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근 목사(온누리선교교회).
여호수아 16:1 요셉 자손이 제비 뽑은 것은 여리고 곁 요단 곧 여리고 물 동편 광야에서부터 나아가 여리고로 말미암아 올라가서 산지를 지나 벧엘에 이르고 2 벧엘에서부터 루스로 나아가 아렉 사람의 경계로 지나 아다롯에 이르고 3 서편으로 내려가서 야블렛 사람의 경계에 이르러 아래 벧 호론 곧 게셀에 미치고 그 끝은 바다라 4 요셉의 자손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그 기업을 얻었더라 5 에브라임 자손의 그 가족대로 얻은 것의 경계는 이러하니라 그 기업의 경계는 동으로 아다롯 앗달에서 윗 벧 호론에 이르고 6 또 서편으로 나아가 북편 믹므다에 이르고 동편으로 돌아 다아낫 실로에 이르러 야노아 동편을 지나고 7 야노아에서부터 아다롯과 나아라로 내려가서 여리고에 미치며 요단으로 나아가고 8 또 답부아에서부터 서편으로 지나서 가나 시내에 미치나니 그 끝은 바다라 에브라임 자손의 지파가 그 가족대로 얻은 기업이 이러하였고 9 그 외에 므낫세 자손의 기업 중에서 에브라임 자손을 위하여 구별한 모든 성읍과 촌락도 있었더라 10 그들이 게셀에 거하는 가나안 사람을 쫓아내지 아니하였으므로 가나안 사람이 오늘날까지 에브라임 가운데 거하며 사역하는 종이 되니라 17:1 므낫세 지파를 위하여 제비 뽑은 것은 이러하니라 므낫세는 요셉의 장자이었고 므낫세의 장자 마길은 길르앗의 아비라 그는 무사이어서 길르앗과 바산을 얻었으므로 2 므낫세의 남은 자손을 위하여 그 가족대로 제비를 뽑았는데 그들은 곧 아비에셀의 자손과 헬렉의 자손과 아스리엘의 자손과 세겜의 자손과 헤벨의 자손과 스미다의 자손이니 그들의 가족대로 요셉의 아들 므낫세의 남 자손이며 3 헤벨의 아들 길르앗의 손자 마길의 증손 므낫세의 현손 슬로브핫은 아들이 없고 딸 뿐이요 그 딸들의 이름은 말라와 노아와 호글라와 밀가와 디르사라 4 그들이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방백들 앞에 나아와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사 우리 형제 중에서 우리에게 기업을 주라 하셨다 하매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그들에게 기업을 그 아비 형제 중에서 주므로 5 요단 동편 길르앗과 바산 외에 므낫세에게 열 분깃이 돌아갔으니 6 므낫세의 여손들이 그 남 자손 중에서 기업을 얻은 까닭이었으며 길르앗 땅은 므낫세의 남은 자손에게 속하였더라 7 므낫세의 경계는 아셀에서부터 세겜 앞 믹므닷에 미치고 우편으로 가서 엔답부아 거민의 땅에 이르나니 8 답부아 땅은 므낫세에게 속하였으되 므낫세 경계에 있는 답부아 읍은 에브라임 자손에게 속하였으며 9 또 경계가 가나 시내로 내려가서 그 시내 남편에 이르나니 므낫세의 성읍 중에 이 성읍들은 에브라임에게 속하였으며 므낫세의 경계는 그 시내 북편이요 그 끝은 바다며 10 그 남편은 에브라임에 속하였고 북편은 므낫세에 속하였고 바다가 그 경계가 되었으며 그들의 땅의 북은 아셀에 미쳤고 동은 잇사갈에 미쳤으며 11 잇사갈과 아셀에도 므낫세의 소유가 있으니 곧 벧 스안과 그 향리와 이블르암과 그 향리와 돌의 거민과 그 향리요 또 엔돌 거민과 그 향리와 다아낙 거민과 그 향리와 므깃도 거민과 그 향리들 세 높은 곳이라 12 그러나 므낫세 자손이 그 성읍들의 거민을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사람이 결심하고 그 땅에 거하였더니 13 이스라엘 자손이 강성한 후에야 가나안 사람에게 사역을 시켰고 다 쫓아내지 아니하였더라

1. 16장과 17장은 에브라임과 므낫세 반 지파의 차지한 땅에 대하여 개괄적으로 말한다. 요셉 지파는 다른 지파보다 땅을 두 배로 받았는데, 이는 야곱의 예언에 따른 것이다(창 48:22). 이들의 기업은 가나안 땅의 심장부에 위치한다. 그곳은 동(東)으로는 요단에서부터 시작하여 서(西)로는 지중해에 이르는 북부이다. 이 구절들에는 유다 지파나 다른 지파들에서 볼 수 있는 자세한 성읍들의 기술이 없다. 여호수아는 이 지파의 사람이다.

