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대 예장 통합, 현재 감리회 목사 시무
이찬혁·이수현 등 선교사 자녀들 어울려
한국에서 돌아온 몽골인 가정들도 출석

몽골 울란바타르 한인교회 30주년
▲1-4대 담임목사 부부가 함께한 모습. 왼쪽부터 안교성·안광표·김봉춘·이상수 목사 부부.
몽골 울란바타르 한인교회 창립 30주년 기념 예배가 지난 20일 본당에서 개최됐다.

몽골 울란바타르 한인교회는 1992년 개방 첫 해 세워진 첫 한인교회이자, 각 교파가 연합한 초교파 교회이다.

이날 예배에는 초대 안교성 목사(1992년 11월), 2대 안광표 목사(2000년 7월), 3대 김봉춘 목사(2016년 10월)부터 현 담임 이상수 목사(2020년 1월)가 모두 참석했다. 1-3대 목사는 예장 통합, 현 목사는 감리회 소속이다.

이와 함께 주몽골 한국대사관, 몽골한인회, 몽골상공인회, 다문화회, 대암이태준장학회, 몽골한인신문, KCBN, 제주몽골올레, 몽골국방대, 몽골의대, 후레정보통신대, 몽골국제대, 국제울란바타르대, 국제울란바타르대 간호대, UBMK, CBMC, UBTC, 감리교선교사회, 침례교선교사회, 성결교, 가까운 교회 등 많은 한인들이 함께했다.

이날 기념 예배에는 많은 한인들이 참여한 가운데 임직식도 함께 진행됐다. 장로, 안수집사, 권사 임직자들은 교단 배경도 통합(김안국 장로), 합동(최상운 장로, 백종천 안수집사), 성결교(김영선 안수집사), 초교파(에스더/델게르체첵 권사) 등 다양하다.

지난 30년 간 장로교 목사가 담임할 때는 감리회 장로들이 주로 교회를 섬기고, 감리회 목사가 담임할 때는 장로교 장로들이 주로 교회를 섬겼다고 한다.

초대 담임이자 현 장신대 역사신학 교수인 안교성 목사는 “한국 한인교회 역사는 연합의 역사이고, 교파를 초월한 복음의 통로였다”고 밝혔다.

몽골 울란바타르 한인교회 30주년
▲어린이들 축하 공연 모습.
◈몽골 울란바타르 한인교회는

교회에 의하면 몽골은 1920년대 200년 넘는 청나라 지배의 시절을 끝내고 독립했으나, 70년 공산주의 시절을 보내며 교회와 기독교 복음을 찾아 보기 힘들어졌다. 1992년 동구권 몰락과 함께 개방된 후 처음 세워진 울란바타르 한인교회는 아직까지 이런 연합 성격을 잘 유지하고 있다.

몽골 울란바타르 한인교회는 몽골한인 역사와 맥을 같이 한다. 1992년 몽골 개방 후 대사관 직원, 한인, 선교사 등이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면서 시작된 것. 한인교회 목회를 맡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소망교회 부목사이던 안교성 목사가 담임을 맡았다.

1992년 11월 15일 창립 후 교회는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감당했다. 유일하게 외국으로 전화할 수 있는 전화기가 담임목사 집에 설치돼 통화료를 내고 고국과 소통했다. 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 배급을 받아야 하던 시절, 한인교회 주일 예배 이후 식사는 한국 음식을 먹을 유일한 기회였다. 매 주일예배는 한인들과 유학생들이 모이는 잔치가 됐다.

이후 1994년 세브란스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몽골에 ‘연세친선병원’이 설립됐다. 감리교 장로인 전의철 박사가 이 일을 맡아 몽골에 왔고, 장로로 성실하게 섬겼다.

또 독립운동을 하며 몽골까지 와서 몽골 마지막 황제 주치의가 된 이태준 박사의 공로를 발굴, 훈장 추서와 함께 공원부지도 받아 한인들의 모든 행사의 중심인 이태준 기념공원이 만들어졌다.

2000년부터 시무하다 2016년 은퇴한 안광표 목사는 “분당 할렐루야교회와 수지목양교회 정관을 기초로 교회 헌법과 정관을 초교파적으로 잘 만들었다”며 “악동뮤지션(현 악뮤)으로 잘 알려진 이찬혁 군과 이수현 양이 다니던 교회도 이곳이었다. 한인 자녀들이 어울리고 함께 배우는 장이 교회였다”고 전했다.

