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근 목사(온누리선교교회).
18:1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고 단 지파는 이 때에 거할 기업의 땅을 구하는 중이었으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이 때까지 기업의 땅 분배함을 얻지 못하였음이라 2 단 자손이 소라와 에스다올에서부터 자기 온 가족 중 용맹 있는 다섯 사람을 보내어 땅을 탐지하고 살피게 하며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가서 땅을 살펴보라 하매 그들이 에브라임 산지에 가서 미가의 집에 이르러 거기서 유숙하니라 3 그들이 미가의 집에 가까이 올 때에 레위 소년의 음성을 알아듣고 그리로 돌이켜 가서 그에게 이르되 누가 너를 이리로 인도하였으며 네가 여기서 무엇을 하며 여기서 무엇을 얻었느냐 4 그가 그들에게 이르되 미가가 여차여차히 나를 대접하여 나를 고빙하여 나로 자기 제사장을 삼았느니라 5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청컨대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어 보아서 우리의 행하는 길이 형통할는지 우리에게 알게 하라 6 그 제사장이 그들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너희의 행하는 길은 여호와 앞에 있느니라

1. 앞의 17장 6절에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다”는 말이 반복되고 있다. 이는 왕정의 필요성을 암시하고 있다. 왕이 없기에 그들이 소견대로 행하여 우상숭배에 빠질 뿐 아니라 처리할 길도 없다. 이제 기업을 잃어버린 단 지파의 경우 어떻게 찾을 수 있는가? 왜 잃어버렸는가? 첫째는 하나님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이제 그 타락의 정도가 심하여 하나님과의 정상적인 관계를 회복하여 찾기는 어렵고 이스라엘 가운데 왕이라도 있어야 찾을 수 있게 된 것이다.

2. 단 지파는 여호수아 19장 40-46절에 그들의 기업을 분배받았다. 그러나 사사기 1장 34절에 의하면 아모리 사람들에 의해 빼앗기고 산지에만 거하게 되었다. 단 자손은 믿음이 가장 약한 지파였다.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약속의 땅을 지키지도 못하고 대적에게 빼앗긴 것이다.

1절에 그들이 땅 분배함을 받지 못하였다는 표현은 그 원래 분배받은 땅을 빼앗겼기 때문에 그들이 소유하지 못한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주신 약속은 믿음으로 취해야 우리의 것이 확실하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업을 주시고 믿음으로 정복하여 취하게 하신다. 믿음이 없고 싸워 이기지 않으면 가진 것까지 빼앗겨 버린다. 그만큼 믿음이 중요하다. 단 지파 사람들은 연약한 믿음을 가졌기에 하나님이 주신 땅을 쉽게 대적에게 내어준 것이다. 그러나 그런 지파 가운데서 삼손같이 훌륭한 사사가 나왔다.

유감스럽게도 단 지파의 사람들은 사사 삼손 때에 그를 도와 블레셋과 싸웠다든지 하는 기록이 없다. 그들은 매우 소극적인 사람들이었다. 삼손 혼자 사사 노릇하게 그냥 두었다. 그들은 겨우 소라와 에스다올에 거하면서 방황하고 있었다. 소라와 에스다올은 단의 기업의 일부였으며 유다와 단 지파의 경계였다. 즉 유다의 경계지역 약간을 빼놓고는 거할 땅이 없었다. 그곳은 또한 삼손의 고향이기도 했다. 유다 사람들은 삼손을 블레셋에다 묶어 넘겨주기도 했다. 이 일은 그들이 서로 가까운 곳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3. 이제 그들은 영토를 확장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들의 인수는 요단 저편 모압 땅에서 인수 조사 때 육만명이 넘었다. 그러므로 그 인수를 수용할 만한 영토가 부족했던 것이다. 그들은 이제 싸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들은 그렇게 많은 인수가 있었음에도 정작 싸우러 나간 자의 수는 육백명이었다(11절). 그리고 먼저 용맹한 다섯명의 정탐을 보내었다. 기묘하게도 같은 종류의 사람들은 잘 만나지고 해(害)와 악(惡)은 쉽게 번져 나가는 특징이 있으며 그런 해악을 받아들일 만한 대상이 쉽게 접해지는 특징이 있다. 집에서도 불이 나면 이상하게도 가장 잘 타는 물질이 가까이 있어 큰 불로 화하는 것이다.

