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용배낭 메고 행군하듯 여행해
아데미 신전과 에베소 성벽 목격
에베소, 이오니아 중심도시 항구
3차 여행, 3년 머물며 복음 전해

에베소
▲에베소 유적지.
필자는 여태까지 145개국을 여행하면서, 주로 군화를 애용하고 있다. 사막의 모래, 자갈땅이나 습지 생태계를 보여 주는 식물원의 젖은 땅, 눈길 등 아무 곳이나 걸어 다니는데 편하고, 군대를 좋아하는 필자의 기질에 딱 맞는 신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연히 교통편을 이용하는 것보다 웬만한 거리(5km 이하)는 행군하는 기분으로 군용배낭을 메고 걸어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자동차를 타고 이동을 하면 시간을 줄일 수 있지만, 봐야 될 것을 많이 놓친다. 그러나 걸어 다니면 건강에도 좋고 천천히 다니므로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귀한 장면을 만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에베소를 방문하였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셀죽 시내에서 에베소(Ephesus) 유적지까지 걸어서 왕복했다. 덕분에 지난 회에 언급한 아데미 여신의 신전(도로에서 약간 떨어져 있음)도 볼 수 있었고, 에베소 성벽도 볼 수 있었다.

만약 성지순례 단체여행에 합류하여 전세버스를 타고 편하게 에베소를 방문했다면, 그냥 지나치는 바람에 아마도 셀죽 시내와 에베소 사이 길가에 있는 에베소 성벽은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에베소를 외적의 공격으로부터 방어하려고 비잔틴 시대에 만든 이 성벽과 성채를 현지인들은 ‘셀죽 성’ 또는 셀죽 요새‘라고 부른다.

에베소
▲도로 옆에 있는 에베소 성벽.
사도 바울이 3년 동안 머물면서 복음을 전한 에베소는 이미 기원전 11세기 튀르키예 중남부에 거주하던 (그리스에서 건너 온) 이오니아인들이 이곳을 점령하고 식민지로 삼았을 때부터 이오니아 지방의 중심도시였고, 항구로서 번창하였다.

기원전 188년 에베소는 요한계시록 2장 12절에 나오는 버가모(Pergamum) 왕국에 점령당했다. 이어 기원전 133년에 로마가 버가모 왕국을 점령했고, 기원전 129년 에베소에 과도한 과세정책을 행했다. 그러자 에베소인들은 아나톨리아 고원 서쪽에 있는 도시들과 함께 기원전 88년 로마에 반란을 일으켰다.

오늘날 튀르키예 북부 지역에 있던 본도(Pontus) 왕국의 미트리다테스(Mithridates) 6세도 이 반란에 합세했는데, 그는 에베소에 와서 소아시아에 거주하고 있는 모든 로마인을 살해하라고 지시했다. 그 결과 8만 명의 로마인이 하루에 살해당했고, 로마인이 에베소에 세워놓은 기념물들도 모두 파괴됐다.

그러자 그리스 지역의 로마 총독인 술라(Sulla)가 군대를 끌고 에베소에 와서 반란군을 진압하여 에베소는 다시 로마 지배하에 들어갔다.

악티움 해전 반도 에베소
▲악티움 해전 장소. 해협 건너 보이는 육지는 악티움 반도. 해전은 좁은 해협을 사이에 두고 안과 밖에서 벌어졌다.
로마 정권을 잡기 위해 옥타비아누스와 경쟁 관계에 있던 로마 장군 안토니우스는 기원전 33년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와 함께 에베소에 도착하였다. 안토니우스와 동맹을 맺은 클레오파트라는 군함 200척을 안토니우스에게 줬고, 안토니우스의 함대는 800척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기원전 31년 그리스 서부의 악티움 해상에서 벌어진 해전에서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연합 함대는 옥타비아누스에게 패배했고,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는 이집트로 도주했다.

세계사를 바꾼 대(大)해전인 악티움 해전이 일어난 곳이 바로 성경에 나오는 ‘니고볼리’이다. 디도서 3장 12절에는 사도 바울이 디도에게 “내가 니고볼리에서 겨울을 보낼 터이니 급히 니고볼리로 오라”는 내용이 들어 있다.

필자는 군사·전쟁사를 좋아해서 이미 11권을 발간했으므로, 악티움 해전과 니고볼리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별도의 책이 나올 정도이므로 여기에서 끝낸다.

옥타비아누스가 시리아를 거쳐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도착하자,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는 기원전 30년 자살하게 된다. 이렇게 안토니우스를 제거한 옥타비아누스는 기원전 27년 로마 제국의 첫 황제가 됐고, 이는 에베소에 가장 큰 변화를 가져왔다.

악티움 해전 반도 에베소
▲악티움 해전이 벌어진 곳. 해협 건너 악티움 반도가 보인다(사진 중앙). 사진 속 기념비는 악티움 해전과 무관하다.
‘아우구스투스’라는 이름으로 황제가 된 그는 그때까지 속주 수도였던 버가모 대신 에베소를 수도로 삼았다. 그러자 당시 항구도시였던 에베소는 처음으로 소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큰 도시가 되어, 로마 총독이 이곳에 주재하였다.

아울러 무역이 번창하게 되어 에베소는 동부 지중해의 가장 중요한 무역항이 되었고, 당시 로마 제국 안에서 가장 큰 5개 도시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바울은 제2차 전도여행 시 인구가 많고 발전된 도시인 드로아(트로이), 빌립보, 데살로니가, 아덴(아테네), 고린도 등을 방문해 전도했다. 큰 도시에는 각계각층의 인구가 많으므로 전도의 대상이 많았기에, 바울은 그런 결정을 하였을 것이다.

제2차 전도여행에서 바울은 고린도 옆 겐그레아 항구를 떠나 안디옥으로 배를 타고 가는 도중, 잠시 에베소에 들려 유대인의 회당(교회)에서 복음을 전하였으나 오래 머물지 않았다.

당시 에베소 교인들이 바울에게 더 머물러 달라고 요청하였으나, 바울은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고 말한 뒤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 안디옥으로 돌아갔다(사도행전 18:19-22).

그 후 바울은 제3차 전도여행에서 에베소를 전도 여행의 주요한 목적지로 삼아 3년 동안 머물면서 주의 복음을 전하였다.

권주혁 장로

세계 145개국 방문
성지 연구가, 국제 정치학 박사
‘권박사 지구촌 TV’ 유튜브 운영
영국 왕실 대영제국 훈장(OBE) 수훈
저서 <사도 바울의 발자취를 찾아서>, <여기가 이스라엘이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