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한(한국복음주의협의회 신학위원장/아시아복음연맹 신학위원장).

머리말

2013년 한국교회의 아젠다를 지배했던 WCC 부산총회가 대체로 성공적으로 개최된 것으로 평가되었다. 총회장 내부는 세계교회의 지도자들이 함께 모여 서로 교제를 나누고 축복을 전하는 그야말로 축제의 현장이었지만, 총회 기간 내내 총회장을 둘러싼 수만 명의 반대 인파는 지금 한국교회가 처한 극단적 현실을 보여주는 광경이었다. 이 총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한국교회의 진보진영 및 온건한 보수진영과,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시위까지 한 일부 극단적 보수진영 사이의 갈등과 상처는 그대로 남아 있다.
 
한국의 극단한 보수주의는 개혁주의가 아니라, 다비Darby)가 시작하고 스코필드(Scofield), 채퍼(Chafer) 등이 발전시킨 미국의 세대주의(dispensationalism) 영향을 받은 것이 많다. 세대주의는 초창기부터 북장로교 선교사 Allen Clark(곽안련)과 그의 제자들을 통해서 한국교회에 상당히 많이 파급되었기 때문에 한국 목사들 80-90%가 신봉한다(김명도, 미국 칼빈신학대학(CTS) 및 국제개혁대학(IRUS) 변증학 교수, “세대주의의 기원과 문제점”, 기독교포털뉴스  |  unique44@naver.com, 승인 2013.11.08.  10:54:28). 이번 부산총회에 반대 운동의 전위대로 나선 자들이 다락방 집단 등이라고 들리는 것도 이러한 세대주의적 근본주의 영향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의 진정한 보수주의는 근본주의(fundamentalism)가 아니라 역사적 개혁주의(historical reformed faith)를 받아들인다. 역사적 개혁주의는 신학적 폭이 넓다. 같은 루터교, 감리교, 성결교, 성공회, 침례교, 구세군, 하나님의 성회 뿐만 아니라 정교회, 가톨릭, 이집트 콥트교까지 형제로서 받아들인다. 이것이 가톨릭이나 자유주의 교회 등을 이단으로 보는 근본주의와 다른 점이다. 한국교회의 온건한 보수와 열린 진보는 앞으로의 새로운 발전을 위하여, 부산총회 이후 남은 과제를 신앙과 진리 위에서 성실히 하나하나 매듭지어야 하겠다.
 
1. WCC는 열려 있는 국제적인 연합기구
 
1) 열려 있는 연합 기구 WCC

 
WCC 제10차 부산총회 한국측 준비대회장 박종화는 2013년 5월 기독교학술원(원장 김영한) 주최 영성 포럼 “WCC 영성과 한국교회”에서, 1990년대 이후 동력이 약해졌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WCC가 반대하는 건 잘 해왔지만, 대안을 세우는 것은 아직 부족하기 때문에 냉전이 종식된 후 에큐메니칼 운동이 약해졌다. 대신 적대적·대결적 다름보다 복음의 본질을 찾아가려는 공통분모가 훨씬 큼을 깨닫는 긍정적 결실도 있었다.”(박종화, “에큐메니칼 영성”, in: 『WCC 영성과 한국교회』, 제19회 기독교학술원 영성포럼 자료집, 2013년 5월 3일, 51-52.).

박종화는 WCC가 신앙고백이나 교리의 일치를 경시한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그 비판이 타당하지만, 연합체로서 따로 교리를 만들 수 없는 태생적 한계 때문에 회원교회들에게 권유할 순 있으나 명령하달은 하지 못한다.”(박종화, “에큐메니칼 영성”, in: 『WCC 영성과 한국교회』, 제19회 기독교학술원 영성포럼 자료집, 2013년 5월 3일, 51-52.).
 