2. 16장 9절은 그 외에 므낫세의 기업 중에도 에브라임 자손을 위한 성읍들이 있었다고 한다. 에브라임은 필경 그 땅을 필요로 했고 그들과 사랑 안에서 함께 살아나갈 수 있었다. 이 책에서는 언급되지 않지만 에브라임 지역에는 유명한 성읍들이 있었다. 사무엘의 고향 라마가 있고 성막이 세워진 실로가 있다. 디르사와 사마리아도 이 지파의 경내에 위치한다.

14 요셉 자손이 여호수아에게 말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지금까지 내게 복을 주시므로 내가 큰 민족이 되었거늘 당신이 나의 기업을 위하여 한 제비, 한 분깃으로만 내게 주심은 어찜이니이까 15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이르되 네가 큰 민족이 되므로 에브라임 산지가 네게 너무 좁을진대 브리스 사람과 르바임 사람의 땅 삼림에 올라가서 스스로 개척하라 16 요셉 자손이 가로되 그 산지는 우리에게 넉넉지도 못하고 골짜기 땅에 거하는 가나안 사람에게는 벧 스안과 그 향리에 거하는 자든지 이스르엘 골짜기에 거하는 자든지 다 철병거가 있나이다 17 여호수아가 다시 요셉의 족속 곧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 일러 가로되 너는 큰 민족이요 큰 권능이 있은즉 한 분깃만 가질 것이 아니라 18 그 산지도 네 것이 되리니 비록 삼림이라도 네가 개척하라 그 끝까지 네 것이 되리라 가나안 사람이 비록 철병거를 가졌고 강할지라도 네가 능히 그를 쫓아내리라

1. 요셉 자손은 가장 넓고 큰 땅을 다른 지파의 두 배로 받았지만 여전히 그것이 한 분깃이라면서 더 달라고 요청했다. 그들이 한 분깃이라고 하는 게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레위가 기업 분배에서 제외됨으로 두 지파가 됐고 또 강성했다(므낫세는 52,000명으로 숫자적으로 많았고 에브라임은 실력면에서 강했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하나의 제비로 기업을 할당받았고, 이에 대해 이들은 두 지파를 왜 한 지파로 여겨 기업을 분배해주느냐고 불만스러워하는 것이었다. 이것도 이유 있는 불만이겠으나 이미 그들에게는 유다 지파 다음으로 광활한 땅이 분배되었다. 인구수에 비례해도 다른 지파 못지않게 분배되었던 것이다(므낫세 지파 반과 에브라임 지파를 합해서 58,850 명이고 단 지파는 64,400 명, 잇사갈 지파는 64,300 명 등이다).

므낫세 지파의 다른 반(半)은 동편에서 이미 넓은 땅을 차지했다. 그런데도 요셉 자손은 그들의 불만이 이유있는 것이라 주장했고 여호수아는 그들이 만일 좁다면 스스로 개척하라고 했다. 여호수아는 그들을 격려하여 그 산지를 쳐서 얻으라 말했지만 그들은 그 산지를 마땅치 않게 여겼다. 손쉽게 얻을 수 있는 땅, 누릴 수 있는 땅을 구한 것이다. 이것은 그날 우리가 아무리 땅을 많이 얻었다 해도 여전히 부족함을 느낀다는 암시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시대에 더욱 충성하여 더 넓은 땅을 얻도록 힘써야 한다. 그날 더 넓은 땅을 차지하고자 원한다면 오늘 더 많은 산지를 경작하고 철병거와 싸워 이겨야 할 것이다. 우리가 믿음만 있다면 이 모든 일이 가능하다. 다른 형제들이 얻은 것을 바라보지 말고 새로 개척해 당신 자신의 분깃을 많아지게 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그날 우리에게 참되게 땅을 분배하실 분은 참 여호수아이신 예수 그리스도시다.

