겔라 엘로에서 하룻밤을 묵고 아침 일찍 서둘러 그날의 목적지 티오를 향해 1백 킬로미터가 넘는 장거리를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수도 아스마라에서 항구 도시 아사브까지의 자동차길은 비포장 도로였습니다. 지구 위에 이런 길이 또 있을까 의심이 갈 정도로 거칠고 황량한 길이었습니다. 아무튼 1인당 국민 총생산(GDP)이 2000달라도 되지 않는 찢어지게 가난한 에리트레아 정부로서는 아스팔트 도로 공사가 하늘의 별따기일 것입니다. 정부의 국가 예산이 바닥나 있으므로 부유한 나라의 기업체나 세계은행이 돈을 빌려주거나 투자할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겔라 엘로를 출발한지 세 시간이 훨씬 지났는데도 어항(漁港) 마을 모라가 그 겉모습을 전혀 나타내지를 않았습니다. 순례자는 마치 화성이나 금성의 어느 황톳길 선상에 있다는 환각에 빠지기를 몇 번이나 되풀이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던 중 한두 시간 달려도 자동차 외에는 사람 그림자 하나 볼 수 없는 도로에서 두 어린 아들과 두 마리의 소를 몰고 가던 한 남자를 만났습니다. 생명부지의 두 사람은 오래 떨어져 있던 친구처럼 몹시 반가워했습니다. 그도 사람을 그리워했었고 나도 사람을 그리워했던 터였습니다.

그는 길에서 그리 멀지 않은 자기 집으로 나를 데리고 갔습니다. 나이가 30대 후반인 쌀레 하미드 씨는 소의 머리와 귀를 어루만지며, “이 소들은 우리 가정의 생명입니다. 으뜸 되는 재산이지요”하며 연신 중얼거렸습니다. “에티오피아와의 전쟁 때 에티오피아 공군 전투기가 아무 죄도 없는 우리 소를 세 마리 나 죽였답니다”.

3년 전, 살레 하미드 씨는 에티오피아의 영토에 귀속된 에리트레아의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사랑하는 가족을 남겨두고 ‘에리트레아국민해방전선’(EPLF)의 게릴라 군에 지원 입대했습니다. 전선에서 운 좋게 살아 돌아왔을 때 그의 어촌 마을 모라는 에티오피아의 공군기의 공습(空襲)으로 잿더미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의 집과 세 마리의 소를 포함한 다른 여러 가축들을 송두리 채 잃어버렸습니다. 아프리카의 농촌에서는 만일 소를 잃으면 한 가정의 권위와 생명을 잃는 것과도 같다는 것입니다.

그 엄청난 손실에 대한 그의 깊은 정신적 치유가 오기까지는 두 해 이상이 걸렸고, 그가 정상인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작년 이맘때 오늘 나처럼 길에서 우연히 만난 한 이름 없는 떠돌이 이탈리아인 여행자의 신앙적 도움이 크게 작용했던 까닭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었습니다. 선하시고 인자하신 긍휼의 하나님께서 그를 치유하시기 위해 그 이탈리아인을 이 황량한 광야로 보내주셨기 때문입니다. 영어를 거의 못하는 하미드 씨와 티그리니아 말을 전혀 못하는 순례자 사이에 언어가 아닌 손짓으로 대화가 순조롭게 이루어졌습니다.

“순례자님, 당신을 이곳에 보내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나도 손짓과 얼굴 표정으로 이렇게 그의 말에 화답했습니다.

“하미드 씨, 나도 당신을 만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서로의 표정과 눈빛으로 서로의 의사를 대체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그 순간들마다 주의 성령께서 우리 두 사람 사이에 임재하셔서 말씀하고 계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날 광야의 황톳길에서 하미드 씨와는 짧은 만남의 시간이었지만, 그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만이 나눌 수 있는 향기 짙은 사람 사랑의 시간이었습니다.

평화의 순례자 안리 강덕치(E-mail: dckang21@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