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게 변하는 정보와 시세에 대해 모르는 것이 경건?
목회자들, 사역 대상인 세상 죄악시하고 관심도 부족해
세상 변화시켜야 한다고 성도들 설교하고 가르치지만,
무엇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대처해야 하는지 알고 있나

죄악시만 하고 있다면 성도들 죄의식 부추기는 결과로
세상 모르기 때문에, 강단 메시지 능력 없을 때 많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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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어찌하오리까? ⓒ픽사베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목사들은 강단에서 나라의 안정과 발전 그리고 열방의 복음화를 위하여,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라고 설교하고 가르친다. 그것은 성경의 기본적인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신앙인의 삶, 교회의 사명은 ‘세상’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이전에는 신앙인의 ‘안심 입명, 부귀 영광, 행복한 삶’이 일반적인 종교적 목적이었다면, 기독교 역시 별반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신앙과 신학의 깊이가 더해감에 따라 교회가 행할 본분에 눈을 뜨게 되고, 신앙인의 삶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즉 교회와 신앙인은 세상을 위해 존재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과 소망을 전하기 위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한 존재인 것을 말이다. 이것은 그렇게 긴 시간을 지나지 않아도 성경만 주의 깊게 살펴보면 곧 알게 되는 일인데, 우리는 너무 잘못 배워왔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아직도 대부분 목사들의 태도나 삶의 모습을 살펴보면, 교회는 세상을 위한 존재임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이유는 사역의 대상인 세상에 대해 너무 무지하고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아주 경건한 사람, 보수적이라고 할수록 더욱 더 세상을 죄악시하여 선을 긋고, 좀 뜨거운 사람은 교회의 일에는 열심이 특심이지만 세상 일에는 무관심하고 속된 일로 구분해 버리기 때문이다.

무지한 이유를 두 가지만 생각해 보면, 첫째로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목사들은 사역의 대상인 ‘세상’에 대해 매우 관심이 부족하다.

정치나 경제 사회의 모든 부분에 대해, 그것은 오직 성경과 교회와 경건에만 관심을 두는데, 그것이 가장 신앙인다운 혹은 목사다운 태도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사역 대상은 세상이다. 잘 믿겠다고 스스로 찾아 나오는 성도들에게도 많은 교육이 필요하지만, 기본적인 신앙과 삶의 방향만 잡아주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고기를 잡아 먹여주지 말고, 고기를 스스로 잡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치라는 말이다. 오히려 죄 되고 악한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행동하는 신앙인’이 되도록 가르쳐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목사들은 세상의 문제에 대하여 거의 알지 못한다. 대부분 노동을 해본 경험이 없고, 땀 흘려 돈을 벌어본 적이 없고, 먹고 사는 문제로 고민하고 절망해본 적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오직 기도와 묵상과 경건에만 세월을 보내는 것이 신앙적이라고 배웠고, 그것이 신앙의 기본적인 틀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소위 경건하다고 하는 목사들일수록 정치 경제 서적 한 권 읽지 않는다. 나와 전혀 관심이 없는 것인데 왜 시간 낭비를 하겠는가?

빠르게 변하는 정보와 시세에 대해 모르는 것을 오히려 경건한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공부해야 하는 것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함인데 말이다.

역대상 12장에 보면, 잇사갈 자손 중에서 ‘시세를 알고’ 이스라엘이 ‘마땅히 행할 것을 아는’ 우두머리가 이백 명이니 그들은 그 모든 형제를 통솔하는 자이며…, 이것이 지도자의 태도라고 본다.

시세를 알지 못하고 어떻게 마땅히 행할 길을 가르칠 수 있다는 것인가? 그래서 종종 뜬구름 잡는 메시지가 허공을 가를 때가 많은 것은 자명한 일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둘째, 나와 관련이 없는 문제, 나의 이해관계와 다른 것에 대해서는 전혀 배우지를 않고 거부해버리는 태도이다.

일례로 조금만 사회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요즘 젊은 사람들, 중년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관심이 예나 지금이나 온통 주식, 비트코인, 투자 등, 경제, 즉 돈에 대한 문제인 것을 알 것이다.

요즘 코로나로 어려운 시대에 많은 젊은이들이 한탕주의에 빠져 있다고 할까? 이러한 문제에 대해 목사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냥 한 마디로 “그런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해버릴 것인가?

자본주의의 꽃이 ‘주식’이라고 한다. 대부분 사람들, 직분을 가진 성도들도 거기 동참하고 온통 정신을 다 빼앗기고 있는데, 그것을 해도 되는지, 하지 말아야 하는지 질문한다면, 목사들은 무엇이라 조언하겠는가?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 사고에 전혀 도달하지 못하고 금기만 하고, 죄악시만 하고 있다면 대부분의 교인들에게 죄의식을 부추기는 결과를 가지게 될 것이다. 소위 선진국이라는 미국이나 이스라엘이나 유럽에서는 초등학교부터 주식을 가르치고 있다는데, 그러면 그들은 무엇인가?

세상을 변화시킨다고 설교하고 가르치지만, 무엇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고 오직 기도와 말씀만 가지고 들이댄다면….

기본 원칙이야 말씀과 기도 속에서 세상의 변화를 추구하는 것임은 누구나 아는 사실일 것이다. 두말 할 것도 없다. 그런데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했던가? 대략적으로 이해해도 구체적인 방법을 모르면, 그것은 무지한 것일 뿐이다.

세상을 모르고 경험하지 못하고 배우려는 자세가 없기 때문에, 강단을 통해 외치는 메시지가 능력 없는 소리가 될 때가 많은 것이다. 교회 안에 들어오면 영적인 것 같고, 밖에 나가면 전혀 세속적인 삶으로 이어지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늘 생각하는 것은 ‘목사,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소명이나 사명이라는 말만 들어가면 다 되는 것이 아니다.

일반 상식이나 세상 돌아가는 일에 대해 모르는 것이 경건하고 거룩한 것으로 착각하고, 관심이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순진한 목사들을 많이 보게 된다.

그러나 우리의 사역 대상인 세상을 모르고, 무엇을 말하고 가르친다는 것인가? 종교개혁자 루터도 한 손에 성경을, 한 손엔 신문을 들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런 생각이 든다.

세르게이, 모스크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