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석 한국공공신학연구소
▲김민석 목사는 자신의 교회들 간 상생 시도에 대해 “서로 간의 신뢰가 구축돼야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대웅 기자
한국공공신학연구소 소장 김민석 목사는 현재 교단이 다른 익산 기쁨의교회(담임 박윤성 목사)에서 청년부 담당자로 ‘공공신학적’ 목회도 하고 있다.

교역자들의 계획과 방침대로 진행되는 ‘탑다운 방식(Top-down) 방식 대신,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기획해서 사역하고 교회와 목회자는 뒤에서 지원하는 ‘바텀업(Bottom up)’ 시스템을 채택한 것. “바텀업 사례가 일상이 되는 날을 꿈꾸고 있습니다. 성공 사례가 없으면, 아무리 공공신학을 이야기해도 믿지 않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익산에서 대형교회와 작은교회들이 상생하는 청년연합 운동도 시도하고 있다. 작은 교회에서 익산 기쁨의교회로 오려는 청년들에게 ‘모교회에서 대예배를 섬기고 헌금도 드린 다음, 주일 오후 익산 기쁨의교회 청년부 예배에 와서 은혜도 받고 소그룹 모임도 하라’고 권하고 있다.

작은교회에서는 소진되기 쉬운 청년들이 또래와 교제하며 회복과 치유를 경험할 기회를 부여해 다시 작은교회에서 사역할 수 있게 하겠다는 획기적 실험이다. 작은교회에서 채울 수 없는 부분 때문에 수평이동이 일어나는데, 그 부분을 채워주면서 작은교회에 머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 역시 김 목사의 공공신학을 바탕으로 한다. 지난 편에 이어 계속되는 그의 공공신학 이야기.

스스로 하게 하면 책임감과 재미
목사 주도하면 ‘안 될 줄 알았다’
그들 주도하면, 남 탓 않고 성장
청년들에게도 실패할 기회 줘야
젊은이들 교회 오고 싶게 하려면
주체적으로 참여할 기회 부여를

-청년부에서도 공공신학 적용이 가능한가요.

“저희 교회에서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교회 행사는 목회자와 당회가 결정하고 성도들은 따라가는 구조였죠. 그런데 성도들이나 젊은이들은 본인들이 기획해서 만들고, 교회는 뒤에서 지원해 주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제가 지난 1년 반 동안 청년부를 맡으면서 ‘이거 합시다’ 해본 적이 없습니다. 청년들이 ‘이거 하면 어때요?’ 하면 ‘좋다’고만 했습니다. 완전히 비성경적이나 죄짓는 일이 아니면 다 지원해 줬습니다. 그러면 청년들에게 오히려 책임감이 생깁니다. 시켜서 억지로 하는 게 아니라, 재미있게 합니다.

또 실패해도 남 탓을 하지 않아요. 목사가 주도한 행사라면 ‘처음부터 안 될 줄 알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본인들이 주도하니 실패해도 그 속에서 성장합니다.

이를 교회 안에서 실천하기 힘든 것은, 어르신들이 청년들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자는 대로 하면 큰일 난다고 하세요(웃음). 그러나 청년부에서 1년 5개월간 그런 실험을 했더니, 오히려 2배 성장했습니다. 망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다른 교회들이 이렇게 해도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르신들도 실패하면서 성장하셨는데, 왜 젊은이들에게는 실패할 기회를 주지 않습니까? 그들도 실패할 권리가 있고, 거기서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청년들이 직접 해도 실패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젊은이들이 시대에 더 민감하기 때문입니다.

의사결정 구조부터 공공신학적 인식을 가지면 변화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주인으로써 하고 싶은 대로 다 했던 목회자나 당회는 불편하고 두려우실 수 있어요. 그러나 그것만 고집한다면, 사람들은 계속 떠날 수밖에 없고 그 교회는 십수 년 안에 문을 닫게 됩니다. 젊은이들이 교회를 오고 싶게 하려면, 그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교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공공신학이 필요합니다.

일례로 어느 교회에서 이런 내용을 강의했는데, 어르신들이 끝나도 안 가고 남아 계셨어요. 저보다 젊은 사람이 없었습니다(웃음). 강의 후 ‘젊은 교회를 만들기 위해 이런저런 대안들을 내놓았는데, 두 장로님이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 다투셨습니다. 뭐가 맞나요?’라고 질문하셨어요.

