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 넷플릭스 시리즈 <돌풍> (2)
박욱주 교수님의 이번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에서는 넷플릭스 화제작 ‘돌풍’을 다룹니다. 12부작인 이 시리즈에는 설경구(박동호), 김희애(정수진), 김미숙(최연숙), 김영민(강상운), 김홍파(장일준)를 중심으로 임세미(서정연), 전배수(이장석), 김종구(박창식), 장광(조상천), 박근형(강영익), 이해영(한민호), 강상원(이만길), 정해균(정필규), 오민애(유정미), 박경찬(서기태) 등의 배우들이 출연합니다. 이번 리뷰에는 아주 조금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편집자 주
1. “너희 중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
일당 부패 덮으려 회유할 때 언급
군중들 죄 드러내려는 말씀 아닌
다시 죄 짓지 말라며 주신 메시지
2. “살인자의 기도 들어주실까요?”
선한 자의 기도라도 들어주셨다면
이런 세상 오지 않았을 거라 대답
신정론 핵심 논제, 범주 이항 오류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예수님 나라
◈정치적인 선(善): 성경의 가르침을 정치적으로 잘못 해석하는 오류
미국 인기 정치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에서는 정치인들이 성경이나 기독교 신앙과 관련된 발언을 하는 장면이 여럿 등장한다. 이는 일단 극의 배경이 명목상이나마 기독교 국가인 미국 정가이기도 하고, 주인공 프랭크 언더우드(케빈 스페이시 분)가 기독교 신자 인구 비중이 높은 미국 동남부 바이블벨트의 사우스 캐롤라이나 출신 정치인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세속적 탐욕이 가득한 정치인 언더우드의 성경 및 기독교 관련 발언은 대개 다른 기독교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위선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간혹 그가 기독교와 관련해 본심을 말할 때, 언더우드는 신앙의 가치를 철저히 부정하고 성경의 가르침을 자의적으로 비틀어서 해석한다.
가장 대표적으로, 작중(시즌 1, 에피소드 12) 언더우드는 독백을 통해 “(사관학교에서) 교수님이 나에게 천국을 믿냐고 묻더군. 아니라고 했지. 그러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있는 거냐고 물었어. 그래서 내가 대답했지. 잘못 알고 계시네요. 하나님이야말로 우리들 인간에 대한 믿음이 없는 분입니다.”
이를 통해 언더우드는 인간의 삶에 하나님과 천국이 전혀 필요없고, 인간은 오로지 스스로의 힘으로 삶을 개척해야 한다는 신념을 드러낸다. 그리고 이는 실제로 거의 대다수 정치인들이 갖는 믿음일 것이다.
정치인들은 권력이 정치인 외의 사람들에게 나뉘는 것을 싫어한다. 종교는 오랜 세월 정치 권력의 협력자와 동반자로 여겨졌지만, 근대 이후 세속사회에서는 정치인들과 권력을 분점하는 경쟁 상대로 인식된다.
권력욕에 삶 전체를 내던진 언더우드 입장에서 하나님과 종교가 달갑게 여겨질 리 없다. 그래서 언더우드는 인간의 죄성과 타락에 대한 하나님의 질책과 형벌을 오히려 하나님께서 인간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범하는 잘못이라고 주장하며 하나님을 탓한다.
한국의 정치 드라마 <돌풍>에 등장하는 주인공 박동호(설경구 분) 역시 언더우드와 유사하게 자의적으로 성경의 가르침을 곡해한다. 박동호의 성경 및 기독교 관련 발언 가운데서 가장 문제시되는 것 두 가지를 살펴보자.
첫 번째 문제의 장면. 불법 정치자금 수수 누명을 쓴 국무총리 박동호는 그 누명을 없애주겠다며 자신을 회유하는 부패한 경제부총리 정수진(김희애 분)에게 다음과 같이 일갈하며 성경의 일화를 인용한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이 여인을 돌로 쳐라. 예수님 한마디에 다들 돌아갔지. 왜 들고 있던 돌을 죄인에게 안 던졌을까?”
이에 정수진은 “남의 죄를 묻는 자는 자신의 죄도 드러날 각오를 해야 되니까”라고 답한다. 박동호를 공격하지 않겠다는 제안에 박동호는 정수진과 그 일당들이 자기들의 부패를 덮기 위해 박동호 자신을 회유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려, 간음한 여인의 일화를 언급한 것이다.
박동호와 정수진의 상황, 그리고 간음한 여인의 기사 사이에는 얼핏 들어보면 상황상 서로 비슷한 측면이 있기는 하다. 돌을 든 군중이 여인에게 돌을 던지지 않은 것은 군중 역시 죄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었던 것처럼, 정수진 일당이 박동호를 끝까지 공격하지 않은 것도 박동호의 역공에 되려 자신들의 비리와 범죄가 드러날까봐서이다.
◈기독교적인 선(善): 정치 이데올로기와는 전혀 다른 기독교 복음의 지향점
그런데 간음한 여인에 관한 성경 기사의 핵심은 군중 또한 죄가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죄인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시려 한다는 것, 그리고 이 기회를 붙잡으려면 “다시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박동호와 정수진처럼 그 핵심 메시지를 빼놓고서 성경 기사를 인용하고 알레고리로 사용하는 행위는 소극적 차원의 성경 왜곡(반기독교적인 적극적 차원의 왜곡은 아니지만 성경의 가르침을 원래 의도에 맞지 않게 인간의 이해와 입장에 따라 해석하는 왜곡)이다.
