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김 박사(美 쉐퍼드대학교).
요한복음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19:26-27)
내가 목마르다(19:28)
다 이루었다(19:30).

요한복음에서 알려주는 십자가 7언의 말씀은 세 가지이다. 먼저 살필 요한복음을 알려면 몇 가지 특성을 파악하여야 한다. 그것은 요한복음의 특징은 첫째, 증인 입장에서 증거를 제시하려 한다는 것이며, 둘째, 구약의 말씀이 어떻게 예수님을 통하여 완성되었는지 설명하며, 셋째. 창세기와의 대칭성을 염두에 두고 쓰였고, 넷째, 또한 요한계시록과의 대칭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요한복음에 언급된 십자가에서의 세 마디는 모두 이것들을 근거로 무엇인가 중요한 암호를 제시하며, 그것이 풀릴 때 엄청난 비밀들이 풀려나도록 장치되어 있다. 그 장치를 푸는 암호 해독법이 바로 언급한 4가지 특징에 있다.

참 증인의 참 증거

첫째로, 요한복음에서 또 특별하게 쓰인 말이 있는데 이것은 “증거”라는 말이다. 이 용어는 마태복음에는 9번, 마가복음에서는 11번, 누가복음에서는 7번 언급된다. 그러나 언급한 세 복음서에서 언급되는 증거 중에는 예수님의 정체성과 복음과의 연관성 있는 증거는 많지 않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의 9번 중에 예수님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는 3회(마 10:18, 24:14, 26:62)만 사용된다. 그런데 요한복음에서 사용되는 증거라는 단어의 횟수는 무려 48회이다. 또한 요한복음에서 사용되는 증거라는 단어는 절대적으로 예수님의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정체성과 구원자로서의 정체성, 복음에 대한 증거를 뜻한다.

요한복음 첫 장:*하나님께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났으니 이름은 요한이라. 저가 증거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거하고 모든 사람으로 자기를 인하여 믿게 하려 함이라(1:6-7).
요한복음 마지막 장:*이 일을 증거하고 이 일을 기록한 제자가 이 사람이라 우리는 그의 증거가 참인 줄 아노라(21:24).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요한 복음은 1장의 서두에서부터 증거라는 말을 사용한다. 즉, 요한복음에서 강조하려는 바는 예수님에 대한 증거이고 진리와 복음에 대한 증거라는 것이다. 요한복음의 마지막 21장 말씀 또한 증거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그 증거가 참이라고 강조한다. 요한복음의 특성적인 것 중에 하나는 증거의 참됨을 주장하는 것이다. 증거가 참되다는 표현은 8회에(3:33, 5:31, 5:32, 8:13, 8:14, 8:17, 19:35, 21:24) 걸쳐 사용된다. 이것은 오직 요한복음에서만 사용하는 특별 표현법이다.

요한복음에서 증거라는 말이 다른 복음서에 비하여 많이 사용되는 이유가 있다. 저자 요한은 예수님의 최 측근 3인 중에 한명으로 베드로와 야고보와 더불어 예수님과 늘 함께 있었으므로 그는 남들보다 충분한 증인의 자격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강조한 것이다.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변형되었을 때에도, 죽은 소녀를 살리는 곳에서도 함께 있었고, 십자가 상황에서는 제자들 중에 유일하게 함께 있었으며, 예수님의 빈 무덤을 베드로와 함께 확인했던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언급들이 들은 이야기가 아니라 보고 경험한 참된 증거임을 거듭 강조한다. 그러므로 요한의 증거는 자신의 목격담과 구약의 예언의 성취를 확인하여 줌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이 참됨을, 그리고 예수님이 참된 구주임을, 자신이 쓴 내용들이 참됨을 주장하는 것이다.

