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근 목사(온누리선교교회).
20:1 이에 모든 이스라엘 자손이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와 길르앗 땅에서 나왔는데 그 회중이 일제히 미스바에서 여호와 앞에 모였으니 2 온 백성의 어른 곧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어른들은 하나님 백성의 총회에 섰고 칼을 빼는 보병은 사십만이었으며 3 이스라엘 자손의 미스바에 올라간 것을 베냐민 자손이 들었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가로되 이 악한 일의 정형을 우리에게 고하라 4 레위 사람 곧 죽임을 당한 여인의 남편이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내 첩으로 더불어 베냐민에 속한 기브아에 유숙하러 갔더니 5 기브아 사람들이 나를 치러 일어나서 밤에 나의 우거한 집을 에워싸고 나를 죽이려 하고 내 첩을 욕보여서 그로 죽게 한지라 6 내가 내 첩의 시체를 취하여 쪼개어 이스라엘 기업의 온 땅에 보내었노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 중에서 음행과 망령된 일을 행하였음을 인함이로라 7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가 다 여기 있은즉 너희의 의견과 방책을 낼지니라 8 모든 백성이 일제히 일어나며 가로되 우리가 하나라도 자기 장막으로 돌아가지 아니하며 하나라도 자기 집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9 우리가 기브아 사람에게 이렇게 행하리니 곧 제비뽑아서 그들을 치되 10 우리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백에 열, 천에 백, 만에 천을 취하고 그 백성을 위하여 양식을 예비하고 그들로 베냐민의 기브아에 가서 그 무리의 이스라엘 중에서 망령된 일을 행한 대로 징계하게 하리라 하니라 11 이와 같이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하나같이 합심하여 그 성읍을 치려고 모였더라

1. 먼저 미가의 신당의 일(17장부터)과 레위인 첩의 사망 사건(19장)이 시대적으로 언제인가 하는 문제이다. 대부분 학자들이 마지막 사사 이후가 아닐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 그 이유는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이때 살아있었고(28절) 비느하스는 여호수아 시대에 생존했던 사람이며, 요단 동편으로 가다가 오해할 만한 단을 쌓은 사건이 있을 때 열 지파의 방백과 함께 여호수아에 의해 파송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수 22:10-14).

2. 온 이스라엘은 미스바에 함께 모여 이 일을 해결하기 원했다. 이스라엘의 어른들이 모두 모였고 그들은 여호와 앞에 있었다. 이것은 불의를 용납지 않으려는 진지한 모임이었다. 칼을 빼서 싸울 수 있는 장정은 사십만이었다. 그 모인 자들은 그 일을 자세하게 들을 양으로 그 레위 사람, 죽임을 당한 여인의 남편을 불러 정황을 다시 한 번 들었다. 레위 사람은 그 정황을 비교적 정확하게 말했다. 비교적 정확하다고 한 것은 그를 죽이려 한 것이 아니라 그들은 남색하려 한 것이고 그리고 그녀를 자기가 내어준 점 등이다. 그는 이런 점들은 상세하게 말하지 않았다.

3. 이때 이스라엘은 모여서 어떻게 할 것인가 방책을 구했다. 그리고 그 끔찍한 죄악이 일어난 일에 대하여 응징하자고 결의했다. 그들은 모든 지파가 십분지 일의 군사를 내어 제비를 뽑아 베냐민의 망령된 일을 징계하기를 결의했다. 구체적인 문제, 싸울 사람들의 양식조달문제도 해결했다.

4. 이때 베냐민도 연락을 받았을 것이고 모든 지파가 모이는 것을 들었다. 그들은 이스라엘이 자기들의 죄를 심판하기 위해 모인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들은 완고했다. 그들이 만일 정상적이었다면 응당 자신들 가운데 있었던 죄악을 자복하며 스스로 심판하려 하며 용서를 구했어야 할 것이다. 그러했다면 양상은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교만한 마음을 먹고 오지 않았다. 그들의 지파심은 도덕심이나 하나님 앞에서의 관계성보다 우선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기 지파의 명예와 단합을 위해서 그들 자신의 잘못도 감싸고자 했다. 당시 베냐민이 도덕적으로 가장 타락되어 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다른 이스라엘 지파들과 함께 하려는 마음도 적었다. 온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단체만을 위한 종파성은 구약에서나 신약에서나 악한 육체이다(갈 5:19-20).

