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인공동체는 인간의 권리가 중요
아벨공동체는 하나님 뜻이 중요해
낙태 문제, 배우자 입장 거론 않아
샌델, ‘태아는 하나님의 선물’ 관점

천종호
▲천종호 판사는 책에서 “하나님은 선이시고, 최고선이시다”며 “따라서 선이신 하나님을 아는 일은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두란노

천종호 판사가 최근 탈고한 <천종호 판사의 하나님 나라와 공동선>은 <천종호 판사의 선, 정의, 법>, <천종호 판사의 예수 이야기>에 이은 3번째 시리즈 도서다.

첫 책인 <천종호 판사의 선, 정의, 법>은 ‘하나님의 선은 어떻게 인간 공동체에 구현되는가’를 부제로, ‘법이 정의가 되고 정의가 사랑이 되는 공동체’를 위해 기독교(아벨공동체)가 주로 말하는 선이 사회(가인공동체)에서 어떻게 정의와 법과 연결되는지 탐구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해야 할 삶과 공동체를 제시하고 있다.

<천종호 판사의 예수 이야기>는 제목 그대로 평신도 법관인 저자가 성경 사복음서를 종합해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이다. 책은 1-3부에서 예수의 탄생부터 사역과 죽음, 부활과 승천까지를 비신자들도 읽을 수 있도록 시간 순으로 정리했고, 4부에서 ‘정의롭고 선한 삶을 고민하는 이들에게’라는 부제처럼 이전 책에 이어 ‘선과 정의’에 대한 예수의 가르침을 소개하면서 예수가 꿈꿨던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도록 초청하고 있다.

<천종호 판사의 하나님 나라와 공동선>은 앞선 책 두 권의 ‘종합 완결편’ 느낌으로, 아벨공동체와 가인공동체 모두에게 ‘공동선’을 향해 함께 나아갈 것을 독려하고 있다. 신학·법학뿐 아니라 기독교 2천 년 역사 속 ‘공동선’ 논의 및 국가와 교회의 관계 등을 개관하고,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선 실천 방안을 제시한다.

세 권 모두에 치열한 공부의 흔적이 보인다. 마지막 책에만 각주가 550개 넘게 달릴 정도로 분야별 관련 서적들을 모조리 탐독했다. 그래서 대학원생인 딸이 ‘호통판사’인 그의 별명을 ‘광인’으로 바꿀 정도로, 독서와 연구에 몰입하고 있다. 천 판사도 요즘은 이 별명을 가장 좋아한다. 다음은 천종호 판사의 두 번째 이야기.

-책에 쓰신 바에 따르면 ‘가인공동체’ 사람들은 법으로 생명윤리나 성윤리, 가정 등의 분야에 있어 ‘선악과’를 따면서 자신들의 가치관을 세뇌시키려 합니다. ‘아벨공동체’인 교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여기서 우리가 공동선 입장과 권리주의 입장 중 어느 쪽에 서느냐에 따라 차이가 아주 큽니다. 가인공동체, 세상의 입장은 하나님이 아닌 인간, 자기 자신이 주권자입니다. 인간 주권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권리가 됩니다.

그러나 아벨공동체의 주권자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인간의 권리가 아니라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뜻’이 가장 중요합니다. 하나님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과 연합해야 하고, 그 연합을 위해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라는 질서가 필요합니다.

그런 질서가 이뤄지면, 하나님 형상을 받은 사람들이 모인 아벨공동체 사람들이 가인공동체 사람들과 소통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권자가 아니므로 그들을 차별할 수 없습니다. 공동선 입장에 서면, 가인공동체와 아벨공동체 어디에 속해 있든 모든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동등한 천부인권을 받은 존재이기에 정치사회학적으로 동등하게 가치와 권리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질문하신 생명윤리나 성윤리 등 요즘 각종 문제에 대한 해결 방식이 각자 달라집니다. 저는 생명윤리와 성윤리, 혼인제도와 사회복지, 범죄와 통일, 4차 산업혁명과 실업, 지역균형 발전과 환경 등 ‘공적 광장에 선 기독교인들이 응답해야 할 10가지 과제’를 분류해 놓았고, 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정리 중입니다.

