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박사와 이재철 목사 간의 대담은 6·25 전쟁 당시, 서울대 국문학과 재학 시절로 옮겨갔다. 이어령 박사는 “당시에는 모두 가난해서 돈이 없었고, 그런 의미에서 6·25는 처음으로 평등한 시대였다”며 “집안에선 법과대나 의과대, 경제학과에 가면 등록금을 내 주겠다고 했지만, 저는 어렸을 때부터 문학만 하고 개구리도 못 잡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 때 의예과도 문리대에 있어 문리대 간다고 하고 의예과 대신 국문과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이어령 박사와 이재철 목사의 대담 모습. ⓒ양화진문화원 제공

이 박사는 “백부님이 국문과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그래도 똑똑하다는 애가 한 명 있는데, 오죽 배울 게 없어 언문(한글을 속되게 이르는 말)을 배우러 대학엘 가느냐’고 한숨을 쉬시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며 “집안에서 제 덕을 보려다 오히려 저를 먹여 살리게 됐으니, 초상집 분위기였다”고 했다.

이에 이재철 목사가 “지금 시대라면 서울대를 가실 수 있었겠느냐”고 묻자, 이 박사는 “수학 때문에 절대 안 된다”고 답했다. 그는 “저 같은 사람은 당시처럼 학원도 없고 과열되지 않은 입시 상태로 놔 두면 서울대를 들어갈 수도 있겠지만, 지금 같은 조건에선 갈 수 없다”며 “말씀하신 대로 참 어려운 시대를 거쳤지만, 시대의 수혜자이기도 하다”고 회고했다.

교육과 관련해서는 일제 시대의 경험을 예로 들면서 “초등학생들에게는 절대 세뇌교육을 시켜선 안 되고, 자유롭게 사상을 품을 수 있도록 내버려 둬야 한다”며 “‘우리는 민족 중흥을 위해 태어났다’던 국민교육헌장처럼,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태어나기 전에 가치가 결정되면 우리는 도구가 될 뿐”이라고 강조했다.

어린 시절 이 박사는 다른 이들이 읽지 못하던, 단테·셰익스피어 등이 담긴 36권짜리 ‘세계문학전집’을 읽었다. 대학 시절에도 전쟁통에 거의 수업이 이뤄지지 않아 도서관에서 혼자 독서를 하면서 공부했다고 한다. 책 읽기를 워낙 좋아해 많은 책을 읽었기 때문에, 문인들이나 교수들과 대화를 해도 자신보다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는 “그렇게 젊은이들은 전 세계적인 교양을 몸에 쌓았기 때문에 자력으로도 얼마든지 문학을 할 수 있는데, 왜 기성세대에 희망을 걸고 있느냐는 것”이라며 “저는 당시 읽었던 세계문학전집을 냈던 그 출판사에서, 나중에 일본어로 <축소 지향의 일본인>을 일본에서 펴내 밀리언셀러가 됐다”고 했다.

이 박사는 “이 말씀은 가정에 돌아가셔서 꼭 시행하셨으면 좋겠는데, 어린이들에게 동화 읽히면 바보가 된다”며 “지금이 어느 세상인데 ‘나비가 납니다, 꽃이 웃습니다’ 따위를 읽히면 애들도 웃을 것”이라고 했다. 자신은 초등학교 시절 ‘어린이가 읽을 수 없는’ <파우스트>를 읽었기 때문에 ‘뇌세포들이 미쳤다’는 것. 그는 “글을 읽으면서 상상력과 추리력과 직관력이 한참 자라는 뇌에 엄청난 불을 붙였다”며 “지금 기억력은 많이 없어졌지만, 그 때 붙은 상상력·추리력·직관력은 그대로 살아있다”고 했다.

▲대담을 진행하고 있는 이어령 박사. ⓒ양화진문화원 제공

문단 거목(巨木)들 모두 비판하는 ‘매니페스토’ 신문에 발표
“그들 인준 받아 출세하려 한다면, 젊은이라 할 수 있는가?”

