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성경은 수많은 번역 오류, 실종된 어휘의 일관성, 해설하여 가르칠 수 없는 중국식 어휘들, 무시된 시제, 무시된 수의 개념을 포함하며, 또한 성경을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서구적 사상들과 관습들이 무시된 채로 번역되었고, 또한 개역되었다.


한글성경의 번역오류의 실례(實例) - (1)
한글성경의 번역오류의 실례(實例) - (2)

8. 대제사장들:

[요19:15]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chief priests/ruling priests-KJV, NASB, NIV/B)

유태인들에게는 한 명의 대제사장이 있었고 수명의 수석제사장들이 있었다. 대제사장은 복수일 수 없으므로 오역이다. "수석제사장들" 혹은 "주임제사장들"로 번역되어야한다. 한글개역성경의 공관복음서들에 있어서 이 오류는 아주 많다.

9. 긍휼의 의미:

자비(慈悲), 인자(仁慈), 동정심(불쌍히 여김)이라는 어휘들은 각각 그 분명한 의미가 있는 어휘들이다. 그런데 한글개역성경은 이들 어휘들을 긍휼(矜恤)이라는 이해하기 힘든 어휘에 섞어서 써서 분명해야 할 의미들을 완전히 혼란시켰다. 영어성경으로 볼 때, tenderness, compassion, mercy, pity, kindness가 모두 때로는 긍휼, "민망히 여기다, 자비, 인자로 혼용되었다. love도 때로는 인자로 번역되었다. 그러니 누가 긍휼이나 민망히 여기사의 분명한 의미를 말할 수 있겠는가? 긍휼은 교회 내에서만 사용되는 중국식 어휘인 것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긍휼은 새로이 번역되는 성경에서는 그 사용이 완전히 배제되어야 한다.

10. "권면하다"의 의미:

성경에서 "권면하다"라는 어휘는 특히 산만하게 사용되었다. NIV를 기초로 볼 때, 이 어휘는 urge, admonish, persuade, encourage 모두에 대해서 사용되었다. 이 어휘는 "강력히 권고하다, 권고하다, 설득하다, 격려하다"의 모든 어휘에 사용되어, 권고의 강도를 흐지 부지 만들었다. 교회 내에서만 사용되는 어휘인 것을 생각할 때, 이는 분명히 중국식 한자어이다. 누가 이 어휘 자체의 분명한 의미를 말할 수 있겠는가? 어휘의 일관성의 유지는 성경번역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중의 하나이다. 이러한 어휘는 차후의 번역에서 완전히 제거되어야 한다.

11. 그릇된 의미의 한자어 사용:

[딤전2:1]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supplications, prayers, intercessions, and giving of thanks/requests, prayers, intercession and thanksgiving-KJV/NIV)
[요8: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하시니라. Then neither do I condemn you
[행16:37] 바울이 이르되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치 아니하고 공중 앞에서 때리고 옥에 가두었다가 이제는 가만히 우리를 내어 보내고자하느냐 하니라 (they have beaten us openly uncondemned/They beat us publicly without a trial, even though we are Roman citizens-KJV/NIV)

영미 법적 시스템에는 성경적 개념이 깊이 스며들어있다. 특히 형법은 판사, 검사, 변호사, 증인의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예수께서는 때로 판사로 변호자로 또는 검사로 기술되었다. 물론 하나님은 판사이시다. 성경은 때로 서구의 민법에 있는 중재자(intercessor, arbitrator 혹은 mediator)의 개념을 기술한다. 예수께서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이시다. 요한복음에 언급된 Counselor(보혜사)는 미국 법정에서 변호사와 검사 모두를 일컫는 어휘이다. 욥은 그의 고난 중에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의 필요를 부르짖었다.

그런데 한글 개역 성경은 중국인들이 사용하는 어휘들을 답습해서 이러한 서구적 문화적 개념을 전혀 이해하기 힘들게 만들었다. 예를 들어, 우리와 일본의 법적 시스템은 “판사와 재판과 유죄판결”을 말하는데 비해서 중국인들은 “심판장과 심판과 정죄”를 말한다. “심판”이라는 어휘는 우리의 관습상 스포츠의심판(umpire 혹은 referee)에 해당되는 어휘이나, 성경은 중국 성경을 베껴 왔기 때문에 혼란을 일으켰다. 성경에서 말하는“ 정죄(定罪)“는 모두 ”유죄판결(有罪判決) 혹은 유죄 판단(判斷)”으로 바꿔써야 서구적 법적 시스템에 맞는 표현이 되고 이해할 수 있는 표현이 된다.

“도고”의 한자는 “禱告”이다. “기도로 고한다”의 의미는 “중재(intercession) 혹은 중재기도"와는 전혀 거리가 멀다. 따라서 오역이다. 다른 인용구에서 ”죄도 정치 아니하고“는 서구적 법적 절차를 반영한 번역이 아니다. "유죄판결 없이” 혹은 ”재판도 거치지 않고“가 맞는 번역일 것이다. 다른 말로 말하면,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나게 했다는 것이다. 변학도가 춘향이 잡아가둔 개념으로 접근하면 오역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우리의 법정 용어들을 배제하고 중국어들을 베껴온 것은 심중한 오역의 원인의 하나이다. 이러한 용어들에 대해서 이미 ”토속화/토착화“되었기에 바꿀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도 또한 매우 근시안적 소견이다.

