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태흔 목사(엘림코뮤니오).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한 종 윌리엄 틴데일은 1494년 영국 왈레스에서 태어났다. 옥스포드 대학에 입학하여 1515년 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루터의 개혁주의 신학을 기초로 설립된 캠브리지 대학으로 옮긴다. 그곳에서 종교 개혁자들의 작품을 심도있게 분석 연구하는 ‘화이트호스인’ 이라는 동아리에 가입한다. 그런데 1520년 어느 날 학교 내 진보적 서클활동을 못마땅하게 여긴 카톨릭 교회 당국자들이 급습해 루터의 책들을 모두 소각시키자 틴데일은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받고 그곳을 떠난다.

1521년 틴데일은 바스 북쪽 코츠월드에 있는 리틀 소드버리 장원 영주인 존 월시 경의 두 아들을 지도하는 가정교사로 입주한다. 월시 경의 집에서 많은 집사들, 신학 박사들 및 당대 유명한 고위 성직자들과 교제하면서 루터와 에라스무스, 그리고 교회 안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성경구절을 주제로 심도있는 토론을 하게 된다. 그는 논쟁 주제로 올라와 있던 신학과 성경 및 신학자들에 관한 자신의 의견을 논리적으로, 간단 명료하게 설명한다. 성경의 상관 구절을 정확하게 인용해서 사악한 권위주의자들의 오류를 용기있고 분명하게 지적한다. 논쟁에서 밀린 고위 성직자들은 현명한 틴데일을 시기했고, 증오하는 마음을 품는다. 화가 난 어리석은 사제들은 선술집에 모여 용기 있는 틴데일을 이단의 괴수라고 비아냥거리면서 교회법 고문과 주교의 관리들에게 고소하기에 이른다.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는 종교개혁주의자 틴데일의 가르침은 15세기 카톨릭 교회의 수입원을 줄이는 주요한 원인이 됐다. 당시 카톨릭 교회는 헌금을 통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잘못된 교리를 선포하면서 막대한 수입을 올렸는데, 그것을 틴데일이 방해한 것이다. 틴데일에 대한 카톨릭 교회의 불평과 시비는 점점 심해졌다. 그들은 틴데일을 이단으로 정죄하면서 권력 기관에 수없이 고소한다. 카톨릭 교회로부터의 시달림과 괴롭힘 때문에 틴데일은 어쩔 수 없이 코츠월드에서 런던으로 사역지를 옮긴다.

신실한 크리스천 상인 험프리 몬마우스의 런던 집에 약 1년 동안 거주하면서 틴데일은 말로만 듣던 고위 성직자들의 추한 실상을 보게 된다. 거기서 만난 교회 지도자 거의 모두가 사악한 권위주의에 빠져 있었고, 격에 맞지 않게 호화로운 삶을 누리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하나님의 사람 틴데일은 타락한 영국에 더 이상 거처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독일로 떠난다.

1525년 틴데일은 고국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쉽게 읽고, 올바로 말씀을 깨닫도록 하기 위해 모국어인 영어로 신약 성경을 번역한다. 당시 런던 주교인 그스버트 톤스톨과 토마스 모오경은 분개하여 ‘거짓되고 실수투성이의 번역’ 이라고 비하하면서 파기시킬 방법을 모색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틴데일은 또다시 모세오경을 영어로 번역해 영국 각지 교회로 보낸다. 틴데일에 의해 번역된 영어 성경은 영국 전역에 퍼져 나갔으며, 경건한 사람들에게 영적 유익을 줬다.

반면 불경건한 교회 지도자들은 영문 번역판 성경을 읽고 자신보다 평신도들이 더 지혜롭게 되는 것을 크게 염려했다. 새롭게 번역된 영어판 성경이 자신들이 저지른 더러운 치부와 무지를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했던 것이다. 권력을 한 손에 쥔 고위 성직자들은 틴데일의 영어판 번역본이 보급돼서는 안 된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쉽게 번역된 영어판 성경을 평신도들이 읽고 그것에 비춰 왕의 사역을 비난하며, 결국 그들이 국가를 전복시킬 것이라고 악담까지 하게 된다.

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영어판 성경을 성도들의 손에서 모두 뺏으려고 사악한 책략을 사용했다. 주교들과 고위 성직자들은 왕에게 거짓으로 고하여 급기야 틴데일의 번역 성경 시중 배포를 금지시킨다. 그리고 신실한 하나님의 종 틴데일의 생명까지 빼앗으려는 음모를 꾸민다. 사악한 주교들은 런던 등기소에 직접 찾아가 틴데일에 관한 개인 자료들을 수집한 후, 그를 파멸시키기 위한 그물을 한올 한올 엮어간다. 그것은 세상을 어둠 속에 가두고, 헛된 미신과 가짜 교리로 자신들의 욕망과 탐욕 및 명예를 높이고자 하는 추악한 의도에서 나온 것이었다.

사악한 교회 지도자들의 꾀임에 빠진 황제는 오그스버그 모임에서 칙령을 내려 틴데일은 이유 없이 사형선고를 받게 된다. 1536년 10월, 42세의 젊은 나이에 ‘주여, 영국 왕의 눈을 뜨게 하소서!’ 라고 절규하면서 고단했던 그의 몸은 교살돼 불에 태워져 지상에서의 삶을 마감한다. 윌리엄 틴데일은 16세기 당시 오만한 교황 및 사악한 교회 지도자들의 뿌리와 기반을 전적으로 흔드는데 쓰임받은 하나님의 신실한 도구였다. 어둠 속의 통치자들은 무고한 틴데일을 함정에 빠뜨리고, 불의한 방법으로 그의 생명을 빼앗았다. 그러나 우매한 영국 백성들에게 진리의 말씀을 깨닫도록 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그 사람, 마귀의 세력에게 비참하게 교살당한 윌리엄 틴데일을 오늘 우리들은 능력자요, 신실한 종이라고 극찬한다.

권력 앞에서도 꿋꿋이 진리만을 외치며 실천하는 신실한 일꾼들을 대한민국과 교회는 오늘도 찾고 있다.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오직 대통령의 귀에 국가와 국민의 진실만을 알려주는 참된 참모들이 오늘도 아쉬워진다. 권력 앞에 아부하지 않으며, 개인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오직 국가와 교회 공동체를 위해서 몸과 마음을 바칠 21세기 윌리엄 틴데일이 요청된다.

[송태흔 목사의 <시사교회사> 지난 연재 바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