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사학회와 한국복음주의역사신학회 공동학술대회
▲한국교회사학회와 한국복음주의역사신학회 공동학술대회 현장.
한국교회사학회와 한국복음주의역사신학회가 지난 18일 루터대학교 팔복루터교회에서 제155차 공동학술대회를 개최했다.

‘동방정교회(Eastern orthodox Church)의 이콘(성화)과 기독교 예술을 찾아서’를 주제로 한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박암브로시오스 조그라포스(이하 조성암) 대주교(한국정교회 대교구)가 주제 발표를 맡았다.

조성암 대주교는 “교회에서 성화가 사용된 것은 4세기나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성화는 이미지의 사용을 통해 교회의 성서적, 교회론적, 그리스도론적, 영적 가르침을 전달하려는 목적으로 사용됐다”고 했다.

그는 “구약성경에서 성화에 대한 주된 언급을 찾을 수 있는데, 이는 성막에 헤루빔을 만들라는 하나님의 명령과 관련된 것이다. 신약성경에서 성화의 중요성은 요한복음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강조된다”며 “성육화하신 하나님 말씀을 형상으로 나타내는 것은 하나님의 신성이 아니라 인성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신성의 측면에서 보면 신성을 형상화하는 것(즉, 성화로 표현하는 것)은 광기스럽고 불경스러운 일이었다”고 했다.

이어 “온 교회를 뒤흔들었던 ‘성화 파괴’라는 대격변은 중간에 있었던 약간의 중단을 제외하고 약 116년 동안 지속되었다”며 “성화 옹호자들은 ‘우상숭배는 만들어진 물질이나 재료를 숭배하지만, 성화에 대한 공경은 성화가 표현하고 있는 원형에게 전달된다. 성화 속 인물은 상상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이기에 이미지로 표현될 수 있다’고 했고, 교회의 교부들과 신학자들은 성화를 다시 교회의 삶에 들여오기 위해 그토록 힘들기고 끈질긴 투쟁을 벌였다. 교부들은 ‘말씀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계셨기’ 때문에 삼위일체의 두 번째 위격인 예수 그리스도를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고 또 그려야 마땅하다”고 했다.

또 그는 “정교회 신자들이 성화를 예배한다는 것은 무지로 발생한 매우 큰 오해다. 오직 참된 삼위일체 하나님만 예배할 따름이다. 이 주제는 교회의 기본 교리로서 787년 비티니아의 니케아에서 열린 제7차 세계 공의회에서 확립되었다. 세계 공의회는 성화에 흠숭(예배)이 아니라 공경과 경의를 드려야 한다고 분명하게 결정했고, 이 결정들은 성화에 대한 교리가 되었으며, 모든 정교 그리스도인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 교리를 믿어 왔다”며 “성화를 숭배하고 예배하는 것은 이단으로 정죄 받으며 따라서 정교회 신자들에게도 이질적이고 낯설게 느껴지는 관습”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성화는 미학적 가치가 높은 예술 작품이지만, 성화의 주된 역할은 시각적 만족을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신자들에게 교회의 교리와 정신을 가르치는 것이다. 책이 교육을 받은 사람들을 위한 것이듯, 그림은 글을 모르는 사람을 위한 것”이라며 “정교회 예배에서 성화를 사용하는 것은 교육적 특징을 지닌다. 수많은 이미지에 노출된 현대인에게 성화의 사용은 복음을 전함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했다.

죽음의  춤 종교개혁
▲번트 노트케(Bernt Notke)의 <죽음의 춤(Danse Macabre)>. 종교개혁을 지지했던 화가들은 죽음의 춤 시리즈를 통해 가톨릭이 한계에 도달했으며 종교개혁의 그 대안임을 묘사하기도 했다.
이후 ‘16세기 네덜란드 미술을 통해서 바라본 기독교 미술의 특징’을 발표한 라영환 교수(총신대)는 “그동안 많은 학자가 종교개혁 진영의 예술을 규명하려는 시도를 해왔다. 지난 수년간 아트미션과 기독교미술인협회를 중심으로 기독교미술의 정체성 규명, 기독교적 관점에서 논의한 현대 미술의 문제, 기독교 세계관의 관점에서 본 예술의 본질 등 주목할 만한 연구들이 이루어졌다”며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 미술이 갖는 미술사적인 의미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이집트로부터 종교개혁 시기까지 서양 미술이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지 살펴보아야 한다”고 했다.