이후 만 22세 5개월이던 1956년 5월 6일, ‘서울대를 갓 졸업한 신출내기 졸업생’이 당시 신생 언론인 한국일보에 <우상의 파괴>라는 평론을 실어 그야말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일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재철 목사는 “오늘 대담의 제목이기도 한 이 글은 수필이나 칼럼 또는 어느 장편(掌篇·conte) 소설이 아니라, ‘문단의 신(神)’으로 군림하던 원로들을 우상(偶像)으로 규정하고 그들을 비판하는 글이었다”며 “선생님은 ‘시대 착오자들’을 파괴하는 우상 파괴자를 자임하셨고, 그 내용은 대단히 무섭다”고 소개했다.

당시 ‘문단의 황제’였던 소설가 김동리에게는 ‘미몽의 우상’, ‘모더니즘의 기수’를 자처한 조향에게는 ‘사기사(사기꾼)의 우상’, 농촌 문학가 이무영에게는 ‘우매의 우상’, 신진 평론가 채일수에게는 ‘영아(嬰兒)의 우상’이라고 싸잡아 비판했고, 이외에도 황순원·서정주·염상섭 등 기라성 같은 당대의 문인들도 비판의 칼날을 피해가지 못했다.

“왜 이런 걸 쓰셨느냐”는 이 목사의 질문에 “그들을 우상이라 부른 것은 그 분들을 공격하려던 게 아니라, 그들을 ‘우상’으로 섬기는 같은 세대의 젊은이들이 한심스러웠기 때문”이라며 “그 분들의 문학을 이상적인 문학 모델로 만들고 그들의 제자가 되어 인준을 받아서 글을 쓴다면, 우리에게 젊음이란 존재하지 않고 새로운 창조는 나올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고 털어놓았다. 이 박사는 “그 분들을 우상이라고 욕한 게 아니라, 우상을 만드는 당시 젊은이들, 동시대인들의 출세지향적이고 추천을 받아 등단하려 그들을 섬기는 모습이, 제 눈에는 ‘텅 빈 우상 앞에 무릎을 꿇고 굿하는 사람’과 같았다”고 덧붙였다.

또 “<우상의 파괴>를 썼을 때, 제 분노가 비단 문단에 대해서 뿐이었겠느냐”며 “당시 우상 중의 우상은 이승만 당시 대통령이었다”고도 했다. 그는 “전시(戰時)였기 때문에 당시 대학생들은 그 흔한 삐라 한 장도 못 붙였다”며 “신문에 그런 글을 쓴다는 게 생각하기엔 쉬운 일 같지만, 괜찮다는 대학 나온 22세의 창창한 젊은이가 교수도 될 수 있고 잘 보이면 문단에서 출세도 할 수 있는데 제 앞길을 모두 몽땅 두들겨 패서 막았으니 어디 가서 살 수도 없게 됐다”고 말했다.

이 박사는 “이승만 대통령이 훌륭하시지만, 국민들이 우상을 만들어 버렸기 때문에 모든 이들에게 희망이 없어진 것”이라며 “독립운동을 하시던 분이고 이로써는 훌륭하셨지만, 새로운 꿈을 열어가고 우리의 미래를 만들 창조적 모델은 될 수 없었기 때문에, 이러한 우상들을 파괴하고 벗어나야만 20년 후를 기약할 수 있었다”고 했다.

