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복음주의협의회(회장 김명혁 목사, 이하 한복협)는 13일(금) 오전 7시 새문안교회(담임 이수영 목사)에서 ‘나사렛 예수는 누구인가?’라는 주제로 2월 조찬기도회 및 발표회를 가졌다. 다음은 박형용 박사(성경신학대학원 총장)의 “‘예수는 신화’에 대한 오류” 강연 전문.

▲박형용 박사(서울성경신학대학원대학교 총장).
요즈음 캘리포니아 주의 산타 로사(Santa Rosa, California)에 있는 “웨스타 연구소”(The Westar Institute)에서 흥미있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웨스타 연구소”에서는 여러 유명한 학자들이 모여 “예수 세미나”(Jesus Seminar)를 진행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역사적 예수 연구에 관한 최근의 연구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펑크 박사(Dr. Robert W. Funk)가 이 연구소에서 큰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펑크 박사는 목사로, 밴더빌트 대학교(Vanderbilt University) 교수로, 그리고 몬타나 대학교(The University of Montana)의 교수로 봉직하다 뜻이 있어 동료들과 함께 웨스타 연구소를 설립했다. 그들은 이 연구소를 근거로 예수님의 말씀과 행위에 대해 특이한 연구를 하고 있다. 그들은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이나 행위를 의논한 후에 투표를 한다. 세미나 참여자는 네 개의 색깔로 된 구슬을 가지고 각자의 의견을 표시한다. 그들의 약속은 다음과 같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관해 다음과 같이 의견을 표시한다.

빨강(Red) - 예수님이 말씀하셨거나 예수님의 말씀에 근사한 내용이라고 생각하면 “빨강 구슬”을 사용하여 투표한다.
분홍(Pink) - 예수님이 이와 비슷한 내용을 말씀했을 개연성이 있다(비록 예수님의 말씀이 전수되어 오는 가운데 훼손되었지만)고 생각하면 “분홍 구슬”을 사용하여 투표한다.
회색(Grey) - 복음서의 예수님의 말씀 중 어떤 것은 예수님의 말씀이 아니지만, 사상은 예수님의 말씀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회색 구슬”을 사용하여 투표한다.
검정색(Black) - 복음서에는 예수님이 말씀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그들 생각에 예수님이 말씀하시지 않았고 후대에 기독교 공동체가 만들어낸 말이라고 생각되면 “검정색 구슬”을 사용하여 투표한다.

그들은 예수님의 행위에 관해서도 네 개의 구슬로 그들의 의견을 표시한다.
빨강(Red) - 보고된 내용이 역사적으로 믿을 만하다고 생각되면 “빨강 구슬”로 의견을 표시한다.
분홍(Pink) - 보고된 내용이 믿을 만한 개연성이 있다고 생각되면 “분홍 구슬”로 의견을 표시한다.
회색(Grey) - 보고된 내용이 가능성이 있지만 믿을 만하지 않다고 생각되면 “회색 구슬”로 의견을 표시한다.
검정색(Black) - 보고된 내용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그 내용이 허구라고 생각되면 “검정색 구슬”을 사용하여 의견을 표시한다.

이 네 개의 색깔있는 구슬로 예수님의 말씀과 행위에 대해 투표로 자신의 견해를 표시하고 사복음서의 내용이 구슬을 가장 많이 받은 색깔대로 분류된다. 그런데 이들 학자들의 연구의 결과는 예수님의 말씀이나 예수님의 행위 모두 빨강색보다는 다른 색으로 도배되어 나타난다.

2008년 6월에 공영방송인 SBS에서 4부작으로 “신의 길 인간의 길”을 만들었다. 제1부는 “예수는 신의 아들인가”이며, 제2부는 “무함마드, 예수를 만나다”이고, 제 3부는 “남태평양의 붉은 십자가”요, 제4부는 “길 위의 인간”이다. 내용의 핵심은 성경의 예수가 하나님(신)이 아니며 성경에 기록된 이적은 있을 수 없는 일이요 부활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건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웨스타 연구소가 하는 일의 내용이나 SBS의 “신의 길 인간의 길”과 같은 시도를 접할 때 마음이 상하고 기분이 나쁘다. 그러나 이런 시도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죄가 이 세상에 들어 온 이래 계속적으로 시도된 현상들이다. 이런 시도는 예수님 재림 때까지 간헐적으로 계속될 것이다.

