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
"네가 밭에서 곡식을 벨 때에 그 한 몫을 밭에 잊어버렸거든 다시 가서 가져 오지 말고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리라(신 24:19)".

밭에서 추수하다 곡식 단 하나를 잊어버리고 돌아올 경우, 그것을 가난한 자들을 위해 남겨두라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그 곡식을 가져갔을 경우 도둑으로 인정되지 않았으며, 인정 많은 농부는 일부러 곡식 몇 단을 가난한 자들을 위해 남겨 두기도 했습니다. 필자의 어린 시절에도, 보리 이삭과 벼 이삭을 어머니와 함께 그리고 동네 아낙네들과 함께 수다를 떨며 이삭을 줍던 기억이 새삼 피어오릅니다.

성경 룻기는 현숙한 여인이 타락하고 부패하여 죄로 얼룩진, 혼란스런 사사 시대를 살아가면서 겪는 가정적 불행한 삶과 지나친 가난으로 깊은 시름에 잠겨있을 때, 사랑과 헌신으로 위기를 극복하여 마침내 복된 결과를 얻게 되는 놀라운 사건입니다.

두 아들을 잃은 시어머니 나오미는 두 며느리에게 각자 갈 길을 가도록 권유합니다. 며느리 오르바는 자신의 길로 가지만, 이방(모압) 여인인 룻은 홀로 된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 생활과 문화 그리고 풍습과 환경이 전혀 다른 낯선 이국 땅 베들레헴으로 갑니다. 그곳은 장래를 보장 받을 수 없는 미지의 불안한 타향 땅이었습니다.

인간적 생각으로 보아 참으로 난감한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에 대한 깊은 신뢰와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망설임 없이, 미지의 세계를 선택한 탁월한 안목을 갖고 있었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실리를 좇아 신의도, 신앙도, 교회도 곧바로 내팽개치는 현대인들을 향해, 하나님은 룻을 통해 진실한 안식을 차지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그 결과가 얼마나 훌륭하고 위대한 것인지 일깨워 줍니다.

당시 이삭줍기는 율법대로 한다면, 곡식단을 다 묶은 후에야 비로소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보아스는 사환들을 시켜서 곡식을 더 많이 가져갈 수 있도록 배려합니다. 보아스는 베푸는 삶을 통해 룻이라는 현숙하고 아름다운 여인을 만남으로써, 다윗 왕과 구세주이신 예수님의 계보에 오르는 큰 영광을 안게 됩니다.

필자의 어린 시절, 마루 벽에는 밀레의 '이삭줍는 그림' 액자가 걸려 있었습니다. 그림을 볼 때마다 룻과 보아스를 연상하며, 당시 성서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상상으로나마 그려보곤 했습니다.

지금 현 시대에는 갈수록 인정이 매 말라가고, 나누는 삶에서 점점 거리가 멀어져 가고 있음을 실로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특히 교계에서 베풂과 나눔의 정신이 점점 잊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베풂과 나눔은 곧 주님의 사랑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요즘엔 교회 안에서조차 베풂과 나눔의 아름다운 모습이 보이질 않습니다. 이웃의 어려움을 내 어려움처럼 느끼고, 이웃의 불행을 나의 불행처럼 품으며 이웃의 즐거움을 나의 즐거움으로 함께 행복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웃이 가지려 하면 내가 양보하는 마음도 있어야 하겠습니다. 5리를 가고자 하면 10리 길도 함께 하라는 주님 말씀을 건성으로 들어서는 결코 안 될 것입니다.  

어려움에 처해 있는 두 과부를 측은하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었기에, 보아스는 두 여인을 위해 자신의 식물을 베풀었습니다. 이를 통해 가장 좋은 것으로 하나님께 선물을 받는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냉수 한 그릇도 주의 이름으로 대접하면 그 상을 잊지 않겠다고 약속하신 주님의 음성에는, 결코 공짜가 없다는 사실을 알려 주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교회 내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갖고, 협력하며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웃인 세상을 향해 베풀어야 합니다. 이삭을 남겨야 합니다. 주님으로부터 받은 착한 심성을, 세상을 향해 쏟아부어야 합니다.

그리고 정의롭게 살아야 합니다. 거짓 풍설을 퍼뜨려선 안 되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웃에게 해를 끼쳐서도 안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보아스처럼 이삭을 남기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필자의 어린 시절에는 해가 지면 장날에 물건을 팔러 왔던 나그네들이 날이 저물어 난감해 할 때,  잠을 재워주고 음식까지 대접하곤 했습니다. 비록 넉넉하지 못한 살림이지만, 늘 따스한 미소와 충만한 인정으로 넘쳐 서로 행복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노숙자나 눈에 거슬리는 사람들이 찾아오더라도, 그들에게 늘 따스한 입김을 베풀고 사랑으로 품어야 합니다. 모두 주님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늘 이삭을 남겨놓아야 하겠습니다. 교회 안과 밖, 그리고 나의 깊은 심령에까지 이삭을 남겨놓아야 하겠습니다. "남겨 두어라"는 음성은 바로 주님의 뜻이기도 합니다.

/이효준 장로(부산 덕천교회,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