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순재 선교 칼럼
▲총장직을 내려놓는 윤순재 선교사.
◈베스트셀러 '내려놓음' 열풍의 이유

2006년 몽골에서 일하던 이용규 선교사님이 쓴 <내려놓음: 내 인생의 가장 행복한 결심>이라는 책이 발간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하버드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인재가 안락한 미래의 보장과 인간의 기대를 내려놓고 가족과 함께 열악한 선교지로 떠나 평신도선교사로 헌신하였다는 사실 자체가 많은 사람들에게 큰 도전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든 성취와 소유, 자기 것을 확보해야 하는 사회 분위기에서, 진정한 크리스천이라면 자기의 것을 포기하고,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 여러 사람들이 공감했던 것 같습니다.

'내려놓음'이라는 주제가 널리 유행하게 된 것은 그만큼 역설적으로 자기가 세운 일, 일구어놓은 업적에 도취되거나 집착하는 경향이 한국 교계에 팽배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2017년 크리스천투데이가 선정한 '한국교회 10대 뉴스'를 봐도, 절반 정도가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고 유지하기 위해 벌어진 부끄러운 사건들로 가득합니다. 최근 가장 뜨겁게 이슈가 된 '대형교회의 부자(父子) 세습'이나 '교계 연합기관의 분열', '종교인 과세'가 대표적인 사례이지요.

그래서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한 한국교회야말로 제2의 종교개혁이 가장 절실하다고 교회와 신학교, 각종 단체와 학회들이 행사마다 한 목소리를 냈다고 합니다. '내려놓음'의 실천은 한국교회와 사회에 여전히 가장 필요한 과제이며, 선교 현장에서도 예외가 아닙니다.

◈선교지에서 이룬 성과를 내려놓기

저희 가정이 1993년 몽골에서 학교를 세운지 14년째, 대학생 수가 2,000명을 넘어서면서 경상운영비 자립을 이루었습니다. 그렇게 몽골 사회에서 건실한 대학으로 자리를 잡았을 때, 우리 가슴 속에 벅차오르는 감격과 성취감은 말할 수 없을 만큼 컸습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은 기쁨으로 가득했고, 앞으로 이 대학을 통해 이루어질 선교적 가능성들에 대해 크게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울란바타르대학교를 방문하는 분 가운데 일부 한국교회 어른들의 눈빛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대학의 경이로운 성장과 발전, 선교적 역할에 감탄했지만, 한편으로는 이 대학의 엄청난 자산과 명예가 앞으로 누구에게 귀속될 것인가 하는 점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곤 가장 먼저 학교를 시작했고 현재 총장을 하고 있는 제게 초점을 맞추면서, 기득권을 가장 많이 갖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대학을 세운 것은 몽골 선교와 현지 기독교 발전에 기여하기 위함이었지, 개인적인 명예나 재산을 형성하는 것에는 추호의 관심도 없었습니다. 이미 대학의 재단법인을 설립하여 법적으로도 공공의 재산으로 출연되어 있는데, 왜 그런 시각으로 볼까 의아했습니다.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지만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 몇 해를 생활해 보니, 한국교회 안에는 이런 풍조가 만연해 있어 서글프기만 합니다.

그래서 선교사로서 근본 목적을 되새기며 더 오래 되기 전에, 우리 자신도 기득권에 안주하기 전에, 적절한 때가 되면 총장 직무를 그만두고 새로운 사역으로 전환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학교를 세우고 대표자 역할을 한지 만 16년이 지났을 때, 그동안 치열하게 일하느라 심신이 지치기도 하여 안식년도 필요하고, 대학 운영 방향에 대해 의견 차이도 있는 등 몇 가지 요인을 고려하여 재단이사회에 사표를 제출하였습니다.

저희가 스스로 그만둔다고 하니, 가장 아쉬워했던 분들은 저희 가정을 위해 기도하고 후원하던 분들이었습니다. "왜 그만두느냐? 어떻게 수고하면서 힘들게 세운 대학인데, 이제 그 고생을 마치고 누리기만 하면 되는데 왜 사서 고생을 또 시작하느냐?"고 서운해 하셨습니다. 대학 재단이사회에서도 강하게 만류하셨습니다만, 처음 결심한 대로 이제는 내려놓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윤순재 선교 칼럼
▲윤 선교사가 몽골 제자들과 방문한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선교사란 현지인들을 위해 다 놓고 가는 것"

총장을 그만두고 안식년을 가진다고 하니, 동료 선교사들과 교민들, 심지어 몽골 정부 관계자들까지도 많이 아쉬워했습니다. 안식년으로 귀국하는 저희를, 한국에 유학와 있던 몽골 제자들이 만나고 싶다며 찾아와 40여명이 모였습니다.