예를 들어 낙태 문제에서, 가인공동체에서는 태아보다 여성의 권리를 우선시합니다. 하지만 아벨공동체, 공동선 입장에서는 태아와 여성의 권리 충돌로 보진 않습니다. 사실 지금 뱃속에 있어 보이지 않는 태아가 자연적인 성관계를 통해 생겨나고 완성돼 태어나기까지는 태아와 여성뿐 아니라 배우자와 공동체가 있었습니다.

최근 여성의 권리를 강조한 <낙태론자를 위한 변론>을 읽어봤지만, 400쪽 가까이 되는 책 내용 중 상대방 남성의 입장은 전혀 나오지 않아 깜짝 놀랐습니다. 오로지 여성이 자기 행복과 권리 추구를 위해 낙태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 태아가 생명체냐 아니냐, 인격체냐 아니냐 하는 권리 투쟁의 시각으로만 보고 있습니다. 정상적 성관계로 임신을 했을 때 상대방 의사는 전혀 묻지 않고 자기만의 권리라고 주장하면서 낙태해도 되느냐 하는 질문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공동체주의자가 낙태 문제를 거론하려면 반드시 그 문제를 짚어야 합니다. <정의란 무엇인가>를 썼던 마이클 샌델(Michael J. Sandel) 하버드대 교수도 태아에 대해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관점을 갖고 있습니다. 그 선물을 너희들 마음대로 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샌델 교수도 공동체주의 관점이고 공동선을 주장하는 분입니다. 그 관점에 서면 다른 시각을 갖게 되고, 좀더 새로운 시각으로 문제에 접근해 결론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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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종호 판사가 펴낸 책 3권.

-판사님 같은 고민을 갖고 판결하시는 판사님들이 얼마나 계실까요.

“이혼 문제를 예로 들겠습니다. 성경에서 이혼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제가 성경에 따라 사유 불문하고 이혼은 안 된다고 판결할 수는 없겠지요. 가인공동체가 만든 법을 지키면서도, 어떻게든 공동선을 드러내는 판결을 해야 합니다.

이혼을 어떤 입장에서 어떤 사유로 허용할 것인가. 적어도 책임 없는 쪽이 소송을 제기했을 때만 인정해 주는 입장이 유책(有責)주의입니다. 반면 파탄(破綻)주의는 책임 유무를 묻지 않고 혼인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때, 즉 혼인공동체가 심각하게 파탄되어 회복 가망이 없을 때 또는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을 때 등 ‘파탄’을 이유로 이혼을 허용하는 입장입니다.

6-7년 전 전국 가정법원 판사님들이 모여 세미나를 했습니다. 여기서 개인의 권리를 강조하는 권리주의 입장과 공동선 입장, 파탄주의와 유책주의 중 어디에 설 것인지 토론했는데, 다수 의견이 유책주의였습니다. 그때까지는 공동선 입장에 있었지만, 사회 변화에 따라 생각이 바뀌면 이것이 역전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될 때까지 그들의 사상을 알 수 없지요.