안광표 목사는 “몽골에 현지 사역을 하러 온 선교사들도 문화 적응과 현지 선교 준비를 한인교회에서 함께했고, 역대 몽골 한인회 회장들도 한인교회를 다녀야 회장이 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한인 사회와 밀접 하고 친분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2013년 이후 몽골에 경제난이 찾아와 개발도상국에서 후진국으로 지위가 변동됐고, 코로나19 이후 중국의 봉쇄와 전쟁까지 겹쳐 몽골 경제는 많이 어려운 상황이다. 지금까지 이어진 여파로 많지 않던 한인 인구도 더 줄어, 이제 3분의 1 정도인 1천 명 정도 남아있다.

몽골 울란바타르 한인교회 30주년
▲임직식 모습.
한인교회도 이러한 상황에서 위기가 없지 않았지만, 교파 연합 정신과 믿음으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서로 격려하며 복음 위에 터전을 잘 지켜 오늘에 이르렀다.

2016년 10월 김봉춘 선교사가 3대 담임으로 부임했고, 2020년 1월 이상수 목사가 청빙돼 부임했다. 하지만 부임 이후 시작된 코로나19로 교회는 2년 간 예배를 제대로 모이지 못하고 온라인으로 모여야 했다.

성도 없는 예배당에서 영하 40도의 추위와 싸우며 이상수 목사는 SNS 응원 메시지를 작성하고, 온라인 새벽기도를 창세기부터 말씀 기도로 시작하는 등 1인 미디어 목회를 시작했다. 어려움 속에서도 비상체제로 부서장들이 모여 교회를 지키고, 교회를 다시 세우기 위해 말씀 중심, 기도 중심으로 다시 신앙을 다지기 시작했다.

현 담임 이상수 목사는 “3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다른 교단·교파의 이름을 가진 한인 교회들도 생겨나 처음 함께 모이던 모임이 교파별 모임으로 나눠지기 시작했다. 초창기 협력하던 선교사들은 현지 교회를 개척하고 사역하느라 협력 기회가 적어졌다”며 “몽골 내 한인들도 많이 줄어 예전 같지 않은 교회 분위기에 염려도 있지만, 동토의 땅 몽골에서도 봄이면 초록의 초원이 움트듯 복음은 희망으로 다시 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상수 목사는 “몽골에는 유학과 노동 등의 이유로 한국을 다녀온 사람들이 10만 명을 넘는다. 다문화가정을 잘 이루고 사는 분들, 몽골 분들이 한국에서 거주하며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다 다시 몽골로 가족이 들어온 경우도 많다”며 “독특한 것은 한국에서 복음을 받아들이고 교회를 다니며 신앙을 가지게 된 분들이 몽골 현지 교회에 잘 적응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유는 초기 선교사들이 현지 교회를 가난한 게르촌 지역을 중심으로 개척해 교회가 형성돼, 한국 문화를 경험하고 몽골 중산층 부류가 된 이들이 함께하기에는 어려운 문화가 됐기 때문이다.

이 목사는 “이미 한국에서 자란 자녀들은 양고기보다 김치찌개를 선호하고, 학교도 한국어를 사용하거나 한국 문화와 체계의 학교에 다니고 싶어한다”며 “한국 선교사들에 의해 세워진 국제울란바타르대학교, 몽골국제대학교, 후레정보통신대학교 등과 부속 초·중·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다. 그래서 코로나 이후 매주 2-3명의 몽골 분들이 교회를 물어 물어 찾아 오고 있는 상황이다. 본인들도 한국에서 하던 신앙생활을 이어가고 싶고, 아이들도 그 믿음의 뿌리를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기 때문”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울란바타르 한인교회는 몽골에 공식적으로 교회가 하나도 없던 1992년 설립돼, 앞으로 세워질 몽골교회에 모범이 되는 선교적 교회, 한인들을 돌보는 교회, 선교사들을 돕는 교회라는 분명한 목표가 있었다”며 “2000년대 부흥 성장하며 선교사 자녀들을 품고, 선교사들을 훈련시키는 신앙 훈련소 역할도 충분히 감당해 왔다. 이제는 몽골 다문화 가정과 몽골에 이민 온 한국 가정, 한국 문화에 적응하여 한국에서처럼 신앙생활을 하고 싶어하는 몽골 분들을 신앙 요청을 받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 목사는 “교회 설립 30주년을 맞아 새롭게 선교적·복음적 각오를 다지면서, 소중한 분들이 장로와 안수집사, 권사로 부름받으셨다”며 “이제 다시 한인들을 품고, 교파 연합을 넘어, 민족과 이념을 넘어, 주님 오시는 날까지 소명을 잘 감당하는교회로 든든히 자리잡고 나가길 기도해 달라”고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