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근 목사(온누리선교교회).
3:1 여호와께서 가나안 전쟁을 알지 못한 이스라엘을 시험하려 하시며 2 이스라엘 자손의 세대 중에 아직 전쟁을 알지 못하는 자에게 그것을 가르쳐 알게 하려 하사 남겨 두신 열국은 3 블레셋 다섯 방백과 가나안 모든 사람과 시돈 사람과 바알 헤르몬 산에서부터 하맛 어구까지 레바논 산에 거하는 히위 사람이라 4 남겨 두신 이 열국으로 이스라엘을 시험하사 여호와께서 모세로 그들의 열조에게 명하신 명령들을 청종하나 알고자 하셨더라 5 이스라엘 자손은 마침내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 사이에 거하여 6 그들의 딸들을 취하여 아내를 삼으며 자기 딸들을 그들의 아들에게 주며 또 그들의 신들을 섬겼더라 7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 목전에 악을 행하여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긴지라

1. 1절의 “이스라엘 자손 중에 전쟁을 알지 못하는 자에게 그것을 가르쳐 알게 하려 하사”라는 말씀은 그리스도인이 이 땅에 사는 동안 반드시 전쟁을 알아야 하고 전쟁에 참여해야 함을 함축한다. 하나님은 이 땅에 그분의 자녀들을 두시고 그들이 전쟁에 능한 자들이 되기를 원하신다. 신자들은 어려운 상황에 부딪칠 때 당황하지 않고 마땅히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되어 어떤 고난이라도 기쁨으로 오래참고 견뎌야 한다(골 1:11). 또 고통스런 상황을 견디는 능력도 배양해야 한다.

2.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유익을 위하여 대적들을 그들 곁에 남겨두셨다고 한다. 사람의 생각에는 어떤 대적도 남기지 않고 멸절시키는 것이 그들을 위한 것이라 하겠지만, 하나님께서는 무엇이 그들을 위해 가장 좋은 것인지 아셨다.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러나 많은 성도들이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이해하지 못한다. 사실 많은 성도들의 온전케 됨은 소위 그들의 대적에 의해 이루어진다.

만일 어떤 사람이 아무런 어려움이나 대적하는 사람이 없다고 할 때 과연 훌륭한 영적 전사가 될 수 있겠는가?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가 전쟁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대로 반대 세력을 일으켜주신다. 우리는 주위에 반대 세력이 존재하는 것이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해주신 것임을 안다. 그것을 통하여 우리는 싸우는 법을 배우고 훈련되며, 또 한편으로 하나님께서는 그것으로 우리를 시험하신다.

대적과 공존하는 생활 속에서 어떤 사람들은 약하여져 타협하기도 하고 그 상황에 굴복하기도 하나 어떤 사람은 오히려 그로 인하여 강해지고 대적을 이기는 지혜와 힘을 얻게 되니 한 면으로는 시험이요 한 면으로는 훈련인 것이다.

3. 블레셋 다섯 방백은 아스돗, 가사, 아스글론, 가드, 에그론이다(삼상 6:17). 가나안 모든 사람이란 가나안 일곱 족속 중에 잔류자를 말하는 것이며 시돈 사람은 베니게인을 가리킨다. 여기서 대적들의 이름의 뜻을 살펴보면 다 의미가 있다. 가나안은 무역상을 뜻하며 아모리 사람은 수다장이, 브리스 사람은 지배자들, 히위 사람은 시골 사람, 여부스 사람은 짓밟는 사람들을 뜻한다. 가나안 사람은 상업적인 거래의 관념을 가진 대적이다.

천국은 상업 원리에 지배받지 않는다. 다만 은혜의 원리, 긍휼의 원리에 따라 다스려진다. 순수하게 주님을 사랑함으로 받은 은혜를 사람들에게 나눠주며 섬기는 것이다. 여기에 대가의 원리가 작용해서는 안 된다. 수다장이는 말이 많은 것인데, 우리의 입은 열린 무덤이요 속에서 악한 것이 나온다. 우리의 입은 많은 문제의 근원이다. 또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는 지배하고 정복하려는 영이 없어야 한다. 모든 이가 다 섬기는 자여야 한다. 주님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신다(계 2:6). 니골라 당의 원뜻은 ‘백성들 위에 정복하는 무리’이다. 신약의 성도들은 다 왕 같은 제사장들이다.

4. 결국 5절은 “이스라엘이 마침내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 사이에 거하였다”고 말한다. 가나안 땅에서 누가 주인처럼 살고 있었는가? 다 진멸당해야 할 가나안 사람과 이방 족속들이다. 이스라엘은 그들을 쫓아내지 못할 뿐 아니라 그들 틈에 끼어서 근근이 사는 형편이 된 것이다. 오늘 우리 개개인 속에서도 주의 성령이 왕 노릇 하고 그분이 주인 되셔야 함에도 불구하고 육과 자아가 주인 행세하며 주님은 손님처럼 한켠에 계시는 경우가 많다.

5. 결과적으로 이스라엘은 완전히 타락하고 말았다. 그들은 그 가나안 족속들과 결혼하고 그들의 우상들을 섬기는 상태에 떨어졌다. 과거 젊은 그리스도인일 때 세상과 장래를 버리고 함께 그리스도인 생활을 시작했던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세월이 흐른 요즈음 나는 많은 이들이 그 옛날 버렸던 세상과 물질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그리로 돌아가버린 것을 보게 된다. 어떠한 타락인지!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 누구도 보장할 수 없는 것이 이 길이다. 이 부분에서 진정으로 하나님의 긍휼이 필요하다.