해 아래서 새 것이 없다

2000년 전 바울 시대에도 성경에 언급된 부활을 사실 그대로 받지 못하고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딤후 2:17-18)고 생각한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었다. 그리고 베드로는 기롱하는 사람들이 초자연적인 예수님의 재림을 부인하며 냉소적인 태도를 취했다고 전한다(벧후 3:3-7). 이들 모두의 의도도 넓은 의미로 볼 때 웨스타 연구소의 학자들이나 SBS의 “신의 길 인간의 길”의 의도와 상통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18세기에 일어난 영국의 자연신론(Deism)과 독일의 계몽주의(Enlightenment)의 출현으로 시작된 성경과 역사적 예수에 대한 왜곡을 더듬어 보고 경각심을 갖기 원한다.

계몽주의의 출현으로 인간의 이성은 성경을 포함한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는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결국 계몽주의의 영향은 성경을 단순한 인간의 작품으로 전락시키고 예수님을 단순한 인간으로 만들었다. 이제 자연신론과 계몽주의의 영향 하에 있었던 학자들이 어떤 시도를 했는지 그 면면을 살펴보도록 한다.

톨란드(John Toland, 1670-1722)는 이적을 받지 못하고 이적들은 다음 세대가 기록해 넣은 꾸며진 것들이라고 주장했다.

루소(Jean Jacques Rousseau, 1712-1778)는 예수님을 소크라테스(Socrates)와 같은 사람으로 비교했다.

라이마루스(Hermann S. Reimarus, 1694-1768)는 “예수님이 단 한 번만이라도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방법으로 부활 후에 성전에 나타났거나, 예루살렘의 산헤드린 공회 앞에 나타났더라면 전체 유대 나라가 그를 믿었을 것이다. 예수님이 역사적 사실로 부활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나타나실 수 없었다”고 주장한다. 라이마루스는 복음서의 이적과 부활에 대해 제자들을 거짓말쟁이로 만든다. 그러나 라이마루스는 “신약의 기록이 신화로 판단될 때까지는 역사적이다”라는 태도로 복음서를 취급했다.

허더(Johannes Herder, 1744-1803)는 이적들은 증명되는 것이 아니요 교회의 믿음에 속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허더는 복음서의 신빙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파울루스(Heinrich E. G. Paulus, 1761-1851)는 예수님이 무덤에 묻힌 후에 살아난 것을 제자들이 실제로 목격했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죽지 않았고 살아 있는 채 무덤에 묻혔기 때문이라고 한다. 파울루스는 예수님이 기절했다가 다시 깨어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파울루스도 라이마루스와 같이 “신약의 기록이 신화로 판단될 때까지는 역사적이다”라는 태도로 복음서를 취급했다.

스트라우스(David F. Strauss, 1808-1874)는 예수님이 교회가 고백하는 神人(God-Man)이 될 수 없고 예수님이 역사 가운데 육체로 나타난 하나님의 유일한 반복될 수 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神이 어떤 역사적 현상과 동일시 될 수 없고 오히려 참 성육신은 모든 인간이 신과 같이 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스트라우스는 이 논리를 예수님에게 적용하여 예수는 신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따라 살았던 많은 인물 중 한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예수는 인간이 신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하나의 모범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스트라우스는 “신약의 기록이 역사적인 것으로 판단될 때까지는 신화이다”라는 태도로 복음서를 접근했다.

바우에르(Bruno Bauer, 1809-1882)는 요한복음이 문학작품으로 적은 부분에 이르기까지 저자의 창조적 사색을 거치지 않은 곳이 없다고 주장한다. 바우에르는 복음서에 묘사된 예수의 생애는 예수의 경험이 아니요 교회의 경험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메시아 개념은 교회 공동체가 창안한 개념이라고 주장한다.

르낭(Ernest Renan, 1823-1892)은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고 예수님을 도덕군자로 생각한다. 르낭은 예수님이 갈릴리의 푸른 하늘을 즐긴 예술적인 환상에 빠져 있었던 사람이었다고 주장한다. 르낭은 예수님이 애초에 감당할 수 없는 역할을 어리석게 맡기 시작했고 죽음만이 망신당하지 않고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하여 죽었다고 주장한다.