전 총신대 총장 정일웅이 말하는 것처럼 협의회란 교단이 아니라 서로 조직과 성격이 다른 기구들이 모여서 공통분모 위에서 하나의 목적을 위하여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다. WCC는 하나의 거대한 세계교회(Super-Church)가 아니라, 국제광장이자 펠로우십(Fellowship), 교회들의 협의체(a Council of Churches)로서 일치에 뜻과 열성이 있는 자들에게 열린 국제기구이다. WCC는 세계교회의협의회로서 소수 의견도 존중하는, 회원 95% 이상의 결정구조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박종화는 “한국교회가 아무리 애써도 세계적 교회기구를 새로 만들 수는 없는 만큼, 기왕에 있는 60년 이상 된 국제기구를 최대한 선한 목적으로 활용하는 개방성과 지혜를 알차게 발휘할 때”라고 말했다.(박종화, “WCC, 교리적 문제 있지만 총회 개최는 환영해야”,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입력 : 2012.11.09. 15:50). 이러한 견해는 보수측에서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WCC를 “적”으로 몰지 말고 형제로서 우리가 들어가 변혁시킬 진보적 기독교 단체로 보는 것이 요청된다.
 
2) 보수주의 진영의 선의(善意) 비판 필요
 
WCC는 지구상의 다양한 교회의 일치 운동을 하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다양성 속의 일치와 통일을 취하여 왔으나, 제도적이고 가시적인 일치에 전념하다 보면 어느새 정체성보다는 다양성을 강조하는 편에 서게 되고 점차 제도적 다원주의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지 않았나 생각이 된다. WCC의 공식 문서에 근거하면, WCC는 다양한 교회와 신학의 모임이기 때문에 신학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계속 변화한다고 말한다. 이는 다원주의로 나가는 소지(素地)를 내포하는 것이다. WCC란 다양한 교회와 기구의 일치와 연합운동이기 때문에, 일치와 연합에만 치중하다 보면 다양성과 포용성을 넘어서 다원주의와 포용주의로 나갈 수밖에 없는 소지를 지니고 있다. 이것이 WCC 운동 자체가 지닌 한계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여기에 세계복음연맹 등 복음주의자들의 선의의 비판이 필요하다.
 
2. 한국 보수교회의 보다 관용적인 태도의 아쉬움
 
1) 보수주의자들의 양식부재의 비방과 왜곡된 선전 태도 개선 필요

 
이번 WCC 부산총회에 관련하여 한국교회의 일부 보수진영은 WCC 개최 반대를 강력히 주장했을 뿐 아니라 “WCC는 적그리스도” 내지 “참가는 제2의 신사참배”라고 매도하고, 준비위원회 대표회장 교회당에서 신성한 주일 대예배시 인분(人糞)을 뿌리는 등 각종 방해와 위협을 했으며, “부산총회 개회예배에서 신당·토템의식·굿판·진혼제로 종교혼합주의를 여실히 보여줬다”고 비난했던 내용도 왜곡이다. 이 내용도 군소교단을 중심으로 결성된 ‘WCC반대기독교총연합’에서 11월 2일 이메일로 글과 사진을 배포했다. 인터넷 카페와 스마트폰을 통해서도 유포되고 있다. 이러한 행위는 양식있는 시민으로서나 기독교 신자로서의 기본적 자질을 떨어뜨리는 행위이다. 이것은 앞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WCC 준비위원회측이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WCC 반대 세력을 아우르기에 충분한 노력을 하지 못한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벡스코 주변에서 이어진 WCC 반대시위 및 집회는 참여한 외국 총대와 방문자들에게 한국교회의 분열상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WCC 반대측은 폐막예배 난입과 확성기를 동원한 시위 등으로 비난을 자초했다. 심지어는 수천 명의 해외 참가자들도 있는 폐회예배 시에는 강대상을 향하여 돌을 던져서 몇이 다치기도 하는 등 테러가 일어나고, 반대 시위 참가자 중 한 사람이 행사장으로 진입, 폐회예배 단상에 올라 소동을 일으키는 사건을 빚기도 했다. 이러한 일들은 반대측의 매너와 양식이 전혀 그리스도인답지 못한 것으로서 수치스러운 면모를 드러냈다. 한국 기독교인, 거기다 보수와 진리의 순결을 외치는 신자들이 도덕적으로 마비된 마음을 가졌다면 어떻게 이 세상을 향하여 진리와 정의를 말할 수 있겠는가?
 
세계적인 기독교 단체인 세계복음연맹(WEA), 로잔회의, 세계침례교 대표 등 복음주의자들이 참석하고 동의하고 있는 부산총회에 대하여, 한국에서만 일부 보수진영이 총회 기간 내내 반대집회와 기도회를 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해외 참석자들은 의아(疑訝)하여 이들의 신앙의 바탕이 무엇인가 질문을 하기도 하였다. 이에 대하여 보수진영 지도자들의 깊은 자기성찰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여하튼 4년여 준비기간 주최측의 대화와 설득 노력이 충분치 못했다는 지적 또한 찬반 양측 모두에서 제기되고 있다.
 
