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근 목사(온누리선교교회).

요한복음 11장 강해(2)

요한복음 11장을 읽으면서 여러분은 기존의 관념을 바꿀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대개 예수님께 나아갈 때 온전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예수님이 상대한 사람들을 보라.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으로 가자고 하니까 엉뚱한 소리를 한다. 베다니에 도착한 후 마르다, 마리아도 엉뚱한 소리를 한다. 그들에게 조금의 믿음은 있지만, 온전한 믿음은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그들과 함께하시며 함께 마음을 나누셨다. 그러므로 나와 여러분 같이 믿음이 부족해도 ‘주님, 이런 상황을 도와주십시오’ 라고 구하면, 주님은 충분히 동정하고 들으실 수 있는 분이다.

주님은 여러분을 다 아신다. 그러니 어쨌든 주님께 나아가라. 무슨 말씀이든 드려 보라. 주님은 받아주신다. 여러분의 믿음이 온전치 못하다 해서 주님이 하실 일을 안 하시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반대로 “내가 올바르게 기도를 잘했더니 주님이 응답하셨다”고 하지도 말라. 여러분은 그분의 하실 일을 잘못 기도했어도, 주님은 듣고 계신다.

36 이에 유대인들이 말하되 보라 그를 어떻게 사랑하였는가 하며 37 그 중 어떤 이는 말하되 소경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 하더라 38 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통분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

여기서 성경은 사람들의 주 예수께 대한 냉정함과 비판의식을 그대로 적어놓고 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냉혹히 비판하고 논단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주님께 대한 경외심이 너무나 없었다.

39 예수께서 가라사대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가로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40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신대 41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42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저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주님이 돌을 옮겨놓으라고 하셨다. 마르다는 뭐라고 말했는가? “주여…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이제 돌을 옮겨놓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다 틀렸어요.” 이런 뜻인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주님은 좌절하지 않으신다.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않았느냐”라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말씀을 듣고 돌을 옮겨놓았다. 예수님은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며 기도하셨다. 그리고 큰 소리로 부르셨다. “나사로라 나오너라”.

43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44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죽은 나사로가 살아난 것이다. 왜 이렇게 하셨을까? 마리아, 마르다, 또 제자들의 믿음을 강화시켜 주시기 위함이었다. 우리는 죄 용서받고 영생 얻는 믿음을 다 받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 주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주실 뿐 아니라 우리의 믿음을 자라게 해 주신다. 믿음이 더 자라야만 한다. 그런데 주님은 그 믿음을 바로 이렇게 가르치셨다.

여러분의 어려운 문제, 풀 수 없는 문제, 육신의 심각한 문제, 질병, 약함 등으로 인해 고민하지 말라.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로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시는 것이다. 주님은 못 고치실 병이 없다. 못 하실 일이 없다. 다만 온 마음으로 주님께 향하면 되는 것이다. 이들은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다. 그래도 어쨌든 그들의 온 마음은 주님을 향하고 있었다. 이것이 비결이다. 그럴 때 주님은 거기서 역사를 하시고 기적을 일으키시고 놀라운 일을 행하신다.

나는 주님을 따라온 지 30년이 넘었다. 주님에게서 믿음을 배우려면 시간도 필요하다. 주님은 사람이시지만 한국 사람이 아니다. 한국 사람은 뭐든지 빨리 빨리 해야 믿는다. 그러나 주 예수님은 ‘천국 사람’이라 ‘한국 사람’과는 다르시다. 때에 따라 시간을 좀 많이 쓰신다. 나는 주님을 따르면서 이것을 많이 체험했다. 우리 문제를 빨리 해결해 주시면 우리가 얼른 믿을 텐데라고 생각하지만, 주님은 그렇게 조급한 분이 아니시다. 그러나 영원히 안 해주시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1장에서 주님이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모든 과정을 세세하게 기록하신 것이 아니겠는가! 빠르든 혹 늦든 주님은 여러분의 사정을 돌보시고 해결하신다. 그러나 기다리라. 시간은 필요하다. 그리고 결국은 주님은 여러분의 부족한 믿음을 보강하시고 더해주신다. 믿지 않고는 못 견디게 해주신다. 그것이 주님이 하신 일이다.

믿기 시작한 성도들이여, 실망하지 말라. 어려움이 있어서 힘들어하는 성도들이여, 좌절하지 말라. 좌절하기에는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았다. 주님은 결국 여러분을 도우시는 역사를 하실 것이다. 말씀에도 그럴 뿐 아니라 우리가 증인이다. 우리는 왜 주의 종이 되었는가? 주님이 우리에게 먼저 가르쳐주시고 그런 믿음과 은혜와 사랑과 배움을 먼저 갖게 해주심으로 여러분을 격려해서 이 사랑의 주님,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도록 도와드리기 위해서이다. 믿으라. 이 11장에서 주님이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하려 함이라”는 것이다. 믿게 하시려고 주님께서는 이러한 놀라운 역사를 해주셨다.