4. 그 다섯 사람들은 에브라임 산지에 가서 미가의 집에 이르렀다. 미가의 집은 오늘말로 하면 주막이나 목이 좋은 가게 터 같은 장소였다. 그러므로 그 다섯 정탐은 그 집에 가서 유숙하기로 한 것이다. 그곳에 가서 그들은 레위 소년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들은 전부터 그를 아는 사이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 소년의 말소리만 듣고도 알게 된 것이다.

에브라임 사람들은 특수한 발음을 하는 소위 사투리식 히브리 말을 하기 때문에 그들은 레위 소년을 구분할 수 있었고 어쩌면 소년이 방황할 때 단 지역인 소라와 에스다올도 거쳤던 것 같다. 생계를 위한 종교적인 열심도 대단하다. 그 소년은 이곳 저곳 자기를 필요로 하는 곳이 없나 하여 사방을 다녔던 것이다. 그때 이 정탐들도 만났을 것이다. 이 정탐들이 이 소년에게 물어본 말로 보아 이 단 지파 정탐들은 레위 소년이 무엇을 찾던 사람인가를 알고 있었다.

그들이 소년에게 “누가 너를 이리로 인도하였으며 네가 여기서 무엇을 하며 여기서 무엇을 얻었느냐”라고 물어본 것으로 알 수 있다. 그 소년은 그 정탐들을 만났을 때도 뭔가를 얻기 위해 그들을 접했다는 말이다. 그 레위인은 잠자리나 먹을 것이나 입을 것을 주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의사를 표현한 것 같다. 그런데 여기 왔을때 누가 너에게 무엇을 하라고 했으며 어떤 보상을 하겠다고 한 것이냐고 물은 것이다.

5. 그 레위인은 정탐들에게 소상하게 자기의 상황을 말하였다. 즉 미가가 자기를 여차여차히 대접하기로 하고 제사장을 삼았다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그 정탐들은 그에게 자기들이 하려는 일에 대하여 형통할는지 여부를 물어달라고 부탁했다. 그 제사장은 그들에게 좋은 말을 해주었다. “그 제사장이 그들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너희의 행하는 길은 여호와 앞에 있느니라”(6절).

이것은 이스라엘의 종교적인 타락의 상황을 말해주고 있는 부분이다. 단 지파 사람들이 정신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들은 마땅히 레위인의 말과 처신과 행동이 옳지 않음을 인지하고 지적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이미 출애굽기의 모세의 분명한 율법과 규례의 말씀은 희미해졌다. 그리고 몇 가지 그저 종교적인 습관과 관례만 남았기에 그 틈바구니를 우상 숭배가 비집고 들어온 것이다.

나는 레위 소년이 정말로 에봇을 사용하는 법대로 하나님을 접촉해서 그들의 길을 알아냈는지 아니면 거짓 선지자로서 행했는지 귀신과 접해서 말해냈는지 알 길이 없지만, 여러 가능성을 다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하나님은 크시고 어떤 형편에든지 그분의 백성을 긍휼히 여기시는 분이므로 어떤 식으로든 부족한 믿음의 형편에서라도 그분의 뜻을 알려하고 그분의 뜻을 준행하려 한다면 그것을 위해 역사하실 수 있다고 믿는다. 그 소년이 비록 우상과 더불어 혼합된 식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의 위치에 있었지만 필요할 경우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위하여 그러한 자를 통해서도 말씀해주실 수 있다고 본다.

더욱이 단 지파의 사람들의 행하려고 하는 바가 하나님의 뜻에 일치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들이 그 정탐하는 라이스(레센) 지역을 이미 분배하셨고 기업으로 주시기 원하셨다(수 19:47). 그러나 그런 사람이 한두 번 하나님이 사용하시어 하나님 말씀을 말해낼 수 있다 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장이나 선지자가 될 수 있는가는 별개 문제다. 발람의 경우가 그러하며 하나님은 정작 필요할 때는 그의 나귀를 통해서도 말하실 수 있으셨다.

