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승
▲권혁승 교수 ⓒ권혁승 교수 블로그
II. 솔로몬의 술람미를 향한 마지막 네 가지 예찬(7:6-9)

1. 예루살렘 여인들의 술람미를 향한 긴 예찬이 끝나면서 솔로몬은 자기 아내의 아름다움을 추가시키고 있다. 솔로몬은 여기에서 술람미의 큰 키와 유방, 콧김과 입을 칭찬하고 있다.

2. 솔로몬은 술람미의 아름다움을 구체적으로 노래하기 전에 먼저 7:6에서 술람미와의 사랑이 가져다주는 즐거움을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어찌 그리 화창한지' '어찌 그리 쾌락하게 하는지'라고 표현하였다. '아름답다'라는 표현은 히브리어로 '야페'이다. 이 표현은 여인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일반적인 용어이다. 그러나 이 단어의 기본적 의미는 '밝게 빛나다, 환하다'라는 뜻이다. 우리말에 '얼굴이 달덩이처럼 예쁘다'는 표현이 있는데, 아마도 그런 아름다움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화창하다'는 히브리어로 '나임'인데, 이 단어는 '즐겁다, 기쁘다, 기분 좋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사랑이 가져다주는 상쾌함과 행복함을 표현하는 용어이다. 사랑은 또한 쾌락을 안겨준다. 이 표현은 히브리어로는 '아나그'인데, 이 단어의 기본적 의미는 '부드러움, 섬세함, 달콤함'이다. 그러므로 사랑이 안겨주는 아늑하고 달콤한 행복감을 표현하는 것이다.

요즈음 우리들 주변에서는 쾌락과 행복을 혼동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쾌락과 행복은 질적으로 전혀 다른 것임을 알아야 한다. 행복은 영속적이고 삶의 보람에서 얻어지는 결과이며 그래서 삶의 원동력이 되는 감정이라고 한다면, 쾌락은 일시적이고 감각적이고 인간의 감각을 마비시키고 결과적으로 인간을 쾌락의 노예로 만들게 한다. 두 부부 사이에 나누는 결혼생활의 행복은 결코 쾌락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행복이다. 비록 육체적인 관계를 나누지만, 그것은 보다 큰 삶의 원동력을 제공하는 근본적인 행복이다.

3. 솔로몬은 술람미의 키를 종려나무에 비유하고 있다. 이스라엘에서의 종려나무는 곧게 자라는 나무로 잘 알려져 있다. 또한 종려나무는 즐거움과 찬양을 상징한다. 그래서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주변의 사람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환영하였다. 술람미 여인을 종려나무에 비유하고 있는 것은 늘씬하고 우아한 그녀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그녀가 안겨주는 즐거움과 포용력을 보여준다.

솔로몬은 술람미의 유방을 종려나무와 포도 열매 송이에 비유하고 있다(7:7b-8a). 앞에서 솔로몬은 여인의 가슴을 '쌍태 노루 새끼'에 비유하였다(4:5). 비슷한 표현이 예루살렘 여인들의 술람미 예찬에서도 등장하고 있다(7:3). 종려나무의 열매 송이나 포도의 송이는 많은 작은 열매들로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술람미 여인의 가슴은 마치 에베소의 아데미 여신처럼 여러 개의 가슴을 갖고 있다는 것인가? 여기에서 가슴을 종려나무와 포도 열매 송이에 비유한 것은 오히려 종려나무와 포도나무 열매가 지니고 있는 달콤함 때문이다. 이스라엘에서 생산되는 많은 열매들 중에서 종려나무와 포도나무 열매는 다른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달다. 우리나라에서 포도는 신 맛이 나는 것이 특징이지만, 일사량이 많은 이스라엘에서는 포도가 단 맛이 높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려나무 열매나 포도의 즙을 '꿀'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술람미 여인의 가슴은 마치 꿀처럼 달콤함을 선사한다는 것이다.

솔로몬은 또한 술람미의 숨결을 사과처럼 달콤한 냄새에 비유하고 있다(7:8b). 과실 중에서 사과는 그 향기가 가장 뛰어나다. 아가서 2:5에서 사과는 술람미 여인을 시원케 하는 솔로몬의 사랑에 비유되었는데, 이곳에서는 술람미의 숨결이 솔로몬에게 향기로움을 안겨주는 향기로운 사랑으로 표현하고 있다.

술람미의 입은 최상급 포도주에 비유되었다(7:9).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포도주는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이다(시 104:15). 포도주가 사람을 시원하게 하고 마음의 기분이 상쾌하게 만드는 것처럼, 사랑은 사람에게 가장 큰 즐거움이요 쾌락이라는 것이다.

