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여성이 된 지금의 나, 모성애란 존재 느껴져
남성이던 나, 근육량 늘었지만 진짜 바뀌진 못해
성전환 후 유리에 비친 내 모습… 인위적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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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트랜스젠더 이효진 양은 “육체노동을 하면서 남녀의 차이가 확실히 있음을 느끼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송경호 기자

‘소금과 빛’은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역할이자 사명일 것입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맛을 내고 빛을 내는 전문인들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성패(成敗)의 패러다임을 밀어내고, 현재진행형의 “분투”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삶의 서사를 관통하는 질문들을 찾기 위해, 정애주 대표(홍성사)와 함께 했습니다. 그래서 ‘크로스’입니다. ‘십자가’라는 뜻도 있지요.

두 번째 주인공은 성별을 바꿨다가 다시 자신의 성별로 돌아온 이효진 씨(빛의자녀교회)입니다. 이 씨는 성 정체성에 혼란을 겪어 5년간 남성호르몬의 도움을 받으며 남성으로 살다가, 다시 여성으로 돌아왔습니다.

이 씨는 “완벽하게 성전환을 하려면 성염색체(XX-XY)를 바꿔야 하는데,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며 “여자의 몸으로 남성으로 산다는 것은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지만, 아무도 심각성을 말해주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남자는 남자답게, 여자는 여자답게 살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말하는 그녀의 이야기를 2회에 나눠 들려드립니다. -편집자 주

-여성과 남성, 그리고 사람이라는 3가지 정체성을 경험하셨습니다. 흔치 않은 경험입니다. 다른 점이 있고, 공통점도 있을 것 같습니다. 각각의 특성 혹은 공통점을 구별해서 설명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여성에 대해선 지금 현재 모습을 이야기하겠습니다. 성별을 회복하고 진짜 여성이 됐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32세에 완전히 회복이 됐고, 여자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성 하면, 먼저 ‘엄마’가 떠오릅니다. 엄마에 대한 상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나중에 ‘엄마’가 될 것도 생각하게 됩니다. 목양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여성으로서 ‘모성애’를 많이 느낍니다. 건강하지 않은 여성으로 살았기에, 성전환을 하면 극복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에서야 정말 여자로 살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자유합니다.

모성애란 것은 확실합니다. 누군가를 볼 때도 긍휼한 마음이 생깁니다. 전에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단편적으로 누군가가 힘들겠다 생각했을 뿐, 마음으로부터 ‘어떤 이유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남성이 된 이후엔 어떠셨나요.

“여자로서의 삶은 선택이 아닌, 주어진 것이었어요. 원해서 여성으로 태어난 것도 아니고, 여성으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혼란이 있던 20대 시절엔 정신적으로 제가 일에 집중하느라, 여성으로써 육체를 망가뜨리면서 살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다시 보니까, 나는 보호받아야 한다는 걸 느꼈습니다.

성전환 이전엔 남자들이 경쟁 상대였습니다. 남자가 무거운 걸 들면, 저도 보란 듯이 들었어요(웃음).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무거운 게 있으면 ‘들어주실래요?’ 하게 됐습니다. 남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요.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모습이 감사하고, 이런 부분에서 자유해진 것이 신기합니다.

호르몬을 맞고 트랜스젠더 남성으로 살 때, 육체적 변화가 가장 많았습니다. 정신적인 것도 결국 육체적이라고 생각해요. 정말 뇌구조가 바뀌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로봇 같아졌어요.

여자들은 월경을 하다 보니, 주기가 있고 감정선이 왔다갔다 하잖아요. 그런데 남자들은 일관적이에요. 저도 호르몬을 통해 인위적으로 월경을 안 하면서 완전히 감정선이 직선처럼 됐는데, 죽은 것 같았어요.

당시에는 ‘이런 게 남자구나’ 했습니다. 하지만 인위적이다 보니, 여성으로 살던 제 감정선에서는 데미지가 너무 컸어요. 원래 남성인 분들은 태어날 때부터 그런 거라 상관없겠지만, 갑작스레 변한 제게는 충격이었습니다.

성전환 이전의 저는 남성적인 호칭을 듣고 싶어했습니다. 예를 들어 제게 언니나 누나, 이모라고 부르는 걸 정말 싫어했어요. 어머니가 ‘우리 딸’ 이렇게 부르는 것도 싫어했습니다.

그런데 남성으로 변한 뒤 실제로 호칭을 들었을 때, 느낌이 달랐습니다. 지나가다 귀여운 아기가 있길래 인사했는데, 할머니가 ‘삼촌한테 인사해야지’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때 약간 정신이 멍해졌어요. 듣고 싶었던 호칭이었는데, 몸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생각하고 상상하고 완벽한 남성의 모습으로 산다 해도, 제 안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때 유리에 비친 제 모습을 보게 됐습니다. 서른 살 때였는데, 저게 진짜 나인가? 생각을 굉장히 많이 했습니다. 저 모습은 인위적인 이효진이지, 자연스러운 서른 살의 이효진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고민을 잠깐 하면서도, ‘아니, 나는 이렇게 살기로 했잖아’ 하면서 자꾸 남자로 생각을 굳혀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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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트랜스젠더 이효진 양은 “남성호르몬을 맞아 감정선도 변해갈 때, 죽은 것 같았다”고 전했다. ⓒ송경호 기자

-그러다 남성으로 한계를 느끼셨다고요.

