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충렬 박사(한일장신대·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
Ⅰ. 기독교인 자살의 심각성

Ⅱ. 자살의 역사적 이해
Ⅲ. 자살의 원인
Ⅳ. 자살의 유형
Ⅴ. 자살의 예방-(6) 교회의 대응책은

지금까지 자살예방에 대해 기술했다. 자살예방은 방법론도 중요하지만 실제로는 실천이 중요한 문제로 남고 있다. 교회가 자살예방에 부응해 얼마나 많은 교인들의 생명을 건지느냐의 문제는 교회의 실천에 달렸다. 교회의 자살예방 실천은 일단 교회의 관심에서 출발한다. 교회가 관심이 없으면 소용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교회가 실천할 수 있는 실제적인 대응책을 제안하는 것으로 연재를 마무리하려고 한다.

1) 삶의 위기와 예방교육

삶의 위기는 인생의 하나의 과정이다. 삶이란 일정 기간에는 상승하는 경우도 있지만 때로는 하강의 세월도 있다. 이렇게 올라가고 내려가는 것을 반복하는 것이 삶이다. 언제나 승승장구하는 경우만 있지도 않고, 끝없이 추락하는 경우만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 인생은 밤과 낮이 교차하듯 성공과 실패, 상승과 하강으로 이어지는 긴 여정이다. 이런 인식을 기초로 위기에 대처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개인은 위기에 처하는 때가 있다. 일상생활을 하다 보면 일반적인 위기에 직면하기도 하지만, 더욱 어찌할 수 없는 한계 상황에 이르는 돌발적인 위기를 만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위기는 개인의 삶을 어렵게 하기에 삶의 기반을 송두리째 흔들어놓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교인에게 삶의 위기에 대한 교육이 필요해진다. 기독교인이라 해도 삶의 과정에서 엄청난 위기가 있고, 그것을 극복해야 하는 과정이 있음을 교육하는 것이다.

위기란 스스로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는 순간이다. 이런 순간은 때로 갑작스런 사고를 부르는 경우도 있으므로 그 대응이 중요해진다. 삶은 다양한 변화에 직면해 적응하고 대응해야 하는 특성을 갖는다. 이런 경우 신앙인은 신앙의 힘을 발휘해 잘 대처할 수 있지만, 때로는 속절없이 무너질 수도 있다. 기독교인의 자살은 이를 입증한다.

이런 위기 순간에 자살 유혹이 일어나기 쉽다. 신앙을 가진 기독교인이라 해도 너무나 힘든 상황에서는 출구의 하나로 자살을 생각할 수 있다. 더욱이 이런 위기 순간에 사람들은 다른 이들과의 관계를 차단하고 혼자 외로워지려 노력한다. 이런 현상은 위기를 극복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되는 점에서 자살 위험도 높아진다. 위기를 스스로 극복하기 어려운 사람들 중은 더욱 그러기 쉽다. 특히 감당하기 힘든 사고를 당한 사람이나 심리 및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더욱 취약하다. 이때 교회가 이런 사람들을 위한 예방교육을 한다면 매우 효과적으로 예방하고 대처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자살충동으로 고통받거나 정신 건강에 문제를 가진 사람들은 사회적인 편견과 오해 때문에 타인에게 적절한 도움을 구하거나 도움을 받아들이는 것을 겁내고 포기하기 쉽다. 이런 현상은 예방교육으로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 특히 자살예방과 관련해 성도들의 인식 전환이나 대응에의 개선은 정신건강과 정신질환, 신앙생활과 정신건강을 증진시키는 방법에 대한 교육을 함께 포함, 신앙생활과 연관지어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뿐 아니라 삶의 위기와 그에 따른 위험을 예방하는 효과를 증진시키기 위해서는 전체 성도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과 함께 자살 위험에 노출될 수 있는 상황을 초기부터 적절히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훈련도 병행돼야 한다.

2) 생명존중에 대한 교육

자살예방에서 더 적극적인 방법은 생명에 대한 존중을 인식하는 것이다. 개인의 인식은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런 교육은 자주 할수록 효과가 있다. 현대의 생명경시 풍조는 신앙에서도 확산되고 있다. 얼마 전만 해도 우리는 사람이 죽으면 놀라는 분위기였지만, 어느새 사람이 죽었다 해도 그다지 놀라지 않는다. 이는 현대 사회에 와서 죽음이 대량화되는 점도 인식에 변화를 가져온 측면이 있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는 생각도 문제다. 자살하면 자기 삶도 끝나고 그에 따른 고통도 사라진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는 다름아닌 생명의 포기다.

