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장총 41회기 출범, “복음이 아니면 개혁할 수 없어”
▲김재성 교수(전 국제신학대학원 부총장, 조직신학). ⓒ크투 DB
6. 한국 장로교회의 비전

현대 장로교회가 정통 개혁주의 신학을 기초로 하여, 앞으로 감당해 나가야할 사명과 책임감이 막중하다. 다만 수구적으로 과거의 것들을 반복하는 일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미래적 비전으로 품고 창조적 발전을 이룩해야 한다.

첫째로, 기독교 기본진리와 교리를 축소화하는 경향을 통찰하여 보고, 이러한 흐름을 그냥 따라가지 않도록 해야만 한다.

현대 장로교회와 개혁주의는 성경의 권위가 추락하는 현상을 깊이 인식해야만 한다. 거의 모든 현대 개혁교회의 강단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계시된 교리와 교훈에 대한 축소화가 지속되고 있다. 종교개혁의 신학적 유산과 교리에 대한 무관심이 범람하고 있다.

종교개혁의 유산과 전통으로 남겨진 역사적 신앙고백서들, 신조들, 교리문답서들은 성경의 본질적인 진리들을 종합한 것이다. 그것들은 일시적인 운동의 산물이 아니라, 보편적 교회가 공유하고 발전시켜 나가야할 기초가 된다. 그러나 현대 장로교회와 개혁교회는 이처럼 중요한 교리의 지침들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으며 지켜나가고 있을가를 주의 깊이 살펴보아야 한다. 오늘날 세계 교회에 유행하는 경향들을 살펴보면서, 교회를 세워주는 성경적 유산의 장점과 단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왜곡된 것들을 극복하는 노력이 수반되어야만 한다.

바울 사도는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면 그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난다”(딤후 6:3-4)고 촉구했다.

그러나 현대 교회에서 개혁주의 신학사상에 대한 변질과 벌어지고 있는가를 살펴보자. 성경적인 교훈과 종교개혁의 교리를 축소시키고, 변질시킨 사례는 이미 장로교회 밖에서 활발하게 추진되어왔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 “에큐메니컬 운동”(교회일치)을 전개하여 왔는데, 초교파주의를 표방하기에 장로교회의 원리가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2000년도에 로마 가톨릭과 루터파 신학자들이 “연합선언”을 채택했는데, 역시 종교개혁자들의 교리가 타협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루터의 칭의교리와 트렌트 종교회의(1547)의 저주 선언은 정면으로 대립된 입장인데, 현대 루터파 교회 지도자들은 더 이상 그들의 선조들이 남긴 교리를 고수하지 않는다.

복음에 대한 또 다른 연합 선언이 1999년에 발표되었는데, 복음주의와 로마 가톨릭의 기본적으로 합의 선언을 한 것이다. 복음주의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구원에 이른다고 주장하고, 로마 가톨릭에서는 인간의 공로를 강조한다. 여전히 로마 가톨릭 추기경 덜레스는 칭의를 얻기 위해서는 인간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지만, 다만 고해성사를 의무화 할 수는 없다는 식으로 타협했다.

기독교 기본진리의 축소와 무관심을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를 살펴보자.

미국에서 1921년에 복음주의 연합(National Association of Evangelicals, NAE)이 결성되었고, 공통적인 교리를 일곱 가지 조항으로 간추려서 발표했다. 그 신앙고백의 조항들을 살펴보면, 성례에 대한 설명도 없고, 은혜의 방편들(말씀, 세례와 성찬, 기도)에 대한 언급도 없다. 그 후로, 이들이 제시한 일곱 가지 신앙조항에 없는 교리들은 중요한 복음의 내용이 아니라, 부차적인 것이라고 취급해 버렸다. 기독교 교리의 축소화, 종교개혁의 신학적 유산에 대한 무관심이 극명하게 드러났다.

가장 최근에 미국에서 벌어진 사건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것도 역시 성경에 담겨진 기본적 교리를 축소화시킨 대표적인 현상들 중에 하나이다. 성경의 핵심 교리이자, 종교개혁자들이 정립한 신학적 유산에 대한 무관심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오늘날 교회들이 경계해야할 일들이 무엇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미국 기독교계에서 1980년대 말에 “주되심 구원 논쟁”(the lordship salvation controversy)이 있었다. 믿음으로 얻는 칭의와 성도의 행위로 성취하여 나가는 성화와 성도의 견인 교리에 관련하여 벌어진 심각한 논쟁이 있었다. 이 논쟁에 주목하여야 하는 이유는 너무나 중요한 성경의 핵심 교리에 대한 다툼이라서, 과연 현대 교회가 가장 중요한 근간으로 삼아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여기서 다뤄진 핵심적인 신학사상들은 종교개혁의 역사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이미 이런 논쟁들이 1630년대에 잉글랜드 종교개혁의 현장에서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에 첨예하게 대립하던 상황 속에서 청교도들 사이에서 이탈한 존 이튼과 반율법주의자들이 신약시대의 성도들은 더 이상 구약의 율법을 더 이상 지킬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었다. 칭의를 얻은 은혜의 시대에 살아가기 때문에, 죄에 대한 회개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와 매우 비슷한 논지를 주장하는 현대 세대주의 신학자들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1980년대 말에 일어난 신학적인 논쟁을 결코 가볍게 지나칠 수가 없다. 쟁점으로 부상한 분은 당대 복음적인 설교자로 전 세계에 영향을 끼친 존 맥아더 목사(John McArthur Jr., 1939-)였다. 그는 자신의 책, 『예수를 따르는 복음』에서 오직 믿음으로만을 주장하는 믿음제일주의에 빠진 자들을 비판했다. 1988년을 전후로 하여 미국 근본주의자들과의 사이에 격렬했던 논쟁에서, 그는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고 선언하는 자들의 설교와 성경해석에 숨겨진 왜곡들을 들춰내면서, “쉬운 믿음 제일주의”(easy believism)의 맹점을 파헤쳤다. 맥아더 목사는 기본적으로는 밥존스 대학을 졸업한 근본주의 목회자인데, 로스엔젤레스에서 “그레이스 커뮤니티 교회”(Grace Community Church)를 개척하여 대교회로 부흥시켰다. 그는 “매스터스 대학교”(The Master’s University)와 “매스터스 신학대학원”을 설립하는 등 지금까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러한 맥아더 목사에게 비판을 가하면서, “주 되심 구원 논쟁”을 촉발시킨 신학자들은 일부 골수파 세대주의자들이었다. 현대 세대주의자들은 여러 그룹들이 있다. 맥아더 목사는 그리스도를 주님이자, 누구든지 구세주로 고백하면 값없이 주시는 구원을 얻는데, 거룩한 생활을 지속적으로 유지한 성도에 한해서만 장차 주님의 임재하심에 들어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벧후 2:20). 맥아더 목사가 강조한 바, 거룩한 생활을 지속적으로 유지해야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은 개혁주의 신학과 청교도들의 삶에 관한 교리에서 성화와 성도의 견인교리에 해당하는 내용들이다. 맥아더 목사가 주장한 핵심 내용은 로마서 10장 9절,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는 복음이다.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인정하고 따라가는 성도가 되려면, 그의 발자취를 따라서 거룩한 생활을 도모해야 한다. 이러한 경건의 증진을 위해서 성도들에게는 구약의 율법들과 십계명이 도덕적 원리이자 규범이 된다.

