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교회 부흥보다, ‘하나님 목회’ 집중해야”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실천신대 총장 물러나는 이정익 목사 (下)

▲이정익 목사는 5월 24일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총장직을 퇴임한다. ⓒ송경호 기자
▲이정익 목사는 5월 24일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총장직을 퇴임한다. ⓒ송경호 기자

한국교회 대표적 지도자로서 원로가 된 후 작은교회 목회자들을 돕는 등 은퇴 목회자로서의 사역을 계속하고 있는 이정익 목사는, 지난 4월 18일 미래목회포럼(이사장 이상대 목사, 대표 이동규 목사)에서 한국교회에 대한 제언들을 전했다.

이 자리에서 이 목사는 은퇴를 앞둔 목회자들에게 △4-5년 전부터 준비할 것 △1년 정도 일찍 은퇴할 것 △후임자를 직접 고르겠다는 고집을 버릴 것 △은퇴 후 대우는 교회에 맡길 것 등 ‘경험에 기초한 지혜’를 전해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전편에 이어 은퇴를 앞두거나 은퇴한 목회자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리고 최근 서울신대 ‘유신진화론 논란’ 등에 대한 의견을 피력했다.

은퇴 준비, 5-6년 전부터 해야
마무리 잘하려면 연구도 필요
은퇴 시기가 목회 절정기 돼야
은퇴해도 20년, 만날 사람 있나

-평균 연령은 점점 늘어나 은퇴 후 보낼 시간이 늘어갑니다. 은퇴 선배로서, 목회자들이 은퇴 전 무엇을 준비해야 한다고 보시나요.

“목회자들 대부분이 은퇴를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은퇴 준비를 하라고 하면, 잘 이해를 못하세요. ‘은퇴는 그냥 하면 되지, 준비가 왜 필요하냐’고 반문하시죠.

은퇴 준비는 당장 되는 것도 아니고, 한 5-6년 전부터, 멀게는 10년 전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목회 마무리를 잘 해야 하니, 연구도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 날 갑자기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지요.

저는 먼저 은퇴가 가까울수록 목회의 스퍼트를 올리라고 합니다. 마라톤 경주에서 마지막에 스퍼트를 올리듯, 은퇴 후 남은 힘이 없을 정도로 달려야 합니다. 은퇴할 때가 목회의 최고 전성기가 되도록 끝까지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면 은퇴 과정부터 절차와 내용이 아주 부드러워져요.

그런데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그걸 모르고, 2-3년 남으면 놀러 다녀요. 몇 개월부터 1년씩 안식년을 달라고도 하죠. 그건 ‘목회의 ABC’도 모르는 행동이에요. 은퇴하면 쉴 날이 얼마나 많은데 미리 쉬려 하십니까?

또 은퇴 후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준비해야 합니다. 은퇴 후 20년 가량을 더 보내야 하는데, 건강도 챙기고 소일거리도 챙겨야죠. 이런 준비가 안 되면 자꾸 남들 신세를 지게 되고, 여기저기 기웃거리게 됩니다. 다 은퇴 준비가 안 돼서 그런 거예요.

그리고 은퇴 후라도 혼자 지낼 수는 없잖아요? 함께 더불어 보낼 사람들을 만들어야 합니다. 목회만 하다 보면, 하나님과의 수직적 관계는 강화되지만 수평적 관계가 약해지기 쉽습니다. 인간관계를 챙겨야 합니다.”

-목회 은퇴에 이어 총장직도 물러나시는데, 이후엔 어떻게 지낼 예정이신가요.

“아직은 할 일이 많이 있어요. 총장을 하면서도 많은 일들을 해 왔고, 여기저기 찾아뵐 곳도 많고 아직은 좀 분주해요. 몇 년 정도는 아직 할 일이 있습니다. 현역 때 교계 연합활동을 많이 했던 부분이 계속 연결돼서 이어지고 있어요.