12 이스라엘 지파들이 베냐민 온 지파에 사람들을 보내어 두루 행하며 이르기를 너희 중에서 생긴 이 악이 어찜이뇨 13 그런즉 이제 기브아 사람 곧 그 비류를 우리에게 붙여서 우리로 죽여 이스라엘 중에 악을 제하여 버리게 하라 하나 베냐민 자손이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14 도리어 각 성읍에서 기브아에 모이고 나가서 이스라엘 자손과 싸우고자 하니 15 그 때에 성읍들에서 나온 베냐민 자손의 수는 칼을 빼는 자가 모두 이만 육천이요 그 외에 기브아 거민 중 택한 자가 칠백인데 16 이 모든 백성 중에서 택한 칠백 명은 다 왼손잡이라 물매로 돌을 던지면 호리도 틀림이 없는 자더라 17 베냐민 자손 외에 이스라엘 사람의 칼을 빼는 자의 수는 사십만 명이니 다 전사라

온 이스라엘은 그들을 심판하기 전에 베냐민 지파에 사람을 보냈다. 그리고 그 잘못한 사람을 보내 그들만을 죽여 심판하겠다고 했다. 이는 매우 합당한 조치였다. 그러나 베냐민은 이스라엘 어른들의 합당한 권면을 받지 않았다. 그들은 그들 안의 부정을 감싸고 그들과 한판 싸울 것을 결의했다. 베냐민 군사도 만만치 않은 전력이었다.

그들이 뭔가 실력이 있었다는 것도 문제이다. 그들에게 칼을 빼서 전투할 인수가 이만 육천명이었다. 그 외에 기브아 거민 중 택한 자가 칠백이었다. 기브아는 그 끔찍한 죄를 지은 도시인데 회개는 커녕 싸움 잘하는 왼손잡이 칠백명을 뽑아 이스라엘과 맞붙을 요량으로 보냈다. 그들은 물매돌을 얼마나 잘던지는지 던지기만 하면 틀림없이 목표물을 맞추는 실력자들이었다. 그들은 그러한 물매돌로 다윗과 같이 대적을 잡는데 쓴 것이 아니라 형제들을 치는데 사용하고자 했다.

18 이스라엘 자손이 일어나 벧엘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묻자와 가로되 우리 중에 누가 먼저 올라가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유다가 먼저일지니라 19 이스라엘 자손이 아침에 일어나 기브아를 대하여 진을 치니라 20 이스라엘 사람들이 나가서 항오를 벌이고 거기서 그들과 싸우고자 하매 21 베냐민 자손이 기브아에서 나와서 당일에 이스라엘 사람 이만 이천을 땅에 엎드러뜨렸으나 22 이스라엘 사람들이 스스로 용기를 내어 첫날 항오를 벌였던 곳에 다시 항오를 벌이니라 23 이스라엘 자손이 올라가서 여호와 앞에서 저물도록 울며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내가 다시 나아가서 나의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올라가서 치라 하시니라 24 그 이튿날에 이스라엘 자손이 베냐민 자손을 치러 나아가매 25 베냐민도 그 이튿날에 기브아에서 그들을 치러 나와서 다시 이스라엘 자손 일만 팔천을 땅에 엎드러뜨렸으니 다 칼을 빼는 자였더라

1. 그들은 벧엘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물었다. “우리 중에 누가 먼저 올라가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그들은 그렇게 죄를 범한 베냐민, 말을 해도 듣지 않는 베냐민을 징벌하는 것은 당연한 일로 결론이 난 상태였다. 그들은 그 자체를 묻기에는 너무 많이 나아갔고 분이 충천해 있었다. 주님은 그들이 어떻게 물었을 때 어떻게 대답을 해주셨다. “유다가 먼저 일지니라”. 어떤 학자들은 이 말을 그들이 여호와로부터 들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확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 대답은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본다.

2. 그들이 나아가 싸웠지만 기브아에서 나온 베냐민 자손이 이스라엘 자손 이만 이천 명을 엎드려뜨렸다. 불법과 육적인 힘도 크게 힘을 발휘한다. 이스라엘은 스스로 용기를 내어 첫날 항오를 벌렸던 곳에 다시 항오를 벌렸다. 그리고 저물도록 울며 기도했다. “내가 다시 나아가서 나의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그때 여호와께서는 대답하셨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올라가서 치라 하시니라”.

