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한 교수(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초대원장).
“인자(人子, Son of Man)”는 히브리 말로는 “벤 아담”으로 사람의 아들, 인류를 이루는 각 개인을 가리킨다. 후기 유대교에서는 경건한 유대인들 계층은 “인자”가 오기를 기다렸다. 이 “인자”는 마지막 심판 후에 하나님으로부터 세상의 통치권을 넘겨받으실 초월적 존재(단 7:13-14)를 가리킨다. 그러나 에녹서나 신약성경의 표준적인 견해에 따르면 “인자”는 하나님의 위탁과 전권을 받아서 몸소 최후심판을 주재하시는 분이시다.

나사렛 예수는 이러한 유대교에서 내려온 “인자” 칭호를 자신에게 사용하셨다. 그가 사용한 “인자”라는 명칭은 보통 인간과 동일시되는 겸허한 존재,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죄를 사하고 병을 고치는 권세를 지닌 존재, 그리고 묵시록적으로 이 세상에 올 초월적 존재, 세상종말에 의인과 악인을 심판할 존재 등 다양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예수의 “인자” 칭호 사용은 그가 지니신 명료한 메시아 의식에서 나온 것이다.

◯ 구약에서의 “인자(人子)”

에스겔에서 하나님은 예언자 에스겔을 93번이나 “인자”라고 부르신다. 하나님의 신이 사람 에게 임재할 때에만 사람은 하나님이 맡기신 일들을 할 수 있다(겔 2:1-2). 시편 저자는 “인자”를 사람 일반을 가리키는 데 사용한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시 8:4). 여기서 “인자”는 일반 사람을 가리키고 있다. 여기서 “인자”란 영원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에 견주어 볼 때 약하고 깨어지는 덧 없는 사람을 가리킨다.

다니엘서에서 선지자 다니엘은 그가 본 묵시록적 인물을 “인자”라는 용어로 표현하고 있다: “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단 7:13). 여기서 “인자”는 옛적부터 계신 자와 함께 기능하시는 인간의 형체를 가지신 분이시다. 구름을 타고 오시는 분이시다. 이 “인자”는 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 구름타고 다시 오실 “인자”이신 예수를 가리키고 있다.

◯ 신약에서의 “인자”

“인자” 칭호는 예수 자신이 그의 지상적 사역시에 자주 사용하셨다. “인자” 칭호는 세 가지 범주(사역, 수난, 미래 오심)로 분류된다(David Wells, The Person of Christ, Crossway Books, 1984, 이승구역, 기독론-그리스도는 누구인가? 엠마오, 1994, 169). 그리고 히브리서 기자는 시편 2장 6절을 사람 일반이 아니라 “인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시킨다.

1. 복음서에서의 “인자” 칭호

1) 예수 사역과 관련된 사용

나사렛 예수는 지상적 사역에서 이미 “인자”의 전권이 자신에게 있다고 주장하였다. 예수는 일반적으로 경건한 유대인 계층에 널리 통하던 통념을 따르는 것과는 달리 하나님 앞에 무엇이 허락되고 허락되지 않는 것(죄를 사하심, 안식일의 의미 등)을 스스로 결정하셨다

예수는 가버나움에 들어가셔서 복음을 전파하실 때 친구 네 사람이 중풍병자를 자기가 있는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어 누운 상을 내리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막 2:5)고 말씀하신다. 어떤 서기관이 이러한 예수의 말씀에 대하여 “참람하도다”고 속으로 판단하는 것을 아시고 예수는 모인 사람들에게 말씀하신다: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막 2:10). 여기서 “인자”는 병고치는 자일뿐 아니라 죄를 사하는 권세를 지닌 자이다. “인자”이신 예수는 실제로 하나님을 대행하는 자이시다.

안식일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 때에 제자들이 길을 열며 이삭을 자르는 것을 보고 바리새인들이 “보시오, 저희가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까?” 라고 비난한다. 이에 대하여 예수는 아비아달 제사장 때에 다윗이 배가 고파서 제사장 외에는 먹지 못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 한 자들에게 나누어 먹게 한 사실을 드시면서 예수는 비상한 상황에서 안식일 지킴의 자유를 요구하신다. 예수의 가르침은 마태가 언급하는 바 같이 “여기에 다윗보다 더 큰 분이 있다”(마 12:6)는 권위를 함축하고 있다. 예수는 안식일의 본질을 가르치신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막 2:27-28). 여기서 “인자”란 최후의 심판 때에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실행했는지 여부에 대하여 결정하는 전권을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받은 분이다.

