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아버지로 산다는 것
지난 2월 사랑하는 아버지를 잃어버려서 그런지, 책장에 꽂혀있는 <아버지로 산다는 것>이라는 제목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아마도 아버지란 어떤 존재였는지 생각하며 그 분의 의미를 되새기고 싶어 그런지 모른다.
책에는 아버지는 자녀들에게 무엇을 주어야 하는지 앞부분에서 설명한 후, 뒷부분에서는 남자 16명의 아버지에 대한 경험이 적혀 있으며, 그것에 대한 해석 및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아들들의 삶은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아버지의 부재로 삶에서 배우지 못한 것들은 어떤 것들인지 보면서, 삶에서 좋은 아버지의 영향력이 얼마나 중요한 가를 생각해 보게 된다.
아버지는 자녀에게 무엇을 주어야 할까?
첫째로 아버지는 아이에게 좋은 유대관계를 형성하도록 도와야 한다.
앞에서 언급한 책에서, 아버지는 인격을 형성하는 데 아주 중요한 영향을 주게 된다고 말한다. 그것은 어린 시절 유대관계가 인격을 형성시키는데 주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어린 아이가 아빠와 유대 관계를 골고루 잘 맺게 될 때, 한 사람의 대상과만 유대관계를 잘 맺어 나쁜 아빠, 좋은 아빠와 같은 한쪽으로 치우친 대상에 대한 편견을 갖지 않게 되는 것이다.
엄마나 아빠 모두 잠깐 눈에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그들이 나를 사랑하고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채워줄 수 있는 분임을 엄마라는 한 대상이 아닌 아빠에게도 충분히 경험할 수 있을 때, 아이는 사람이라는 대상에 대해 건강한 이미지를 갖게 되고 신뢰를 형성하게 된다.
그러면 좋은 유대관계는 어떻게 형성될 수 있을까? 아빠가 아이를 좋은 곳에 데리고 다닌다 해서, 유대감이 저절로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필자 또래 많은 성인들의 아버지들이 그러했던 것을 볼 수 있다.
한 번씩 자녀를 데리고 동물원이나 계곡에 놀러가는 것 자체가 그들에게는 자녀를 향한 사랑의 표현이었고, 그것으로 자녀들과 소통을 해결하는 부모들이 많이 있었다. 그렇다 보니 사랑을 받았다고는 생각하나, 유대감을 형성하고 그 유대감을 통한 안정감과 만족감을 가지고 있는 분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
유대감은 부모와의 솔직한 대화를 통해 형성될 수 있고, 거기에 일관성이 있을 때 가능하다. 아빠는 자녀를 격려해야 하며 약속한 것을 지킬 수 있어야 하고, 부정적 감정도 대화로 잘 소통할 수 있을 때 아이들은 정서적으로 건강한 유대감을 갖고 성장하게 된다.
이런 부모의 건강한 관심과 대화는 아이로 하여금 사람들을 신뢰하게 하며 자신에 대해 긍정적 정서를 형성하게 되고, 그것이 사회성으로 이어져 사회에서 사람들과 잘 어울려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된다.
둘째로 아버지들은 아이들과 잘 놀아줘야 한다. 아이가 성장하는 데 아버지가 적극적으로 잘 놀아준 아이들은 아버지와 사이가 좋으며 관계가 안정적으로 발전한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삶의 기술들을 배운다. 그러므로 그 시간들은 그냥 허비하는 시간이 아니라, 아이들이 성장하는 시간이다. 아이들은 아버지와 함께 놀이를 하면서 격렬한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을 키우고,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지켜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에리히 프롬이 쓴 <사랑의 기술>이라는 책에서는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사랑이 필요한데, 그 중 엄마와 아빠의 사랑이 아이에게는 꼭 필요한 부분이고, 엄마의 사랑과 아빠의 다른 사랑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엄격하고 규칙과 규율을 배우는 훈련에 대한 사랑을 아버지로부터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어린 시절 아버지가 아이들과 놀아주는 것은 너무 중요하다.
필자도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아버지가 함께 놀아주었고 시간을 함께해 주었던 부분이 인생에 있어 아주 따뜻한 기억인 동시에, 아버지의 훈련을 통한 훈육을 통해 질서에 순종하고 질서에 대한 존중을 배울 수 있었다.
아이들은 아버지가 준 경험을 통해 필자처럼 아버지를 기억하는 동시에, 상상 속에서 그 이미지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아버지가 자주 자리를 비우거나 믿음을 주지 못한 경우에는 아이가 공격적 행동을 하거나, 아주 소극적인 아이의 경우 아버지를 이상화시켜 동경하는 일이 생겨날 수 있다.
어떤 분은 아버지가 자신과 전혀 놀아주지 않다가 사춘기에 갑자기 자신의 공부에 관심을 가져, 아버지에 대해 적대감을 갖게 됐다고 고백했다. 어릴 때부터 놀이를 함께해 주는 허물 없는 아버지는 좋은 점도 나쁜 점도 가지고 있는 한 인간으로 이해하고, 그것을 통해 아이들은 건강한 성 정체성의 기초를 형성하며, 바른 양심을 갖는 면에서 중요한 기여를 한다.
이 시대에 건강한 성 정체성을 갖지 못하고 도덕성 결여로 인한 많은 문제들이 일어나는 것은 어쩌면 아버지의 부재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함께 놀아주며 시간을 함께 하는 자리를 지켜 나가는 아빠들이 필요하다.
셋째로 아이들에게 아빠는 격려를 많이 해주어야 한다. 특히 청소년기에 있는 아이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해 가면서 인생의 계획을 세워 나가는데, 부모들에게 정서적 지원과 격려를 많이 받은 청소년들은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갖고 인생의 어려움과 고비를 잘 이겨낼 수 있게 된다.
특히 또래의 영향력이 가장 많은 시기에 있는 청소년들이 중요한 결정을 하게 될 때 가족과 소통하며 부모와 마음이 잘 통하면, 또래보다 가족의 말에 귀를 기울여 잘못된 길로 가지 않며 사려 깊고 사교적인 사람으로 잘 자라게 된다. 그것을 위해 아버지들은 여성으로 성장해 가는 딸을 칭찬해 주어야 하고, 남자로서 성장해 나가는 아들이 자신감과 확신을 가지고 살 수 있도록 격려해 주어야 한다.
이렇게 성장한 아들은 20대 후반이 되면 아버지를 삶의 모델로 삼고, 아버지로서의 삶을 시작할 준비가 된다. 그렇지 못할 때 아들은 독립된 성인 남성으로 살아가기보다, 독립하지 못한 채 엄마에게 의존하는 아들이 되기도 한다.
한국의 가정을 보면 아버지의 부재로 권위가 상실된 경우가 많아서, 그들의 수고와 존재 가치의 중요성까지 하락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한 인간이 성장하는 데 있어 정말 중요한 아버지의 역할을 아버지들이 찾고 이제는 지켜 나가야 할 때다.
서미진 박사
호주기독교대학 부학장
호주 한인 생명의 전화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