첫째, 반대측은 입례에 등장한 그림이 무속적이라고 비방했다. 반대측은 개회예배 시작 부분에 설교자·기도자와 함께 십자가·성경·성찬물과 예수를 그린 성화(이콘, Icon)가 단상에 올라온 것을 두고 “사당을 연상시키는 그림이 등장해 제사상처럼 차린 제단 위에 올랐다”고 지적했다. 또 예배 시작을 알리는 징이 용머리 모양으로 장식돼 있었다며 “기독교를 가장한 사탄의 모임이라는 증거”라고 비난했다(국민일보, “굿판, 진혼제라고?… WCC총회에 대한 오해와 진실”, 2013.11.03. 17:37, 부산=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 ‘[충격] WCC-십자가와 사당, 찬양 초혼제, 동성애로 범벅되다’). 그러나 이는 교회사의 전례(典禮)를 모르는 데서 비롯된 오해이다. “고대 기독교회는 항상 예배를 시작할 때 십자가와 성경 등을 가지고 들어오는 순서를 가졌다.” “WCC 회원교회인 정교회는 지금도 예배 때마다 예수님을 그린 성화(이콘)를 들고 입장하는데, 그와 같은 예배 형식을 반영한 것”이다. 동방정교회는 성화(이콘)를 통해 자신들의 경건을 표현했다.

둘째, 반대측은 재를 뿌렸다고 비방했다. 예배 중에는 세계 8개 지역의 젊은이들이 검은 옷을 입고 자신의 몸에 재를 뿌리는 장면이 있었다. 아시아·태평양·유럽 등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고통스러운 사건과 인간의 죄악을 회개하는 일종의 퍼포먼스였다. 반대측은 “예배 중 한편에서 재를 뿌리는 무속적인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예배 참석자들은 오히려 이 장면이 가장 성경적이고 감동적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WCC는 재를 뒤집어쓰는 것은 고통과 회개를 표현하는 것으로, 성경의 여러 장면에 나온다고 설명했다(삼하 13:19, 단 9:13 등). “재를 뿌리는 것은 무속적인 게 아니라 오히려 무속적인 요소를 배제하는 반(反)무속”이라고 반박한 박성원의 설명은 타당하다. 재 뿌리는 장면을 연기한 청년들은, 퍼포먼스를 마친 뒤 함께 예배에 참여했다. 예배 중 은혜를 받아 계속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있었다.
  
셋째, 반대측은 초혼제를 벌였다고 비방했다. 반대측은 또 흰 한복을 입은 남녀가 춤을 추는 장면을 올려놓고, “억울한 영혼을 달래는 초혼제가 함께 진행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장면은 개회예배 뒤 벡스코 오디토리움에서 열린 개막식 중 한국의 역사를 보여준 공연이다. 한국준비위원회(KHC) 협동사무총장 김종생은 “우리 역사의 아픔을 표현한 부분이고 오히려 복음이 우리에게 희망을 주었다는 내용인데 샤머니즘이라고 하는 것은 아전인수”라고 일축했다. 1991년 제7차 호주 캔버라총회에서 있었던 WCC 개막 초혼제는, 당시에도 정교회의 강력한 비판을 받았고, 그 이후 WCC는 내부적인 추진력을 약화를 가져온 것을 반성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넷째, 반대측은 WCC가 동성애·부적·타종교를 장려했다고 비방했다. WCC 총회 기간 중 다양한 단체들의 활동을 소개하는 전시장인 ‘마당’에는, 동성애 옹호 단체와 타종교 대화를 추진하는 단체들도 참여하고 있다. 또 전 세계의 다양한 십자가를 전시한 곳도 있다. 반대측은 이런 단체의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올리고 “WCC가 동성애를 지지한다”, “부적을 장려한다”, “종교혼합주의”라고 비난했다.
 