존 맥아더 목사가 “주 되심 신학”에 대해 강조하면서 성도의 지속적인 율법 준수의 필요성을 강조하자, 강경파 세대주의자들이 벌떼같이 일어나서 공격했다. 댈러스신학교 찰스 라이리(Charles Ryrie, 1925-2016)와 제인 하지스(Zane Hodges, 1932-2008) 등은 자신들을 “자유 은총 신학자들”(Free Grace Theologians)이라고 표방하면서 맥아더 목사의 주장을 반박했다. 이들은 구원을 얻는 것은 값없이 주시는 오직 믿음으로만 해결이 되는 것이지, 성화의 유지를 강조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맥아더 목사의 주장을 로마 가톨릭의 선행, 공로주의라고 비판했다. “자유 은총 신학자들”은 구원을 얻은 데 있어서 값없이 선물로 받은 믿음만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어떤 인간의 성화 과정에 속하는 선행과 참여를 부정하고, 개혁주의 신학과 청교도에서 강조하는 성화와 성도의 견인 교리를 부정한다. 이들은 칼빈주의 개혁신학에서 강조하는 성화와 견인의 교리가 사람의 행위 속에서 구원받은 증거를 찾으려 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소위 복음적 운동을 전개한다고 주장하면서, 이들 세대주의자들은 “자유 은총 연합회”(Free Grace Society)를 결성했다. 여기에 속한 댈러스신학교 교수진들 대다수와 세대주의를 따르는 목회자들은 주도하는 운동으로 오직 값없이 주어지는 칭의 교리만 강조한다. 성도의 거룩한 생활을 증진시키는 성화의 교리는 가르치지 않으며, 마지막 날까지 은혜 안에서 거룩함을 추구하는 성도의 견인 교리가 없다. 그 밖에도 근본주의적 반계몽주의 (fundamentalistic obscurantism), 편집된 종말의 장면들에 대한 맹신 등이 약점으로 지적되는 부분들이다.

영국 복음주의 신학자 존 스토트(John Stott, 2021-2011)가 자신이 참여하고 있는 복음주의 운동에 대해서 “매우 잘 성장하고 있지만, 피상적이다”고 혹독한 지적을 했다.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개최된 국제 로잔대회에서, 스토트는 현대 교회가 추구하고 있는 “번영복음”(the prosperity gospel)에 대해서 비판했다. 복음적 연합운동의 장점도 있지만, 장로교회가 정통 개혁주의 신학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 담긴 객관적 교리들을 축소하거나, 무관심하게 되면서, 결국 서서히 왜곡된 유생의 물결에 서서히 젖어들고 말았다. 성경의 권위,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중심으로 하는 성경해석, 믿음을 통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는 구원, 그리스도의 대속적 속죄와 율법을 다 준수하고 성취하신 능동적 순종, 부활과 승천, 재림에 대한 교리 등에 대해서 관심도 없고, 강조하지도 않는다.

이처럼, 우리가 미처 충분히 인식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쉬운 복음”과 “번영 신학”이 확산 되었다. 예를 들면, 미국에서 전개되고 있는 복음주의 운동은 아주 단순한 복음을 전파하는 장점과 단점을 모두 다 가지고 있다. 복음주의 운동은 빌리 그래험 목사의 대중 전도를 통해서 확산되었다. 한국에서도 1974년에 여의도 대집회가 개최된 바 있다. 그가 소천한 후, 미국 트리니티 신학대학원의 칼슨 박사와 뉴욕 리디머 교회의 켈러 박사가 “복음적 동맹”(the Gospel Coalition)을 결성하고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이 두 분은 깊은 신학적 안목을 갖추고 있지만, 이 “복음적 동맹”이 전개한 세미나에서는 단순한 복음만을 강조한다. 더 깊이 있는 교리와 가르침이 없다. 종교개혁의 유산으로 주어진 신앙고백서, 교리문답서, 신조들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