저는 ‘청년들에게 답을 물어보라’고 답했습니다. 청년들을 위한다면서 그분들이 주도하는데, 청년들이 진정 원하는 대로 될까요? 젊은이들을 위한 결정이라지만, 젊은이들을 위한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이런 부분들이 영향을 미치면 교회가 지역사회에서 다른 사람들과 적이 아니라 이웃으로 만날 수 있고, 그들의 목소리를 경청하면서 어울려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기여하게 됩니다. 적으로만 생각하면 대화도 할 수 없을뿐더러 사회 발전을 저해할 수 있어요.

믿지 않는 사람들은 ‘도대체 교회가 왜 필요하냐’고 되묻습니다. 그들 보기에 좋은 역할을 전혀 못한다는 겁니다. ‘너희들끼리 모여서 으쌰으쌰 좋고 끝나지 않느냐’고 합니다.

시골에서는 목회자가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것을 안 좋게 보는 성도들이 있어요. 목회자는 교회 안에 머물러 일해야 하고, 그런 분을 신실하다고 해요. 그러다 보니 지역사회와 함께 호흡하지 못합니다.

하루는 저희 고향에 놀러 갔는데 행사를 하더라고요. 청년회장이 초등학교 선배이고 제가 목사인 걸 아는데, ‘목사들은 왜 그러냐’면서 ‘만나기만 하면 교회 오라고 하는데, 너희는 왜 한 번도 안 오냐’고 했어요. 뒤통수를 세게 맞은 느낌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오라고 초청하면서, 정작 우리는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음을 알게 됐습니다.”

우리 신념 갖고도 대화·협력 가능
우리 사회 좀 더 좋게 만드는 대화
사회 위해 할 수 있는 일 너무 많아
적이나 개종 대상 여기면 대화 안돼
세상과 대화하다 신념 잃지 않도록
신념 지키다 세상과 담 쌓지 않도록

-지난 편에서 비기독교인들과 대화하려면 ‘주고 받는 것’이 있어야 한다고 하셨는데, 우리가 신앙적 부분에 있어 비신앙인들에게 양보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까요. 그들도 우리를 위해 내줄 부분이 없는 건 마찬가지인데요.

“대화 자체를 우리 것의 포기로 인식하면, 그런 현상이 나타납니다. 기독교 전통을 잃어버릴 것이라고 염려하십니다. 저뿐 아니라 사회와의 접점을 이야기하는 많은 공공신학자들은 우리 신념을 포기하지 않고서도 대화와 협력이 가능하다고 하십니다. 그 신념을 지키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우리 것을 간이고 쓸개고 다 내주자는 게 아니에요. 지킬 것은 지켜야죠. 공공신학은 반드시 성경과 신학에 기초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공공철학, 공공정치학, 공공정책학은 될 수 있어도 공공신학이 될 순 없습니다. 성경이 거부하는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대화하진 않습니다. 포기하지 않아도 그들과 함께할 것들이 많아요. 그런 것들 대신 차별금지법과 동성애만 이슈화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그런 부분들을 용납하지 않더라도 사회와 함께할 수 있는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예를 들어 생명과 환경에 관한 문제는 가장 강력하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외국 사례로는 이런 것이 있습니다. 길고양이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논의했는데, 보건학계는 전염병 때문에 안락사를 말하고, 환경업체 운영자는 동네 쓰레기봉투를 찢는다고 불평했습니다. 그때 기독교인들이 ‘길고양이들의 생명도 소중하다’며 제동을 걸면서, 어떻게 하면 고양이들이 다시 주인을 만나 죽지 않을 수 있을지 방안들을 내놓았습니다. 이런 기여를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를 좀 더 좋게 만들기 위해 대화에 참여하면 할 수 있는 일들이 너무 많은데, 세상을 적으로 보거나 개종시켜야 하는 대상으로 생각하면 그 대화조차 못 하게 됩니다. 세상과 대화를 추구하다 우리의 신념을 잃지 않도록, 그리고 반대로 우리의 신념을 지키려다 세상과 담을 쌓지 않도록 하는 고도의 능력이 필요한 분야입니다.”

공공신학, 사적 신앙 무시 아냐
자유주의·해방신학과 전혀 달라
‘예수’ 단어 안 쓰고도 전도 가능
공공신학 자체가 대안 전도 개념

-전도를 하지 말자는 말씀으로도 들립니다.

“공공신학을 오해하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사적 신앙을 무시하자는 것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예배와 기도, 찬양과 헌금이 쓸모없다는 거냐?’고 하는데, 그것들은 정말 중요하죠. 사적·공적 신앙이 양 날개가 돼야죠. 이건 필요 없고 사회복음만 필요하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공공신학은 오히려 사회참여라는 한쪽 날개를 잃어버렸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습니다. 좋은 전통들은 당연히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 모든 공공신학자들이 이런 전통을 무시하는 게 아닙니다. 자유주의나 해방신학과 비슷한 이야기를 하니까 그렇게 생각하시는데, 공공신학자들은 기독교 전통을 중시합니다.

