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
욥기 4장 1-21절 강해

요절: 생각하여 보라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어디 있는가 (7절)

욥기 4장부터는 세 친구의 카운슬링과 욥의 답변이 나옵니다. 이들의 카운슬링은 율법주의자의 문제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먼저 엘리바스는 욥이 죄로 인하여 망하였다고 책망합니다 그는 욥을 율법적이고 인과응보적으로 도왔습니다. 그는 욥에 대한 긍휼이 없고 판단과 정죄가 있습니다. 우리는 고통하는 사람을 도울 때, 무엇보다 하나님의 긍휼을 갖고 도와야 합니다.

1. 누구에게나 불행은 올 수 있다

1-5절에 보면 데만 사람 엘리바스가 욥을 훈계합니다. 그는 욥이 싫증낼 것을 알면서 이야기합니다. 그래도 참고 말하겠다고 합니다.

그는 욥의 처지를 고려하지 않습니다. 그는 무례하였습니다. 사랑은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것입니다. 엘리바스는 욥의 처지가 이전과 뒤바뀌었음을 말합니다. 욥은 전에 목자였습니다. 욥은 전에 여러 사람을 훈계하였습니다. 손이 늘어진 자를 강하게 하였습니다. 넘어진 자를 말로 붙들어주었습니다. 무릎이 약한 자를 강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욥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힘들어하고 자신이 닥친 일에 놀라고 있습니다.

인생은 유전합니다. 남의 불행이 나에게도 닥칠 수 있습니다. 교통사고는 특별한 사람만 당하지 않습니다. 사업의 실패도 누구에게나 올 수 있습니다. 질병도 누구나 올 수 있습니다. 장애도 마찬가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의 불행을 보면 항상 나도 그럴 수 있음을 알고 겸손해야 합니다.

2. 죄 없이 망한 자도 있다

“네 경외함이 네 자랑이 아니냐? 네 소망이 네 온전한 길이 아니냐? 생각하여 보라.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어디 있는가? 내가 보건대 악을 밭 갈고 독을 뿌리는 자는 그대로 거두나니(6-7절)”.

욥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임을 자랑하였습니다. 욥은 온전하게 사는 것이 소망이었습니다. 욥은 하나님을 경외하여 죄를 떠났습니다. 정직하게 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그는 끊임없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엘리바스는 욥의 자랑하고 소망하는 것이 깨어졌다고 말합니다. 그는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고 온전하지 않아서 재앙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는 나타난 재앙을 근거로, 욥이 하나님을 경외치 않는 죄를 지었다고 단정합니다.

엘리바스는 욥에게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가 있느냐고 물어봅니다.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어디에 있느냐고 합니다. 죄 없이 망한 자가 없고, 정직하고 끊어진 자는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죄 없이 망한 자가 나옵니다. 예수님은 다른 사람의 죄 때문에 아무 죄 없이 십자가의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아벨은 자신의 죄 없이도 가인의 죄 때문에 죽었습니다. 요셉은 형들의 죄 때문에 노예로 팔렸습니다. 보디발의 처의 죄악으로 죄수생활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죄가 없는데 광풍을 만났습니다.

우리는 죄 없이 망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엘리바스는 짧은 지식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돌팔이 의사와 같았습니다. 우리도 자신이 아는 지식이 전부처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주위의 사건은 매우 다양한 원인으로 일어납니다. 우리는 이를 알고 겸손해야 합니다.

3. 뿌린 대로 거두지 않는 경우도 있다


8-11절에 보면 엘리바스는 모두 다 뿌린 대로 거둔다고 말합니다. 엘리바스는 뿌린 대로 거둔다는 인과응보 사상에 기초하여, 욥에게 심판의 하나님을 말씀합니다.

아무리 강한 것이라도 하나님의 콧김에 다 사라집니다. 하나님은 동물의 왕이라고 하는 사자까지도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은 사자보다 더 무서운 하나님이십니다. 엘리바스는 욥이 죄를 뿌렸으므로 재앙을 거두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것은 맞는 말씀입니다. 갈라디아서에서도 뿌린 대로 거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속담에도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이 모든 경우에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씨를 뿌리지 않았는데, 원수가 씨를 뿌려서 독초가 날 수도 있습니다. 뿌려도 못 거두는 경우가 있습니다. 태풍이 분다든지 병충해가 나면 뿌린 대로 거두지 못할 수 있습니다.