성경으로 응하게

이 참된 증거가 증명하려는 것은 예수님을 통하여 구약의 말씀이 응하여 성취되었다는 것에 있다. 요한복음의 디른 특성 중에 하나는 구약의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이미 우리가 살핀대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여러 차례 알려주신 암호 해독법으로 모든 복음서에서 따르고 있다. 그러나 특별히 요한복음은 이것을 성경으로 “응하게” 한다는 것으로 표현을 통하여 강조한다. 이 성경으로 응하게 하려 한다는 표현은 4복음서 중에서 누가복음에서 2회(4:21, 18:31)만 쓰이고 나머지는 요한복음에서 총 8회(요 13:18, 15:25, 17:12, 18:9, 18:32, 19:24, 19:28, 19:36)에 걸쳐 사용된다. 특별히 요한복음에서 이 말씀은 십자가의 상황인 19장에서 3번 강조되어 사용되었다.(19:24, 28, 36). 이러한 정황이 말하여주는 바는 십자가의 정황이 구약에서 예시된 예언들의 완성으로서의 핵심이라는 것을 요한복음이 증명하려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열두 제자 중 유일하게 증인입장에서 복음서를 쓴 요한은 예수님께서 알려 주신 암호 해독법인 구약의 짝과 성취 차원에서 그 것이 어떻게 “응”했고, 이루어졌는지에 관심을 쏟는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여자여”라고 부르신 후 요한복음은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이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룬 줄 아시고 성경으로 응하게 하려 하사 가라사대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19:28).” “이 후”는 예수님께서 어머니 마리아를 여자라 칭하시고 요한과 모자지간의 관계를 설정하신 이후이다. 마리아를 여자라고 칭하심으로 창세기 3장 15장의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처주는 예언이 완성된다는 것을 암시하신 후 “모든 일이 이미 이룬 줄 아시”었다. 그리고 이 말씀 후에 “성경을 응하게 하려”고 “내가 목마르다” 말씀하신다. 그리고 신 포도주를 머금은 해융을 받으신 후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시고 영혼이 돌아가신다(19:30). 증인인 요한은 예수님께서 구약의 모든 중요한 것들을 다 이루시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이 말씀들이 구약의 무엇을 응하게 한 것인가에 대하여는 우리가 이미 개별적인 말씀을 살필 때 알아보았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에도 증거제시는 계속된다. 십자가 형의 전례는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이들의 다리를 부러뜨리는 것이다. 그것은 살아있는 이들에게는 죽음을 앞당겨 주는 일이었고, 죽었다고 생각되는 이들에게는 확인 사살을 하는 차원의 행사였다. 그러나 예수님의 경우는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므로 물과 피를 쏟으심으로 또 다른 말씀이 완성됨을 증거한다. “이 일이 이룬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우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19:36).”

창세기의 대칭으로서의 요한복음

세번째 중요한 요한복음의 특성은 요한복음이 처음부터 창세기를 염두에 두고 쓰였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창세기의 태초가, 요한복음에서 반복된다. 그리고 빛과 어둠의 모티브도 반복된다. 마가복음도 그 첫 말씀이 시작, 태초를 뜻하는 아르케로 이것은 창세기의 태초와 대칭을 이루며 시작한다. 예수님을 통한 복음의 시작을 영적 창조의 시작으로 본것이다. 그러나 마가복음의 창세기와의 대칭성은 요한복음의 의도적 대칭과는 격이 다르다.

요한복음은 첫 장면부터 의도적으로 태초라는 같은 의미의 단어로 시작을 하면서 이어지는 개념에 있어서도 창세기와의 대칭점을 의도적으로 만든다.

창세기:*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1:1)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1:3-4)
요한복음:*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1:1)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1:5)

차이가 있다면 창세기의 빛이 실제 빛이라면, 요한복음의 빛은 영적인 빛으로 예수님을 상징한다. 이것을 통하여 창세기의 창조가 물질적인 것이라면 신약의 예수님을 통한 창조가 영적인 차원의 새 창조임을 의미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요한은 그러므로 구약의 창세기와 요한복음을 통한 새로운 창조를 염두에 두었다. 그리고 구약 창세기에서 타락을 인하여 다 완성되지 않은 창조의 완성을 예수님께서 하신다는 것을 말하려 하고 있다.

이러한 요한의 의도는 우리를 엄청난 비밀로 인도한다. 그것은 바로 그가 우리에게 알게 하는 십자가 7언 중 두 마디에 대한 비밀이다. 전통적으로 학자들은 요한복음이 제시하는 십자가상의 세 마디 중 한마디, “내가 목마르다”만 구약의 인용(시 69:3)으로 보았고, “여자여”라고 한 말씀과 “다 이루었다”는 구약 성경 말씀의 인용으로 보지 않았다. 심지어 새 표준 번역 성경은 “여자여”라고 부른 부분을 “어머니”라 의역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오류는 “여자여”라고 부르신 말씀을 로고스의 언어로 보지 않고 문화적 언어로 보았기 때문이다. 문화적으로 어머니를 여자라고 부를 수 없기에 이를 어머니로 고쳐 해석한 것이다.

그러나 이 암호는 지금 우리가 살피는 요한복음의 비밀의 전체성을 파악할 때 비로소 풀리게 되어 있다. 이것은 요한복음이 창세기와 대칭을 이루고 있다는 것과, 요한복음이 지닌 창세기의 완성된 짝으로서의 신학적 구조의 비밀을 알 때 가능하다. 이것이 우리에게 인도하는 것은 전통적으로 인용구로 이해하지 못했던 두 말씀들에 대한 비밀이다. 이 두 말씀은 이미 우리가 이전에 살핀 바와 같이 “여자여”라는 말과 “다 이루었다”는 말이다.

이 글은 <크로스코드>의 출판사 비전북하우스제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