동성애 부스가 설치된 것은 성경적으로 맞지 않는 부분이다. 사실 동성애는 WCC 내에서도 뜨거운 논란을 일으키는 주제다. 동성애를 찬성하지 않지만, 그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품어 안고 구원해야 한다는 교회와 아예 반대하는 교회가 모두 WCC 안에 있기 때문이다. 동성애 옹호 단체들은 별도의 모임과 집회를 열기도 했다. WCC 본부는 회원교회들의 입장을 존중해 동성애 문제를 공식 논의하지 않는다는 소극적인 입장이다. 이것이 WCC라는 보수와 진보가 같이 모이는 교회협의회의 한계이다. 이에 대해서는 WCC가 성경적으로 확실한 입장을 표명하라는 요구를 지속적으로 받고 있다.
 
3. 한국 진보교회의 독선과, 설득적인 태도의 아쉬움
 
1) 보수 진보 간의 합의 파기

 
WCC 부산총회가 반대측에서 제기해왔던 동성애 및 종교다원주의에 대한 우려를 불식하지 못한 점, 북한인권 문제 등에 대한 입장을 관련 성명서에 담지 못한 점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러나 극단한 보수주의자들에게 문제가 있는 것처럼 극단한 진보주의자들도 문제가 있다. 한기총과 NCCK, WEA·WCC 준비위원회 간의 지난 2013년 1월 13일 ‘WCC 총회 개최에 대한 선언문(이하 공동선언문)’ 합의가 있었다(크리스천투데이, WCC 총회 앞두고 보수-진보의 공동선언, 의미와 과제, 김진영 기자 jykim@chtoday.co.kr | 입력 : 2013.01.14. 10:09, “분열만은 막아야” 공감대… “구체적 변화 보여야” 지적도).
 
NCC 지도부와 한기총 지도부가 합의한 4가지 사항은 종교다원주의·공산주의·인본주의·동성연애 반대 등이었다. 이 합의를 파기하도록 종용한 자들이 극단한 진보주의자들이었다. 발표 당사자들은 ‘공동선언문’ 내용 자체에 대해서는 “한국교회의 신앙 확언(確言·affirmation)이자 한국 기독교 연합운동사의 기념비적 신앙고백문”이라고 평가했다. 한국교회가 복음주의(에반젤리칼)와 에큐메니칼 진영으로 나뉘어 있지만, 궁극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임을 보여주려는 목적으로 작성됐다는 것이다. 이들 내용은 성경과 기독교 신앙에 있어 틀린 것이 없다. 종교다원주의와 혼합주의, 공산주의, 인본주의, 동성연애 등은 성경적으로도 잘못된 사상이다. 또 종교자유에는 개종의 자유가 매우 중요하다. 개종 반대는 이슬람과 힌두교처럼 종교자유가 억압되는 사회에서 강조되고 있을 뿐, 종교자유가 허용되는 사회에서는 개종전도를 금지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지난 3월 17일 열린 NCC 실행위원회에서는 이 공동선언문을 두고 그토록 규탄을 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공동선언문은 ‘에큐메니칼 진영’의 거친 반발과 항의가 빗발치면서, “공식 채택한 문서가 아니”라는 석연찮은 변명으로 흐지부지 끝나버리고 말았다(크리스천투데이, 한국교회의 기념비적 신앙고백, 어쩌다 ‘쓰레기’가 됐나,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입력 : 2013.03.24 20:25 ). 결국 공동선언문 합의 당사자인 NCCK 김영주 총무는 합의 한 달도 되지 않은 2월 4일, 공동선언문 서명을 취소하고 파기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이 문서가 WCC 부산총회에 도움이 되고, 한국교회의 연합과 일치에 보탬이 된다면, NCCK가 조금 양보한다고 해서 NCCK의 정체성이 크게 훼손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아무런 구속력도 없는 문서를 놓고 설전을 벌이며 ‘쓰레기’ 운운하는 것은 신중하지 못한, 너무 단순한 반응이다. 극단한 진보주의자들 역시 극단한 보수주의자들과 같이 자기들의 견해와 다르면 전혀 타협하거나 수용하려고 하지 않고 타협자로 간주하여 매도시켜 버린다. 그리하여 김영주 NCCK 총무가 사의 표명하는 지경에까지 갔다. 보수도 열려 있어야 하나, 진보는 합리적이며 열려 있어야 한다. 한국의 극단한 진보주의자들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2) WCC와 한국교회 간의 시각적 차이
 
