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지 않으면 지혜로운 그리스도인으로 살 수 없어
미우라 아야꼬 주옥같은 작품들, 모두 병 속에서 탄생
하나님의 눈 의식하는 사람만이 그 분 위해 봉사 나서

이재철 주님의교회
▲이재철 목사는 “우리는 흔히 우리가 보는 것을 절대시한다”며 “그러나 우리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볼 수 있나. 멀리 있는 것도 못 보고, 내 등 뒤도 보지 못하고, 내 몸 속의 암세포도 보지 못한다”고 했다. ⓒ이대웅 기자

이재철 목사(100주년기념교회 전 담임)가 주님의교회 창립 31주년 기념 전교인 사경회 강사로 나섰다.

주님의교회 초대 담임으로 10년 임기를 채우고 물러난 이 목사는 지난 2-4일 3일간 서울 올림픽로에 위치한 정신여고 대예배실에서 열린 사경회에서 ‘말씀, 그리고 사색과 결단’을 주제로 말씀을 전했다.

마지막날인 이재철 목사는 4일 ‘섬김에 대해(시 94:8-9)’를 제목으로 설교했다. 2일에는 ‘인생에 대해(딤후 4:6-8)’, 3일에는 ‘사랑에 대해(요 13:34-35)’ 나눴다. 그는 “사람들은 누구나 삶이라는 붓으로, 인생이라는 각자의 이야기를 책으로 쓰게 된다. 그 전제 조건은 인생의 의미를 바로 아는 것”이라며 “인생을 바로 알기 위한 핵심 두 가지는 사랑과 섬김”이라고 했다.

이재철 목사는 “여러분이 아무리 지성인이라도,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서 지혜로운 그리스도인으로 살 수 없다”며 “신앙의 성숙은 생각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말씀을 공부하고 큐티를 하는 것 모두,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이 목사는 “고난 가운데 있을 때, 오늘 내가 당하는 이 고통과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의 날이 올 것(롬 8:18)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생각하는 사람만 알 수 있다”며 “주님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제물 되신 분이라면, 이 고난의 과정을 통해 내게 불필요한 모든 근육을 다 떼어내게 하시고 영적으로 더 강건한 사람이 되게 하시려고 나를 빚고 계신다는 것 역시, 숙고하고 사색해 보면 답이 나온다”고 전했다.

그는 일본 작가 미우라 아야꼬 여사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아야꼬 여사는 젊은 나이에 폐결핵과 여러 암으로 죽을 때까지 평생 환자로 지내야 했다. 예수 믿고 평생 병자로 살면 짜증스러울 수 있지만, 그녀는 생각하는 크리스천이었다”며 “그녀의 주옥같은 문학 작품들은 모두 병 속에서 나왔다. 그녀가 건강한 여인이었다면, 건강한 일본 여성으로 살다가 생을 끝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아야꼬 여사의 ‘병상의 기도’를 소개했다. “병들지 않고는 드릴 수 없는 기도가 따로 있습니다. 병들지 않고는 들을 수 없는 말씀이 따로 있습니다. 병들지 않고는 볼 수 없는 얼굴이 따로 있습니다. 병들지 않고는 나아갈 수 없는 성소가 따로 있습니다. 아, 나는 병들지 않고는 인간이 될 수조차 없었습니다.”

이재철 목사는 “우리가 교회에 같이 앉아있다 해서 믿음도 다 같은 것이 아니다. 주님 보시기에 큰 믿음, 좁쌀만큼 작은 믿음이 있다. 그 분기점은 생각하는데 있다”며 “생각하지 않으면, 매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만 고민한다. 주님을 믿는다면서도 이 고깃덩어리를 위해 안달하다 생을 끝낸다. 그런 사람들에게 ‘카타만다노(헬라어)’, 그낭 생각이 아니라 심사숙고해 보라고 하신다. 믿음은 생각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 목사는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큐티하고 말씀 공부하고 경건 훈련을 하면서 많은 것을 숙고하고 사색해야 하는데, 오늘 시편 본문에서 주님은 무엇을 생각하라고 하시는가”라며 “주님께서 심사숙고하라고 던지신 명제는, ‘귀를 지으신 이가 듣지 아니하시겠는가? 눈을 만드신 이가 보지 아니하시겠는가?’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재철 주님의교회
▲이재철 목사는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서 지혜로운 그리스도인으로 살 수 없다”며 “신앙의 성숙은 생각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고 말했다. ⓒ이대웅 기자

그는 “하나님은 예술가들의 독창력과 창작력이 아닌, 창조력을 통해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만드셨다”며 “그래서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이 만든 신상(神像)은 눈·코·입이 있어도 보고 듣고 말할 수 없는 쇠붙이와 돌덩이일 뿐이지만, 우리의 눈·코·입은 하나님처럼 보고 듣고 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하지만 우리 육체는 보고 듣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어떤 것에도 장애를 받지 않으신다”며 “내가 어디에 있어도, 하나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개별적으로 보고 들으신다”고 이야기했다.

