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타협하는 불치병 환자

김은애 기자  eakim@chtoday.co.kr   |  

아하! 행복한 가정이 보인다(92)

“하나님! 이번 한 번만 살려 주시면 제가 집을 팔아서 교회를 짓겠습니다.”

“여보! 뭐라고 기도하셨어요?”
“하나님께서 살려 주시면 집 팔아서 교회 짓겠다고 했어!”
“뭐요? 아니, 당신이 집 팔면 우린 어디서 살아요? 당신 살자고 우릴 죽일 작정이에요?”
“아니…. 그래도 살려 주시면….”
“갈려면 조용히 갈 것이지, 살아 있는 사람까지 고생시켜?”
“아니…, 여보!”

죽음을 앞둔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소와 달리 특수한 심리상태에 놓인다. 가족은 임종자의 심리를 미리 간파하고 그에 적절한 돌봄과 상담으로 도움을 줘야 한다. 죽음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는 죽을 병으로 판정이 내려진 임종 환자들의 심리적 전개 과정을 관찰하고 연구한 결과 임종기 환자는 다섯 심리 상태를 거친다고 했다. 첫째 부정과 고립의 단계이고, 둘째 분노의 단계이며, 셋째 타협의 단계다. 넷째 우울 단계이고, 다섯째 수용 단계다.

물론 모든 임종 환자들이 똑같은 과정을 거치는 것은 아니다. 타협 단계에 이르면 환자는 불가항력적 현실을 받아들이는데, 이 표시가 바로 타협이다. 타협은 어떻게 해서든 생명을 연장시켜 보자는 의도에서 비롯되는 노력이며, 대상은 대부분 하나님이다. 평소 하나님을 믿지 않던 사람들조차 하나님을 의지하려 노력한다. 즉 자신의 과거를 뉘우치고 하나님께 기도 드리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성경에도 히스기야가 죽음의 사실을 통지 받았을 때 하나님과 타협한 기록이 있다.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니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나아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네 집에 유언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 히스기야가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주의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니 이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사 38:1~4)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15년을 더 살게 하신다. 이런 성경 구절은 타협 단계에 있는 환자들에게 매우 소망적인 말씀이다.

이때 자신에게 내세울 것이 있는 사람은 과거 선행, 헌금 등을 들먹이면서 그것을 기억하시고 한 번만 살려달라고 타협한다. 내세울 것이 없는 사람은 잘못을 고백하면서 “앞으로 평생을 하나님을 위하여 헌신하겠으니 한 번만 살려달라”, “앞으로 교회를 지어 바치겠으니 살려 달라”는 등의 얘기를 한다. 이것은 심리적 퇴행이라고도 할 수 있다. 어린아이들이 자신의 요구를 부모가 거절할 때 초기 반응으로 부정과 분노를 나타내지만, 얼마 되지 않아서 부정과 분노가 더 이상 효과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가 되면 부모의 마음이 움직여서 원하는 것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에 의해서 나오는 심리적 현상과 같다.

어떤 때는 과학이나 의학과 타협을 하려고 할 때도 있다. 이 단계에서 환자들의 타협이란 대부분의 경우 타협을 위한 약속일 뿐 지키기 위한 약속은 아니다. 그렇지만 상담자나 환자 가족은 환자의 언약을 묵살하지 말고 받아들임으로써 환자의 공포심이나 죄의식에 대한 두려움을 해소시켜 줄 수 있어야 한다. 대부분 환자들은 자신의 과거에서 죄를 찾아 그것 때문에 죽을 병이 온 것으로 생각하고 심각한 죄책감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이 때가 가족이 환자에게 가장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기회이며, 기도를 포함한 신앙을 통해 죽음의 불안을 감소시킬 수 있는 역할이 가장 요구되는 때이다. 이 시기에 놓인 환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누군가 인내를 가지고 환자 옆에 함께 있어 주는 것이다.

전요섭 목사, 황미선 사모(한국가정상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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