생명의 포기에는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다. 단순하기 그지없는 생각이다. 신앙생활도 단순히 ‘죽으면 천국에 간다’는 식으로 믿는 사람이 있다. 이는 죽음에 대한 이해가 별로 없는 것이다. 죽음에 대한 이해가 없다는 사실은 삶도 이해가 부족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죽음을 대비하지 않는 사람은 잘 사는 것도 문제일 수 있다. 생명의 끝을 알고 사는 사람이야말로 사는 동안 보람과 긍지를 가질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런 죽음에 대한 오해는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죽음을 이상화시킬 수 있다. 남들이 잘 알지 못하는 죽음은 모든 것을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차원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나는 하나님 곁으로 간다’고 유서를 남긴 어느 연예인의 자살은 이를 입증하는 사례다.

이런 점에서 교회는 생명이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신앙적인 차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죽음이 삶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이런 생각은 죽음이 고통을 해결하는 수단임을 인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교회는 삶의 소중함, 상대방의 소중함, 아름다운 죽음 등을 위해 노력하며 살아야 하는 점을 교육해야 한다. 우리의 생명은 영원으로 이어지는 특성을 가지므로, 반드시 신앙에서 부활을 강조하지 않는다 해도 생명의 보편성은 여전히 중요시돼야 한다.

물론 자살하는 사람들에게는 단순히 개인적인 이유가 아닌 사회 병리적인 현상이나 구조적인 문제, 자살과 죽음에 대한 오해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여건에도 생명에 대한 존중이나 그에 따른 인식이 분명하다면 쉽게 자살을 선택하지 않을 뿐 아니라, 어려움을 극복하려 노력할 것이기 때문이다.

3) 웰빙과 웰다잉 교육

잘 사는 것이 웰빙(well-being)이라면 잘 죽는 것을 웰다잉(well-dying)이라 한다. ‘건강한 삶’과 ‘건강한 죽음’이다. 이 둘은 개념적으로 삶과 죽음의 문제로 갈리지만, 내용에 있어서는 서로 연결돼 있다. 잘 사는 것이 잘 죽는 것이고, 잘 죽는 것이 잘 사는 것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잘 죽는 것을 생각하는 사람이 잘 살지 못하고, 잘 사는 사람이 잘 죽는 것을 모를리 없다.

우리는 사형수의 마지막 증언에서 이를 간접 경험한다. 사형수들의 마지막 동영상을 본다면 ‘저 사람이 어떻게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질렀을까?’ 하고 놀라는 경우가 많다. 이전과는 너무나 달라진 모습을 보노라면 도저히 사형수 같지 않다. 그러나 그들이 잔혹한 행위를 저지른 뒤에 아무리 후회한다 해도 이미 때는 늦은 것이다.

살아있을 때 죽음에 대해 미리 생각해 보고 준비했더라면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기에 죽음의 준비라는 것은 단순히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보다 가치있게 살라는 의미로 연결된다. 가급적 일찍부터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가치있게 살아야 한다. 이는 건강한 삶과 건강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웰빙과 웰다잉의 교육이 얼마나 필수적인가를 깨우쳐 주는 대목이다.