7절의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긴지라’에서 ‘잊어버리다’의 히브리어 ‘솨카흐’는 ‘잘못 놓다’라는 뜻이다(호크마 주석). 그들은 하나님을 마음 중심에 두지 않고 마음 밖에 두었다. 대신에 그들 마음에는 많은 우상들(바알들, 아세라들)을 두었다. 이러한 상황은 사사기의 전주곡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진노하사 이스라엘이 이방 열국들의 손에 팔려 고난받도록 허락하셨다.

8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그들을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파셨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팔 년을 섬겼더니 9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그는 곧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라 10 여호와의 신이 그에게 임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 사사가 되어 나가서 싸울 때에 여호와께서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을 그 손에 붙이시매 옷니엘의 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이기니라 (“주의 영이 그에게 임하시어 그가 이스라엘을 재판하고 싸우러 나갔더니 주께서 메소포타미아의 쿠산 리사다임 왕을 옷니엘의 손에 넘기시어 그의 손이 쿠산 리사다임을 이겼더라”―흠정역) 11 그 땅이 태평한 지 사십 년에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 죽었더라

1. 로마서 1장에 의하면 사람들이 썩지 않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을 우상으로 바꾸었을 때 저희를 내어버려 두신다(23-24절). 즉 사람이 하나님을 버릴 때 하나님도 그를 버리신다는 뜻이다. 그들은 가나안에 들어와서 편안해지자 살아계신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붙잡았다. 그때 하나님은 진노하셔서 그들을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파셨다. 그 이방 왕은 이스라엘을 8년 동안 압박했다. 이스라엘은 힘들고 어렵게 되자 자기들이 멸시하고 버렸던 여호와 하나님을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은 비로소 여호와께 부르짖었다.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와서 문제가 된 것은 편안함이요 안주하는 것이었다. 그때 그들은 자신들의 삶이 위주가 되어 살아계신 하나님의 뜻을 좇기보다는 죽은 우상으로 하나님을 대치하여 편안하게 살고자 했다.

오늘날도 풍요로운 나라의 사람들의 우상은 대개 지식 속에만 있는 하나님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지식 속에만 가두어두고 죽은 지식을 하나님으로 섬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더 좋은 지식을 얻으려고 이리저리 다니는지 모른다. 그들에게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격 앞에 무릎 꿇고 대가를 지불하며 살려는 마음이 없다. 다만 지식적으로 교리를 알면 된다는 식의 신앙 생활을 하면서 편안한 삶을 누리려 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하나님이 그러한 사람에게 고난과 질병을 허락하시면 비로소 모든 이론과 지식이 무익함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지식의 우상을 버리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게 된다.

2. 여호와께서는 한 구원자를 예비하셔서 그들을 구원하셨다. 하나님은 끝까지 진노를 품지 않으신다. 그들이 진정 회개한다면 하나님은 구원의 은혜를 허락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옷니엘은 여호수아 시대의 인물로서 갈렙의 아우요 그나스의 아들이다. 그는 이미 여호수아 시대에 이름을 얻은 장군이다. 그는 기럇세벨을 쳐서 정복한 일로 갈렙의 사위가 되었다.

첫 번째 사사가 된 옷니엘은 여호수아 시대와 사사 시대를 잇는 사람이 되었다. 하나님은 어떤 전력이 전혀 없는 사람을 들어 쓰시지 않는다. 모세는 바로의 왕궁에서 많은 학술을 배우고 히브리인 부모 밑에서 히브리 종교를 배운 사람이다. 그리고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간 양치기를 하며 예비되었다. 그는 그런 과거의 연단과 훈련을 통해 40년 동안 광야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인도하는 중대한 책임을 부여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다윗 또한 양떼를 치면서 사자나 곰을 때려잡는 용기와 담대함을 기른 청년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골리앗을 죽이고 이스라엘을 통치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바울은 가말리엘 문하에서 배웠으며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난 뒤 아라비아에서 3년을 있었고, 그 후 안디옥에서 바나바와 교사의 일을 하며 교회를 섬기는 일을 한 사람이다. 그런 연후에 그는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사도의 일을 수행했던 것이다. 옷니엘은 갈렙에게서 배웠고 기럇세벨을 정복하였으며 좋은 배필(갈렙의 딸 악사는 그 아비 갈렙을 닮아 윗샘과 아랫샘을 달라고 구한 현숙한 여인이었다)을 얻은 사람으로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도록 잘 예비된 그릇이었다.

3. 사람이 예비되었다 하더라도 주의 영이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예비된 그릇인 옷니엘에게 사사의 일을 할 수 있도록 주의 영이 임하였다(10절). 그는 나가 대적과 싸우기 전에 먼저 이스라엘을 심판하였다. 사역하려는 분들을 위하여 한 마디 하겠다. 먼저 일하러 나가기 전에 자신과 가정을 재판해야 한다. 가정과 자신 안에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죄가 있는데 나가서 싸워 이기리라고 생각하는가? 옷니엘은 먼저 이스라엘을 심판하였다. 먼저 자신들의 죄악을 판단한 것이다. 그런 연후에 싸우러 나갔다. 결과는 승리였으며 그의 사역으로 40년 동안의 평화가 왔다. 40년 후에 옷니엘은 죽었다. 그가 죽은 후에 평화와 안식에 대한 보장이 없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