WCC는 11월 7일 <한반도와 평화와 통일에 관한 성명서>를 채택했는데, 그 속에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정작 북한주민의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 오히려 실체도 없는 북한 교회와의 상호방문과 대화를 요구한 것은 북한 실정에 대하여 눈과 귀를 막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또 성경에서 금하고 있는 ‘동성애’ 문제에 대하여 WCC 트베이트 총무는 찬성도 반대도 않는다고 했으나, WCC 총회 회의장에는 동성애 부스가 설치되었고, 11월 3일에는 WCC 소속 동성애 찬성자들이 한국에 동성애를 받아들이라는 성명서 낭독을 했지만, WCC는 이에 반대하지 않음으로 사실상 동성애를 인정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WCC가 일치(church-unity)를 말하면서 한국에 남긴 것은 분열에 대한 역사적 치유가 아닌 고착화가 아니었는지 살펴볼 일이다. 한국교회의 큰 줄기인 예장 통합과 합동은 1959년 WCC 에큐메니칼 운동의 참여 여부로 갈라진 상처와 비극이 있다. 이번에는 반 세기 이후 이러한 분열의 상처가 치유되고 화해하는 역사적 계기를 마련했어야 했다. 그러나 이를 이행하기에는 WCC도 한국교회를 제대로 알지 못했고, 한국교회의 보수와 진보의 지도자들도 이러한 분열을 몸에 안고 십자가를 지면서 치유되도록 하기에는 아직도 지도력에 있어서 역부족이었다고 자성할 수밖에 없다. 누구의 책임도 아니고 우리 모두의 신앙적·신학적·인격적 미성숙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므로 WCC 한국준비위원회는 ‘성공적 대회’였다는 자화자찬(自畵自讚)에 함몰되지 말고, 한국 보수교회의 반대 목소리에 대하여 경청하고 한국교회의 신앙을 정리하고 넘어가는 수순을 거치면서 미해결의 과제를 풀어야 한다. 한기총과 NCCK가 합의한 4대 선언문 폐기에 대해, 명확한 입장과 성경적 가치관으로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세주’라는 신앙고백을 확인해야 한다. 그리하여 WCC로 인하여 더 이상 한국교회가 과거처럼 상처가 남지 않도록 해야 한다.
 
WCC 한국준비위원회 대표 대회장 김삼환 목사가 폐막식에서 WCC가 채택한 성명서와 정면으로 배치하는 발언을 한 것은, 한국교회와 WCC의 입장 차이를 말해준다. 김삼환 목사가 행사 마지막 순간에 대북 경제제재 조치는 적절했으며 박근혜 대통령의 자유민주주의 통치를 지지한다고 발언을 한 것은, WCC 지도부 노선이 한반도 상황에 부적합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그는 폐막식 행사에서 한반도 성명서에 불만을 토로한 보수진영의 소리를 들려준 것으로 평가된다.
 
4. 세계를 위해 봉사하는 교회로서 보수와 진보가 연합되는 한국교회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로서 진보진영의 한국교회는 복음의 유일성을 훼손하는 다원주의 운동에 대하여 경고하면서, 항상 WCC가 초기의 정체성으로 되돌아가도록 하는 보수진영의 비판을 경청하는 것이 요청된다. 일부 극단한 보수진영이 이들을 “적그리스도”라고 매도하는 것은 양식(良識)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예수님도 당시 부활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권능을 믿지 않고 현세적 종교권력 유지에만 주관심을 가진 사두개파에 대하여, 이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사랑의 교훈을 하셨지 이단이라고 배척하지는 않으셨다.

보수주의자들은 진보진영으로부터 이 세상의 다양성을 끌어안고 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추구하여 가려는 포용성을 배워야 한다. 그런데 이번 부산총회가 개최되는 가운데서 반대 피켓을 들고 있는 일부 보수 반대자들의 적대하는 눈빛이 예사롭지가 않고, 하늘을 향해 손을 들고 통성으로 기도하는 그 속에 화합이나 용서가 아니라 대적하는 기운만 가득하니 이 갈등을 어떻게 수습할지 참으로 난감하다. 서울에서 버스를 대절해와 WCC에 반대한다고 목소리 외치는 시위자들이 얼마나 WCC를 올바로 이해하는지 난감하기 짝이 없다.
  