아가서에서 포도주는 두 남녀의 사랑에 비유되고 있다(1:4; 5:1; 7:2). 1:2과 4:10에서는 두 남녀의 사랑이 포도주보다 진한 것으로 표현되었다. 그런데 7:9의 후반부에서는 화자가 바뀌어 술람미가 솔로몬에게 응답하는 것으로 나온다. 솔로몬이 좋은 포도주 같은 입이라고 노래하자 여자는 이 포도주가 미끄럽게 흘러내려 사랑하는 자의 입을 움직인다고 노래한다. 서로가 같은 주제를 주고받으면서 사랑을 고백하는 형식이다. 이렇게 주고받는 응답의 형식은 두 사람의 사랑이 더욱 성숙하여 생각마저도 하나가 되는 일체감을 보여준다.  

III. 술람미의 사랑으로의 초청(7:10-13)

1. 7장의 마지막 부분인 세 번째 부분은 술람미가 적극적으로 자기 남편인 솔로몬을 사랑으로 초청하는 내용이다. 아가서 전체에서 볼 때, 이 부분에서는 처음으로 술람미가 직접적이고도 분명하게 성적 요구를 표현하고 있다. 앞부분에서는 그러한 열정이 간접적으로 표현되었지만(예를 들면, 1:2, 2:6 등에서). 이제는 남편의 사랑에 이끌려 먼저 그런 구애를 요청할 수가 있었다.

2. 술람미의 사랑으로의 초청은 자신이 사랑하는 남편에게 속하였음을 고백하는 노래로 시작된다. "나는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구나. 그가 나를 사모하는구나" 이런 고백은 2:6과 6:3에 이어 세 번째 나오고 있다. 앞의 두 경우에는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다"고 하였지만 여기에서는 "그가 나를 사모하는구나"로 바뀌어 있다. 이것은 술람미이 솔로몬의 사랑에 대해 확신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모하다'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명사 '테 슈카'는 이곳과 창세기 3:16 두 곳에서만 사용되었다. 창세기 3:16에서는 아내가 남편을 사모하게 되는데, 그것은 범죄의 결과로 주어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가서 7:11에서는 오히려 남자가 여자를 사모하고 있다. 이것은 두 남녀의 사랑이 편중된 것이 아니라 사랑 안에서 두 사람이 인격적으로 동등함을 보여준다. 그리고 범죄의 결과로 주어진 형벌도 두 사람의 사랑 안에서 해소되었음을 드러내준다.

3. 술람미는 조용한 시골로 함께 내려가자고 남편을 조른다. 술람미가 그렇게 시골로 가고 싶어 하는 것은 어느 것으로도 방해받지 않은 채 마음껏 자신의 사랑을 임에게 주고 싶기 때문이었다(7:12). 한적한 시골은 복잡한 왕궁과는 달리 여러 사람의 눈을 의식할 필요도 없고, 또한 자연의 경치를 낭만적으로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무엇보다도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둘만의 사랑을 은밀하게 나눌 수 있는 곳이다.

실제적으로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들 모두는 한적한 자연 속으로 함께 가 둘 만의 은밀한 시간을 갖는 것이 삶의 활력을 위해서나 두 사람의 사랑을 위해서 필요한 일이다. 신앙적으로도 주님과의 조용한 만남의 시간을 정규적으로 가질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주님에 대한 자신의 신앙과 사랑을 확인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에게 한적한 시골로 내려가 마음 놓고 함께 유숙하자고 요청한다(7:11). 그리고 그곳에서 포도의 움이 돋고 꽃술이 피었는지, 그리고 석류꽃이 피었는지를 살펴보면서 자신의 사랑을 임에게 드리겠다고 다짐한다(7:12).

꽃이 피는 봄은 보편적으로 사랑을 상징한다. 두 사람이 처음으로 사랑을 나누었던 연애시절도 겨울이 지나고 비도 그치고 지면에는 꽃들이 피어나는 봄이었다. 성숙한 두 부부로서 이들은 다시 그들의 사랑이 시작되었던 봄 들판으로 나가 자신들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그들이 유숙하는 문에는 합환채 향기가 가득차고, 임에게 드린 과일이 준비되어 있다(7:13).

합환채는 고구마과에 속하는 식물인데, 5월경이면 향내가 짙은 꽃이 피고 자두 모양의 열매가 맺힌다. 이 열매는 성욕을 자극시키는 최음제 역할을 하였고 또한 불임을 치료하는 약효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창세기 30:14 이하에 의하면, 맥추 때에 레아의 아들 르우벤이 들에서 합환채를 구해왔다. 그리고 라헬은 그 합환채를 얻는 대가로 야곱이 하룻밤 레아의 방에 들어가 동침하도록 조처한 적이 있었다.

합환채 향기가 가득하고 열매가 준비되어 있다는 것은 술람미가 솔로몬의 품에 안겨 깊은 사랑을 경험하고픈 마음과 몸이 준비되어 있음을 열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것은 두 사람이 서로의 사랑을 격 없이 표현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해져 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