과연 무엇을 믿게 하려 하신 것일까? 그것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다. 주 예수는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리는 일에서 무엇을 믿도록 도와주셨겠는가? 기독교 신앙의 정수는 예수의 부활에 있다. 그분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일에서, 그분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일을 믿도록 도와 주신 것이다. 나인성 과부의 죽은 아들도, 나사로도, 예수님은 살리셨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을 죽은 자 가운데 사흘 만에 일으키실 수 없단 말인가? 불신과 외적인 지식으로 가득 찬 성도라 해도 주님이 불쌍히 여기사 믿도록 도와주신다.

45 마리아에게 와서 예수의 하신 일을 본 많은 유대인이 저를 믿었으나 46 그 중에 어떤 자는 바리새인들에게 가서 예수의 하신 일을 고하니라

언제나 주님이 이적을 행하게 되면 두 가지의 결과가 나타난다. 하나는 주님을 믿는 자들이다. 또 하나는 대적자들을 이롭게 하는 일이다. 나사로를 살린 이 큰 이적을 보고도 이 두 가지 현상은 어김없이 일어났다. 이 세상에는 두 가지 영역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빛이고 또 다른 하나는 어두움이다. 어떤 자들은 순수하게 주님을 믿고 어떤 자들은 죽이려 하고 있는 바리새인들에게 알렸다. 우리는 이런 일을 참으로 많이 체험하고 있다.

47 이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공회를 모으고 가로되 이 사람이 많은 표적을 행하니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 48 만일 저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저를 믿을 것이요 그리고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 하니 49 그 중에 한 사람 그 해 대제사장인 가야바가 저희에게 말하되 너희가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도다 50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지 아니하는도다 하였으니 51 이 말은 스스로 함이 아니요 그 해에 대제사장이므로 예수께서 그 민족을 위하시고 52 또 그 민족만 위할 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말함이러라 53 이 날부터는 저희가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니라

11장 마지막 부분을 볼 때 모든 상황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도록 하는 상황으로 가고 있다. 주님이 나사로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사건이 유대인들에게 커다란 이슈가 되었다. 요한복음에는 세 가지 중요한 기적이 유대인들의 적대감을 고조시킨 것으로 나타나 있다. 첫째는 38년 된 병자를 일으키신 것, 둘째는 날 때부터 소경된 자를 일으키신 것, 셋째는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것이다. 기적의 총 결론은 “이 날부터는 저희가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니라”이다.

불신앙과 대적하는 역사도 가만히 있지 않고 점점 더 역사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따르려는 분위기도 형성되고 있었다. 그래서 당시 종교 기득권자들, 유대교 지도자들은 더욱 당황하게 되었다. 어떻게 하면 이 예수의 영향력을 최소화하고 자기들의 종교 기반을 조금도 흔들리지 않게 할 것인가 고민했다. 최선의 방법은 예수를 제거하는 것이었다.

54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유대인 가운데 드러나게 다니지 아니하시고 여기를 떠나 빈 들 가까운 곳인 에브라임이라는 동네에 가서 제자들과 함께 거기 유하시니라 55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우매 많은 사람이 자기를 성결케 하기 위하여 유월절 전에 시골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더니

착하고 선한 일을 할수록 대적은 더 공격한다. 따라서 세상은 경건하게 사는 자들에 대하여 칭찬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핍박을 한다(딤후 3:12). 주님은 자기 때가 이르지 않은 고로 그들에게 자신을 내어주지 않기 위해, 또 소란을 피하기 위해 한 동네로 피하셨다. 때가 이르기 전에 잡히지 않기 위함이요, 하나님의 때를 정확히 순종키 위함이었다.

56 저희가 예수를 찾으며 성전에 서서 서로 말하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뇨 저가 명절에 오지 아니하겠느냐 하니 57 이는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누구든지 예수 있는 곳을 알거든 고하여 잡게 하라 명령하였음이러라

당시에 유월절이 되어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몰려들었는데, 단연 대화의 화제는 예수에 관한 것이었다. 그가 올 것인가 안 올 것인가? 예수가 과연 예루살렘 성전, 유월절 행사에 참여할 것인가 안 할 것인가? 만일 오면 잡아야 한다, 이런 상황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예수님은 멀리 갈릴리에 계시지 않고 예루살렘과 아주 가까운 베다니에 오셨고, 이 날은 유월절 엿새 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