하르낙(Adolf Harnack, 1851-1930)은 메시아 개념은 예수에게 중요하지 않고 오히려 중요한 것은 한 인간으로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동료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한다. 하르낙은 요한 사도가 요한복음을 기록하지 않았으며 그 역사성을 받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결국 하르낙은 육체의 부활을 부인한다.

슈바이쳐(Albert Schweitzer, 1875-1965)는 “자신이 오실 인자라는 지식을 가지고 예수는 모든 일반 역사의 종식을 가져오는 마지막 혁명으로 방향을 전환시키기 위해 세상의 수레바퀴를 붙잡았다. 세상의 수레바퀴는 방향전환을 거부했다. 그리고 예수는 자신을 수레바퀴 속에 던졌다. 그런데 세상의 수레바퀴는 계속 회전하고 예수를 산산조각 냈다. 수레바퀴는 계속 돌고 자신을 인류의 영적 지도자로 생각할 만큼 강력하고 자신의 목적을 위해 역사를 전환시키려고 했던 측량할 수 없이 위대한 사람의 엉망진창이 된 몸이 그 위에 말없이 달려 있다.”고 했다. 슈바이쳐는 천국 강림 문제와 관련하여 예수님이 열두 제자를 파송할 때(마 10장)와 자신의 십자가의 죽음의 사건에서 두 번 실패한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불트만(Rudolf Bultmann, 1884-1976)은 복음서에 나타난 잠언을 볼 때 예수가 지혜의 선생임을 증거한다고 말한다. 불트만은 역사적 예수의 지식을 복음서에서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복음서들이 초대 기독교 공동체의 필요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지 역사적인 사건들을 기록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한다. 불트만은 복음서들이 역사적 예수에 관한 지식을 제공해 주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로빈슨(James M. Robinson)은 “우리가 나사렛 예수를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면 우리는 ‘역사적 예수’와는 전혀 다른 것을 이야기하게 된다”라고 19세기 역사적 예수 연구의 잘못된 역사관을 논평한다. 그리고 로빈슨은 복음서들이 선포(kerygma)로 형성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케제만(Ernst Kaesemann)은 “초대교회가 이 세상에서 한 때 걸었던 예수와 역사적인 유대를 유지하기 위해 너무 심각하게 노력하다 보니 예수의 지상 생애의 역사적 사건들은 거의 모두 망각 속에 묻혀버리게 되고 대신 초대교회의 메시지만 남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캐제만은 복음서에 기록된 이적을 전설(legends)로 생각하고 부활사건을 환상(visions)으로 간주한다.

훅크스(Ernst Fuchs)는 복음서는 선포적 성격으로 기록되었으며 따라서 복음서들이 초대교회나 혹은 전도자들의 스타일에 맞춘 서술들로 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훅크스는 예수님이 믿음에 대한 증인이 될 수는 있지만 믿음의 대상을 결코 될 수 없다고 말한다.

크로산(John Dominic Crossan)은 몇 개의 전통을 사용하여 역사적 예수가 갈릴리 농민으로 철저한 평등 사회를 주창했다고 말한다. 크로산은 공관복음서의 종말론적 예수가 후기의 기독교인들이 믿은 신화적 그리스도를 역사적 예수에 반영시킨 영상(Image)에 지나지 않으며, 역사적으로 예수님과 그의 추종자들은 그들의 모습이나 옷 입는 것이나, 먹는 것 때문에 황금기 시대 여피들의 세상에 사는 히피들과 같다("hippies in a world of Augustan yuppies).라고 주장한다.

마이어(John P. Meier)의 분석에 의하면 역사적 예수는 의식적으로 선지자 엘리야를 모방하면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한 종말론적 선지자이다. 마이어는 예수님을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고 하나님의 전령으로써 엘리야가 했던 이적을 행하는 카리스마적 선지자의 모습으로 제시한다. 마이어는 예수님을 “변두리 유대인”(a marginal Jew)이라고 한다. 이 말의 뜻은 예수님의 선포와 행위가 그 당시 유대주의의 주류에는 속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예수님은 그의 사회의 변두리에서 살고, 사역하고 죽었다. 마이어는 이 이상한 변두리 유대인이요, 종말론적 선지자요, 이적 행하는 자가 현대 역사적 예수 연구방법의 대상인 예수이다.