2. “그 산지도 네 것이 되리니 비록 삼림이라도 네가 개척하라 그 끝까지 네 것이 되리라 가나안 사람이 비록 철병거를 가졌고 강할지라도 네가 그를 쫓아내리라”(18절). 이스라엘 자손들은 가나안에 들어가서 안식하지 못했는데, 그 원인은 가나안 부족을 다 멸절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가나안 사람들을 쫓아낸 후에야 완전히 그 나라를 차지하고 안식을 누릴 수 있었다.

가나안 사람들은 하나님께 버림받은 자들이며 무서운 범죄를 저지르는 자들로, 그 종족들을 심판하여 파멸에 처하셨다. 너무나 무섭게 타락한 종족들을 세상으로부터 제거하는 것이 땅의 정화를 위한 것이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이 위대한 일을 하도록 됐다. 이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지만 아직은 죄로부터 완전한 구원을 누리지 못하는 신자들에게 적용할 수 있다. 그 원수들은 오랫동안 사람들의 본성 속에 거주하던 자들이다.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그 전투 안으로 들어왔음을 의미한다. 이 가운데 가장 강력한 것이 죄고 특이한 기질들이며 악한 습관들이다. 이런 것들이 우리 안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 가나안의 풍성을 누리지 못하게 한다.

첫째 알아야 할 것은 우리는 그들을 반드시 쫓아내야 한다는 사실이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가나안 진입에 성공한 것은 그들이 반드시 정복해야 한다는 영이 충만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그러한 영이 부족했다. 우리 속에 거주하는 죄에 대해 반드시 내쫓고자 하는 영이 부족하다면, 우리는 실제적으로 가나안 땅으로 예표된 천국을 우리의 기업으로 얻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불법적으로 우리 집이나 건물 안에 들어와 사는 자들을 본다면 당장 나가야 한다고 할 것이다. 우리는 대적에게 이를 강하게 공식적으로 통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우리 믿음의 선포이기도 하다. 우리는 어떤 죄에 대해 우리 안에 머물러도 좋다는 입장을 취해서는 안 된다. 성도들이 때로 죄를 짓기는 하지만 그 죄를 사랑하고 그 속에 살려 해서는 안 된다. 죄는 하나님과 철천지 원수다. 골리앗은 머리가 잘려져야 하고 시스라는 그의 관자놀이에 말뚝이 박혀야 하고 에글론은 심장이 찔려야 한다. 주님은 죄로 실족케 하는 눈을 빼어버리라, 팔을 찍어버리라고 하신다.

우리는 신약성경에서 “죄가 너희를 주관하지 못하리니”의 말씀을 안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않도록 모든 것을 다 이루셨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서는 죄가 아니라 은혜가 우리를 다스리고 있는 것이다(롬 5:21). 술 취하는 죄가 있으며 도적질하는 것, 간음하는 자나 거짓말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얻지 못한다. 여러분이 예수를 믿은 뒤에 술취하는 것 한 가지를 쫓아냈다 하더라도 거짓말과 간음을 처리하지 않았다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가나안인 하나를 쫓아냈지만 나머지는 철병거를 갖고 살고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술을 끊고 담배를 끊었지만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어떤 이는 성질을 이겼지만 음란함을 이기지 못한다. 어떤 이는 거짓말을 증오하지만 호색을 이기지 못해 실패한다. 우리가 믿음의 관문을 통과해 많은 것들을 이겼지만 탐욕을 해결하지 못했다면 천국을 상실하게 된다. 어떤 이는 돈을 너무나 사랑하고 인색하여 비열한 수전노의 근성을 갖고 있다. 돈을 위한 일이면 복음과 교회와 예배와 많은 것들은 뒷전이다. 결국은 많은 것을 이기고 쫓아냈지만 돈에 대한 사랑만큼은 해결하지 못하고 천국을 상실하는 것이다.