말씀하셨듯 전도를 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당연히 전도해야 합니다. 어떻게 보면 공공신학 자체가 전도의 일환입니다. 이렇게 할 때 전도가 된다는 겁니다. ‘예수천국 불신지옥’만 외치는 게 전도일까요? 사회로 침투해 자연스럽게 행동과 삶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도 전도입니다.

공공신학자들은 ‘예수’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예수를 전하겠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용어를 노골적으로 사용하지 않을 뿐, 그 정신과 노력은 똑같이 합니다. 오히려 오늘날에는 날것으로 복음을 전하기보다 삶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전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죠.

공공신학은 예전 사회복음이나 자유주의 신학과 성격이 전혀 다릅니다. 오히려 반대로 기존 전도 방법이 먹히지 않으니, 이렇게 하자는 ‘대안적 운동’입니다. 그 사회 특성에 따라 복음이 전해지는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는 겁니다.

우리가 주류일 때는 교회가 실제로 사회보다 앞서갔습니다. 그때는 교회가 해줄 수 있는 게 많았어요. 종교적 용어를 날것으로 사용해도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사회가 변했으니, 접근 방식도 달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기본 사상은 아브라함 카이퍼의 영역주권론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세계를 지금도 다스리고 계신다. 이는 복음이 교회 안에서만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복음이 사회에서도 기여하고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우리가 해야 할 것과 가져야 할 태도에 대한 고민으로 나온 방법이 바로 공공신학입니다.”

김민석 한국공공신학연구소
▲김민석 목사는 “박사학위를 하고 돌아와 집에만 있으면서 코로나19를 원망했는데, 코로나19를 통해 공공신학이 매우 뜨거워졌다”고 전했다. ⓒ이대웅 기자
-공공‘신학’인데, 신학적으로는 어떤가요.

“처음에는 공공신학에 대한 정의가 필요했기에, 조직신학 쪽이 활발했습니다. 어떤 신학 운동이든 이론이 먼저 나오진 않습니다. 어떤 운동이나 현상이 먼저 나타나면, 이를 신학적으로 조명해서 이름을 붙이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내용의 움직임들이 생겼을 때, 이를 뭐라고 이름 붙일지 고민하다 신학이 공적 영역과 역할을 한다는 것이기에 ‘공공신학’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그리고 공공신학의 정의를 내리기 위해 조직신학 분과에서 많은 논의가 진행됐습니다.

어느 정도 자리잡힌 후에는 성경 어떤 구절들이 근거가 되는지 성서신학 분과에서 논의했고, 자리가 잡히면 실천신학과 선교학 분야로 나아갑니다. 요즘은 공적 선교, 공공 선교 같은 이야기들이 많이 나옵니다. 신학 전 분과에서 공공신학이 나오고 있습니다.

제가 공부한 남아공 스텔렌보쉬에서는 모든 영역에 공공신학 센터가 있습니다. 심지어 학교 전체가 공공신학을 추구합니다. 종합대학, 경제학과, 경영학과, 의학과에서도 공공신학 작업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어떤 문제에 신학적 이슈가 있는지도 함께 논의하고요.

한 예로 아프리카에는 재래식 여성 할례가 남아있어 성기가 썩어 없어집니다. 이러한 성기 재건 수술에도 신학자들이 참여해 대책을 논의합니다. 경제학과에서는 국가 경제정책을 논의할 때 신학적 입장과 성경적 정책에 대해 논의하고 듣습니다.

공공신학 컨퍼런스가 열리면, 신학자가 아닌 일반 전공 학자가 주제발표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반 학문 입장에서 문제를 던지면, 공공신학자들이 신학적 고민을 시작하는 방식입니다. 일반적 지식이 없으면, 정치·경제·사회를 신학적으로만 재단할 수 있습니다.

제가 법학 전공인데, 목사님들의 설교 듣다 보면 놀랄 때가 많아요. 유튜브 등에서 잘못된 법학 지식을 듣고 설교에서 인용합니다. 교회 안에도 경제학·경영학·사회학·심리학 전공자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들이 그런 설교를 들으면 시험들 때가 많을 것입니다. 설교도 그런 부분에서는 사전 검증이 필요합니다. 팩트체크를 안 해서 설교의 권위가 떨어지는 것입니다.