펑크(Robert Funk)는 “A.D. 30년 경 예수의 죽음으로부터 A.D. 325년 니케야 회의 때까지의 이런 발전들은 현대 비평적 학자들로 하여금 소위 신앙의 그리스도(베드로와 바울의 처음 고백과 4세기와 그 이후 세기의 신조 형성으로 표현된 그리스도)로부터 나사렛 예수(흔히 역사적 예수로 알려진)를 구분시키도록 인도했다. 역사적 예수 연구는 예수가 누구인지 그가 무엇을 말했는지를 모호하게 만든 기독교적 도금의 혼돈으로부터 갈릴리의 현인을 해방시키는 노력이요, 그리고 예수에 관한 종교(the religion about Jesus)로부터 예수의 종교(the religion of Jesus)를 구분시키는 노력이다”라고 주장한다. 펑크(Funk)는 “새로운 역사적 예수 연구”(New Quest)는 1954년 캐제만(Ernst K?semann)의 타당성 제안과, 1959년 로빈슨(James M. Robinson)의 “역사적 예수의 새로운 연구”(A New Quest of the Historical Jesus) 출판으로 시작되었다가 1975년경 비유 연구 운동의 시작으로 불트만(Rudolf Bultmann)의 비신화화의 종말을 가져 올 뿐만 아니라 발트(Karl Barth)가 제공한 신정통주의 틀(구조)의 종말도 함께 가져 와서 비교적 단명한 연구(Quest)였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제 연구(Quest)의 새로운 길이 열렸는데 그 길이 자신이 이끌고 있는 웨스타 연구소(The Westar Institute)에서 진행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는 예수 세미나(Jesus Seminar)에 참여한 학자들을 가리켜 “다시 새롭게 태어난 연구자들”(renewed questers)이라고 명명함으로 1950년대의 새로운 연구(the New Quest)와 구분시키고 있다.

예수 세미나(Jesus Seminar)에서 결론 내린 “새롭고 새로운 신약”(a new new Testament)은 다음과 같다. 예수 세미나는 예수의 원 제자들은 책을 쓰지 않았다고 결론짓고 바울의 진정한 서신들은 1세기 50년대에 기록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로마서, 고린도전서, 고린도후서, 갈라디아서, 데살로니가전서, 빌립보서, 빌레몬서를 바울의 서신으로 받는다.

펑크 박사는 “나는 나의 고백이 은폐(cover-up)일 수 있음을 고백한다”, “나는 원죄를 믿는다. 그러나 내가 믿는 원죄는 사람이 내재적으로 자신을 속일 수 있는 무한한 능력이 있다는 뜻이다”라고 말한다.

예수 세미나(Jesus Seminar)가 결론 내린 예수님의 죽음과 기독교에 관한 기본적인 설명은 다음과 같다. “예수님은 유대의 고위 당국자들의 동의하에 빌라도의 판결로 예루살렘에서 처형되었다. 그의 추종자들은 예수님의 체포 후에 흩어졌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시간이 꾀 지난 후에 예수님을 따르던 헌신자들이 다시 모여 공동체를 형성했고 그들의 기억과 확신을 정리하여 하나의 운동으로 만들었다.”

펑크의 각오와 연구 목적은 우리를 놀라게 할 만하다. 여기 참고적으로 그의 21개 제안을 기록한다.