라영환 교수는 “초기 프로테스탄트 진영의 화가들은 중세 가톨릭의 문제를 지적하는 그림들을 그렸고, 종교개혁이 그 대안임을 묘사하기도 했다. 또 누군가의 해석이 아니라 화가가 자신이 보고 느끼는 것을 화폭에 담기 시작했다. 사상적으로 보면 보편에서 개체로 그 중심이 이동했다. 원근법의 등장도 중세의 몰락과 관련이 있다”며 “르네상스는 중세와 달리 보편에서 객체로, 타인의 해석에서 자신의 해석으로 그 중심을 이동시켰다. 종교개혁 이후의 개신교 예술은 부분적으로는 르네상스 예술에 빚지고 있다. 다만 발점에 있어 근본적 차이를 보였다”고 했다.

얀 반 호이엔 참나무가  있는  풍경 바니타스
▲얀 반 호이엔(Jan van Goyen, 1596-1656)의 <참나무가 있는 풍경(Lansscape with Two Oaks)>. 참나무는 바니타스(vanitas)를 상징한다. 호이엔은 이 작품을 통해 덧없는 세상에서 잠시 쉬어가는 나그네 인생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라 교수는 “종교개혁가들은 인간이 이 세상에서 행하는 모든 일은 소명이고 하나님의 문화 명령을 성취하는 방법이라고 봤고, 종교개혁의 영향으로 화가들은 자연과 자신들의 일상을 화폭에 담기 시작했다. 세속적인 이미지에 종교적인 의를 부여했다”며 “또 초월을 강조했던 중세, 현실을 강조했던 르네상스와 달리 네덜란드 화가들은 은총과 자연의 통합을 시도했다. 이들은 하나님의 눈으로 대상을 바라보고 그것을 화폭에 담고자 했다. 이들이 바라본 자연은 하나님의 은총이 필요한 곳이었다”고 했다.

또 “풍경화와 마찬가지로 풍속화 역시 종교개혁의 산물이었다”며 “종교개혁은 인간의 존엄성과 동시에 인간이 얼마나 부패한 존재인지를 보여 줬다. 네덜란드 풍속화는 이러한 배경에서 시작되었다. 이들이 바라본 일상은 하나님의 부르심의 현장이었다. 이 시기 장르화의 중요한 주제들은 미덕과 악덕, 나태와 타락, 탐욕과 성실과 같은 것들이었다. 이는 칼빈주의의 경제 윤리관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했다.

그는 “이처럼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 진영의 화가들은 성경 그림 대신 풍경화나 풍속화 그리고 초상화를 주로 그렸지만, 이런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렘브란트는 성경을 주제로 한 그림을 많이 그렸다. 그의 그림에는 가톨릭에서 볼 수 있는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그림이 거의 나타나지 않았고, 성경 이야기를 담담하게, 단순하게 묘사했다. 그의 그림에는 이신칭의,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와 같은 종교개혁 사상이 그 바탕에 깔려 있다”고 했다.

끝으로 그는 “네덜란드에서 활발했던 개신교 미학은 18세기에 접어들며 쇠락하다 19세기에 들어오면서 재조명되고, ‘창조-타락-구속’의 틀로 세상을 바라보는 긍휼의 미학으로 발전한다”며 “긍휼의 미학은 가톨릭의 그리스도의 수난을 강조하는 고통 혹은 수난의 미학과 구별되는 개신교 예술의 중요한 특징이 된다”고 했다.

이밖에 분과별로 최정기 교수(성서침신대), 김호욱 교수(광신대), 최상도 교수(호남신대), 황훈식 교수(평택대), 정병식 교수(서울신대), 정원래 교수(총신대)가 좌장을 맡고, 김현수 교수(한국성서대), 전경숙 박사(제이케이 인문주의 신학연구소), 노혜경 박사(백석대), 홍경만 교수(루터대), 김성욱 교수(웨신대)가 각각 ‘이콘, 이콘 화가: 푸르나의 디오니시오스의 『이콘 제작 규범집』을 중심으로’, ‘알브레히트 뒤러의 두 동판화 서재의 성 히에로니무스와 멜랑콜리아에 표상된, 근대 유럽 기독교사회가 요구한 미덕과 악덕의 모순점 연구’, ‘니카이아 회의 이전까지의 로고스 신학 이해’, ‘초기 루터교회 건축의 정치적 연관성에 관한 연구: 성 토르가우 교회를 중심으로’, ‘헨델의 메시아 His yoke is easy에 관한 역사신학적 연구’를 발표했다. 논찬은 남성현 교수(서울한영대), 서나영 박사(백석예술대), 양신혜 교수(수원신학원), 배정훈 교수(고신대), 전광수 교수(서울성경신대) 등이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