이 기도는 순서가 바뀐 감이 있다. 두 번째 기도를 먼저 했어야 한다. 그러나 이들은 첫번째 결정은 자신들이 했다. 너무나 분개한 일이고 징벌해야 마땅한 일이라 간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심하게 패하자 혹 주님이 베냐민과 싸우는 것을 원하지 않으시는 것은 아닌가 흔들렸다. 그래서 하루종일 울면서 기도한 것이다. 그때 주님은 올라가서 치라고 하셨다. 두 번째 나아갔을 때도 그들은 패했다. 일만 팔천명을 잃어버렸다. 분이 올라서 하는 일은 옳은 일이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사람의 혈기가 그친 곳에서 역사를 시작하신다.

26 이에 온 이스라엘 자손 모든 백성이 올라가서 벧엘에 이르러 울며 거기서 여호와 앞에 앉고 그 날이 저물도록 금식하고 번제와 화목제를 여호와 앞에 드리고 27 여호와께 물으니라 (그 때에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거기 있고 28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그 앞에 모셨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묻자오되 내가 다시 나가 나의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말리이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올라가라 내일은 내가 그를 네 손에 붙이리라 29 이스라엘이 기브아 사면에 군사를 매복하니라 30 이스라엘 자손이 제 삼 일에 베냐민 자손에게로 치러 올라가서 전과 같이 기브아를 대하여 항오를 벌이매 31 베냐민 자손이 나와서 백성을 맞더니 꾀임에 빠져 성읍을 떠났더라 그들이 큰 길 곧 한편은 벧엘로 올라가는 길이요 한편은 기브아의 들로 가는 길에서 백성을 쳐서 전과 같이 이스라엘 사람 삼십 명 가량을 죽이기 시작하며 32 스스로 이르기를 이들이 처음과 같이 우리 앞에서 패한다 하나 이스라엘 자손은 이르기를 우리가 도망하여 그들을 성읍에서 큰 길로 꾀어내자 하고 33 이스라엘 사람이 모두 그 처소에서 일어나서 바알다말에 항오를 벌였고 그 복병은 그 처소 곧 기브아 초장에서 쏟아져 나왔더라 34 온 이스라엘 사람 중에서 택한 사람 일만이 기브아에 이르러 치매 싸움이 심히 맹렬하나 베냐민 사람은 화가 자기에게 미친 줄을 알지 못하였더라 35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앞에서 베냐민을 쳐서 파하게 하시매 당일에 이스라엘 자손이 베냐민 사람 이만 오천일백을 죽였으니 다 칼을 빼는 자이었더라 36 이에 베냐민 자손이 자기가 패한 것을 깨달았으니 이는 이스라엘 사람이 기브아에 매복한 군사를 믿고 잠깐 베냐민 사람 앞을 피하매 37 복병이 급히 나와 기브아에 돌입하고 나아가며 칼날로 온 성읍을 쳤음이더라 38 처음에 이스라엘 사람과 복병 사이에 상약하기를 성읍에서 큰 연기가 치미는 것으로 군호를 삼자 하고 39 이스라엘 사람은 싸우다가 물러가고 베냐민 사람은 이스라엘 사람 삼십 명 가량을 쳐죽이기를 시작하며 이르기를 이들이 정녕 처음 싸움같이 우리에게 패한다 하다가 40 연기구름이 기둥같이 성읍 가운데서 일어날 때에 베냐민 사람이 돌아보매 온 성읍에 연기가 하늘에 닿았고 41 이스라엘 사람은 돌이키는지라 베냐민 사람이 화가 자기에게 미친 것을 보고 심히 놀라 42 이스라엘 사람 앞에서 몸을 돌이켜 광야 길로 향하였으나 군사가 급히 추격하며 각 성읍에서 나온 자를 그 가운데서 진멸하니라 43 그들이 베냐민 사람을 에워쌌더니 기브아 앞 동편까지 쫓으며 그 쉬는 곳에서 짓밟으매 44 베냐민 중에서 엎드러진 자가 일만 팔천이니 다 용사더라 45 그들이 몸을 돌이켜 광야로 도망하여 림몬 바위에 이르는 큰 길에서 이스라엘이 또 오천 명을 이삭 줍듯 하고 또 급히 따라 기돔에 이르러 또 이천 명을 죽였으니 46 이 날에 베냐민의 칼을 빼는 자의 엎드러진 것이 모두 이만 오천이니 다 용사더라 47 베냐민 육백 명이 돌이켜 광야로 도망하여 림몬 바위에 이르러 거기서 넉 달을 지내었더라 48 이스라엘 사람이 베냐민 자손에게로 돌아와서 온 성읍과 가축과 만나는 자를 다 칼날로 치고 닥치는 성읍마다 다 불살랐더라