그래서 저는 교회 청년들 법률가나 정치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적어도 이런 관점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제가 이 책을 쓴 이유도 공동선의 개념이 먼저 정립돼야, 아까 말씀드린 10가지 구체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공동선 입장에서 어떻게 할지 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최종 목표는 이 10가지를 주제별로 전문가들과 의논을 거쳐서, 적어도 기독교인들은 이렇게 접근하자는 책을 펴내고 싶습니다. 낙태나 안락사 등 가인공동체 속에서 기독교적인 시각으로 답해줄 것들이 수두룩하기 때문에, 전문가들과 함께 논의해서 후배들에게 결과물을 남겨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오늘 대학생들을 위한 강의에서 창조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는데, 창조와 진화를 이해하기 위해 100권 가까운 책을 접했습니다. 2019년부터 지난 4년간 철학·윤리학·신학 등의 분야를 360여 권 읽었습니다. 제가 알아야 아이들과 대화하면서 이런저런 관점을 토대로 설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동성애 차별’ 개념 정의, 합의 안 돼
입증 책임 피고소인에 넘겨선 안 돼
그들이 원하는 대로 차금법 통과되면
민·형사상 제재받을 가능성 높아져

-민감한 부분일 수 있지만, 차별금지법에 대해 여쭙고 싶습니다. 제정 찬성론자들은 법이 통과돼도 설교에서 동성애를 반대했다는 이유로 법적 처벌을 가하는 판결은 나오지 않는다는데, 판사로서 어떻게 보시는지요.

“1차로 우리가 차별 행위를 해선 안 된다는 전제는 맞습니다. 그러면 차별의 유형이 문제가 되지 않겠습니까? 남여, 인종이나 장애 유무 등을 이유로 차별하면 안 되겠죠. 이런 차별금지법의 핵심 내용들은 이미 다른 법에서 다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동성애 하나로 법안을 만들 수 없으니, 종합적으로 차별을 금지하는 법을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그 법안의 핵심은 동성애자들에 대한 차별 여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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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종호 판사의 ‘만사소년’에서 청소년들을 위한 축구 경기를 시작하는 모습. ⓒ만사소년
가장 먼저 정립할 부분은 동성애자에 대해 우리가 어떤 행위를 해야 차별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런 개념 정의부터 합의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결국 저들이 원하는 개념 정의가 받아들여질 것입니다. 그러면 그 개념을 위반할 때 처벌을 당할 수 있습니다.

법안이 통과될지 안 될지 모르겠지만, 가장 큰 문제는 입증 책임을 고소인이 아닌 상대방, 피고소인에게 넘기는 내용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이는 법의 대원칙에 위반됩니다. 입증 책임 원칙이란 소송으로 이익을 얻는 쪽이 증거를 제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빌린 돈을 갚아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면, 돈을 빌려 준 사람이 증거를 제출해야 합니다. 모르는 사이인데도 ‘돈을 갚아 달라’고 소송을 제기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럴 때 소송을 제기한 사람이 빌려 줬다는 증거를 제출해야지, 소송을 당한 사람이 어떻게 빌린 적 없다는 증거를 내겠습니까?

동성애의 경우 만약 목회자가 했던 어떤 발언을 이유로 고소를 했다면, 고소인이 ‘이것은 혐오의 동기가 있다’고 입증해야 합니다. 그런데 입증 책임이 전환되면 피고소인이 ‘당신에게 그럴 의도가 없었다’고 증명해내야 합니다.

개념 정의와 입증 책임의 문제가 차별금지법의 핵심 쟁점이 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차별금지법이 그들이 원하는 대로 통과되면 민·형사상 제재를 받을 가능성이 없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책도 많이 읽으시고, 판사 업무도 하시고, 위기 청소년들도 꾸준히 만나시고…. 판사님의 하루와 일주일은 저희와 어떻게 얼마나 다른 건가요.

“일단 2019년부터는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있습니다. 위기 청소년들과 약속한 매주 금요일 저녁 축구 경기는 꼭 갑니다. 대신 가족 행사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주말에는 거절하기 어려운 요청이 들어오면 강연을 가기도 합니다.

나머지 저녁 시간은 책 읽고 글 쓰는 데만 보내고 있습니다. 저는 남들보다 아침마다 1시간 일찍 가서 일합니다. 그리고 남들보다 일찍 잡니다. 밤 9시 30분이면 졸음이 와요(웃음). 그래서 새벽 4-5시에 일어납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