선배 목사님의 말이 생각난다. 30대 후반의 남성도가 죽어가면서 하는 말이었다. 그는 “목사님! 내가 정말로 이렇게 죽을 줄 알았다면 이렇게 살지 않았을 것입니다”고 했단다. 남들은 죽어도 나는 안 죽을 줄 알았다고 생각했기보다는, 자신에게 죽음은 너무 막연하게 생각됐을 것이다. 아직 나이도 어려서, 죽음을 생각할 정도가 아니었으리라. 이는 죽음이 생각보다 빨리 찾아온 것을 대비하지 못한 후회다.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아주 늦게, 심지어는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고 느낀 후에야 비로소 죽음을 생각하면서 지나간 삶을 후회한다. 이런 점은 잘못된 죽음에 대한 의식의 전환이 시급함을 시사한다. 죽음에 대한 오해와 자살 사망률의 급증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인간으로서 존엄하게 밝은 미소로 삶을 마무리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우리 현실에서 가장 불행하고도 불량한 죽음의 형태인 자살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최근 우리는 불과 몇 개월 사이에 두 전직대통령의 장례를 치뤘다. 이런 것을 보면서 온 국민이 죽음에 대한 의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됐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교회에서도 단순히 ‘죽으면 천국간다!’는 막연한 교육을 넘어서야 한다. 본격적인 교육을 통해 더 의미있는 삶을 살도록 하고, 죽음을 한층 편안하게 맞이하도록 교육할 필요가 있다. 이는 죽음에 대한 준비 교육이면서 삶을 충실하게 살아가는 교육이자, 결국은 자살예방 교육이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죽음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독일은 죽음을 준비하는 교육 전통을 오래도록 지니고 있다. 교회의 주일 설교와 일상의 장에서 사람들은 늘 죽음에 대해 배우고 있다. 또 1980년대 이후 학교 교과과정에 죽음 준비교육 프로그램을 정식으로 포함시켜, 국공립학교 교과과정상 매주 두 시간 있는 종교시간에 이를 다루도록 하고 있다. 미국도 1960년대부터 죽음 준비교육이 시작돼 지금은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정식 교과과정에 포함돼 있으며, 평생교육 차원에서도 병행 실시되고 있다. 일본도 2002년부터 이를 학교교육에 포함시켰고, 2005년 400만달러 규모로 죽음준비 교육과정 개발예산을 책정했다.

이런 것에 비하면 우리나라에서는 살아 나가는 교육에만 치중돼 있다는 느낌이다. 입시 위주의 지나친 경쟁에 치중돼 있어 진정한 삶의 의미와 죽음에 대한 것을 가르칠 여유가 없다. 이런 허점 속에서 교회가 이러한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 청소년기, 장년기, 그리고 노년기에 죽음을 준비하는 교육을 통해 의미있게 살아가는 것을 가르치고, 신앙의 필요성을 더 잘 교육할 수 있을 것이다.

4) 상담전문가의 기용 및 활용

정신적으로 질병 상태에 있는 교회 성도들이 있다. 각종 정신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나 생활에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보호가 필요하지만, 교회는 목회적 차원에서 손이 미치지 못할 때가 많다. 물론 교회가 이런 것까지 세밀하게 돌보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개인의 생활은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한다는 전제 하에 신앙생활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가 병원이 아닌 바에야 국가도 하지 못하는 일에 교회가 나설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회가 영혼을 돌보는 목회적 책임을 얼마나 체계적으로 수행하고 있는지를 질문한다면 전혀 무관하다고 생각할 수 없다. 헌금은 강조하면서 그들의 생활 문제나 심리적인, 즉 영혼의 문제를 개인에게만 맡겨두는 것이 올바른 목회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그러면 어느 정도 교회의 차원에서 그들을 돕는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된다.

교회는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에 대해 성도들 중 전문가를 기용하거나, 또는 전문가와 연락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성도들 중에는 사회 정식기관에서 이 분야에 종사하는 정신과 의사나 상담 전문가들이 있다. 봉사적 차원에서 일할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이들 중에 있다. 이러한 사람들의 존재는 자살 포럼 현장에서 경험할 수 있다. 이런 발표회에서는 교회의 자살에 대한 관심과 함께 전문요원을 활용하지 않는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교회에 전문가들이 없다면 사회 봉사단체와 연계하여 돌보는 방법도 있다. 생명의 전화는 1973년 아가페의 집을 시작으로 시민자원봉사단을 중심으로 하는 24시간 전화상담 서비스를 제공해 오고 있다. 수원시 자살예방센터 역시 2001년부터 자원봉사단에 의한 24시간 전화상담실을 운영해 오다 최근 들어서는 온라인 상담 서비스만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자살예방협회도 2005년 사이버 상담실을 개소하여 운영해 오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2005년 자살 및 정신질환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하는 24시간 전국 공통전화인 1577-0199를 개설하여 전국 정신보건센터를 중심으로 운영하고 있다. 서울시는 2004년 ‘서울 정신건강 2020 프로젝트’를 통해 ‘애니타임 응급 서비스 체계’를 구축하고, 이를 위해 2005년부터 서울시 광역정신보건센터를 설립하고 위기관리팀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 서비스의 특징은 전국 공통 전화인 1577-0199를 대표번호로 사용하면서 서울시 전역의 창구를 일원화해 24시간 체제로 운영하며, 정신보건 전문요원에 의한 보다 전문적인 서비스 체계를 구현하고, 응급출동 체계 구축을 통해 상담 이후의 즉각적인 개입도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또 광역센터 위기관리 서비스는 기존의 지역정신보건 서비스 체계 및 정신의료 시스템과의 네트워크를 통해 치료와 관리가 필요한 대상자를 연계하고 지원함으로써 잠재적 자살 위험을 최소화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더불어 자살예방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는 않지만 사랑의 전화, 여성의 전화, 한국성폭력상담소, 가정폭력 상담소, 청소년 상담전화 역시 자살 고위험군에 대한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서비스 체계와의 네트워크 구축은 효율적 자살예방 시스템 구축을 위해 중요한 부분이다.