[요6:11]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저희의 원대로 주시다. (gave thanks, fish)

축사라고 하면 우리는 축사(祝謝)가 아닌 축사(祝辭)를 생각한다. “감사를 드리셨다”는 의미이므로 두 어휘 모두 본래 의미와 거리가 있다. 축복(blessing)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축하의 말씀을 하셨다”는 의미도 “감사와 축복했다”는 의미도 아니다. “고기”도 “생선” 혹은 “물고기”로 번역해야한다. 성경의 많은 곳에서 과거를 완벽한 현재형으로 기술했다-“주시다”. 한글성경에 수 없이 많은 시제의 무시는 오역이다.

[행7:42] 하나님이 돌이키사 저희를 그 하늘의 군대 섬기는 일에 버려두셨으니 이는 선지자의 책에 기록된 바 ---- worship of heavenly bodies(NIV)
하늘의 군대는 천체(天體)(host of heaven-KJV)의 오역이다. 일월성신들을 섬기는 행위를 말한다.

[겔27:8-9] 시돈과 아르왓 거민들이 네 사공이 되었음이여 두로야 네 가운데 있는 박사가 네 선장이 되었도다 그발의 노인과 박사들이 네 가운데서 배의 틈을 막는 자가 되었음이여 ---(---thy wise men, O Tyrus, that were in thee, were thy pilots. The ancients of Gebal and the wise men thereof were in thee thy stalkers/--your skilled men, O Tyre, --- Veteran craftsmen of Gebal were --KJV/NIV)
[마2:1] 헤롯왕 때에 예수게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behold, there came wise men from the east to Jerusalem)

위의 두 인용구들에 있어서 박사(博士)는 어떤 분야의 전문가들을 의미한다. 그러나 요즈음의 Ph.D.와는 그 의미상의 차이가 크다. 그 의미는 신구약에 있어서 현자 혹은 현인(wise man/skilled man(항해에 익숙한 자, 노련한 숙련공)/sage)의 의미를 가진다. 두 번째 인용구에 있어서, 다른 영어성경들은 magi 혹은 stargazers로도 번역되었다. 중국인들은 박사를 현자 혹은 현인 혹은 노련한 숙련공의 의미로 이해하는지 모르나, 우리의 경우는 결코 그렇지 않다. 따라서 박사는 오역이다.

12. 기타 오역들의 예:

[딛3:3]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치 아니한 자요 속은자요 각색 정욕과 행락에 종노릇한 자요 악독과 투기로 지낸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이었으나 (For we ourselves also were sometimes foolish, disobedient, deceived, serving divers lusts and pleasures,---/---deceived, enslaved to various lusts and pleasures, ---/At one time we too were foolish, disobedient, deceived and enslaved by all kinds of passions and pleasures-KJV/NASB/NIV)

속았으면 무엇에 속았는가가 없다. 따라서 deceived는 뒤에 나오는 various lusts and pleasures에 속았다고 번역되어야 한다(NASB 참고). “각색 정욕과 행락에 속아 종노릇하는 자요”가 맞는 번역이다. 위에 인용된 KJV-NASB-NIV의 번역은 얼마간 KJV가 가진 불분명한 번역의 개선 과정을 보인다.

[요5:35] 요한은 켜서 비취는 등불이라 너희가 일시 그 빛에 즐거이 있기를 원하였거니와 (He was a burning and and a shining light/John as a lamp that burned and gave light, and you chose for a time to enjoy his light-KJV/NIV)

“그는 타서 비추이는 빛이었으니“의 의미이다. 수동적 표현이 능동적 표현으로 오역되었다.

[눅11:5] 또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벗이 있는데 밤중에 그에게 가서 말하기를 벗이여 떡 세 덩이를 내게 빌리라: lend me three loaves of bread

“빌리라”가 아니고 “빌려달라”고 해야된다. 능동적 표현과 수동적 표현을 구분하지 못했다.

[마13:32]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여기서 “나물”은 영어성경들에서는 herbs/garden plants/plants(KJV/NASB/W/B)로 번역되었다. 정원식물들을 의미한다. 아마도 번역자는 배추나 무 보다도 더 작은 냉이나 씀바귀 같은 풀들을 생각한 것 같다.

[행12:8] 천사가 가로되 띠를 띠고 신을 들메라 하거늘 베드로가 그대로 하니 천사가 또 가로되 겉옷을 입고 따라오라한대: Gird thyself, and bind on thy sandals/Put on your clothes and sandals. Cast thy garment about thee/Wrap your cloak around you and follow me(KJV/NIV).

"허리띠를 띠고/옷을 입고, 신발끈을 매라/신발을 신으라"의 오역. “신을 들메라“는 아마도 시간이 없으니 신발을 들쳐메고 따라오라는 의미의 오역인 것으로 보인다. 당시 이들은 허리띠를 풀고, 겉옷은 벗었으며, 신발도 벗은 상태였음이 분명하다.

[행28:27]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을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와 나의 고침을 받을까 함이라(lest they should see with their eyes, and hear with their ears, ---/Otherwise they might see with their eyes, hear with their ears, ----KJV/NIV)

이 구절에서 lest나 otherwise 이하는 가정법으로 “그렇지 않았으면 ---나의 고침을 받았을 것이라“의 의미이다. 이 구절은 미래에 대한 기대가 아닌 과거의 대한 원망의 의미를 담고 있다.

LA 동서성서학회

LA 동서성서학회(회장 김영휘)는 하나님의 절대무오한 말씀인 성경이 한글로 번역되는 과정 중 생긴 오류들을 건전한 비판을 통해 고민하고 변화시켜 가려는 학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