두 번째 문제시되는 장면. 박동호가 대통령 장일준(김홍파 분)을 암살하는 것을 옆에서 도운 박동호의 비서 서정연(임세미 분)은 “살인하지 말라… 살인자의 기도, 들어주실까요?”라고 박동호에게 묻는다. 이에 박동호는 “선한 자의 기도라도 들어주셨다면 이런 세상, 오늘 같은 일은 없었겠지”라고 답한다.
박동호의 대답은 신정론의 핵심 논제 중 하나인데, 신학적 관점으로 볼 때 ‘선한 자’에 대한 정의에서 커다란 문제를 드러낸다. 하나님께서 찾으시고 그 기도를 들어주시는 ‘선한 자’와 박동호가 생각하는 ‘선한 자’는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갖는다.
성경의 선한 자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순종을 통해 하나님의 의를 힘입은 자인데 반해, 박동호가 말하는 선한 자란 존 스튜어트 밀의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선한 자이다.
즉 박동호가 말하는 선한 자란 도덕적 행동을 통해 사회 구성원 전반에 이익을 주는 자를 말한다. 성경의 선인(善人)은 공리주의적으로도 선인이 될 수 있다. 그런데 공리주의적 선인은 기독교의 선인이 될 수 없다.
기독교의 선인이 되려면, 복음에 대한 믿음과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는 실천이 있어야 한다. 박동호는 이 조건을 무시한 채 자신이 생각하는 선한 자가 마치 기독교적으로도 선한 자인 것처럼 단정한다. 이로써 그는 자신이 정의한 개념을 적절한지 않은 범주로 잘못 이항(移項)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인간 이성의 힘에 무한한 신뢰를 보낸 계몽주의 시대를 거친 이후 인류는 인간이 고안해낸 정치 체제, 즉 정치 이데올로기를 우상화해 왔다. 서구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의 혜택을 본 이들은 서구식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했고, 서구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의 무자비 아래에서 고통받았던 이들은 공산주의나 반서구 민족주의를 종교처럼 받들었다.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은 인간 이성의 비윤리적이고 부도덕한 본성과 인간이 고안한 정치 체제의 심각한 결함을 일깨워주었지만, 별다른 대안이 없었던 인류는 여전히 정치 이데올로기를 우상화하는 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인간이 고안하고 채택한 어떠한 정치체제도 높은 수준의 공의와 평등을 이룩할 수 없다. 체제의 높은 이상을 죄로 타락한 인간의 심성이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돌풍>에서 박동호가 성경 및 기독교의 가르침과 관련해 내놓는 의견은 모두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아니라, 인간의 정치적 이상을 지고선으로 삼고 내놓은 자의적 해석에 불과하다. 정치적 이상을 숭배하는 박동호의 성경 해석 방향은 그에 동조하는 한국 사회 다수 시민들에게 분명 큰 호응을 얻을 만하다.
하지만 기독교 신앙인들과 비기독교 세속사회 구성원들은 궁극적 믿음과 신뢰의 방향이 크게 다르다. 그러니 같은 성경구절을 두고 그 의미해석 방식 또한 완전히 달라질 수밖에 없다.
기독교인들 역시 세속 권세가 하나님의 섭리와 공의를 따라 선하게 활용되기를 원한다. 하지만 동시에 세속 권세의 궁극적 지향점이 기독교 신앙과 크게 다르다는 점 또한 잊지 않는다.
그래서 교회는 정교분리 원칙을 내세운다. 그리스도께서 단언하신 바와 같이, 주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속 사회가 제아무리 공리주의적으로 올바른 사회가 된다 하더라도(물론 현실에서 그럴 가능성은 없지만), 그 자체로 그리스도의 나라가 될 수는 없다.
인간의 정치적 이상을 숭배하고 그것에 인생을 내던진 이들이 성경의 가르침을 자의적으로 풀이하는 것은 신앙의 입장에서는 물론이거니와, 사상적으로나 학문적으로도 명백한 월권행위이다.
그리고 이 월권행위는 원천적으로 신앙과 신념의 충돌에서 비롯된다. 하나님을 올바르게 믿는 순전한 신앙이 아니라 정치적 이상과 정의에 대한 신념을 기반으로 삼는 성경해석은 반드시 성경의 가르침을 왜곡한다.
해방신학이나 민중신학이 대표적이다. 두 신학 조류는 분명 학문적으로 훌륭한 체계를 갖췄지만 그 사상적 지향점이 원래의 기독교 복음과는 완전히 다르게 지정되어 있다.
복음과 정치 이념의 기괴한 혼합, 이는 우리 한국교회의 신앙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끄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해왔다. 교회라는 영역 안에서 반공과 자유를 외치는 이들, 민중과 해방을 외치는 이들, 아니면 교회를 정치질과 출세의 등용문으로 여기는 이들 모두 <돌풍>의 박동호와 마찬가지로 정치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복음의 진의를 왜곡하는 우를 범한다. 정교분리 원칙이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욱주 박사
연세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객원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