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등대는 1308년과 1349년에 있었던 대지진으로 완전히 파괴되어 버렸고, 중세 이슬람 세계의 대여행가 이븐 바투타가 알렉산드리아를 찾아 왔을 때 출입구마저 들어갈 수 없을 정도가 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븐 바투타 여행 이후 약 100년이 지난 15세기 중엽, 이집트의 술탄 카이트 베이가 옛 파로스 등대 부지에 ‘카이트-베이 성채’를 건설했다. 등대의 잔해를 사용하여 성채를 건설한 것이다.

카이트 베이 성채 건설 이후 파로스 등대는 그 흔적이 없어졌으나 최근 들어 등대의 발굴이 활발히 진행되어 마침내 바다 속에 가라앉은 잔해를 발견하였다. 세계 7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고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파로스 등대가 신비의 베일을 벗기 시작한 것이다. 파로스의 등대 모습이 부분적으로나마 드러나게 된 것은 프랑스 해저 고고학 발굴팀의 작업 결과다. 그동안 발굴팀은 파로스 등대의 부서진 잔해 수백 점을 발견하였다. 이들은 수심 7km의 해저에서 화강암으로 만든, 높이 4.55m 무게 12t 규모의 여신상의 몸통 부분을 크레인으로 인양하는 데 성공하였다.

해저에는 스핑크스와 부서진 오벨리스크, 이시스 여신상 등 화려하고도 웅장했던 파로스 등대의 면모를 짐작케 하는 잔해들이 널려 있는 상태라고 한다. 조형물마다 이집트 상형문자가 새겨져 있어 파라오의 신비는 물론 고고학 분야나 등대 연구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을 기대를 하고 있다. 이 섬에 가면 해변을 따라 버려진 파로스 등대의 흔적을 볼 수 있다. 파로스 등대에 세워진 카이트 베이 성채는 오스만 터키 제국의 침입을 막기 위해 건설되었으나 현재는 해군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알렉산드리아는 예수님 당시, 즉  1세기에는 지중해의 중심지였다. 사도 바울처럼 마가 요한도 도시를 중심으로 복음 전도를 한 것이다. 그러므로 마가 요한이 이곳 알렉산드리아로 왔을 것이다. 마가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12제자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70인 전도 대원 중 한 사람이었다.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도 그의 집에서 이루어졌고, 그의 집은 항상 초대 교회의 집회소였다. 바나바의 조카이기도 했던 그는 사도 바울과 베드로를 따라서 열성적으로 전도 여행을 다니기도 하였다. 전승에 의하면 마가 요한이 로마에 있을 때 천사의 지시를 받고 이집트로 오게 되었다고 한다. 알렉산드리아를 방문하여 복음을 전하면서 알렉산드리아 교구를 세웠는데, 주후 68년 5월 8일 이교도들에 의해 순교한다.

▲카이로 마가 기념교회.

이집트의 콥트 기독교도들은 그들 교회의 설립자인 마가 요한에 대해, 가장 권위 있는 복음서의 저자이며 알렉산드리아의 대주교 중 첫번째로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콥트 교도들은 이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가 이집트에 와서 최초로 복음을 전한 사람은 구두장이 아니아누스이다. 마가는 알렉산드리아의 어느 돌길을 걷다가 신발끈이 다 낡은 것을 발견하고 구두장이 아니아누스에게 가서 수선을 부탁하였다. 그런데 아니아누스가 구두를 수선하다가 송곳으로 자기 손을 찔렀다. 이때에 아니아누스는 “하나님은 하나다”라고 자기도 모르게 소리쳤는데, 이를 지켜본 마가는 그의 부상을 치료해주면서 그에게 예수의 복음을 전하였다. 아니아누스는 마가 요한이 전한 복음을 곧 받아들였으며, 그의 가족들도 뒤를 따라 복음을 받아들였다. 그 이후 알렉산드리아 기독교도의 수는 급속히 늘어나기 시작했으며, 나중에는 알렉산드리아 총독 오빌로짜도 복음을 받아들이게 된다.

마가는 여러 명의 사제와 부제, 주교들을 양성하고 교회 건물을 세웠다. 갑자기 커가는 기독 교회에 대하여 알렉산드리아 기득권층은 질시와 함께 커다란 위협을 느낀 것 같다. 주후 68년 알렉산드리아 기독교인들은 부활절 행사를 치르고 이교도들은 세라피스에서 축제를 벌이던 날, 이교도들이 행동을 개시했다. 교회에서 예배를 보고 있던 마가를 불시에 쳐들어와 붙잡아 가서, 가축에 목줄을 매듯이 그의 목에 밧줄을 묶은 후 길거리로 끌고 다녔다. 밤중에는 그를 옥에 가두었다.

마가 요한은 감옥에서 천사를 보았다고 한다. 천사는 그가 순교할 것임을 전하여 주었다고 한다. 다음날 아침 무지한 우상 숭배자들인 이교도들이 다시 그를 길거리로 끌고 나왔다. 그는 지칠대로 지쳐서 결국 절명하고 말았다. 그러나 광분한 이교도들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마가의 시신을 태워버리려 했다. 이교도들이 마가의 시신에 불을 놓자 갑자기 천둥과 번개가 치면서 폭우가 쏟아졌다. 그러나 이때 마가를 쫓던 교인들이 모여들어 잿더미 속에서 그의 시신을 꺼냈다. 시신은 기적적으로 아무 이상이 없었다고 한다. 교인들은 시신을 교회로 운구하여 기도를 드리고, 수의를 입힌 후 기독교의 의식에 맞추어 장례를 치렀다.

알렉산드리아 교인들은 그이 순교가 길이 기억되기를 기원하면서 교회 동편에 그를 묻었다. 주후 9세기 그이 유체가 발견되어 수로를 통해 베네치아로 운반할 때에 여러 기적이 일어났다고 전하고 있으며, 지금 베니스의 성마르코 교회는 마가의 유체를 가져와서 안장한 곳이다. 마가 요한은 베니스의 수호성인이 되었다. 

김용규 목사
령천 교회 중동 선교사
크리스찬 해피투어 성지플레너
성지 가이드 북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