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근 목사(온누리선교교회).
1. 사사기는 종종 성경을 대강 연구하는 사람들에 의해 오해되는 책이다. 사사들의 행적 또한 그들의 실수와 마지막 많은 자녀를 낳는 무절제의 삶으로 인해 공적이 묻혀지고 감해진다. 그러나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의 선진들의 영예로운 기록에 기드온, 입다, 삼손, 바락 등이 입적되었다. 이는 다시 한 번 사사시대에 이스라엘을 위하여 헌신하고 싸우며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쓰임받은 인물들을 평가하게 한다. 물론 그들에게 실수도 있고 방만한 삶으로 경건하지 못한 부분도 있지만 당시 그들은 하나님의 귀한 종들로서 쓰임을 받았다.

2. 이 책은 우리에게 옷니엘을 시작으로 하여 열두 명의 사사들의 행적을 보여준다. 그들은 각각 다른 배경과 다른 지파에서 나와 사사가 되었다. 옷니엘은 유다 지파이고 에훗은 베냐민이며 삼갈은 아마도 납달리일 것이다. 여사사 드보라는 에브라임이며 바락은 납달리, 기드온은 므낫세, 돌라는 잇사갈, 야일은 므낫세, 입다는 갓일 것이며 입산은 스불론일 것이다. 압돈은 에브라임이고 삼손은 단 지파이다. 사사들이 대적했던 대상도 다양하다. 같은 대적이 거의 없다.

이는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다양하다는 것이다. 신약에도 이 원칙은 동일하다. 어부인 베드로와 안드레가 쓰임을 받았는가 하면 세리 마태도 쓰임을 받았고 바울과 같은 석학도 쓰임을 받았고 의사 누가도 쓰임을 받았다. 교회사에서도 의사, 농부, 구두 수선공, 술주정뱅이, 죄인 등 어떤 사람도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크게 쓰신 경우가 허다하다. 누구든지 진정 헌신한 자를 하나님은 사용하신다. 이것은 우리에게 큰 위로와 격려를 주시는 말씀이다.

3. 이 책에서 또 하나 알 수 있는 것은 성경은 이기는 자의 책이라는 사실이다. 누구의 일을 가장 존중하여 기록했는가 하는 점이다. 물론 우리는 다음 책에서 보아스와 룻의 기록을 보며 그들의 경건성에 감탄한다. 그렇지만 믿음으로 이긴 것을 기록한 히브리서에는 이들의 이름은 없지만 많은 사사들의 이름은 있다. 우리는 보아스와 룻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족보가 형성된 놀라운 사실과 중요성을 약화시켜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한 가지 중대한 사실은 비록 사사들이 약점이 있었더라도 그들이 이스라엘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나라 전체를 위해 큰일을 했다.

이것은 우리가 오늘날 주님을 위해 큰 일을 하고 범죄에 빠지는 사람들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다. 시대마다 은혜가 다른 것이다. 신약에 더 큰 은혜를 얻고 내적인 하나님의 생명 능력과 성품을 부여받은 우리가 사사들의 도덕성 표준과 비교할 수 없다. 이는 다윗이 구약의 매우 귀한 성도였음에도 많은 아내를 두고 또 어떤 끔찍한 죄들을 저지른 것과 같다. 이러한 약점은 신약에서 주 예수님이 믿는 이에게 주신 새 언약의 은혜와 생명에 의해 다른 차원으로 변화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중요한 원칙이 있다. 사사들의 영성에서 그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영성만을 돌본 개인적인 신령함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힘을 다해 이스라엘의 구원과 그 시대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에 자신을 쏟아부었다. 이 점이 그들을 그 시대의 이기는 자들로 삼았다. 이러한 대원칙은 오늘날에는 적용이 안 되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도 어떤 사람은 하루에 기도를 일곱시간씩 한다고 자랑한다. 기도를 많이 하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는 골방에서 기도만 할 뿐 바깥 세상에 나와 한 명도 전도하지 않는다. 한 영혼도 구원하지 않고 한 마리의 사탄도 내어쫓지 않고 매일 매주 기도만 한다. 많은 시간 기도하는 것은 필요하고 사도는 무시로 기도하라고 했으니 많이 기도하는 것 자체를 나무랄 것은 없다. 그러나 그의 영성이 자신의 영적 생명만을 관심하고 하나님의 나라의 역사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면 그것은 한쪽으로 치우친 것이다.

주님은 그분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이 모든 일 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라고 하셨다. 이 책을 통해서 우리는 전 교회를 위해 함께 일하는 무리가 되는 것을 배워야 한다.

