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태흔 목사(엘림코뮤니오).
요나단은 통일 이스라엘의 초대왕 사울과 그의 첫번째 아내 아히노암 사이에서 태어난 장자다. 요나단(예호나탄)은 ‘하나님’을 뜻하는 ‘예호와’ 와 ‘주는 자’를 의미하는 ‘나탄’의 히브리 합성어로 ‘여호와께서 주신 자’ 라는 의미를 지닌다. 요나단이 이스라엘 왕권의 제1상속자라는 뉘앙스를 강하게 풍기고 있다.

이스라엘 통일왕국 초대왕의 장남으로서 가질 수 있는 당연한 꿈이다. 아마도 부친 사울이 자신의 장자 요나단을 통일 이스라엘의 제2대 왕으로 세우기 위해 손수 지어준 이름일 것이다. 그의 형제로는 에스바알, 말기수아, 아비나답과 배가 다른 알모니, 므립바알 그리고 미갈과 메랍이라는 누이가 있다.

요나단의 부친 사울왕은 이스라엘의 정병 3천명을 뽑아, 그 중 1천명을 당시 군대장관으로 있던 아들 요나단에게 내주어 베냐민 기브아에 주둔하도록 지시했다. 그런데 요나단의 군대와 블레셋 주둔군 사이에 감정적인 충돌로 인하여 양국 간에 전쟁이 일어났다. 요나단 군대가 적군 블레셋의 악독한 식민통치와 내정 간섭에 반대하자, 배반한 이스라엘을 징치하기 위해 블레셋군이 공격하므로 양국간에 전쟁이 발발했다.

군대장관 요나단은 자신에게 맡겨진 군대를 전략적으로 투입해서 게바에 있는 강력한 블레셋 사람의 수비대를 격파했다(삼상 13:2, 3). 그는 부친 사울왕과 힘을 합하여 블레셋의 식민지배에서 고대 이스라엘을 해방시켰다.

군대장관 요나단은 전쟁 중 믹마스에서 북쪽에 있는 바위에 올라가 병기 든 소년에게 ‘…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이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고 말하면서, 블레셋군의 진지를 습격하여 20명을 직접 사살했다. 세상에 발생하고 있는 모든 전쟁은 눈에 보이는 사람들의 다소에 있지 않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에 달려있다는 탁월한 신앙 이념을 선포했다. 예상치 않았던 이스라엘 군대의 공격으로 인해 블레셋 진영에는 공포와 자중지란(自中止亂)이 일어나 저희들끼리 치고 찔러 일대 소동이 일어났다.

사울왕은 적(블레셋)에게 원수를 갚기 전에는 아무 것도 먹어서는 안 된다는 금식 명령을 백성에게 내렸다. 맹세의 내용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군대장관 요나단이 전쟁 중에 허기가 져서 들의 벌집에 있는 꿀을 찍어먹었다. 이것을 알게 된 사울왕은 아들 요나단을 죽이겠다고 언명했으나, 백성들이 한사코 말렸으므로 무사하게 됐다(삼상 14장).

어느 날, 소년 다윗이 아버지의 심부름을 갔다가 목격한 블레셋 군대장관 골리앗을 조그만 물맷돌을 던져 쓰러뜨렸다. 다윗이 가진 여호와 중심의 신앙을 하나님이 사용한 신바람나는 결과였다. 그때 황태자 요나단은 신앙의 사람 다윗의 마음과 성령을 통해서 연락됐다. 소년 다윗을 자기 생명과 같이 온 마음으로 사랑하게 됐다. 이들의 결합은 육신적 관계가 아니라, 신앙과 신앙의 영원한 결합이 됐다.

요나단은 다윗과 상호 언약을 세워 앞으로 어떤 일이 있어도 상조하기로 결의했다. 힘을 가진 첫번째 왕자로서 다윗의 생명을 절대적으로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그것의 증표로 자신이 평소에 아끼며 입었던 겉옷과 군복, 그리고 칼과 활 및 띠까지 선물로 줬다.

이스라엘 군대가 블레셋 사람들을 무찌르고 개선할 때, 이스라엘 여인들이 밖으로 나와 춤을 추며 환영했다.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요나단의 아버지 사울왕은 이때부터 다윗을 시기해, 그의 생명을 노리기 시작했다. 아들 요나단의 다윗에 대한 우정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고, 아버지 사울 왕의 잘못을 눈물로 간하여 친구를 구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요나단은 다윗과 밀약하여 아버지 사울왕의 위험을 피할 방도를 꾀하기도 했다(삼상 20:11-16).

요나단은 하나님 주신 예지를 통해서 정직하고 진실한 다윗이 자신을 대신해 이스라엘의 제2대 왕이 될 것을 알았다. 사울과 자신의 집은 곧 망할 것을 알고서, 다윗이 왕위에 오를 때 자신의 가문을 선대해 줄 것을 부탁했다. 요나단은 ‘여호와께서는 다윗의 대적들을 치실지어다’ 라고 예언했다. 그것은 요나단의 영감에 의한 예언으로 사울 가문의 장래를 내다본 것이었다. 일부 사람들은 요나단의 이같은 행동을 비애국적이며, 불효라고 비난한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과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다윗을 동정한 영적인 정의감에서 발로했다(삼상 20장).

요나단은 친구 다윗을 십 황무지 숲속에서 몰래 만나 그를 위로하고, 장차 다윗이 이스라엘의 제2대 왕이 되고 자신은 그 다음이 될 것을 약속했다. 그때가 두 사람 간의 최후 만남이 됐고, 요나단은 길보아산에서 장렬하게 전사했다(삼상 23:15-18, 31:2). 요나단에게는 므비보셋(대상 8:34, 9:40에는 ‘므립바알’)이라는 절뚝발이 아들이 있었다(삼하 4:4). 다윗은 왕이 된 후에 친구 요나단과 약속한 대로 그 유아(遺兒)에게 깊은 사랑을 표시하며, 끝까지 보호했다(삼하 9장).

왕위의 경쟁자, 다윗과 요나단은 모든 환경을 극복하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 우주적인 성숙한 사랑을 나눴다. 요나단은 당대 이스라엘의 황태자로 왕이 될 권한이 충분히 있었지만, 국가와 민족의 발전과 유익을 위해서 제대로 능력을 갖춘 다윗에게 왕권을 양보하고 자신은 전쟁터에서 장렬한 죽음을 선택했다. 요나단의 희생적인 사랑으로 인해 다윗이 정권을 잡았고, 미미한 고대 이스라엘을 세계적이고 우주적인 초일류 국가로 만들었다.

한때 잘 나가던 신한은행이 요즘 수장 경쟁으로 시끄럽다. 교회도 서로 자신이 속한 모임에서 수장이 되겠다고 싸우고, 다퉈서 만신창이가 됐다. 대한민국도 얼마 있으면 대권 경쟁으로 당과 계파가 시끄럽게 다툴 것이다. 대권이라는 사적인 명예욕 때문에 인생의 비참한 악수를 두지 말고, 고대 사회의 신실한 황태자 요나단처럼 국가를 위해서 잘 판단하고 국익을 위해서 일할 수 있는 적절한 자에게 수장의 자리를 양보하는 미덕이 절대적으로 요청된다고 본다.

다윗 왕의 탁월한 업적도 역사 속에서 중요하게 다루고 있지만, 이스라엘을 이스라엘 되게 한 실질적인 공로자요, 수장으로 요나단을 성경이 기억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