1. 여기서 우리는 주 하나님께서 그래도 베냐민의 편에 계시지 않고 온 이스라엘의 편에 계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베냐민 사람들도 당시 나름대로의 옳은 이론이 있었을 것이다. 명분없이 그 많은 용사들을 모을 수 없다. 그들은 어쩌면 단(라이스)에 세운 우상을 트집으로 잡았을 수도 있다. 그들은 나름대로 부도덕한 죄를 지었지만 종교적으로 하나님을 바꾸는 우상을 세우는 일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을 수도 있다. 또한 그들의 잘못을 국문하기 위해 미스바에 베냐민 지파를 부르고 조사하는 과정이 자기들의 존재에 대하여 상당히 무시했다고 불평했을 수도 있다.

그들의 상당한 논리나 주장하는 위치가 있었겠지만 하나님은 그래도 언약궤와 전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한 보편적인 교회의 입장에 서 계셨다. 신약에도 이는 매우 중요한 진리이다. 어떤 무리가 아무리 영적이라 하더라도 보편적인 그리스도의 몸의 위치를 버리고 자신들만을 몸이라고 하며 유일한 교회라고 주장하며 다른 보편적인 교회들을 타도대상으로 삼는 데까지 빠지면 심각한 종파적인 위치에 서게 되는데 그럴 때 그들은 많은 열심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함께하심을 놓치게 된다. 이때 베냐민은 잠시나마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잃고 도리어 징벌의 대상이 된 것이다.

2. 물론 여기서 이스라엘은 성급했다. 그들은 하나님과 동역하여 한발 한발 걸어가는 것에 있어서 노련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바가 매우 옳다고 생각했고 자신들이 어떻게 하더라도 하나님이 함께 해주실 것이라 믿었다. 과연 하나님은 그들을 존중하셨고 그들 편에 함께 서 계셨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들의 두 번의 나아가 싸운 전투는 사람 편의 성급한 면이 포함되어있다. 그들의 기도의 순서가 합당치 않은 것도 그러하고 두번째 날 싸우기 위해서는 스스로 용기를 냈다 하는 구절도 그러하다(22절).

성령의 일은 스스로 용기를 낼 필요가 없이 하나님이 주시는 용기로서 나아간다. 그들은 두 번을 패하고 사만 명을 잃어버리고 하나님 앞에 심각하게 무릎을 꿇었다. 그렇지만 그들의 위치가 하나님께 있기 때문에 돌이키기 쉽고 회개하기가 좋았다. 그리스도인은 이처럼 서 있는 위치가 중요하다. 종파의 위치란 서 있는 위치가 잘못되어 다른 사람이 다 잘못되고 자신들만 옳다고 하는 것이기에 틀린 것에 대하여 옳다 하는, 즉 보는 눈의 각도가 잘못되어 시야가 삐뚤어지기 때문에 그들은 사태를 바로 보고, 돌이킬 소망이 너무 없다. 올바른 교회의 위치, 즉 보편적인 위치란 모든 그리스도인을 자신의 지체이며 형제 자매로 대하는 위치인 것이다. 즉 모든 그리스도인을 한 몸의 지체로 포함하여 사랑하고 교제하는 위치이다(고전 12:12).

두 번을 패배한 후 그들의 회개는 매우 좋았다. 거기에는 번제도 있고 화목제도 있으며 금식도 있고 눈물도 있었다. 그들은 또한 언약궤와 함께 당시의 분열의 위치가 아닌 하나님의 집의 정통성있는 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와 함께 하고 있었다. 그들은 또한 비록 사만명이 죽었지만 반드시 원수 베냐민을 보복해야겠다고 부르짖지도 않았다. 그들은 싸우는 일 자체도 내려놓았다. 그들은 하나님이 하지 말라 하시면 안할 수도 있다고 말씀드렸다.