외항선교회도 계속 도와야 하고, 어려운 목회자들을 세워주는 일도 계속 해야 하고, 은퇴 후 시작했던 희망재단도 다시 돌봐야죠. 그래서 건강 관리도 열심히 합니다. 몸 관리를 위해 굉장히 많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교단 소식도 좀 들으시는지요.

“종종 듣지만, ‘잘들 하겠지’ 하고 그냥저냥 지나가는 편이에요. 이런 말 저런 말 해도 안 될 것 같고요. 은퇴하니 이것이 어렵고 아쉬운 점이네요. 은퇴한 사람들은 말도 조심해야 하고, 갈 곳 안 갈 곳도 잘 구별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합니다. 꼭 하고 싶은 말들도 있지만, 조금은 자중해야죠. 가능하면 말을 안 하려 합니다(웃음).

요새 은퇴 후 여러 활동들을 하는 목회자들을 부정적으로 보는 현역 목회자들도 있는데, 그럴 이유가 있을까요? 현역들의 일을 침범하는 것도 아니고, 빼앗아서 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불평할 이유도 없고요. 그런 건 좀 지양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목회자들은 은퇴 후 목회하던 교회에 나가는 건 안 좋아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원로목사님을 보고 싶어하는 성도들도 계신데, 가끔 가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게 문제거든요. 후임자가 빨리 뿌리를 내려야 하는데, 은퇴 목사가 자꾸 왔다갔다 하면 그 목회자가 빨리 뿌리내리지 못하고 자꾸 흔들립니다. 후임자 중심으로 교회가 나가야 하는데, 영향력 있는 은퇴 목사가 왔다갔다 하면 어떻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주일에도 웬만하면 원 교회에 가지 말라고 말합니다. 집 가까운 다른 교회로 나가다가, 어디서 오라고 초청하면 가서 말씀 전하면 됩니다. 다만 후임자가 출장을 간다거나 몸이 불편하다거나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때 부탁을 해오면 강단에 설 수도 있죠. 교회들이 은퇴 목회자들 때문에 어려움 당하는 이유 중 하나가 이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가급적 떠나라는 입장입니다.”

▲목회자들의 은퇴에 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이정익 목사. ⓒ송경호 기자
▲목회자들의 은퇴에 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이정익 목사. ⓒ송경호 기자

교회 부흥하면 많은 문제 사라져
장로 죄 없어, 그런 분 어디 있나
부흥과 무흠, 인간관계 등 3요소
오히려 까칠하던 장로 전진 배치

-당회와의 관계 때문에 목회에 어려움을 겪는 목회자들도 있습니다. 선배로서 장로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해 나가는 게 좋을지 조언 부탁드립니다.

“당회 목회만 잘하면, 목회가 쉬워요. 우리 교단 헌법상 당회 목회를 잘하면 일반 목회에 어려움이 없어요. 그런데 당회 목회에는 원칙이 있습니다. 장로님들이 아무리 까다롭고 세도, 교회가 부흥하면 문제가 없어요. 목회자가 아무리 인격적이고 인간관계가 좋고 학위도 있고 유학파여도, 교회가 부흥하지 않으면 가만히 있던 당회도 시끄러워져요. 이게 제1원칙입니다.

모든 목회자들은 폐일언(蔽一言)하고, 교회를 부흥시켜야 합니다. 설교를 조금 못해도, 인간관계가 좀 서툴러도, 다른 부분이 좀 부족해도 교회가 막 부흥하면 누구도 말을 안 해요(웃음). 이게 원칙이에요.

그러니까 목회자들은 자꾸 ‘탓’해선 안 됩니다. 장로님들은 죄 없어요. 무보수로 봉사하고 헌금도 내고, 세상에 이런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근데 목회자들은 자꾸 장로 탓하면 안 돼요. 첫째는 교회를 부흥시켜야 합니다. 그러면 모든 문제가 해결돼요.