이러한 말씀은 누가복음 18장의 젊은 관원의 비유에서도 잘 말해준다. 그는 어려서부터 간음하지 않고 도적질하지 않으며 거짓 증거하지 않고 부모를 공경하는 등 많은 항목들을 지켜나갔다. 그러나 주님은 그를 만나 재물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런 뒤에 천국의 보화가 있을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나 그는 재물을 너무 사랑하므로 근심하면서 돌아갔다. 주님은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어렵다고 말씀하셨다. 어느 정도 어려우냐 하면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더 어렵다.

또 어떤 사람은 물질적인 문제, 돈을 사랑하는 문제도 이겼다. 그러나 그는 신앙에 있어 위선적이다. 바리새인 같은 것이다.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멸시하고 자기를 높인다. 이런 사람은 마치 누가복음 18장의 바리새인 같이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한다. 또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소득의 십일조도 드린다. 그러나 이 바리새인은 자신의 고상한 신앙으로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것이다. 이것은 외식이요 교만이다. 주님은 이런 자에게 “이 사람(세리)이 저(바리새인)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리라”고 하셨다. 이와 같이 돈을 사랑하는 본성을 처리하지 않는 자뿐만 아니라 교만과 외식과 위선의 신앙자들도 천국 진입에 실패한다.

다음은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고 원망스런 마음을 풀지 않는 마음이다. 이들은 비록 외식과 교만은 없으나 우리에게 죄를 지은 사람에 대하여 용서하는 마음이 없는 것이다. 끝까지 자기에게 죄를 지은, 즉 빚을 진 사람의 목을 잡고 빚을 갚을 때까지 흔들어대는 것이다. 이러한 자들에 대하여도 하나님은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옥졸들에게 붙이니라”고 한다. 이런 자들도 결국은 천국진입에 실패하는 자들이다. 많은 일들이 한 부류의 죄는 제거했지만 다른 부류의 죄를 남겨놓았다.

이는 가나안에 들어가 여리고와 아이와 많은 성들을 정복했지만 아직도 철병거를 가진 많은 대적들을 남겨둔 것과 같다. 사람이 단 하나의 죄의 종이라고 한다면 죄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누릴 수가 없다. 스펄젼은 50개의 쇠고리로 기둥에 매여진 죄수가 49개의 고리를 제거했다 해도 나머지 한 개의 고리로 죄의 기둥에 매여 있다면 여전히 죄에 매여 있는 죄수라고 했다. 그 사람은 여전히 포로로 붙잡혀 있기 때문이다.

여호수아를 통해 어떤 죄들은 주님을 믿자마자 쉽게 정복이 되지만, 어떤 죄들은 훨씬 더 제거하기 어려운 죄들도 있다. 이것이 바로 철병거가 의미하는 것이다. 아무리 죽이려 해도 죽일 수가 없는 것 같다. 이들은 죽었다고 생각하면 다시 살아나는 것 같다. “구스인이 그 피부를 표범이 그 반점을 변할 수 있는가(렘 13:23)”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는 할 수 있다. “무릇 사람의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고 하셨다. 인생 가운데 오랜 세월의 습관과 기질이 되어 자라난 죄의 뿌리를 뽑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런 기질과 습관들이 철병거가 되는 것이다. 그것들은 그 사람의 체질과 유전, 기질들과 연합하여 고칠 수 없는 듯 보인다. 사람들은 그런 특이한 성격을 “타고난 것”이라 하여 치유할 수 없는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모든 것을 다 이기고 남는다.

죄가 우리를 시험하는 방식은 두 가지다. 하나는 급작스럽게 닥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서서히 임하는 것이다. 서서히 임하는 죄와 유혹은 비교적 이기기 쉽다. 그러나 갑자기 닥치는 것은 당하기 쉬우므로 항상 깨어있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항상 하나님의 은혜로 보호받도록 기도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화형도 감당할 만한 믿음이 있지만 사람들의 조롱과 멸시를 받는 일은 어려워한다. 그들은 조롱을 당하기보다는 매를 맞고자 할 것이다.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물질의 유혹과 시험은 이기지만 질병과 연약함을 이기지 못한다. 그러므로 각 사람에게 철병거는 다른 것이다.

나는 여러분이 여러분을 가장 괴롭히는 죄로부터 구원되기를 바란다. 그날이 여러분이 가나안의 가장 강력한 대적을 정복하는 날이며, 영광의 승리의 날이며, 참 안식 안으로 들어가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