그러므로 온종일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여호와 앞에 있었던 것이다. “여호와여 싸우리이까 말리이까?” 주님은 이때 분명하게 대답하셨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올라가라 내일은 내가 그를 네 손에 붙이리라”. 맨 처음부터 이렇게 하지 않은 것이 유감스럽지만 그래도 그들은 좋았다. 베냐민은 계속 싸우러 나오지만 기도하고 회개한 기록이 없다. 그들의 부정과 육체와 고집이었다. 그 결과는 멸망인 것이다.

3. 주님의 ‘내일은’이라는 말씀을 생각해보면 이전 두 번의 싸움에서는 그들 손에 붙이지 않으셨다는 말도 된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어느 정도 이스라엘 사람들의 인본주의 요소가 들어간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그 이전에는 ‘너희들이 하는 것이니 해보거라’는 뜻도 포함된다. 그들은 패하면서 영적인 공과를 배우게 되었다. 이런 일은 앞서 번제와 화목제와 금식과 회개의 눈물을 흘릴 만한 일이었다. 베냐민은 도덕적으로 부패한 죄를 지어 징벌을 당해야 하지만 이스라엘은 형제를 징벌하는 일에서 더 심각한 느낌을 가져야 했다.

사람이 만일 자신의 손이 썩어들어가서 끊어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면 물론 끊어내야 하겠지만 얼마나 심사숙고 하겠는가? 끊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처음부터 고심할 것이고 할 수만 있다면 끊어버리지 않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을 것이다. 이들은 부정하고 악한 죄를 지은 베냐민을 징벌하는 것에는 강했지만 그 일을 놓고 하나님 앞에 고심하는 시간은 부족했다. 그들은 한번 두번 패하면서 배우게 되었던 것이다. 즉 그들은 부정한 것을 징벌하는 데는 매우 분개하고 용감하며 즉각적이었지만 그 형제들을 멸절하고 말살하는 것에 대한 아픔은 충분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들은 이 점에 있어서 하나님과의 궤리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4. 그들은 하나님께 기도하고 승리의 확신을 가졌지만 인간 편에서도 자세하고 치밀하며 주도면밀한 작전을 구사했다. 하나님 없이 두 번의 승리만 한 베냐민은 자신들을 신뢰하기에 충분했다.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비우고 기도하고 금식하며 회개한 이스라엘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을 너무나 잘 알게 되었다. 그들은 실패한 것에 대해서도 알게 되고 베냐민이 어떻게 나올 것도 잘 알게 되었다. 영에 속한 사람은 육에 속한 사람의 일을 다 알 수 있다(고전 2:15). 주님을 사랑하는 자들, 온당한 자들에게는 실패를 통해서도 전략을 얻는 법이다. 즉 과거의 실패가 미래의 성공의 자료와 열쇠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 전투는 그 이전과 달랐다. 군사를 기브아 사면에 매복시켰다. 이것은 그들이 자신들의 승리를 믿고 성읍을 쉽게 빠져 나올 것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기브아 성읍은 그 죄과로 인하여 가장 먼저 참혹하게 복병들에 의해 온 성읍이 칼로 살륙당했다(37, 40절). 육에 속한 사람은 그 수가 뻔하다. 두 번을 크게 이겼으니 계속 이길 줄 안 것이다. 그들은 역시 삼십여 명을 치며 지난 번처럼 또 이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성읍을 빠져 나왔다. 그러다 기브아 앞 동편에서 일만 팔천을 잃고 림몬 바위쪽에서 오천명, 기돔에서 이천명, 해서 도합 이만 오천의 용사가 다 죽었다.

림몬 바위 쪽으로 도망하던 사람들은 ‘이삭 줍기 하듯’죽임을 당하였으니 반항도 못하고 죽임을 당했다는 뜻이다. 간단히 말해서 베냐민은 이스라엘의 작전에 휘말렸다. 그리고 무참하게 패했다. 처음에는 자기들이 당하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이제 성읍에 연기가 오르고 도망가는 척하던 이스라엘이 돌이키고 복병들이 일어나니 베냐민은 그제서야 큰일난 줄을 알았다. 자신을 신뢰하고 교만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이미 패했는데도 그것을 모른다. 나중에 완전히 패배하였을 때에서야 현주소를 알게 된다.

교만과 고집이 사람을 멸망케 한다. 베냐민 용사 육백 명만 남겨놓고 다 죽었다. 그들은 림몬 바위 곁에 숨어 넉달을 지냈다. 베냐민 사람들의 성읍은 가축까지 모조리 불살라지고 칼로 죽임을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