보수교회 지도자들이 순진한 교인들을 그런 정치적인 시위에 이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구심이 불현듯 들 수밖에 없다. 더욱이 총회장 밖에서 총회를 반대하는 수천명의 시위자들이 유인물을 뿌려대고, 심지어는 폐회예배시 행사장에 난입하여 돌을 단상을 던져서 부상을 입힌 사태 뒤에는 이를 준동하는 막대한 재정적 지원을 얻은 일부 세력이 있었음도 드러난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이상윤, WCC 재정개발국 간사 목사, “WCC 부산총회 평가, 소리만 요란, 변방에 머물러 있는 한국 에큐메니칼 지도력”, 기독교신문, 2013년 11월 17일 제 2178호, 3면). 보수교단 신대원생들이 몰려가 이미 진행되고 있는 WCC 총회에 대한 반대기도회를 벡스코 인근에 위치한 부산수영로교회에서 하려다 장소 허가를 거절당한 일을 볼 때, 보수교단 지도자들이 한국교회 전체의 유익보다는 자파의 인본적인 이익을 얻기 위해서 순수한 신학생들을 동원하려는 데서 이런 발상이 나오지 않았나 생각된다. 여기에 부화뇌동하는, 지성인인 신대원생들도 보다 멀리 보고 한국교회와 세계교회에 대한 넓고 관용적인 안목을 가져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구세군 사령관 박종덕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이하 NCCK) 신임 회장은 11월 18일 취임식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WCC 부산총회를 둘러싼 진보·보수 교계 대립 양상에 “에큐메니칼 이해가 부족한 것인 가장 큰 원인”이라며 “전해 들은 이야기나 편협하게 드러난 일부 사실들을 통해 반대하고 반목하는 현상이 계속돼 왔다. 부산총회가 끝나고 나니 에큐메니칼에 대한 바른 인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더욱 들고 있다”고 역설했다. 그의 언급이 오늘날 보수 진보의 현상을 바로 나타낸다고 본다(베리타스, WCC 둘러싼 진보·보수 대립에 “에큐메니칼 이해 부족”, 박종덕 NCCK 신임 회장 기자회견서 밝혀, 2013-11-19 12:48 김진한 기자 jhkim@veritas.kr).

이 지상에 이상적인 교회연합운동은 없다. WCC가 에큐메니칼적 한계를 지닌다면 WEA도 복음주의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한국교회는 이러한 각 연합단체가 지닌 태생적 한계를 인정하고 상대방의 부족을 보충한다는 관용의 태도를 지니는 것이 요청된다.
 
맺음말
 
이번 WCC 부산총회 개회예배에서 정교회 주교의 복음적인 설교가 있었고,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신앙고백을 함으로써, WCC는 교회의 신앙 전통을 존중한다는 것을 가시적으로 한국교회에 보였다고 본다. 그리고 보수주의자들이 주장한 것처럼 종교다원주의, 동성애, 용공을 지지하거나 결의한 것도 아니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WCC 반대측에서 제기해왔던 종교다원주의 및 동성애에 대한 우려를 불식하지 못한 점, 북한인권 문제 등에 대한 입장을 관련 성명서에 담지 못한 점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것이 오늘날 보수와 진보가 같이 모여서 연합과 일치를 이루고자 하는, WCC라는 기구적 연합운동의 한계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큐메니칼 운동을 통하여 특징이 다른 신앙전통을 가진 개신교 교파들이 만나서 서로 차이를 인정하고 영접하고 자기에게 없는 것을 형제들로부터 배우는 연합과 친교는 필요하다. 한국 보수교회는 사도신경(the Apostolic Creed)을 고백하는 기본적인 신앙의 토대 위에서 진보진영 교회와 연합하고 인정하고 교류하는 것을 실천해야 한다. 그리고 지난 8월 태국 방콕에서 아시아복음연맹(Asian Evangelical Alliance: AEA)이 신학위가 발표한 선언서처럼 사회적 인권, 창조의 보존, 종교자유의 신장, 개종의 자유 등 복음의 사회적 책임에 관하여 깊은 관심과 실천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진보진영 교회는 보수진영 교회의 비판을 수용하여 앞으로 사도신경과 성경의 토대 위에서 에큐메니칼 운동을 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