바리새인과 율법사들이 예수의 제자들이 세례자 요한과 그의 제자들이 하는 것처럼 하지 않고 떡도 먹고 포도주도 마시는 것에 대하여 대답하실 때 예수는 자신을 인자라고 칭한다: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너희 말이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눅 7:34). 여기서 예수는 “인자”를 평범한 인간으로 이해하면서 자신을 낮추시고 있다.

예수께서 전도하러 가실 때 한 제자가 예수에게 나아와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쫓으리로다”라고 제자가 되겠다고 결심을 표명한다. 예수는 이 제자에게 말씀하신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눅 9:58). 이때의 “인자”도 이 세상에서는 소외된 평범한 인간으로서 겸허한 자신의 모습에 관하여 말하고 있다.

예수는 여리고를 지나가시면서 세리장인 삭개오의 집에 들어가시면서 그 집에 하루를 유(留)하고자 하신다. 이에 대하여 바리새인들은 사회적으로 그 도덕성에 있어서 멸시를 받고 있는 자의 집에 스스로 들어가서 유하려는 예수의 태도를 보고 비난한다. 이에 대하여 예수는 자신의 메시아적 사명에 관하여 권위있게 말씀하신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 19:10). 여기서 “인자”는 가난하고 병약한 자와 유대하며 이들을 구원하는 자이다. 예수는 자신의 메시아 사명을 “인자” 명칭을 사용함으로써 제시하고 있다.

2) 예수 수난과 부활을 지칭하여 사용

세배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에게 나아와 하나님 나라에서 자기 둘 중 하나는 주의 우편에, 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달라고 청한다. 이 광경을 보고 다른 제자들이 분개한다: 예수는 이에 대하여 세상 집권자들은 권세를 부리지마는 제자들은 그렇지 않아야 할 것을 말씀하신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막 10:43-44).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예수는 자기 자신의 삶으로 모범을 보이고자 하신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여기서 “인자”는 묵시록적인 권세자가 아니라 죄인의 중보자요 대속물이요, 섬기는 자이다.

예수는 밤에 자기에게 찾아온 유대공회의 일원인 니고데모에게 중생의 도리를 가르치시면서
광야에서 불뱀에 물린 이스라엘이 구리뱀을 쳐다보면서 목숨을 구했던 역사적 사실을 환기시키신다. 이처럼 예수는 자신을 “인자”라고 지칭하시면서 십자가에서 달리시게 될 것을 예언하신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4-15). “인자”가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달려야 함은 중보자인 “인자”를 믿음으로 믿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신다.

3) 미래 오심을 지칭하여 사용

가이사라 빌립보에서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시고 난 후 예수는 자신의 수난과 부활을 첫 번째 예고하신다. 그러므로 예수는 제자직의 도리에 관하여 가르치시면서 자신을 세상 끝에 오실 “인자”라고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막 8:38). 인자는 세상 끝날에 하나님의 대리자로 오시며, 사람들의 참된 신앙을 판결하는 자이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지상적 예수인 자신을 부인해도 용서를 받을 수 있으나,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용서받을 수 없다고 가르치신다: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으려니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눅 12:10). 예수는 자신을 겸허한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인자”라고 칭하고 있다. 이러한 하나님의 전권을 가지신 “인자”인 자기 자신일지라도 오인되고 비방받을 수 있다는 것을 언급하신다.

예수께서는 세상의 종말에 다가올 재난에 관하여 말씀하시면서 자신의 옴을 “인자의 옴”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마 10:23).

예수는 제자들에게 세상 끝에 다가올 하나님 나라를 “인자의 날” 로 표현하시고, 오시는 자는 바로 “인자” 라고 말씀하신다: “너희가 인자의 날 하루를 보고자 하되 보지 못하리라.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저기 있다 보라 여기 있다 하리라. 그러나 너희는 가지도 말고 따르지도 말라. 번개가 하늘 아래 이쪽에서 번쩍이어 하늘 아래 저쪽까지 비침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할지니라“(눅 17:22-25). 여기서 ”인자“란 번개처럼 동에서 번쩍, 서에서 번쩍 나타나는 묵시록적 재림주이며, 이 세상에 대한 심판권을 지니고 있는 초자연적인 존재이다. 그러나 초자연적 존재인 인자는 먼저 십자가에서 고난받아 대속의 제물이 되어야 할 것을 말씀하신다. 예수는 자신을 이러한 “인자”와 동일시하신다.

