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이어 기념교회 비아 마리스 복원 갈릴리
▲갈릴리 호수에 면한 오병이어 기념교회. ‘일곱 샘물교회’라고도 부르는 이 교회는 서기 350년경 ‘비아 마리스’ 도로 옆에 길 방향으로 평행하게 세워졌다. 사진은 1980년 초에 현대식으로 복원된 모습이다.
본문: 요한복음 6장 31-35절

생명의 차원을 여는 장면입니다. 군중들은 벳새다의 5천명이 먹는 급식의 기적을 보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주님만 따라가면 배고픔을 해결하고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주님이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생명차원의 양식을 논하게 됩니다. 이 본문을 배경으로 ‘생명의 양식’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만나와 같지 않다
생명의 양식은 일시적인 양식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서 광야 생활을 할 때,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그때 모세가 간구하여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주어 백성들이 먹었습니다. 하늘에서 내린 만나는 오늘날 일용할 양식의 예표입니다.

군중들이 만나 이야기를 꺼낸 이유가 있습니다. 도대체 주님이 누구인지 확실하게 믿을 수 있도록, 무슨 증표를 보여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군중들이 많이 헛갈릴 만도 합니다. 나사렛 목수의 아들로 태어난 주님이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하늘에서 왔다고 말합니다. 하늘의 아버지가 자신을 세상에 보내셨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하늘에서 온 메시야라고 믿을 만한 증표를 보여 달라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6장에 나오는 만나의 애기는 모세가 간구하여 하늘에서 내려주신 양식입니다. 그러면서 너희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거두라고 합니다. 아침에 광야에 나가서 한 오멜씩(약 2리터) 정도만 거두라고 합니다. 이 만나는 하루가 지나면, 모두 썩어버리는 일시적인 양식입니다.

그래도 이스라엘 백성은 조상이 만나를 먹은 경험을 자주 말합니다. 조상이 광야에서 만나를 먹은 것은 하늘의 기적을 체험한 역사적인 증표이기 때문입니다. 광야에서 만나를 먹은 체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중요한 이유입니다.

2. 하나님이 주신다
생명의 양식은 하늘의 하나님이 주신다는 말입니다.

주님은 군중들이 말하는 만나에 대한 이야기를 인정하면서 받습니다. 다만 주님은 그 만나를 주신 분이 모세가 아니라, 하늘의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말합니다. 만나를 주신 주체를 분명히 하는 모습입니다. 모세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셨다는 말입니다.

주님은 만나는 하늘에서 내린 것이라고 인정하셨습니다. 그런데 만나는 진정한 ‘하늘의 양식’이 아니었다고 강조합니다.

군중들은 만나의 기적에 초점을 두었는데, 주님은 하늘의 양식에 초점을 두고 생명을 위한 참된 양식을 소개합니다. 만나는 하늘에서 주신 것이지만, 생명의 양식은 그 만나와는 다르다는 말입니다.

이 생명의 양식은 만나와는 너무나 다른 양식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식량은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영생을 위한 양식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때 조상이 먹었던 만나는 먹으면 금방 배가 고파지는 육신의 양식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진정한 양식을 먹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보이는 육체적인 양식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정신적인 양식입니다. 주님이 의도하신 생명의 양식은 심리적이면서 정신적입니다. 인간은 보이지 않는 심리적이고 정신적인 양식도 먹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하늘에서 내리는 진정한 양식인 영적인 양식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양식은 인간이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먹어야 하는 영적인 생명의 양식이라는 뜻입니다.

3. 주님이 생명의 떡이시다
주님이 생명의 양식이라는 말입니다.

우리의 말로는 떡이라고 번역된 것이, 외국에서는 빵입니다. 떡이나 빵이나, 양식을 상징합니다. 주님으로부터 영적 양식을 소개받고, 군중들은 그 양식을 달라고 말합니다.

지금 군중들은 주님으로부터 들은 생명의 양식에 대해 설득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군중들은 조상이 광야에서 먹었던 그 만나가 아니라, 지금 주님이 말씀하시는 생명의 양식을 달라고 말합니다.그때 주님은 “내가 바로 그 생명의 양식이다”라고 말합니다.

군중들이 이해하기에 참으로 곤란합니다. 군중들은 주님께 설득되어서 그 ‘생명의 양식’을 달라고 하니, 주님이 “바로 그 생명의 양식”이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생각이 깊지 않은 사람은 지금 “주님을 먹으라는 것인가?”하고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 더 생각하면 이해가 됩니다.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것이요” 하고 말씀했거든요. 주님을 따르게 되면, 심리적으로 정신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굶주리지 않게 된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밥을 많이 먹으면, 배가 부릅니다. 그런데 허탈함까지 채워지지는 않습니다. 밥을 많이 먹는다 해서, 정신적 배고픔까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목숨을 걸고 권력을 쟁취하려는 것은 정신적인 배고픔 때문입니다. 보이지 않는 생명의 양식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김충렬
▲김충렬 박사.
4. 정리

의미치료의 대가인 빅터 프랭클은 현대인의 정신병의 원인을 ‘의미 상실’로 보았습니다. 정신적 공허와 허탈감은 육신의 양식으로 해결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는 인생의 길에 생명의 주님을 만나서 허탈하지 않고, 생명이 충만하게 되는 축복을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십시다!

“주님! 우리는 만나와 같은 육체적인 양식이 있음을 알게 하소서, 하나님이 주시는 하늘의 양식이 있음을 알게 하소서. 그리고 우리는 주님이 생명의 양식임을 깨닫게 하소서. 주님이 생명의 양식임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축복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충렬 박사
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
전 한일장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