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지난 주 월요일, 어릴 적 우리 앞집에 살던 고향 친구의 아내가 세상을 떠났다. 한 달 전인 어느 날 '난소암'이라는 말을 듣고 한양대학 병원을 찾아갔다. 병원에 가니 이미 암세포가 하복부에 가득 전이된 상태였다. 우리는 채플실로 가서 예배를 드렸다. 우리 모두는 눈물로 하나님의 마음 앞으로 나아갔다. 그런지 한 달이 지난 때, 나는 부고를 받았고, 다시 영안실을 찾았다.

우리는 주변 세계를 내 마음대로 움직이고 싶은 욕구가 있다. 주변 사람들을 내 마음대로 조종하고 싶고, 환경이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기를 바라고, 내가 꿈꾸는 비전을 다 이루기를 원한다.

그러나 이내 깨닫는 것이 있다.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 화가 나고, 속상하다. 때로는 낙담하고 좌절한다. 사실 사노라면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세계가 통제할 수 있는 세계보다 더 많다. 그래서 인생에 환멸을 느낄 때가 있다. 영적인 번뇌를 할 때도 있다.

얼마 전 이용준 전도사에 대한 국민일보 기사를 보았다. <끝까지 주님만 바라본 '담대한 죽음'>이라는 타이틀의 기사이다. 나는 인터넷에서 이용준을 검색해 보았다. 독립운동가, 탤런트, 가수, 대사, 변호사, 뮤지컬 배우, 원장 등등. 다양한 사람들의 얼굴이 뜬다. 그런데 내가 찾는 이용준은 나오지 않았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우리 곁을 떠났지만, 뇌리에 오래 간직하고픈 사연이다.

국민일보 기사는 이렇게 시작된다. "담도암 4기입니다. 암은 폐와 뼈까지 전이됐습니다." 그리고 그 기사는 죽음으로 글이 마무리된다. 절망적인 마침표를 찍는다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거기서 소개되는 짧은 간증은 내 마음에 많은 생각을 안겨주었다.

어느 날 기침이 너무 심해서 그는 병원을 찾았다. 병원에서 폐 컴퓨터단층촬영(CT)을 했다. 병원에서 내린 진단 결과는 담도암 4기. 정말 잔인했다. 아내와 두 자녀를 둔 38세의 가장에게는 그야말로 천청벽력 같은 소식이다.

그는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고 장신대 신학과에 입학했다. 졸업 후에는 기독교포털 갓피플에서 기독교 음반 담당자로 10년 넘게 헌신했다. 그런데 암이라니? 하나님께서 왜 이런 시련을 주시는 것인가? 정말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현실이다. 그러니 하나님을 원망하고 세상을 한탄할 만하다.

그러나 그는 달랐다. 그는 불평과 원망보다는 감사와 찬양을 했다. 죽기 직전까지 하나님을 향한 신실한 믿음과 사랑을 저버리지 않았다. 그가 신실한 믿음을 지켰음은 그가 남긴 페이스북의 투병일기를 보면 알 수 있다.

암 진단을 받은 직후인 2015년 11월 4일부터 그는 페이스북에 투병일기를 적어 나갔다. 그런데 원망이나 억울함을 토로하는 내용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지난 삶을 회개하는 글이다. 감사와 기도를 통해 병마와 싸운 과정을 소개했다.

'담도암 12일째, 이 시기를 주님이 주신 새 삶이라 생각합니다. 오늘의 필요만을 주님께 구하여 연명하고 있음을 고백합니다(2015년 11월 16일).'

'주님만 바라볼 시간이 아직 있으므로 언젠가 죽는다 해도 축복입니다(2015년 11월 18일).'

그렇다고 그가 항상 의연했던 것은 아니다. 암 발병 사실을 알리고 어머니 품에서 어린아이처럼 울었다고도 한다. 계속되는 통증에 두려워하며 '주여 속히 나에게 오소서. 내가 낫기를 간절히 원하나이다'라고 간구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세가 악화되는 과정에서도 감사는 멈추지 않았다. 2016년 6월 29일에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드리는 감사의 기도'란 제목으로 이런 글도 남겼다. '주님, 예정된 치료를 마치고 오늘도 자리에 앉았습니다. 모든 것이 소망과 희망을 주는 것이라 믿고 또 믿습니다.'

7월 6일에는 가슴 짠한 글도 올렸다.
'물 한 모금이 너무나 감사한 시간입니다. 입술이 간신히 마르지 않을 정도로 흐르는 물이 주님이 주신 생명수 같습니다. 오직 기도와 예수의 보혈로 내 몸을 덮습니다.'

19일에는 이렇게 고백했다. '교만의 선봉에 서지 않고, 찬양의 제사장이 되어 이 영적 전쟁으로 나아갑니다.'

20일, 급기야 그는 8개월의 투병을 멈추고 하나님 앞으로 부름을 받았다. 하지만 그의 죽음이 끝은 아니다. 많은 이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신앙인으로서의 새로운 각오를 밝혔다.

'주가 나를 돌보사 내게 복을 주셨네...그의 이름 거룩하며 그의 긍휼 영원하네.' 이건 그의 아내인 찬양사역자 김명선 씨가 지난 4월에 발표한 찬양 '주가 나를 돌보사'의 가사 중 일부이다.

어둠의 골짜기를 지나고 외로움과 번민의 시간들을 맞을 때, 어떻게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인생길을 질주할 수 있을까? 더구나 그러한 때도 신실한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우리는 예수님의 사형집행 장소에서 해결의 키를 얻을 수 있다.

예수님은 동족들에게 고발당했다. 로마 군인들의 손에 의해 사형이 집행되었다. 9시에 십자가에 달렸다. 오후 3시에 운명하셨다. 그런데 죽음 앞에 서 있는 예수님을 주목해 보라. 아무런 죄 없이 처참한 죽음을 맞았다. 너무 억울한 상황이다.

그러나 속상해하지 않았다. 엄청난 비난과 조롱을 받았다. 그러나 분노하지도 않았다. 감당하기 힘든 아픔과 고통이 따랐다. 그러나 몸부림치거나 타협하지도 않았다. 마지막 죽음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초조하지도, 절망하지도 않았다.

죽음 앞에서도 어찌 이렇게 초연하고 당당할 수 있을까?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이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임을 아셨기 때문이다. 죽음 이후에 영광스러운 부활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자신의 죽음으로 온 인류를 구원하는 대업을 이루는 일임을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오후 3시 경, 운명을 앞두고 예수님은 하늘을 우러러보며 외쳤다.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예수님은 자신의 영혼을 포기하셨다. 마지막 죽음 앞에서 자신의 영혼까지도 하늘 아버지께 전적으로 의탁하고 내어 맡기셨다.

인간의 과감한 '포기'가 하나님의 흥미로운 '시작'이 될 수 있다. 그래서 경건한 유대인들은 잠자리에 들기 전에 이 기도를 했다. 초대교회에서는 임종 시에 이 기도를 드렸다. 날마다 매 순간마다 이 기도를 드릴 수 있다면, 평안과 자유를 경험하며 달려갈 수 있을 텐데.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인생과 믿음을 지키기 위해 고민해 본다. 무엇을 먹지, 무엇을 마시지, 무엇을 입지를. 生과 死도, 건강과 질병도, 내일과 미래도, 인생의 비전도, 자녀들의 앞날도 하늘 아버지 손에 맡기고 살아갈 순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