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동근 목사(온누리선교교회).
3) 기본적으로 믿어야 할 말씀들

베드로전서 5장 8-9절에 의하면 마귀를 대적하는 비결은 믿음에 있다. 이 구절은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삼킬 자를 찾는데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고 가르친다. 믿음을 굳게 하지 않으면 저를 대적할 수 없다는 말씀이다.

첫째로,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는 것임을 믿어야 한다(요일 3:8). 주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그분은 가시는 곳마다 귀신을 쫓아내셨다. 그리고 그분은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을 교회에게 주셨다.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눅 10:19)”.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마귀의 일을 전복시킬 수 있다.

둘째로,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마귀를 멸했다. 우리는 주 예수님의 죽으심이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셨음을 믿어야 한다(히 2:14). 사탄의 권세는 사망까지이다. 그는 사망으로 사람을 다스리려 하지만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므로 그는 더 이상 우리를 다스릴 수 없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것은 이미 이루어진 사실이지 장래의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신자가 죽기를 추구한다면 그것이 좋은 것 같지만 실상 육체의 위치에 서 있는 것이므로 사탄이 그 사람에게 세력을 행사하게 된다. 우리가 만일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것을 믿고 굳게 선다면 사탄은 우리 위에 역사할 근거를 갖지 못한다.

셋째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 것을 믿어야 한다. 골로새서 2장은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고 말한다. 이 구절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음을 말하고 함께 부활했음을 말한다. 우리는 사탄이 우리가 받은 부활의 새 생명을 공격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사탄이 그리스도를 공격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우리가 사탄을 대적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생명이 사탄과 무관한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이기 때문이다.

넷째로, 그리스도의 승천을 믿어야 한다. 에베소서 2장 6절에 의하면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힌 바 됐다.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 승천하여 하늘 보좌에 앉힌 바 된 우리는 사탄의 능력을 초월하는 위치에 있다. 우리는 먼저 앉고(sit), 다음에 선다(stand).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엡 6:13下)”.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승리했으므로 그 승리를 기초로 하여 사탄을 대적할 수 있음을 말한다. 우리는 사탄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데, 이는 우리가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승리하였기 때문이요 우리는 다만 사탄의 공격에 방어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선다는 것의 의미이다. 주님이 완전히 승리하셨으므로 우리가 또다시 싸워 이길 것이 없다. 우리는 다만 그리스도의 승리를 의지하여 서 있으면 된다.

사탄은 우리가 이미 얻은 승리를 보지 못하게 하거나 잊어버리게 하여 우리의 승리를 도적질하려 한다. 사탄이 하는 일은 우리에게 과연 믿음이 있는가를 보고 믿음에 서있지 않을 때 우리를 실패하도록 미혹하는 것이다. 우리는 승리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아니고 이미 승리한 것을 알고 대적하기만 하면 되는 사람들이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미하자!

4) 사탄이 역사하는 장소

a. 생각

고린도후서 10장 4-5절에서는 하나님의 강력으로 모든 이론을 파한다고(destroy) 했는데, 여기의 이론(reasoning)은 추측들(speculations, NASB)로도 번역되고 환상들(imaginations, ASV)로도 번역됐다. 바울은 이 구절에서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케 한다고 하였다. 이는 사탄이 역사하는 영역이 생각임을 알 수 있다.

성도들이나 주님의 종들에 대해 갖는 많은 생각들이 사실이 아닌 환상이요 추측이다. 사탄은 교회 안에 이러한 것들을 주입하여 서로 미워하게 하고 이간시킨다. 이것이 사탄이 하는 일이다. 이러한 사탄의 일에 대적하는 것은 사탄이 준 생각의 진상을 아는 일이다. 즉 어떤 생각이 있는데 그것이 자신의 정상적인 판단을 거친 것인지 사탄이 넣어준 것인지를 아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것이 아닐 때 버리고 거절하는 것이다.

다음은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고 성도들의 아름다운 것들과 옳고 경건하고 참된 것들만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이 사탄으로 우리 생각에 역사하지 못하게 하는 길이다. 사도는 영의 일을 생각하는 자들이 곧 영을 좇는 자들이라고 했다(롬 8:5).