1. 새로운 연구의 목적은 예수를 자유하게 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성경적, 신조적, 경험적 감옥에서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2. 새로운 연구는 기독교 신앙 자체의 기원에 관한 우리들의 이해를 교정하는 데 기여하는 것이다. 예수가 누구냐, 그가 무엇을 말했느냐, 그가 무엇을 행했는냐가 기독교 신앙의 본질 내용이 아니다.
3. 새로운 연구는 우리들이 어떻게 기독교인의 삶을 이해하느냐에도 심각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기독교의 중심은 도덕적인 것이 아니다. 어떤 특권층의 인물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을 지도할 수 없다.
4. 새로운 연구는 조직화된 종교보다도 일반 사회의 영적 디멘숀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는 세속적인 현인을 가리키고 있다. 예수님은 세속적인 현인이었다.
5. 우리는 더 이상 우리들의 신앙을 베드로의 신앙이나 바울의 신앙에 근거를 두고 있지 않다. 진정한 신앙 즉 기본적인 신앙은 나사렛 예수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야만 한다.
6. 예수님 자신은 정당한 신앙의 대상이 아니다(not the proper object of faith). 예수님에 의해 고취된 정당한 신앙의 대상은 예수님이 신뢰하는 것을 신뢰하는 것이다.
7. 예수님의 비전을 설명함에 있어 우리는 예수님이 비유들과 금언들에서 사용한 것처럼 같은 기록 방법으로 우리들의 해석을 표현해야만 한다. 예수님은 어떤 행동을 주문하지도 않았고 특별한 종교적 관행도 지지하지 않았다. 예수님은 그의 비유나 경구(금언)에서 의도적으로 개방된 비전을 설명했다. 예수님의 비유에 대한 우리들의 해석은 더욱더 비유적이어야 한다.
8. 예수님을 1계급 좌천시켜야 한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아버지와 영원히 공존하신 분으로 인정하는 위치에서 겸손한 갈릴리의 현인의 위치로 좌천시켜야 한다. 좌천된 예수는 기독교운동의 진정한 창시자로서 가능하게 된다.
9. 우리는 예수님에게 새로운 드라마에서 다른 역을 그에게 부여해야 한다. 지금까지 예수님의 역할을 담은 신조적 각본은 외부에서 만들어낸 구속주의 신화이다.
10. 우리는 그리스도로서의 예수님의 직업을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로서 예수님의 기능은 처음 몇 세기 동안 그의 추종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진정한 예수님의 직업은 그의 비전에 의해 만들어져야 한다.
11. 예수님은 열린 식탁을 실천했다. 예수님은 죄인들, 세리들, 창녀들, 나환자들과 함께 식사했다.
12. 예수님은 상호적인 용서를 했다. 예수님은 아버지가 형벌도 약속도 없이 용서하시니 자신도 용서하신다. 같은 방법으로 예수님은 눈 먼 자들,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을 용서하신다.
13. 예수님은 경건의 공개적인 관행을 정죄하신다. 예수님은 종교적인 태도를 가리켜 위선자라고 책망하신다. 예수님은 공개석상에서 기도하고자 하는 인센티브를 빼앗아가 버리신다.
14. 예수님은 하나님과 직접적인 관계를 갖는 것을 지지하신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 직접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고 주장하신다. 정경의 복음서들은 권세를 잡고 있는 교회 지도자들을 비호하지만(마 16:16-19; 마 28:16-20) 예수님은 그의 추종자들 가운데 특권층을 배척하신다.
15. 예수님은 그의 추종자들로부터 기독교적 “특권”을 빼앗아 가신다. 기독교인이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구원받았다” “구속되었다”라고 말하는 것은 기독교적 특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16. 예수님은 모든 보상과 형벌은 고유적인 것임을 분명히 한다. 예수님에 의하면 행위 자체가 바로 보상이다. 이교도들도 자기 자신을 위한 동기 없이 사랑을 베푼다. 기독교 행위는 다른 종류의 행위의 서곡이 아니다. 기독교 행위는 그 자체로 목적이다. 기독교인들이 여기서 지금 선해야 한다고 권면받는 것은 다음에는 선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인가?
17. 우리는 피로 구속받는다는 교리를 버려야 한다.
18. 우리는 부활의 기사를 있는 그대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 예수님이 보신 것을 우리가 보아야 한다. 개인들에게 나타난 것을 근거로 주장하는 사도적인 특권이나 권위를 배척해야 한다.
19. 예수님에게 실제적인 아버지가 아니라면 생물학적 아버지를 회복시킴으로 성(sex)을 구하고, 매리(Mary), 즉 예수님의 어머니를 구해야 한다. 처녀성은 반드시 경건한 것이 아니다. 예수님이 아버지 없이 태어났다고 더 효과적인 구세주가 될 수는 없다.
20. 기독교로부터 계시록적 요소를 축출해야 한다. 계시록적 사상은 그 근본이 세상을 부인하는 것이다.
21. 신약은 기독교를 창시하기 위한 초기의 여러 종류의 시도들의 불공평하고 편파적인 기록임을 선포해야 한다.
이것이 나의 21개 조항이다. 만약 내가 교회를 목회한다면 나는 이것들을 정문에 붙여 놓겠다.