5) 목회 전문화로 사회에 봉사

목회는 1백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변한 것이 없다고들 한다. 이는 목회의 전문화를 이룩하지 못한 우리의 모습이다. 사회는 디지털 시대인데 비해 교회는 아직도 아날로그 시대에 머물러 있다. 1백년 전의 주일학교 교육도 지금과 그다지 변한 게 없다. 주일학교 교사는 특별한 교육 없이도 그저 나이에 어울리는 청년들이 도맡아 한다. 주일학교 교사는 청년들이 거쳐가는 과정으로 인식한다. 그러다 보니 주일학교 교사는 전문화되지 못한 청년들이 약간의 실험성을 곁들인 정도로 담당하고 있다.

기독교가 이 땅에 들어올 때만 해도 교회는 무지에 빠진 백성들의 교육 분야에 기여하며 무지를 일깨우는 데 앞장섰다. 개화기 기독교는 그만큼 우리 시대 교육에 혁혁한 기여를 했다. 연세대, 서강대, 숭실대, 이화여대, 서울여대 등 여러 기독교 계통의 대학이 세워진 것은 기독교가 우리 교육을 변화시킨 증거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 모습은 어떤가? 말하기도 부끄러울 정도로 사회를 이끌어가는 데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는 교회의 정화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전문화의 문제다. 이런 점에서 교회는 다음의 체계를 구축해 지역사회에 봉사할 수 있다.

첫째로 정신건강의 봉사다. 교회는 지역사회 봉사의 일환으로 정신건강에 봉사하는 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 지역사회를 위해 교회 내 전문인들과 봉사를 실시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정신적으로 상당한 문제를 보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다. 이혼이나 실직, 각종 사고, 자살 시도 등 많은 어려움을 감당하는 사람들에게 전문적인 봉사를 하자는 것이다. 이런 봉사는 평소에 전문기관을 방문하기 어려운 주민들에게 좋은 혜택을 줄 것이다. 특히 특히 자살 충동이나 심리 및 정신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을 발견해 지속적으로 돌봐주고, 위험이 나타나는 초기와 이후에도 계속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도울 필요가 있다. 교회의 이런 봉사는 실제로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에게 좋은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사회에도 좋은 영향을 줘 이미지 개선에도 도움을 주고, 전도의 효과도 있다.

둘째, 자해 및 자살시도자 관리다. 봉사시 발견된 정신 이상자들을 교회가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일이 필요하다. 이는 봉사 차원이지만, 실제로는 지역민의 영혼을 돌보는 작은 목회다. 생명을 중요시하는 교회가 이런 노력을 통해 영혼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신앙으로 유도하자는 것이다. 교회가 이런 일을 체계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실시한다면 지역사회의 삶이 교회를 중심으로 이뤄질지 모른다. 이는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교회의 사명을 감당하는 모습이므로 반드시 호응을 얻을 수 있다. 이때 자살시도 및 자해의 과거력을 가진 사람들을 관심을 갖고 돌볼 필요가 있다. 실제 자살시도자의 절반 이상이 응급실에서 치료받고 퇴원한 후에는 필요한 정신과적 치료를 받지 않아서, 자살 위험이 높은 채로 생활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이는 자살 시도자들에 대한 특별한 관리와 치료를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한 이유다.

셋째, 자살 도구에 대한 접근성 교육이다. 정신건강에서 자살시도는 가장 좋지 않은 모습이다. 한 번 자살을 시도한 사람은 이런 시도를 자주 한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들을 신앙적으로 잘 교육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실제 자살에 이용될 수 있는 위험한 방법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교육해야 한다. 여기에는 자살 도구에 대한 접근을 직접 제한하는 방법, 자살 도구의 치명도를 낮추는 방법, 자살 시도 후의 치료법을 개선하는 방법 등도 함께 다뤄져야 한다. 치명적인 자살 시도 수단에 아예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가장 효과적인 자살예방법이다. 오래 전부터 자살을 계획하고 준비했더라도 자살에 사용할 수 있는 도구가 곁에 없다면 순간적이고 충동적인 자살시도가 늦춰지거나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 이들은 대개 다른 방법이나 도구를 쓰면서까지 자살 시도를 계속하려고는 하지 않으므로, 자살 시도에 이용할 수 있는 방법과 접근성, 치사성을 감소시킬 수 있다면 자살을 예방하는 효과를 거두게 될 것이다.