또한 사탄적인 생각을 버려야 한다. 만일 성도가 사탄의 사상을 좋아하고 그런 생각을 품는다면 사탄은 쉽게 그런 사람의 생각 속에 자기 사상을 주입한다. 예를 들어, 어떤 성도가 다른 사람들의 실패한 일이나 험담이나 잘못된 일들을 듣기를 좋아한다면 사탄이 악한 사상을 집어넣으려 할 때 거절하지 못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모든 성도들에 대한 악한 관념들은 생각 속에 집어넣지 말아야 한다. 또한 모든 부정한 환상들이나 생각들도 거절해야 한다. 그럴 때 사탄은 우리의 생각 속에 자리를 잡지 못하게 된다.

b. 육체

주님은 이 땅에 계시는 동안 베드로 장모의 열병이나(눅 4:38-39) 마가복음 9장의 귀먹은 아이를 치료하실 때 귀신을 꾸짖으시고 쫓아내셨다. 마가복음 9장의 아이가 귀먹고 말하지 못함은 귀신들림으로 인한 것이었다. 주님은 이것에 대해 분명하셨으므로 귀신을 쫓아내셨다. 그리스도인이 병들었을 때 그 원인이 자연 법칙을 어겨 몸을 무리하게 사용한 데 있는지 아니면 귀신에게서 비롯된 것인지를 알고 처리해야 한다. 귀신에게서 왔다면 귀신의 역사를 거절할 때 치료된다. 사탄은 때로 우리의 육체 속에 원인 모를 질병을 보내어 병들게 만든다. 성경에서 많은 병들이 마귀가 보낸 것들이다. 그럴 때 우리도 마귀를 쫓아내야 치유 할 수 있다.

c. 양심

사탄은 사람의 양심을 참소함으로 공격한다. 그리스도인은 거듭난 후 양심이 깨어나 민감하게 되므로 사탄은 이를 이용하여 참소함으로 그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못하게 하고 침체와 흑암으로 이끈다. 성령의 책망은 우리로 그리스도의 보혈이 생각나도록 이끌지만 사탄의 참소는 오히려 보혈을 멀리하게 한다. 성령의 책망은 우리로 자백하고 힘을 얻게 이끌지만 사탄의 참소는 낙심하고 물러나게 한다. 사탄의 참소를 이기는 비결은 어린 양의 피이다. 어린 양의 피로 인하여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죄를 시인해야 한다. 또 우리 입의 증거하는 말로 참소자 마귀를 이긴다. 우리는 사탄의 공격을 받을 때 주님이 이루신 사실과 그리스도의 승리를 입으로 선포해야 한다. 그리고 죽기까지 자신의 생명을 아끼지 않는 것이다(계 12:11).

d. 환경

믿는 이에게도 고난과 어려움이 있음을 우리는 이미 보았다. 질병이나 불행도 닥쳐올 수 있다. 마태복음 8장에 의하면 제자들이 주님과 함께 바다 저편으로 건너갈 때 돌연히 강풍이 불어닥쳤다. 배가 파도에 잠길 것 같았다. 주님과 함께 가는 길에도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다. 특별히 이러한 일은 사탄의 공격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이때 주님은 그들의 믿음이 적은 것을 책망하시며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셨다. 꾸짖으셨다는 것은 그 바람과 풍랑 배후에 귀신이 있다는 것이다. 사탄은 우리의 생각과 양심과 육체를 공격할 뿐 아니라 환경에서도 역사하여 우리를 혼란시키고 넘어지게 한다.

야고보서 4장과 베드로전서 5장에서는 사탄을 대적하라고 하면서 동시에 하나님께 순복하라고 말한다. 환경에서 사탄이 공격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 순복하는 태도를 지녀야 하고 동시에 사탄을 대적해야 한다. 악한 환경은 사탄이 가져오지만 한 가지도 하나님의 허락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즉 성도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손에 있지 아니한 환경은 한 가지도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에 따른 것이 아닌 사탄이 일으킨 환경은 하나님께 순복함으로 대적한다면 물러간다. 또한 사탄은 믿는 이에게 두려움을 가져다준다. 두려움은 사탄의 역사의 전주곡(前奏曲)이다. 그러므로 믿는 이들은 모든 종류의 두려움을 거절해야 한다. 항상 고난의 갑옷을 입고(벧전 4:1) 죽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면(계 12:11) 모든 종류의 두려움을 거절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