그렇게 한 교회에서 20년 목회했다면, 이미 인격적으로는 인정받은 거예요. 20년 탈 없이 있는 목회자는 다 보여줬는데, 흠이 없는 거죠. 그러면 누구도 시비 못 해요. 이미 영적 권위가 세워진 겁니다. 이런 분들은 메시지가 조금 약해도 은혜로 받아요. 그런 다음 장로님들과 관계에서도 예의를 다하면, 나이 많은 장로님들도 젊은 목사들을 함부로 대하지 못해요. 부흥시키고, 무흠하고, 인간관계를 잘 이루는 것, 이 3가지가 장기 목회의 원칙이에요.”

-마무리가 안 좋은 목회자들이 있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은퇴할 때 꼬이는 목회자들은 탐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은퇴 후 대우에 대해 노골적으로 얘기해요. 하지만 교회는 그렇게 이야기할수록 더 안 해줘요. 어떻게 해주든 감사하게 여기고 받아야죠. 거기서 ‘내 친구 목사는 이렇게 받았는데 그 정도로 해달라’고 해선 안 됩니다. 그 교회와 형편이 똑같을 수도 없고, 그 교회는 그럴 만큼의 분위기가 된 것입니다.

그런 분위기가 뭘까요? 아까 말씀드린 대로, 3-4년 남았을 때부터 목회 스퍼트를 올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은퇴 즈음 절정이 됩니다. 은퇴 시점이 목회에서 가장 부흥한 때가 돼야 합니다. 성도들이 볼 때 목사님의 은퇴가 아까울 정도가 돼야죠. 그러면 대우가 어떻겠습니까?

그리고 은퇴할 때 어려움을 겪은 분들의 공통점은, 은퇴가 가까우면 측근들을 전진 배치합니다. 그래서 마음에 안 드는 장로들의 의견을 숫자로 밀어붙여요. 그런데, 성도들은 목회자가 은퇴할 때까지 잘 참습니다. 은퇴가 1-2년 남으면, 목회자들에게는 시간이 굉장히 빨리 지나가지만 성도들에게는 하루가 천년 같아요(웃음). 목회자들이 이걸 모릅니다.

지금 교단법으로 은퇴가 만 70세까지로 1년 가량 늘어났는데, 오히려 1년 정도는 일찍 은퇴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분위기가 좋아져요. 분위기가 좋아져야 은퇴 과정도 부드러워져요. 그리고 까칠하던 장로들을 오히려 전진 배치해서, 그들이 사명감을 갖고 은퇴 로드맵을 만들게 해야 합니다. ‘후임자는 내가 정하겠다’는 것도 아주 어설픈 행동이에요.”

학문 자유와 넓은 연구 필요하나
신학교들 자유만 외칠 상황 아냐
동성애라면 몰라도 창조론을 왜?
완만한 성장 중시하다 쉬지 못해

-요즘 서울신학대학교에서 창조신학 논란이 있습니다. 목회도 하셨고 신학대 총장도 하셨는데, 학문의 자유와 교단 정체성 수호라는 두 가치를 어떻게 잘 융합할 수 있을까요.

“학문에는 자유함이 있어야 하고, 연구 분야도 넓을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 신학대 교수님들이 생각해야 할 것이 있어요. 지금 신학교가 처한 환경과 처지가 ‘학문의 자유’만 외치고 있을 상황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평화 시대도 아니고, 학문을 막 펼쳐야 하는 때도 아닙니다. 지금 신학교들 학생 지원이 저조해지고 있습니다. 미국 여러 신학교에서 학문의 자유만 외치면서 무책임한 신학을 전개하다 어떤 결과가 생겼는지, 심사숙고했으면 좋겠어요. 초점을 흐려지게 하는 상황을 만들어선 곤란합니다.

신학대학교들은 온 마음과 중심을 모아 미래를 염려하고 학생들이 자꾸 줄어드는 이유를 발견해야 하는데, 저런 문제로 역량을 소진해선 안 됩니다. 당장 시급한 문제도 아닌데 학교가 내홍을 겪는다면, 학교의 미래를 봤을 때 별로 소득이 되지 않는다고 봐요.