이재철 목사는 “이것을 아는 사람은 바른 섬김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다. 내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 있더라도 나를 보게 하신 그 분이 나를 보고 계신다는, 그 분의 눈을 의식하는 사람만이 그 분을 위해 봉사할 수 있다”며 “그러지 못한 인간의 모든 섬김은 자신과 자기 과시를 위한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리스도인 집과 일터, 투명 유리 낀 진열장이어야
주님 은혜 임하면, 내 능력 안 되는 일도 이뤄주셔
욕과 비난 받고 야단 들어도, 해야 할 일 하는 사람

‘이름도 빛도 없이 섬기는 자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높이시는가’에 대해, 그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하나인 안드레를 통해 이야기했다.

먼저 세례 요한의 제자였던 안드레가 예수님의 삶을 보고 제자가 된 후 곧바로 형제 베드로를 데려온 것(요 1:35-42)에 대해 “저라면 주님의 옷자락을 붙잡고 ‘저를 끝까지 사용해 주십시오’ 하면서 저 자신부터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안드레는 형제 베드로를 생각했다. 유대인이라면 누구나 메시아를 열망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며 “열정적이고 안 끼는 데 없는 베드로가 있으면 자신이 치이게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안드레는 베드로를 데려갔다. 안드레가 데려가지 않았더라면, 성경의 베드로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해당 본문에 예수님께서 “와서 보라(39절)”고 하신 것과 관련해선 “세례 요한의 두 제자는 말로 예수의 메시아 되심을 확인하려 하지 않고, 예수의 삶과 행동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자 했다”며 “우리도 교회뿐 아니라, 우리 삶의 현장과 일터에서 목사답게, 장로답게, 권사답게 사는 모습을 ‘와서 보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우리가 예수님처럼 삶의 터전에서 일터로, 가정으로 ‘와서 보라’고 하면서 우리를 따라 살 수 있게 하지 않는 한, 교회가 아무리 많아도 교회로 인해 세상이 새로워지지 않을 것”이라며 “그리스도인의 집과 일터는, 투명한 유리가 끼어져 있는 진열장이어야 한다. 그래서 누구든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둘째로 사복음서에 모두 기록된 유일한 이적인 ‘오병이어(요 6:1-15)’ 에 대해 “예수님께서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을 때, 제자들은 모두 손을 놓고 있었다. 그런데 안드레만 1만명 이상의 인파를 헤치고 다니며 찾다가 먹을 것이 있던 유일한 소년 한 명을 발견한 것”이라며 “안드레는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말하면서도 순종하면서 보잘 것 없던 빵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찾아왔다”고 이야기했다.

이 목사는 “오병이어의 기사를 보면서, 지난 2천년 동안 얼마나 많은 동서고금의 그리스도인들이 소망과 위로를 얻었나. 저도 그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며 “내 능력은 좁쌀만 할지라도 주님께서 함께하시고 은혜가 임하면 내 능력으로 이룰 수 없는 일도 주께서 이루신다는 것이다. 안드레가 없었다면, 우리가 실의에 찼을 때 그 오병이어를 통한 주님의 위로를 얻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헬라인 몇이 예수님을 만나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말씀을 듣는 장면(요 12:20-25)에 대해 “당시 유대인들은 이방인을 ‘짐승보다 못한 존재’로 봤다. 그래서 헬라인들이 찾아왔을 때, 계산 빠른 빌립이 안드레를 찾아갔다”며 “안드레는 욕을 먹고 비난을 받고 야단을 들어도, 해야 할 일은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안드레는 이름도 빛도 없이 해야 할 일을 성실하게 행했기에, 기독교 2천년 역사상 중요한 획이 3가지나 그어졌다”며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소리 없는 안드레의 순종과 섬김을 요한 사도만 보고 기록했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요한 사도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시면서 부탁한 ‘어머니 봉양’을 이후 40여년간 노인이 되기까지 해야 했다(요 19:26-27). 다른 제자들이 초대교회의 영웅이 되고 가는 곳마다 무리가 지어 따를 때, 밥 해 주고 빨래 해 주고 섬기는 것으로 인생을 보냈다”며 “때로는 속상하고 그 일에서 벗어나고 싶었겠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주님의 명령이고, 주님께서 보고 계심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 요한의 눈에 궂은 일을 하는 안드레가 보였던 것”이라고 했다.


