이 헛된 것임을 깨닫기도 한다. 그러니 인생의 썰물은 결코 무가치한 게 아니다.

썰물 때 밀물을 바라보는 사람이라면… 1)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렘 29:10)”. 썰물의 때에, 하나님의 때를 바라보며 인내할 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때가 차기까지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2) ‘하나님의 담금질’에 합격해야 한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욥 23:10)”. 하나님께서 담금질하시는데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말고 오히려 감사하며 찬양해야 한다. 3) 썰물과 밀물을 주시는 살아계신 하나님께 주목해야 한다. 하나님은 썰물만 주시지 않는다. 그렇다고 밀물만 주시지 않는다. 썰물과 밀물을 번갈아가며 주신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게 하나님의 은총이요 선물로 받아들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