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현대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23일 국회에서 엄수됐다. 그의 죽음 앞에 동서로, 여야로, 이념으로, 계층으로 나뉘어 분열을 겪던 온 나라가 잠시나마 싸움을 그치고 한 마음으로 애도했다.

기독교계도 그의 죽음 앞에서 생전 김 전 대통령이 늘상 강조했던 평화와 통일, 민주의 가치를 되새겼다. 한기총 엄신형 대표회장과 NCCK 김삼환 회장이 나란히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 장의위원회 고문으로 위촉됐고, 분야별 장의위원으로는 김준곤 목사(CCC), 권오성 목사(NCCK 총무), 문성모 총장(서울장신대), 박형규 목사(남북평화재단 이사장), 이강평 총장(서울기독대), 이재정 신부(전 통일부장관) 등이 선정됐다. 이희호 여사가 다녔던 창천감리교회 박춘화 원로목사도 장의위원에 포함됐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민주당 기독신우회, 호산나선교회, W-KICA가 21일 오전 7시 30분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개최한 김대중 전 대통령 추모예배였다. 민주당은 호남지역의 영향이 강할 뿐더러, 호산나선교회 역시 호남지역 출신 목회자들의 모임이었지만, 이들은 영남 출신 목회자인 김삼환 목사를 설교자로 내세웠다. 김 전 대통령이 일생 걸어온 길을 상징하는 모습이었다.

평소 김 전 대통령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취해왔던 보수 교계도 이번만큼은 한 목소리를 냈다. 한기총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며 “김 전 대통령은 일생을 정치인으로서 격동하는 대한민국의 현대사 속에 민주화와 남북 평화에 크게 기여했다”고 전했고, 한국교회언론회 “김 전 대통령은 우리 사회의 격랑기(激浪期)에 정치적인 발전에 공헌하였다. 특히 1970년대 이후에 민주화 운동에 이바지한 바가 크다. 또 인권 신장, 통일운동에도 일정한 기여를 하였다”고 평가했다.

세계교회들도 마음을 같이했다. WCC의 사무엘 코비아 총무는 고인에 대해 “한국 민주화와 인권의 열렬한 수호자였던 고인은 분명한 비전과 용기를 갖고 1970년대와 80년대 독재 정권 치하에서 정치적 자유의 확대를 위해 싸웠으며 한국이 완전한 민주화를 이룩하기까지 민주화 운동의 선봉에 섰다”고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호불호는 개인 혹은 집단에 따라 극명하게 엇갈리지만, 김 전 대통령이 현대사의 거인이자 평화와 통일을 위해 수많은 노력을 해왔던 인물임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기점으로 이제 고인이 열망했던 민주와 평화와 통일이 이 땅에 더욱 굳건히 뿌리내기를 바란다.

아울러 사족을 한 마디 덧붙이자면 국가 혹은 타 종교 지도자들의 임종시에 그에 상응하는 예우에 대한 교계적 합의가 필요할 듯싶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비롯해 김수환 추기경 선종 당시와 이번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때에 몇몇 목회자의 발언들이 구설수에 올랐기 때문이다. 심지어 기독교인 중에서도 불교적 용어인 명복(冥福)이라는 말을 서슴없이 쓰는 경우도 많다. 이에 대한 용어 등의 개념을 조속히 정리해야 성도들의 혼란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