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44편 강해


요절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22절)”.

오요한 꽃
이 시는 마스길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스길은 교육적인 기도문입니다. 이 기도문과 나의 생각이 하나가 되면, 그 기도가 나의 기도가 됩니다.

시인은 믿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다른 신을 섬기지 않았습니다. 그는 경건하고 의롭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도살할 양과 같이 취급받고 있습니다. 그는 그런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1. 조상들이 역사교육을 했다

1-3절을 보면 시인은 하나님 편에서 역사를 바라봅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조상들에게 하신 일을, 조상들이 알려 주어 듣고 자랐습니다. 조상들은 자손들에게 이스라엘 역사를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은 430년간 애굽 노예살이에서 이스라엘을 해방시키셨습니다. 주님은 주의 손으로 가나안의 뭇 백성을 내어 쫓으셨습니다.

가나안 일곱 족속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죄가 가득찼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진멸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조상들을 가나안 땅에 뿌리박게 하셨습니다. 모든 잡초를 제거하고 새 곡식을 심듯이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에 심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방 민족을 고달프게 하시고 조상들을 번성하게 하셨습니다. 조상들은 자기 칼로 가나안 땅을 얻어 차지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팔로 구원하지 못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무력이 강해 정복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오른 손과 주의 팔과 주의 얼굴의 빛으로 구원하셨습니다.

2. 오직 주께서 원수들에게서 구원하소서

4-8절을 보면 시인은 과거 조상들을 도우신 하나님을 나의 왕으로 믿었습니다. 자신의 주인으로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과거의 역사에서 야곱 족속에게 구원을 베풀어주신 분이십니다. 야곱은 이스라엘로 변화되기 전의 모습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이 야곱에게 구원을 베풀어 주셨듯, 죄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이스라엘에게 구원을 베풀어 달라고 기도합니다.

우리는 조상들처럼 주님을 의지하여 이스라엘을 치려 일어나는 자를 주의 이름으로 밟겠다고 합니다. 시인은 칼과 활을 가지고 나갑니다. 그러나 시인은 활이나 칼을 의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과거에 하나님을 의지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원수들로부터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진정한 승리를 주셨습니다. 미워하는 자로 수치를 당하게 하셨습니다.

3. 이제는 주께서 우리를 욕을 당하게 하신다

8절까지는 과거에 승리를 체험하고 찬양한 노래입니다. 그러나 9절부터는 많은 고난 중에 울부짖는 기도입니다.

이스라엘은 이방의 포로로 잡혀가서 고난을 당합니다. 하나님은 과거 이스라엘 민족에게 크신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욕을 당하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범죄하자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군대와 함께 나가지 아니하십니다. 주께서 이스라엘을 대적에게서 도망가게 하십니다. 이스라엘을 미워하는 바벨론이 이스라엘을 탈취하였습니다.

여기서부터 매 절의 주어는 하나님이십니다. 시인은 하나님이 모든 주권으로 일하시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포로로 잡혀가기도 하고 패전하기도 하고 비난거리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 모든 것이 주님이 하셨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시편 저자의 신앙입니다. 억울한 말을 들을 때, 대항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이 하신 것입니다. 전염병도 하나님 안에서 선하신 섭리가 있습니다.

4. 종일 능욕을 당하는 이스라엘

11-16절을 보면, 주님은 이스라엘을 잡아 먹힐 양처럼 이방인들에게 넘겨주셨습니다. 양 중에 상처가 있는 양은 푸줏간에 헐값으로 팔아버립니다. 주님은 주의 백성을 헐값으로 파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죄로 인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바벨론에 파심으로 그들의 믿음을 연단하고자 하셨습니다. 그들의 내면에 있는 죄의 불순물을 제거하고자 하셨습니다.