▲대담을 나누고 있는 이재철 목사. ⓒ양화진문화원 제공

유명해지려 신문에 글 썼다고? 그럼 당시 모두들 따라했을 것
싹수 자르지 않고 감싸주신 문단 어른들 덕분에 이 시대 열려

이어령 박사는 “그런데도 사람들은 제가 유명해지려고 그런 글을 썼다는데, 때려서 유명해진다면 누구나 다 그렇게 하지 않겠느냐”고 억울해했다. 먼저, <우상의 파괴>는 매니페스토(menifesto·일종의 선언)이지 평론이 아니었다고 했다. 그는 “신문 전면에 실어봐야 원고지 12장 남짓인데, 거기 무슨 평론을 쓸 수 있었겠느냐”며 “이를 싣기 전에 문리대 학보에 ‘이상론(李箱論)’을 썼으니 먹혔지, 정말 아무 것도 없이 육두문자를 날렸다면 ‘미친 놈 나왔다’고 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상론’에 대해선 “난해 작가로 몰아 난해하지도 않은 작품을 오독(誤讀)하여, ‘이상’을 우리 문단에서 잊힌 사람으로 만들어버렸다”며 “그걸 당시 대학 4학년생이 ‘의식의 흐름’ 수법으로 분석해 발표한 것”이라고 했다.

이 박사는 “기성세대를 치고 나온 게 아니라, 잃어버린 작가를 먼저 복권시키고 한국 문단에 소개하면서 그렇지 않은 작가들을 비판했던 것”이라며 “서정주 선생이 아주 훌륭한 시인이지만 그의 언어는 그 시대의 언어이지 우리의 언어는 될 수 없지 않느냐. 셰익스피어가 나오고 나면 그 후에는 희곡 작가가 나오면 안 되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그래서 그는 “100명의 서정주는 필요 없고, 하나로 족하다, 요즘 말로 ‘짝퉁을 만들지 마라’”고 외쳤다.

그는 “(우상이라 비판했던) 그 분들께 감사드리는 것은 당시 제 싹수를 얼마든지 자를 수 있는 권리와 권력과 문단 형편이 있었음에도, 그토록 혹독하게 욕하고 ‘파괴하겠다, 화전민으로서 방화하겠다’는 사람을 감싸주셨다는 점”이라며 “이렇듯 다음세대 젊은이들의 숨구멍을 그나마 틔워준 선배님들이 오늘의 이 시대를 만들어냈다”고 했다.

‘반성할 점’으로는 “제가 쓰진 않았지만 어떤 분이 저에 대해 <창조의 아이콘>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내셨는데, ‘아이콘(icon)’이 바로 우상 아닌가”라며 “50년 전 ‘우상을 파괴해야 한다’고 쓴 제게 우상이라 부르는 사람이 생긴다면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 우상이 되지 않으려 발버둥쳐도 우상으로 만들려 한다”고 말했다. 또 “우상과의 싸움은 기독교만의 싸움이 아니다”며 “우리 자유인들은 절대 우상을 만들어선 안 되고, ‘내 언어로 짤막한 내 인생을, 지문처럼 죽으면 사라질 한 생애를 이 세상에 한 사람밖에 없는 것처럼 살아가라’고 말해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어령 박사는 “구약성경을 보면 모두 왕·임금·선지자·예언자들 이야기이지만, 신약에는 이름 없는 창녀들, 영원히 역사책에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마리아나 나사로, ‘달리다쿰’으로 일어난 소녀 등 개인의 얼굴이 처음 등장한다”며 “완벽한 이상(理想)이 신·구약에 있다면, 우리가 신이 될 수 있으니 신을 믿을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는 “성경에 나오는 사람은 아무리 훌륭해도 한계가 있고, 딱 한 사람-사람의 아들이면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그렇지 않았다”며 “제가 그걸 몰랐기에 당시 말한 ‘우상’ 중에는 예수님도 있었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제 최초의 언어는 ‘우상의 파괴’였지만, 지금은 창조와 생명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며 “예전에는 부수고 죽이고, 모든 것에 부정적인 언어를 사용했다면, 80대가 되면서 언어가 긍정적으로 바뀌고, 20대의 ‘불의 언어’가 ‘물의 언어’로 변화됐다”고 말했다.

이재철 목사는 “한 인간이 사회에서 아무리 걸출하더라도, 결국 혼자서는 될 수 없고 시대와 맞물려 있기 마련이고 그런 의미에서 ‘시대에 빚진 자’”라며 “그래서 사회와 시대 앞에 이를 되갚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여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계시지만 누군가를 우상으로 만들려 해서도, 스스로 우상이 되려고 해서도 안 될 것”이라는 말로 대담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