아니면 뿌리지 않아도 거둘 수가 있습니다. 요즘 로또 복권을 사서 일확천금을 얻는 사람도 있습니다. 조금 뿌렸는데 많이 거두는 사람도 있습니다. 땅을 샀는데 땅값이 올라 부자가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이 모든 경우에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특히 은혜의 세계는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데 삯을 주는 것이 은혜입니다. 우리도 죄값을 치르지 않았는데 예수님이 죄값을 치러주심으로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엘리바스는 짧은 지식으로 모든 사건을 일반화하고 있습니다. 그는 무엇보다 은혜의 세계를 몰랐습니다. 이 세계는 율법적이고 인과응보적인 세계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유다는 죄를 지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러나 그 위에 은혜의 세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유다 나라를 망하게 하였지만, 하나님은 사랑으로 유다를 연단하여 새이스라엘을 만드십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내면을 변화시키고자 용광로 훈련을 시키십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으면 은혜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죄 사함도 은혜이고, 예수님 안에서는 살아가는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욥의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엘리바스는 욥의 하나님을 잘 몰랐습니다. 하나님은 욥이 죄를 짓지 않았음에도 은혜로 재앙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욥의 하나님은 욥에게 무한한 신뢰와 사랑과 소망을 갖고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엘리바스는 욥에게 하나님이 욥을 얼마나 사랑하고 신뢰하고 있는 지를 가르쳤어야 합니다. 욥을 얼마나 자랑스럽게 생각하는지를 가르쳤어야 합니다.

4. 상황에 맞지 않는 카운슬링을 하지 말자


12-17절에 보면, 엘리바스는 자신이 겪은 영적 체험을 말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깊이 잠든 밤이었습니다. 그는 환상을 보고 두려움과 떨림으로 뼈마디가 흔들렸습니다. 그는 한 영이 그 앞에 지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털이 쭈뼛할 정도로 두려움이 임하였습니다.

그는 알아볼 수 없는 한 형상을 보았습니다. 그는 그때에 하나님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엘리바스는 신령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영적 체험을 통하여 하나의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엘리바스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깨달았습니다. 사람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면 모두 죄인입니다. 창조주 앞에서 모든 피조물은 죄인입니다. 그 말은 맞습니다. 바울이 전하는 것도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바스가 왜 이 말을 욥에게 하고 있습니까? 그래서 욥에게 어쩌라는 말입니까? 하나님 앞에 모두가 죄인이니, 욥도 회개하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아픈 욥에게는 이 말씀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필요하지도 않았습니다. 아무리 좋은 말씀이라도, 상황에 맞게 줄 수 있어야 합니다.

5. 하나님은 무한 신뢰하신다


18-21절에 보면 이제 엘리바스는 하나님이 아무도 믿지 않으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종이라도 믿지 않으시며, 천사라도 미련하다고 한다고 합니다. 엘리바스는 계속 하나님이 왜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지에 대해 말합니다. 사람이 흙집에 산다고 말합니다. 사람은 진흙으로 지어진 존재입니다. 사람은 하루살이만도 못하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시간에서 사람은 하루살이 같은 존재입니다. 엘리바스는 인간이 아침과 저녁 사이에 부스러져 가루가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인간은 지혜로 자신의 죽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언젠가 죽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의 말은 맞는 말입니다. 사람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입니까? 하나님의 시간 앞에서 보면 사람은 하루살이와 같은 자입니다. 야고보서에도 인간은 아침 안개라고 나옵니다. 사람은 안개와 같이 해가 뜨면 사라지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연약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인간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주 잘못된 생각입니다. 하나님은 욥이 연약한 것을 아시지만, 욥을 깊이 신뢰하고 있었습니다. 욥이 어떤 환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욕하지 않을 것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건강을 쳐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죄악될지라도 깊이 신뢰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얼마나 다윗이나 베드로를 사랑하고 신뢰하고 있는지를 보면서 놀랍니다. 그들은 죄악으로 가득 찼을지라도, 하나님은 그들을 완전히 신뢰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이 연약하기 때문에 우리를 판단하고 정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체질을 아시고 불쌍히 여기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을 이해하시고 십자가에서 우리의 고통을 체험하셨습니다.

시편에서 하나님은 아버지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 같이 인간을 불쌍히 여긴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체질을 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엘리바스는 욥에게 우리의 체질을 아시고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을 증거했어야 합니다.

6. 다른 사람을 돕는 지혜

오늘 말씀을 통하여 사람을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를 배웁니다. 우리는 여러 상황을 알고 섬세하고 정확하게 살펴야 합니다. 그 사람을 깊이 알고 그 사람에게 맞는 말씀을 주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은혜의 하나님, 우리를 무한 신뢰하시는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참으로 좋으신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그 하나님을 알 때, 사람을 은혜 속에서 견고하게 세울 수 있습니다. 죄 없이 망한 자에게 위로와 소망을 줄 수 있습니다. 죄로 망한 자에게도 그들에게 두신 더 큰 뜻을 전할 수 있습니다. 아멘!

오요한 목사(천안 UBF, <오요한 목자의 로마서 강해>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