역대로 루터나 칼빈, 웨슬리나 진젠도르프, 다비 등은 주님의 손에 크게 쓰임을 받은 종들이다. 그들은 자신을 위한 영성훈련에 중점을 둔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 시대 교회를 어둠에서 더욱 밝은 진리로 이끌어내는데 주님에 의해 사용된 그릇들이었다. 이러한 사람들에 의해 하나님은 한 시대 한 시대 교회를 전진시켜 오셨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그들 나름대로 부족한 점도 있었고 약점도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약점을 지적하며 그들의 공적을 약화시키려 한다. 그러나 그들의 부족한 점에도 불구하고 시대마다 땅에 있는 교회들은 그들로 말미암아 막대한 도움을 받아 새롭게 일어났다. 이것이 소위 하나님이 시대마다 쓰시는 경륜적인 도구들(dispensational instruments)이며 이들이 시대마다 이기는 자들의 사명을 감당한 자들이다. 우리는 이러한 노선을 잇는 자들이 되기를 바란다.

4. 마지막으로 사사시대의 정치체제이다. 그들은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받고 모압 평지에서 모세의 유훈적 교훈과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족속이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제사장 체계도 세워주시고 성막을 짓게 하시어 어떻게 하나님께 나와서 묻고 교통하는가 하는 일체의 일을 배운 민족이었다. 그러니 그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 말씀대로 행하고 제사장들을 통하여 가르침과 제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잘 가지면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얼마 안 되어 타락했다. 사사기 17장의 미가의 집 이야기부터는 삼손 시대 말에 되어진 것이 아니라 가나안에 들어온지 얼마 안 되어 일어난 일이라고 말한적이 있다.

타락은 레위인서부터 일어난 것이다. 레위인은 하나님만을 기업으로 삼고 섬기며 살아야 하는데 한 레위인이 방황하다 에브라임 산지 미가의 집에 이르러 그 집 제사장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즉 레위인부터 타락한 것이다. 마지막 베냐민 전쟁사도 결국 레위인 첩 강간 살인사건 때문에 일어났다. 레위인이 타락했으니 온 이스라엘이 타락한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러한 상태가 사사기 전체의 흐름을 잡고 있다. 그러기에 돌이켰다가 다시 우상에게 돌아가고 다시 또 범죄하고 한 것이다.

결국 이러한 상태는 왕정을 가져오는 것으로 시대를 전환하게 만드는 요인들이다. 그러나 우리가 알듯 왕정도 실패했다. 물론 반짝 빛나는 다윗시대가 있긴 해도 전반적인 유다와 이스라엘 왕들은 실패의 히스토리를 전한다.

결국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서 하나님 나라를 얻으실 것을 포기하시고 교회로 향하셨다(마 21:41). 이 시대에 하나님의 나라는 사사 시대도 아니고 열왕 시대도 아니며 새 언약의 시대이다. 이 시대 안에 사는 우리는 주님의 생명을 분배받아 그분의 성품과 생명을 갖고 있다. 이로 인하여 우리는 그분의 율법을 지킬 수 있는 역량을 갖게 된 것이다. 구약에서 결코 얻지 못하신 하나님의 나라를 주 예수님이 오셔서 이루신다. 그분은 먼저 이 시대에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체험하게 하고 장래 다시 오실 때 진정한 나라를 얻게 하신다.

사람이 무릇 할 수 없고 하나님만이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음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미한다(눅 18:27). 구약의 율법으로는 이룰 수 없던 하나님의 나라가 새 언약으로 말미암아 그 법을 우리 마음속에 새기고 누구나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생명역량을 주시어 그 나라가 이루어지게 하시는 것이다.

“또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열조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저희와 세운 언약과 같지 아니하도다 저희는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므로 내가 저희를 돌아보지 아니하였노라 또 주께서 가라사대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으로 세울 언약이 이것이니 내 법을 저희 생각에 두고 저희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저희에게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내게 백성이 되리라 또 각각 자기 나라 사람과 각각 자기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주를 알라 하지 아니할 것은 저희가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히 8:9-11)”.

시내산의 옛 언약 안에서 얻지 못한 하나님의 백성을 새 언약 안에서 얻으시는 것이다.

사사기를 통하여 옛 언약의 시대에 나타난 인간의 적나라한 타락의 상태를 볼 수 있다. 오늘날도 믿는 이들이 새 언약 안에 머물며 그분의 생명 안에서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교회를 이루지 못한다면 결국은 사사 시대와 방불한 타락의 광경을 연출할 따름이다. 인간의 육체는 시대가 몇천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사기는 신약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때로 교회의 하락과 부패시에 본질적으로 다가오며 체험될 수가 있는 일들이다. 이는 인간이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육체에 떨어져 교회의 실제적인 표현을 갖지 못할 때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여, 이 시대에 신약의 축복을 받은 우리 가운데서 당신이 홀로 왕 노릇 하시는 영광스런 나라를 이루소서.’ 매우 실제적인 의미에서 이러한 영광스런 광경은 신약의 교회를 통해서도 완전한 성공을 볼 수 없고 그 실제를 이기는 자들을 통해서 그 성공을 얻으신다는 것이 신약 성경의 계시이다(마 7:21, 25:4, 계 2-3장, 12:5, 1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