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오늘 낮에 집에서 청소하다가….”
“응, 청소하다가….”
“거실에 당신이 귀하게 여기는 도자기 있잖아, 그걸 깨뜨렸어.”
“그랬어? 그렇지 않아도 오늘 집에 들어 와서 그 도자기 내가 깨뜨려 버리려고 했는데, 아니 당신 어떻게 내 맘을 그렇게 알고 먼저 깨뜨렸어?”

“아니, 여보?”
“아! 그거 말이야, 값비싼 게 거실에 있어서 늘 마음이 불안했어! 또 그것이 내 마음에 하나님보다도 더 귀하게 생각되는 우상 같아서 사실 오늘 저녁에 깨뜨려 버리려고 생각했었는데…. 여보! 고마워! 내 일을 당신이 알아서 해 줘서 말이야. 어디 다친 데는 없지?”
“아이, 참….”

한 사람에게 마음의 여유가 있는지 없는지를 알아 보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말에 유머가 있는가 없는가로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유머가 없는 사람은 마음의 여유가 없으므로 말도 여유 있게 할 수 없고, 얼굴 표정도 역시 경직되어 좋지 않아 보인다. 누구나 그 마음 속에 있는 것을 입 밖으로 말하게 되어 있고, 아울러 얼굴 표정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다.

얼굴이란 순 우리말로 ‘얼의 꼴’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얼’이란 마음, 생각, 심리, 정신 등을 뜻하는 우리말이다. 그러므로 그 마음의 꼴이 어떤 상태인가가 ‘얼의 꼴’, 즉 얼굴이다.

그러므로 유머가 없고 표정이 굳어진 사람은 마음의 여유가 없음은 물론, 무엇인가 불만과 불안에 가득 찬 사람일 수 밖에 없다. 실존주의 심리학자 롤로 메이(Rollo R. May)는 신경증에 걸린 사람의 공통점은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또 심리학에서는 ‘데드 마스크(죽은 얼굴)’라는 표현이 있는데 역시 마음의 여유가 없어 얼굴이 굳어진 사람을 뜻한다.

유머와 웃음은 그것을 가지고 있는 자신은 물론 그것을 보고 듣는 사람의 마음에도 치료적 효과가 매우 크다. 유머와 웃음은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문제를 전혀 다른 시각에서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유머와 웃음은 가족 간의 친밀도를 높게 만든다.

버기어(G. W. Vergeer)는 유머가 스트레스에 잘 대처할 수 있도록 해 주며 자아개방을 원활히 하여 보다 솔직해지고 좌절과 분노의 배출구가 되어 준다고 주장했다. 또한 유머는 변형적 요소가 강해 어떤 일에 새로운 시각을 부여하여 상황에 휘말리지 않고 통제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유머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은 즉흥성이다.

계획된 유머는 효과가 없다. 즉흥성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평상시에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만 한다.

유머의 의도는 그 말을 들은 사람이 자기 문제에 대해서 염려와 불안으로부터 벗어나 마음의 여유와 웃음을 가질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유머는 어떤 사실 또는 문제와 자신 간에 거리를 두도록 만드는 기능이 있다. 즉 유머를 통해 초연한 상태에서 자신을 바라보게 함으로써 자신의 곤경을 초월하도록 돕는 것이다. 빅토르 프랭클(Victor E. Frankl)은 유머와 심리적 여유만 가지고도 심각하다고 할 수 있는 문제와 증상이 회복되고 어떤 경우에는 신체적 질병들도 치료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가장의 표정과 말 한 마디가 가족의 분위기를 결정하는 것이 틀림없다. 만일 가장이 아내나 자녀에게 전혀 웃어 줄 줄 모르고, 격려할 줄 모르며, 유머를 구사할 줄 모른다면 그 가정의 분위기는 매우 암울하고 답답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가정 분위기 속에서 성장하고 생활하는 가족은 그 환경에 익숙하여 역시 그렇게 될 가능성이 많다.

이런 공동체는 갈등이 많이 발생할 수 있으며, 갈등해소도 용이하지 않고, 가족과 가정에 대한 매력도 느끼지 못하여 가족응집력이 약하다.

유머는 뇌의 천연 안정제를 자극해서 신체적, 감정적 긴장을 완화시킨다. 그러므로 가장은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가족을 충분히 이해, 위로, 격려하고, 웃어주며, 유머를 구사하여 불안을 해소시켜 주는 치료적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가장의 넓은 이해심의 나무 아래 시원한 그늘에서 가족이 편안히 쉬고, 기대며, 즐거울 수 있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다.

전요섭 목사, 황미선 사모(한국가정상담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