얼마 전에 한국교회에 물의를 일으킨 다빈치 코드와 노스틱 복음서들(베드로 복음; 빌립 복음; 마리아 복음; 도마 복음; 유다 복음)도 약간씩의 강조점이 서로 다르지만 모두 예수님이 신이 아니요 인간이라는 전제하에 기록된 것들이다.

역사적 비평적 방법에 대한 평가

성경을 비평적으로 접근하는 비평적 방법론을 열심히 연구한 학자가 독일 아우그스버그(Augsburg) 태생의 트뢸취(Ernst Troeltsch, 1865-1923)였다. 트뢸취의 방법론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 비평적 원리 - 과거를 판단할 경우 흑백을 가리듯 진리와 비진리로 구분할 수 없다. 그들은 개연성 정도의 문제이다. 그것들은 항상 재분석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② 유추의 원리 - 과거의 경험은 결코 현재의 경험과 완전히 다를 수 없다. 그러므로 현재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과거의 경험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
③ 상관의 원리 - 과거에 발생된 사건은 연쇄적인 관계에 놓여 있다. 즉 하나의 개체적 사건은 다음에 일어날 사건과 연관관계에 놓여 있다.

트뢸취(Troeltsch)는 독일의 이상주의의 테두리 안에서 말했지만 그의 주장은 이성의 자율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의 이런 방법론이 기독교에 적용되면 현재 우리가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은 과거에도 발생했다고 생각할 수 없기 때문에 자연히 현재 경험되지 않는 성경의 이적은 허위이며 따라서 부인해야 한다. 그리고 그의 비평의 원리는 역사상에 어떤 절대적인 진리가 있을 수 없고 어느 진리이고 재평가받아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트뢸취는 결국 신약의 종교가 초자연적인 사상에 기초하기 때문에 현재 인간이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고 역사상에 한 사람을 통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특수 종교는 용납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성경의 이적을 공격함에 있어서 역사적 비평적 방법을 따르는 사람들은 전통적인 신앙에 회의를 품을 뿐만 아니라 성경에 나타난 모든 기록을 의심한다. 마이어(Gerhard Maier)는 역사적 비평적 방법으로 말미암아 “기독교 내에 보편화된 질병”(universal Christian sickness)이 유발되게 되었다고 말한다. 스프로울(R. C. Sproul) 은 “요즈음 예수 세미나는 성경 비평학에서 성경 파괴학으로 타락했다”라고 혹평했다. 린네만(Eta Linnemann)은 불트만(Rudolf Bultmann), 훅크스(Ernst Fuchs), 고갈텐(Friedrich Gogarten), 그리고 에벨링(Gerhard Ebeling)과 같은 학자들의 문하생이다. 그런데 린네만(Eta Linnemann) 은 이들의 문하생으로서 한평생 역사적 비평적 방법을 즐겨 사용했던 학자이다. 그녀는 역사적 비평적 방법에 근거한 교훈은 장님이 장님을 인도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깨닫고 철저하게 돌아서서 역사적 비평적 방법의 오류를 지적한다. 린네만은 역사적 비평적 방법이 얼마나 파괴적인지를 깨닫고 자신이 역사적 비평적 방법에 의존해 저작한 자신의 두 책(Gleichnisse Jesu와 Studien zur Passionsgeschichte)과 수많은 논문들을 모두 쓰레기통에 버렸으므로 혹시라도 이런 자신의 책을 소유한 사람들이 있으면 그 책들을 자신처럼 쓰레기통에 버리라고 요청하고 있다.

