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춘 목사 (www.dreamel.com 운영자)

중국의 내몽고자치구에 위치한 모우스는 중국의 4대 사막 중 하나다. 20년 전, 이곳의 징베이당에 거주하는 가구는 단 하나 밖에 없었다. 신랑 바이완샹, 그리고 나이 스물에 그에게 시집 온 인위쩐뿐이었다. 사람도, 차도, 마차도 없었다.


얼마나 사람이 그리웠으면 어쩌다 지나가는 행인의 발자국이 모래바람에 지워질까봐 그릇을 덮어두고 봤겠는가. 인위쩐의 신혼은 작은 토굴에서 시작됐다. 한낮에도 촛불을 켜야 했고 매시간 모래바람과 싸우며 앞마당의 모래를 치워야 했다.

밤낮으로 휘몰아치는 모래바람은 그녀를 도망가고 싶도록 만들었지만 눈물로 붙잡는 신랑을 떠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귀가 번쩍 뜨였다. 멀리 친정 근처에 사는 사람이 중국정부로부터 사막 2백만 평을 임대받아 나무를 심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그래. 죽더라도 나무를 심다가 죽자.’ 그녀는 새벽 3시에 일어나 19킬로미터 밖의 묘목장으로 소를 끌고 가 묘목을 사왔다. 오다가 모래바람을 만나 파묻히기도 했고 소 꼬리를 붙잡고 겨우 탈출하기도 했다.

모래바람과 싸우며 나무를 심느라고 첫 아이는 조산했고 둘째 아이는 유산했다. 남편과 아들이 폐렴에 걸리기도 했다. 아들을 집 기둥에 묶어두고 홀로 사막으로 들어가 종일 풀씨를 심었고 풀이 자라면 그 주변에 나무를 심었다.

하찮은 잡풀이 그렇게 귀한 줄 몰랐다. 밤새 물통을 지고 물을 뿌렸다. 부드럽던 손이 남자의 손보다 더 거칠어졌고 곱던 얼굴에는 바람자국이 선명하게 났다. 세월의 흐름 속에 풀이 자라고 나무가 자라고 숲이 생겼다. 토끼, 여우, 닭이 숲의 친구가 됐다.

이제 옥수수 밭을 지나 미루나무 잎사귀를 흔들며 다가오는 바람마저 정겹다. 친척을 비롯해 사람들도 몰려들고 있다. 사막을 임대해 나무를 심는 가구가 현재 80호에 달한다. 인위쩐은 모래바람의 사막을 버리지 않았다. 거기를 산들바람의 숲으로 바꿔 놓았다.

무엇이 성공인가. 나의 현장을 이전보다 더 나은 곳으로 만든다면 그것이 성공이다. 나의 현장이 사막이라면 거기에 풀씨를 심는 것부터가 성공의 시작이겠다. 천국일지라도 겨자씨 한 알을 심듯이 시작되지 않는가.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마13:31)

1914년의 1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 프랑스의 프로방스 지역은 무분별한 벌채로 산들이 황폐했다. 나무가 없어 바람이 세찼고 개울이 말라 마을들이 버려졌다. 그러나 알프스 산맥의 목자, 엘지르 부피에는 황량한 산등성이에 상수리를 심었다.

깨졌거나 너무 작은 상수리를 골라내고 3년 내내 완벽한 상수리 10만 그루를 심었다. 그는 2만개가 발아하고 1만개가 살아남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1939년에 터진 2차 세계대전도 무시하고 거기에서 20마일 떨어진 곳에다 또 상수리를 심기 시작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프로방스 지역의 산들에 숲이 생기고 죽었던 개울에 물이 흘렀다. 농장이 자리를 잡고 마을이 하나씩 들어섰다. 땅 값이 비싼 평원에서 살던 사람들이 모험심을 갖고 거기로 몰려들었다.

무엇이 성공인가. 내가 서 있는 현장을 이전보다 더 나은 곳으로 만든다면 그것이 성공이다. 지금 서 있는 현장에서 땀을 흘리며 씨를 뿌리며 투신하라. 거기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 거기로 사람들이 찾아들게 하라.

깊은 물을 찾아 헤매지 말라. 현장을 깊은 물로 만들고 거기에 그물을 내려라. 땅 끝을 찾아 헤매지 말라. 현장을 땅 끝으로 삼아 거기를 수확하라. 지금 서 있는 곳을 주님의 나라로 만들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