그때 저희는 왜 총장직을 그만두는지 제자들에게 설명해 주기 위해, 그들을 한국 선교의 뿌리인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데려 갔습니다. 120년 전 한국에 오셔서 연세대, 이화여대, 배화여대, 정신여고 등을 세우신 선교사님들의 무덤을 하나 하나 소개하면서, "선교사란 현지인들을 위해 학교나 병원, 교회 등을 세워 일하다 다 놓고 가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한국 기독교 초기 선교사들이 한국교회 지도자들에게 이양을 잘 했기 때문에, 오늘의 성장과 발전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선교사의 활동보다 현지인의 역할이 더 중요하고, 기독교 역사는 현지인의 관점에서 기록되기 때문에 얼마나 현지화(現地化)했느냐가 결국 평가를 받습니다.

◈"학교를 세운 것보다 그만 둔 것이 더 잘했다!"

그 때 선교사묘원을 관리하는 100주년기념교회 이재철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저희 부부가 울란바타르대학교 총장과 울란바타르 초·중·고등학교 교장 역할을 그만할 것이라고 말씀드렸더니, "세운 것보다 그만둔 것이 더 잘한 일이다. 퇴장이 진정한 등장인데 그동안 가르쳤던 것을 몸으로 실천하고 떠나는 것이다" 하면서 저희를 격려해 주었습니다. 그리곤 "현지 일을 잘 마무리했으니, 이제 몽골에는 아예 들어가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저희는 대학을 그만두었으니 이제는 현지교회 개척과 목회자 양성에 전념하려고 당연히 몽골에 되돌아갈 계획이었는데, 그 분은 "설립정신을 지키려면 아예 몽골에 가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하셨습니다. 친한 벗은 "임무를 마쳤으면 즉시 귀대하여 다음 임무를 기다려야지, 현지에 머물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저희 부부도 "그러면 어떤 일을 해야 하나?"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몇 해가 지난 지금 생각해 보니, 역시 대학을 세운 일보다 그만둔 일이 더 잘한 것 같습니다! 안식년이 끝날 무렵 몽골로 되돌아가지 않고, 2012년 총회선교부에 선교사 사직서를 제출하였습니다.

윤순재 선교 칼럼
▲몽골 제자들과 함께한 모습.
◈온전한 헌신은 내려놓음의 시작

사람은 일을 그만둘 때 또는 관계를 정리할 때 그 사람의 속마음, 본 바닥이 드러납니다. 대학을 그만두겠다고 결심하니, 제가 지금까지 선교사로서 살아 온 근본 이유와 목적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중3 겨울방학 때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회심을 하고, 평생 구원해 주신 주님의 은혜를 갚으며 살겠다고 결심했던 것을 떠올렸습니다. 그래서 목사가 되었고, 선교사가 되어 나의 삶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릴 수 있기를 소원했기에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내려놓을 수 있을까요?

첫째, 내가 가진 모든 것은 모두 하나님의 것이니, 하나님께 다시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말로는 "하나님이 하셨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내가 어떻게 세웠는데..." 하면서 자기가 주인이 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 자신도 그런 성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더 나쁜 쪽으로 발전하기 전에 정리하고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것을 실행하기로 했던 것입니다.

둘째, 전심으로 일하는 것입니다. 올인(All-In)한다고 하지요.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붓는 열심, 두 마음을 품지 않는 것, 선교사의 본분과 목사의 본분에 맞지 않는 것은 쳐다보지 않는 것입니다.

셋째, 나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목적은 무엇이었던가! 선교사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영광과 그의 나라 확장을 위해 쓰임 받는 것이었지요. 그것만으로 충분히, 더 이상 바랄 것 없이 만족하는 것입니다.

윤순재 선교 칼럼 주안대학원대학교
▲윤 선교사가 총장으로 시무하는 주안대학원대학교 전경.
◈내려놓은 후 새로운 임무: 100주년기념교회와 주안대학원대학교

그 후 100주년기념교회에서 함께 일하자고 하셔서, 3년 반 동안 양화진선교사묘원을 관리하고 선교사와 선교기관을 지원하는 일을 하면서 한국사회와 교회를 새로 적응하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2015년부터는 주안대학원대학교에서 선교사님들을 섬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안대학원대학교는 선교에 관심 있는 전문인들과 현장 선교사님들에게 Intercultural Studies 전공으로 석사(MA, Th. M)와 박사(Ph. D) 학위를 주는 대학원대학교입니다.

선교대학원에서 총장의 직책을 맡고 있지만 분명한 저의 정체성은 선교사이며, 몽골 대학을 운영했던 것처럼 지금도 교육을 통해 선교사님들과 목회자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윤순재
전 몽골 선교사(1992-2012), 현 주안대학원대학교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