“또 하나의 경험은 물류센터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였습니다. 그런 곳은 남자 여자 구분이 확실합니다. 같은 보수를 줘도, 남자 여자 역할이 달라요. 그때 관찰을 많이 했습니다.

남자 모습이다 보니, 막노동을 했습니다. 그때 체력적 한계를 경험했어요. 호르몬을 맞으면, 근육량 등이 엄청 ‘펌핑’됩니다. 예전에는 30분 뛰면 힘들었는데, 그때는 30분 뛰어도 멀쩡했어요. 그래서 10kg 짜리 개 사료를 나르는 일을 맡아도 괜찮을 줄 알았는데, 한계에 부딪쳤어요.

보통 남자들은 12시간 일해도 괜찮았다면, 저는 딱 6시간 일하면 ‘방전’됐어요. 심지어 저보다 왜소한 남성 분들도 힘 자체가 달랐어요. 똑같이 일해도 저는 정신이 혼미할 정도였어요. 그러니 주변에서 이해를 못했어요. ‘형, 괜찮아요? 어디 아파요?’ 물었어요. 나이 많은 분들보다도 체력이 떨어졌어요.

그러고 나서 여자들이 일하는 걸 봤어요. ‘아, 남자 여자 역할이라는 게 정말 있구나’ 생각했어요. 내가 아무리 호르몬을 맞더라도, 동등하게 살 수 없다고 느꼈어요. 당시 생식기 수술까지는 하지 않아서 지금 생각해도 감사해요. 어쨌든 정상적으로 살지 못한다고 느꼈어요.

당시 100% 남자는 아니었으니, 이도저도 아닌 삶이었던 것 같아요. 여자 그룹에도 남자 그룹에도 낄 수 없어서, 저에 대해 굉장히 많은 관찰을 할 수 있었어요. 여자 치고는 생각이나 결정, 판단력 등이 빨라졌어요. 감정선이 잦아졌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순발력 같은 데서 남자를 따라갈 수 없었어요.

일하다 어떤 사고가 났는데, 저는 그대로 얼어붙었어요. 하지만 남자들은 바로 뛰어 나가서 대처하더라고요. ‘아, 다르구나’ 하고 느꼈지만, 그때는 자존심 문제로 느끼고 순발력을 더 발달시키려 했어요. 하지만 타고난 부분은 쉽지 않았어요.

주변에 섬세한 남성 분들이 있지만, 아무리 섬세해도 남자는 남자였어요. 여자와 남자가 동등하지만, 각기 다른 역할로 사는 것일 뿐이었어요. 거기서 제가 완전히 깨지고 다시 회복할 수 있었어요.

남자에 대한 혐오로부터 회복되면서, 남자를 존중하게 됐습니다. 성장하면서 남성을 경쟁과 혐오 상대로 생각했는데, 함께 섞여 일하면서 남자에게는 이런 장점이 있고, 이런 단점은 내가 도와주면 되지 하면서 같이 어울리는 사람이 된 것 같아요.

여자가 조금 더 그런 부분이 성숙하고 이해심이 더 있는 것 같아요(웃음). 그런 부분들이 좀 부족했는데 활성화돼서, 남자 분들을 어르면서 일하는 지혜도 생겼어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모성애가 발휘되면서, 지금 제게는 삶의 원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그럼, 마지막으로 ‘사람’으로서는 무엇을 느끼셨나요.

“동성애자로 살 때는, ‘파트너’에게 엄청 의지했어요. 하지만 속으로는 그 파트너가 100% 답이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그 사람 때문에 내가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도 알았고요. 행복한 때도 있었지만 잠깐의 쾌락일 뿐, 영원한 행복은 없었어요. 그래서 성전환을 선택했지만, 그것도 결국 행복이 아님을 깨달았어요.

남자 여자 상관없이, 사람이라는 존재는 스스로 뭔가를 할 수 없고, 사람끼리 서로 의존할 수는 없는 존재임을 알았어요.

지금 동료들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에요. 그들에게 100% 의존할 수는 없어요. ‘하나님만이 진짜 의지할 수 있는 존재이구나, 다 떠나도 하나님 한 분이면 살 수 있구나’를 좀 더 정확하게 알게 됐어요.”

이효진 탈트랜스젠더
▲이효진 씨가 남성이 됐을 때(왼쪽)와 현재 다시 여성으로 회복됐을 때(오른쪽)의 모습. ⓒ이효진 씨 제공

-여성으로서의 정체성, 남성으로 살면서 자아와 분리되는 경험, 그리고 평생 살아야 하는 ‘사람’이라는 존재로 부르심. 3가지 질문을 드렸는데, 정직하게 이야기해 주셔서 감사해요.

내가 선택해서 사람이 된 것도 아니고, 첫째 성이었던 여성이 된 것도 내 의지가 아니었지요. 그것과 함께 두 번의 선택이 있었습니다. 한 번의 선택은 남성이고 싶다는 갈망에 대한 선택이었고, 두 번째로 다시 원래 성별로 돌아가야겠다는 선택을 했습니다.

효진 씨 말씀을 들으면서, 효진 씨는 자기에게 정직했기 때문에 지금 자유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앞으로도 그렇게 멋지게 살아주길 바라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