지금 동성애 문제 등으로 시급하게 토론할 순 있어요. 그런데 창조론으로 지금 왜 토론과 논쟁을 해야 하는지, 의구심이 있어요. 신학대 교수님들이라면 상황을 먼저 돌아봤으면 좋겠습니다.”

▲이정익 목사는 “은퇴 후 가까운 다른 교회를 지정해 다니는 것도 괜찮다. 꼭 본 교회에 출석할 필요가 있을까”라며 “후임 목사가 뿌리내릴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줘야 한다”고 전했다. ⓒ송경호 기자
▲이정익 목사는 “은퇴 후 가까운 다른 교회를 지정해 다니는 것도 괜찮다. 꼭 본 교회에 출석할 필요가 있을까”라며 “후임 목사가 뿌리내릴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줘야 한다”고 전했다. ⓒ송경호 기자

-목회자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우리 교단 신학이 조금 좁아요. 성결의 교리가 좁아요. 성결에는 소극적 성결과 적극적 성결이 있습니다. 소극적 성결은 교단이 지향하는 신앙 형태예요. 기도하고 금식하고 전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에요. 이를 바탕으로 적극적 성결로 나아가야 합니다.

적극적 성결은 결단이고 참여인데, 우리 교단이 좀 약한 부분입니다. 테두리를 너무 강화해 놓고, 넘지 않아요. 교계로 넘어가 보면, 우리 교단 사람들이 거의 없어요. 이것이 우리 교단의 약점이라고 봐요. 막 나가서 종횡무진으로 지경을 넓혀야 합니다. 울타리를 넘어보고, 다른 이들의 신학도 들어보고, 그들의 목회도 봐야 해요.

총장을 맡았던 실천신대에는 교단 울타리가 없잖아요. 신학이 넓습니다. 그러다 보니 내 목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목회’를 지향합니다. 저도 이 ‘하나님의 목회’를 강조하고 싶어요.

47년 목회했는데, 돌아보면 하나님 목회를 했나 싶습니다. 솔직히 내 교회 부흥시키려고 밤잠 설쳤죠. 은퇴하고 깨달았어요. 목회할 땐 안식년 갖는 것을 상상도 못했고, 안식월도 안 갔습니다. 외국에 나가도 한 주간 일하면 끝나자마자 돌아왔어요. 다음 주일 예배 때문이었죠.

그래서인지 신촌성결교회 부임 후 은퇴까지 조금씩 성장했습니다. 매년 세례교인이 400여 명씩 늘었어요. 그게 제 목표였습니다. 이 흐름이 멈출까 봐, 제가 멈추질 못했어요. 자동차가 오르막에서 멈췄다가 다시 가려면 힘들듯, 교회도 멈췄다 다시 가려면 힘들거든요.

어쨌든 은퇴할 때까지 완만한 성장이 계속됐습니다. 급성장은 좋은 게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니 정말 무엇 때문에 그렇게 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 때문에 그랬는지, 나 자신 때문에 그랬는지. 하나님 목회였나 내 목회였나 하는 말입니다.

결국 내 목회를 했지, 하나님 목회를 한 건 아니라는 결론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아주 부끄럽게 느끼고 반성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목회자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줘도 못 알아들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전의 저처럼 똑같이 목회할 것이고, 은퇴하고 나면 깨닫겠죠(웃음).

그래서 목회하는 후배들에게 ‘하나님 목회’를 강조하고 싶어요. 중환자실에 심방을 가면, 잠깐 있다 나가라고 하니 3분 정도 기도하고 설교하고 나왔습니다. 하지만 지금 다시 목회한다면, 30분씩 기도할 것입니다. 지금 그곳에는 목회자가 와서 한 번 기도해 주는 걸 그렇게 고대하는 절박한 사람이 있잖아요. 그런데 3분도 안 돼서 그냥 가버린다면, 의무적인 방문이 아닐까요.

당시엔 정당화됐지만, 지금 생각하니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30분간 기도해도 짧을 수 있어요. 혹시라도 제가 30분을 간절히 기도했다면 치유가 일어날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 목회’임을, 은퇴하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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