성경만 갖고 이야기해도 세상과 대화가 안 되지만, 이상한 이야기들을 끌고 와도 마찬가지입니다. 공공신학은 이런 면에서 다양하게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교회 안과 사회와의 관계에 좋은 쪽으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공신학을 배운 사람은 반지성주의로 갈 수 없습니다.”

25세 때 처음 교회, 신학 권유받아
6년 전임 사역 후 남아공으로 유학
스텔렌보쉬, 전 세계 공공신학 리드
공공신학 스펙트럼 알리려 사명감

-공공신학을 시작하신 계기는.

“법학을 전공하고 사법시험을 보기 위해 상경해 신림동 고시촌에서 공부하다, 26세에 처음 교회를 갔습니다. 6개월 만에 새벽·수요·금요 예배까지 출석했고, 3년 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았어요. 어느 날 목사님이 부르시더니, 목회를 권유하셨습니다. 6개월 정도 도망다녔는데, 하나님의 부르심이 느껴졌어요.

신학을 하기로 결단하고 부모님을 설득했는데, 너무 실망을 하셨습니다. 막내라서 예쁨을 많이 받았는데, 6개월간 제게 아무 말씀도 안 하셨어요. 결국 허락도 못 받고 안양대 신대원을 갔습니다. 3년 공부하면서 사역을 했지만, 신앙생활도 신학공부도 기간이 짧다 보니 부족함을 느껴서, 공부를 더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사역과 공부를 병행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습니다. 6년 간 전임 사역을 해서 지쳐 있기도 했고, 아이가 3명 있었는데 아내도 육아 스트레스로 지쳐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학을 떠나기로 했어요. 원래 영국이나 독일을 가고 싶었는데 영국은 너무 비쌌고, 독일은 어학이 부족했습니다. 그때 교수님이 남아공 스텔렌보쉬 대학교를 추천해 주셨습니다. 2년은 버틸 수 있겠다 싶어, 기본 교과서만 가져갔어요.

알고 보니 스텔렌보쉬는 전 세계 공공신학을 리드하는 학교였어요. 그때 공공신학에 대해 처음 들었고,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국내 서적들과 기사, 논문까지 다 읽어보니, 한국 사정에 너무 필요한 학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유학을 시작했지만, 교수님을 만난 첫날부터 뒤통수를 세게 맞았습니다. 이제까지 읽은 내용들을 말했더니, 교수님이 ‘어디서 그런 편협한 공공신학을 배웠냐’고 하셨어요. 한국 성도들이 공공신학을 오해하는 이유를 알겠더라고요. 목회자들도 한글로 된 공공신학 자료만 읽으면, 그때 저처럼 편협한 지식에 그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공공신학을 정당하고 정확하게 소개하고 싶은 비전이 생겼습니다. 알려지지 않은 부분들도 공정하게 소개돼야죠. 그럼에도 못 받아들인다면 할 수 없지요. 한국 개혁주의자들이 사모하는 웨스트민스터, 칼빈, 리폼드 신학교 모두가 공공신학을 하고 있는데, 잘 모릅니다.

공공신학의 전체 스펙트럼을 알리고 싶다는 사명감이 생겼어요. 한국에서 공공신학을 오해하는 분들도 대부분 개혁주의이니, 제대로 공부해서 오해를 풀어주고 싶었어요. 공공신학과 개혁주의·칼빈주의 신학과의 연속성을 밝히는 논문을 썼어요. 공공신학의 원류를 칼빈에서 찾아보는 내용이었습니다.

학위를 마치고 스텔렌보쉬에서 가르치는 등 여러 제안들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공공신학을 전공하게 하신 소명을 떠올리면서 뿌리치고 6년 만인 2020년 4월 돌아왔습니다. 공공신학을 널리 알려야 하는데, 코로나로 모든 학교가 셧다운돼서 집에만 있었어요.

그런데 대역전이 일어났습니다. 코로나를 원망했는데, 신천지발 집단감염부터 교회 비대면 예배 등으로 공공신학에 대한 관심이 커지기 시작했어요. 교파를 망라해 여기저기서 불러주셨습니다.

전국 어디든 불러주시면, 몇 명이 있더라도 찾아가서 공공신학에 대해 알려드리고 있습니다. 지방에 센터를 세운 것도 그때문입니다. 수도권에는 도움받을 곳이 많지만, 지방 목회자 분들은 그렇지 않으니까요. 지방 목회자 분들이 너무 고마워하십니다(웃음). 하나님께서 저를 준비시키셨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