이재철 주님의교회
▲이재철 목사는 “예술가들은 보고 인식한 것만 변형하고 적용하고 확장할 수 있다. 반드시 ‘모티프’가 필요하다”며 “그에 반해 창조력은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이대웅 기자

오래되고 강한 교인들일수록 ‘밑가지’로 받쳐줘야
주님 보고 계신데, 왜 봉사하며 스포트라이트를?
요체는 의와 절제와 심판, 믿음의 진전은 그 역순

이재철 목사는 “예수님은 요한복음 15장에서 우리에게 ‘가지’라고 하셨다. 나무는 새 가지가 있던 가지 위로 올라간다. 가장 오래된 가지는 ‘밑가지’로서 새 가지들을 떠받쳐준다”며 “그리스도인으로 섬기며 교회를 이뤄가는 것은 무엇인가. 오래된 교인들, 내가 더 크다고 생각하는 교인들, 강한 교인들이 밑가지가 되어, 누구든지 와서 윗가지로 마음껏 봉사하도록 받쳐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목사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다. 성자 하나님으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죄값을 대신 치러주셨다는 것 자체가 우리의 밑가지가 되신 것”이라며 “우리 모두 안드레처럼 밑가지가 될 때, 주님께서 우리를 통해 역사하신다. 그것은 단 하나, 눈을 지으신 이가 보고 계시고 귀를 지으신 이가 듣고 계시다는 것을 깨달을 때만 가능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우리는 봉사하면서 반드시 뒤에 스포트라이트와 사람들의 박수 갈채를 바란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나팔을 불지 말라’고 하셨다. 나팔을 부는 것은, 주님께서 이미 보셨음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주님께서 보셨다면, 누가 보든 말든 상관 없다. 이런 강당도 없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교회를 들여다보고 많은 신학생들이 탐방을 왔던 이유가 무엇인가.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주님만 생각하는 봉사자들이 교회를 이룰 때 성령께서 얼마나 아름답게 역사하시는지를 눈으로 보고 확인했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마지막으로 “바울이 가이사랴 감옥에 갇혔을 때, 예수 믿는 요체를 3가지로 이야기했다.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행 24:24-25)’, 이 3가지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라며 “성경에서 의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이다. 그리고 내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려면 칼로 무를 자르듯 단호하게 엑크라테이아, 절제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을 믿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재철 목사는 “그리스도인들이 바른 섬김과 절제를 하지 못하는 것은, 심판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믿음은 심판으로부터 시작된다. 눈을 지으신 이가 보지 못하겠느냐, 귀를 지으신 이가 듣지 못하겠느냐? 바로 그것”이라며 “그 심판의 하나님을 믿는다면, 내가 지금 ‘엑크라테이아’하고 걸어가야 할 섬김의 길을 걸어갈 수 있고, 결과적으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다. 믿음의 진전은 의와 절제와 심판의 역순으로 이뤄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목사는 “좋은 교회는 건물이 크고 출석 교인이 많고 천문학적 액수의 헌금이 나오는 곳이 아니라, ‘안드레’가 많은 교회이다. 눈을 지으신 이가 보고 계시고 귀를 지으신 이가 듣고 계시는, 셈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안드레’가 많은 교회”라며 “소리 없이 빛도 없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하기 싫을 때도 자신이 행할 일을 함으로써 주님의 몸된 교회를 바르게 일구어 가자”고 권면했다.

더불어 “사랑하는 주님의교회 모든 교우들께서 ‘보고 계시고 듣고 계시는 하나님’에게 깨어 있으심으로, ‘이 시대의 안드레’ 되시길 바란다”며 “여러분들로 인해 주님의교회가 명목상이 아닌, 명실상부한 주님의 교회가 될 것이고, 여러분들로 인해 세상으로부터 신뢰를 상실한 이 땅의 교회가 주님의 교회로 회복되는 역사가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

이재철 목사는 3일간의 사경회가 마친 후, 15년만에 만나는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과 악수하며 안부를 나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