이어서 예수는 인자의 때를 노아의 때와 롯의 때와 동일시하신다. 노아의 때와 롯의 때는 사람들이 쾌락과 환락에 사로 잡혀 윤리와 도덕이 크게 문란해진 때였다. 불법이 성한 때에 “인자”는 불경건한 자들을 벌하고 의로운 자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오시는 분이다: 복음서 저자 누가는 예수의 말씀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더니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망시켰으며,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부터 불과 유황이 비오듯 하여 그들을 멸망시켰느니라. 인자가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눅 17:26-30). “인자”는 죄와 불법이 관영한 종말의 때에 불경건한 자를 심판하고 경건한 자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오시는 분이다. 예수는 ”인자“를 세상 종말 때의 심판자와 구원자로 이해하고 있다.

2. 신약 사도의 서신에서 사용된 “인자” 칭호

히브리서 저자는 구약 시편 구절(시 8:4-8)을 사람 일반에게 적용시키지 않고 “인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시킨다: ”그러나 누구인가가 어디에서 증언하여 이르되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그를 잠시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며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시며, 만물을 그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셨느니라 하였으니 만물로 그에게 복종하게 하셨은즉 복종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어야 하겠으나 지금 우리가 만물이 아직 그에게 복종하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히 2:6-9). 여기서 히브리서 저자는 “인자”를 만물이 그에게 복종하는 자요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히 2:10)로서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인자는 곧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되신”(히 2:10) 역사적 예수이다.

3. 부활하신 후에 확인된 “인자” 되심

예수의 “인자” 되심은 그의 지상적 사역에서는 일반 유대인들에게는 물론 심지어는 제자들에게까지도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나 예수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비로소 예수는 “인자”로서 인정되고 하늘에서 누리는 권좌에 오르시게 된다(마 28:18-20). 지상적 예수께서 “인자”가 다시 오신다고 말씀하셨을 때 그는 마치 다른 사람, 제3자가 오는 것처럼 말씀하신다: “내가 또한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부인을 당하리라”(눅 12:8-9).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막 8:38). 이 말씀에서 예수는 암시적 방식으로 자신을 인자와 동일시하고 있다. 인자의 판결 내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의 그의 입장 표명은 오직 사람이 예수에게 어떻게 했는가에 따라서 결정된다. 이와 같이 예수만이 심판의 척도가 된다. 각 사람은 예수의 인물됨이 예수의 하나님 뜻 해석, 십자가를 향한 예수의 길을 진지하게 받아 들이고 자기의 삶을 그것에 맞추느냐 아니냐에 따라 스스로 심판을 내린다. 부활절 이전에는 예수의 인자 발언은 암시적이었다. 그러나 예수의 부활하신 후에는 다시 사신 예수 말고는 그 누구도 다시 오실 “인자”가 될 수 없다(막 13:26, 막 14:62)는 사실이 입증된 것이다.

이런 “인자” 이신 예수께서는 장치 누리실 권세와 아주 대조적으로 이 세상에서는 낮고 천하며 멸시받는 삶을 사셨다(마 8:20, 마 11:19), “인자”는 먼저 사람들에게 넘겨졌다. 하나님이 세우신 세상의 심판자가 사람들의 법정에서 사형판결을 받으신 것이다. 이것 또한 하나님께서 미리 아시는 가운데 하나님의 구속의 섭리를 따라 일어난 사건이었다(막 8:31, 막 9:31, 막 10:33-34). 예수는 인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속죄물로 내놓은 인자이셨다(막 10:45). 세상의 심판자가 앞으로 자기 앞에 심판받을 사람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으신 것이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는 인자를 “하늘에서 내려온 자”(요 3:13)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인자의 고난 당하심, 죽으심과 다시 사심에 관하여 “높이 들리심”(요 3:14, 요 8:28, 요 12:34), 영광 얻으심(요 12:23, 요 13:31)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모든 예수의 행적에 있어서 그의 인자되심을 이해하는 결정적인 계기는 부활사건이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그분이 진정히 “인자”라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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