7 이에 다섯 사람이 떠나 라이스에 이르러 거기 있는 백성을 본즉 염려 없이 거하여 시돈 사람같이 한가하고 평안하니 그 땅에는 권세 잡은 자가 없어서 무슨 일에든지 괴롭게 함이 없고 시돈 사람과 상거가 멀며 아무 사람과도 상관하지 아니함이라 8 그들이 소라와 에스다올에 돌아와서 그 형제에게 이르매 형제들이 그들에게 묻되 너희 보기에 어떠하더뇨 9 가로대 일어나서 그들을 치러 올라가자 우리가 그 땅을 본즉 매우 좋더라 너희는 가만히 있느냐 나아가서 그 땅 얻기를 게을리 말라 10 너희가 가면 평안한 백성을 만날 것이요 그 땅은 넓고 그 곳에는 세상에 있는 것이 하나도 부족함이 없느니라 하나님이 너희 손에 붙이셨느니라 11 단 지파 가족 중 육백 명이 병기를 띠고 소라와 에스다올에서 출발하여 12 올라가서 유다 기럇여아림에 진치니 이러므로 그 곳 이름이 오늘까지 마하네단이며 그 곳은 기럇여아림 뒤에 있더라 13 무리가 거기서 떠나서 에브라임 산지 미가의 집에 이르니라

1. 여기서 단 지파 사람들의 가나안 정복은 비록 늦었지만 여호수아의 정복사를 회상하게 해준다. 정탐을 보낸 것이 그러하고 다섯 정탐의 적극적인 보고가 그러하다. 그들이 여호수아 시대의 정복사를 다만 흉내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기에는 그들의 보고 내용이 매우 사실적이고 상세하다. 그 다섯 사람이 그들의 상태를 대충 종교적으로 보고 전통 지식에 의거하여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적극적으로 보고하려 했다면 그렇게 사실적이고 설득력있는 보고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그들이 조상들의 신앙에 의해 도움을 받았겠지만 지금은 또 다른 차원에서 나름대로 역사한 부분이 있다고 본다.

그들이 라이스 사람들의 상태가 염려가 없고 한가하며 평안하더라는 것은 그들을 자세히 살핀 결과다. 심지어 그들의 대화 내용도 관찰하고 얼굴빛까지 살폈다는 얘기다. 또 그들의 정치 체제도 보았고 그들의 경제 상황도 보았다. 라이스는 팔레스틴의 가장 북쪽에 위치해 있고 헬몬산에 가려 아람과 단절되어 있고 레바논에 의해 페니키아와도 단절되어 있다. 이스라엘 지경을 말할 때 단에서 브엘세바까지라고 한다. 이는 단이 반드시 그곳을 점령해야 말할 수 있는 이름인 것이다.

그들은 그 지형과 사람들을 잘 살폈다. 강한 권력자가 없어서 사람들이 편안하고 안정되어 있었다. 그들의 이웃들과의 교역과 연락 관계가 어떠한가도 살폈다. 시돈과는 거리가 멀어 관련이 없었고 다른 아무와도 상관없는 백성들이었다. 그들은 정탐을 잘하였고 보고도 좋았다. 한 마디로 그들은 단 지파가 먹기에 좋은 밥이었다.

2. 그들이 돌아와서 묻는 형제들에게 대답했다. “일어나서 그들을 치러 올라가자 우리가 그 땅을 본즉 매우 좋더라 너희는 가만히 있느냐 나아가서 그 땅 얻기를 게을리 말라 너희가 가면 평안한 백성을 만날 것이요 그 땅은 넓고 그 곳에는 세상에 있는 것이 하나도 부족함이 없느니라 하나님이 너희 손에 붙이셨느니라”. 이는 정말로 믿음이 있는 적극적인 대답이다. 주님은 모세를 통하여 단에 대하여 좋은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이는 틀림없이 이러한 때의 광경을 두고 한 말이다. “단은 바산에서 뛰어나오는 사자의 새끼로다”(신 33:22).

하나님은 그분의 자녀들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좋은 것이 있으면 그것을 보고 기뻐하신다. 단은 가장 연약한 믿음의 지파였고 분배해주신 땅을 지키지 못하고 빼앗겼으며 느지막이 견디다 못해 할당된 기업의 땅을 취하러 나섰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이런 상황을 자랑스러워하시며 그들이 바산에서 뛰어나오는 사자새끼라고 하신다.

“그 땅 얻기를 게을리 말라…그 땅은 넓고…세상에 있는 것이 부족한 것이 없느니라…하나님이 너희 손에 붙이셨느니라” 등의 말은 믿음 있는 사람들의 말이요 과연 단의 용맹한 자들이다.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는 언제나 아무리 연약한 무리 가운데일지라도 용맹한 자들이 감취어 있는 법이다.

3. 싸우러 나선 사람의 수는 600명이었고 그들은 소라와 에스다올을 떠났다. 그들이 진친 곳이 기럇여야림인데 그곳은 나중 하나님의 언약궤가 오랫동안 머물렀던 곳이다. 그들이 그곳에서 에브라임 산지 미가의 집에 이르렀다. 정탐들이 왔던 길 그대로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