6) 상담전문가 역할로 자살 예방에 기여

교회의 상담 역할은 국가에 기여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하루에 33명, 한 달이면 1200명, 일년이면 대략 1만 2천명 이상 자살하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이런 시대적 상황은 숨가쁘게 성장을 위해 질주하듯 달려온 것에 비해, 정신상태는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한국사회는 경제적으로 세계에 유례가 없을만큼 양적인 성장을 이뤘다. 그것은 세계에 자랑할 만한 것이 아닐 수 없다. 60여년 전만 해도 얻어먹던 나라에서 일약 부자 나라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경제규모가 세계 12-13위를 달리는 정도니 말이다. 그에 반해 한국인의 정신상태는 심각한 정도에 이른 것이 사실이다. OECD 국가 중 자살 1위를 기록한 것이나 이혼이 단기간에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이는 한국인의 정신상태가 추락할 대로 추락해 피폐해진 상태에 이른 것을 의미한다.

다행히도 이런 상황과 때를 같이해 반가운 소식이 있다. 최근 신학대학들에서 상담학과의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는 사회와 교회 현장에서 상담의 필요성이 높아지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런 상황은 상담학 교수로서 교회가 한국 사회를 선도할 기회를 붙잡을 수 있다는 희망의 징조다. 특히 유명 연예인들의 자살이 증가하고 있는 터에 교회의 상담적 봉사가 그 자리를 담당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심리적·영적으로 훈련을 많이 받아온 기독교인들이 상담 과정을 조금만 이수한다면 사회의 심리적인 문제에 봉사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상담 전문화를 통해 교회가 사회에 기여할 기회를 붙잡은 것이다.

자살예방이 사회의 공익적 측면을 반영하는 대표적 문제라고 볼 때, 여기서 교회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교회가 선진국가의 행정체계를 도입하고 자살예방과 관련된 봉사를 올바로 선도해 나갈 때, 교회의 존재감은 높아질 것이다. 교회가 사회로부터 ‘개독교’라고 욕을 먹는 요즘, 더욱 그 역할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여기에 상담으로 봉사하고 싶은 성도들을 교육시켜 전문화하고, 일선 업무의 중복을 피한 봉사와 원활한 역할 분담을 통해 국민들에게 봉사할 수 있다. 교회는 이러한 일에 앞장서 국민의 좌절된 마음, 특히 자살에 빠져드는 사회적 현상을 치유할 수 있다.

여기에 교회는 통합적인 지원체계 구축으로 국민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질문, 그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구하고 합리적으로 투자해 효과를 이끌어 내야 한다. 앞서가는 교회들은 선진 행정체계를 배워 합리적 서비스의 공급체계를 구축하고, 생명존중을 향한 사회문화적 환경 변화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교회의 국민적 봉사에 힘입어 우리나라의 자살 문제는 예방이 가능해지고, 교회의 사회적 역할도 다시 한 번 시각 전환이 일어나 전도 효과도 나타날 것이다.

이상에서 우리는 자살예방을 위한 대응책을 다뤘다. 대응책이라고는 하나 예방 교육이 대부분이다. 이런 문제는 교회의 실천 사안이므로, 얼마나 필요성을 의식하고 노력하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사회적 상황은 분명히 교회의 일정한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기독교가 유입될 때 우리나라는 정신적으로 상당한 피폐한 상태였다. 그 때 선교사들이 복음을 전해 국민을 도탄에서 구해내고 정신자세를 가다듬게 만들었다. 이런 결과는 교육 발전으로 드러났다. 이제 국민들이 자살 위험에 빠지고, 몇몇 교인들마저 자살하고 있음을 알았다면 교회가 가만히 두손 맞잡고 있어야 하는지를 질문해야 한다. 그러기에 이런 상황을 기회로 선용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교회가 앞장서서 자살을 예방하고 있다는 뉴스를 여기저기서 접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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