주님이 이스라엘로 하여금 이웃나라에게 욕을 당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 나라들이 이스라엘을 둘러싸고 조롱합니다. 민족들이 머리를 흔들며 이스라엘을 조롱하는 일을 당하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모습은 십자가에서 조롱당하는 예수님을 연상케 합니다. 시인은 이스라엘 민족 중 하나입니다. 시인도 민족과 함께 포로로 팔려갔습니다.

시인은 모욕당하지 않은 날이 하루도 없었습니다. 이방 나라에서 부끄러움으로 얼굴을 들 수 없었습니다. 욕설과 폭언 소리에 귀가 따갑고 미움과 보복의 눈길이 무서웠습니다.

5. 고난 중에 주를 잊지 아니하였다

17-18절을 보면, 이스라엘 포로들은 이런 모든 일을 당했을 때 하나님을 불신하고 하나님을 떠나기 쉽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일이 일어나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주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은 주를 잊지 않았고 주의 언약을 어기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마음을 다른 곳으로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걸음도 주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징계로 영접하고, 말씀을 마음에 새겼습니다. 시인은 이 모든 재앙이 임하였으나, 주님을 잊지 않고 언약을 어기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고난 속에서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6. 주는 우리의 마음의 비밀을 아시나이다

이렇게 고난 중에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고 믿음으로 살았다면, 이제는 하나님께서 도우셔야 하지 않습니까? 이제는 긍휼을 베풀어 주셔야 하지 않습니까?

과거는 죄 때문에 포로가 되었다 하더라도 이제는 믿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이제 은혜를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19-21절을 보면, 주님은 이스라엘이 믿음으로 살았을지라도 양과 같은 이스라엘을 승냥이의 처소에 밀어넣으시고, 사망의 그늘로 덮으셨습니다. 당시 아무 죄 없는 이스라엘이 계속 고난을 당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70년동안 포로생활을 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때가 이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철저히 훈련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잊지 않았습니다. 이방 신을 향하여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시인은 만약 하나님을 잊는 죄를 지었다면 하나님이 아시지 않았을 것이냐고 묻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아시는 주님이 다시 회복시켜 달라고 합니다.

7. 우리는 종일 죽임을 당한다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22절)”.

그럴지라도 현재 이스라엘은 지금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고 도살할 양과 같이 여김을 받았습니다. 고난의 극치입니다. 그들에게는 배고픔과 헐벗음과 죽음의 위험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만을 섬겼지만, 그럼에도 지속적으로 고난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철저히 낮추시고 훈련하셨습니다. 그래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치 않고 하나님을 떠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선하게 살지라도 고난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주의 뜻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하자, 도살할 양과 같이 취급받았습니다. 우리 예수님도 우리 죄를 위하여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양처럼 십자가의 고난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께 더 가까이 나가야 합니다. 시인은 이런 의로운 자가 받는 고난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습니까?

8. 주여 우리를 영원히 버리지 마소서

23-26절을 보면, 시인은 극심한 고난 중에서도 주님의 사랑을 믿고 주님께 나가서 기도합니다. 주님은 기도하기를 바라며 침묵하십니다.

그것이 시인에게는 주무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도 시인은 주님을 떠나지 않습니다. 시인은 주님께서 주무시지 마시고 깨시기를 기도합니다. 일어나시고 이스라엘을 영원히 버리지 마시기를 기도합니다.

주의 얼굴을 보이시고 고난과 압제를 기억하여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제 주의 인자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하여 달라고 기도합니다.

9. 결론: 넉넉히 이길 수 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 말씀을 인용하였습니다. 로마서 8장 36-37절을 보십시오.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바울은 신자들이 도살할 양과 같이 취급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는 어떤 고난도 주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어떤 피조물이라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고난을 넉넉히 이긴다고 고백합니다. 우리도 바울과 같이 어떤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현재의 고난을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오요한 시편 역경 속에 피어나는 찬양의 꽃
▲오요한 목사.
오요한 목사
천안 UBF, <오요한 목자의 로마서 강해>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