린네만은 역사적 비평적 방법론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성경이 단순히 인간의 작품인 것으로 믿는다”라고 평가하고 역사적 비평적 방법의 연구로 “사람들은 계시된 진리로서의 하나님의 말씀을 배척하고 비록 그것이 경건한척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일지라도, 본질적으로 무신론적인 이 세상의 지혜를 선택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린네만은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이 모든 국가의 장래를 조종하고 계신다고 우리에게 말하는 반면, 비평적 역사학은 처음부터 하나님이 실제 역사 안에서 사역하고 계신다는 가능성을 인정하려하지 않는다”라고 비평한다.

정리하는 말과 우리의 각오

지금까지의 연구를 통해 얻어진 결론은 성경말씀을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지 않고 역사적 예수 연구를 할 때 어떤 결과를 낳게 된다는 것을 말해 준다. 계몽주의와 합리주의의 영향이 라이마루스(Reimarus)로부터 시작하여 역사적 예수의 새로운 연구를 거쳐 다빈치 코드나 SBS의 “신의 길 인간의 길” 방송에 이르기까지 여러 면으로 미친 것을 알 수 있다. 인간의 자율적인 사고방식이 성경의 내용을 자기 구미에 맞추어 조작하는 드라마의 연출을 본다.

이들 비평학자들에게 문제가 된 것은 폐쇄된 우주관으로 하나님의 위치를 역사에서 제거시킨 것이다. 하나님 없는 성경은 인간의 작품이요, 하나님 없는 예수는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예수를 주제로 한 복음서는 거짓투성이요, 신화요, 선포이며, 예수는 우리의 실존을 자각시키는 하나의 표본에 지나지 않는 인물이다. 이들의 연구는 새로운 것 같지만 사실상 하나의 대전제, 즉 인간이 진리를 포함한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다는 사상하에 이런 부분 저런 부분을 다룬 것뿐이다.

라이마루스 이후 많은 비평적 신학자들이 예수에게 채색옷을 입히기 시작했다. 그들이 만든 채색옷은 그들의 전제에 의해 색깔이 달라졌다. 라이마루스는 예수가 제자들의 거짓말로 채색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파울루스는 예수 자신의 거짓말이 우리의 눈을 혼란에 빠뜨린다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스트라우스는 예수를 아예 신화로 만들어 버린다. 홀츠만이나 하르낙은 자유주의의 전제 하에 예수를 단순한 인간으로 채색시키고 부셋은 종교사학파의 채색옷을 예수에게 입혀 절대적 위치의 주를 상대적 위치의 주로 전락시켜 버린다. 바이스나 슈바이쳐는 철저한 종말론의 채색 옷을 예수에게 입혀 예수가 종말이 곧 임할 것을 믿고 환상에 빠져 살다가 죽은 정신착란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불트만이나 후 불트만 학파의 신학자들은 예수가 초대교회의 선포라는 채색옷 속에 묻혀 그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다빈치 코드는 역사적 예수를 사용하여 많은 부를 모았으며, SBS의 “신의 길 인간의 길”은 든든히 서 있는 한국교회에 돌을 던져 자신들의 존재를 확인하고 있는 행태이다. 이처럼 시대가 변하고 사람이 달라질 때마다 제멋대로 채색옷을 지어 예수에게 입힌 것이다.

그러나 예수에게 가장 잘 맞는 옷은 복음서들이 묘사한 그대로의 순수한 옷이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로 다윗의 혈통으로 성육신하셔서 십자가의 죽음으로 구속을 성취하시고 부활하여 하나님 우편으로 승천하신 우리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이다. 이 고백 위에 설 때에만 바른 역사적 예수 연구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근래에 한국교회는 번영신학, 축복설교에 익숙한 상태이다. 한국교회 초기의 선배들은 사경회를 자주 가졌다. 한국교회의 강단에서 성경에 근거한 무게 있는 설교들이 선포되어야 한다. 우리는 다시 본래 위치로 돌아가야 한다. 약 3세기에 걸친 역사적 교훈은 성경이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고 소리친다. 복음서 기자들이 기록한 복음서들은 역사적으로 신빙성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자료를 통해 완전하지는 않지만 역사적 예수의 대략적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복음서들은 예수님의 자서전을 쓰기 위해 기록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기록된 내용만은 역사적으로 신빙성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