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섭
▲이경섭 목사. ⓒ크투 DB

성경은 ‘복음’을 ‘비밀(엡 6:19)’이라고 한다. ‘공개되지 않고 감춰졌다’는 뜻에서다. ‘복음’을 ‘계시(롬 16:26)’라 함 역시 ‘복음의 비의성(秘意性)’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그것이 인간 지혜나 자의(恣意)로 알 수 없고, 오직 성령으로 ‘열어 보일 때만 알려진다’는 뜻에서다.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 부터 감취었다가 이제는 나타내신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좇아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으로 믿어 순종케 하시려고 알게 하신바 그 ‘비밀의 계시’를 좇아 된 것이니(롬 16:25-26)”.

‘복음의 내용’은 협의(狹義)로는 ‘예수 그리스도’이고, 광의(廣義)로는 ‘하나님이 사람 되어 와 택자의 죄를 구속하기 위해 죽으셨다’이다. 그리고 ‘그것의 기원’은 ‘영세(永世) 전 삼위일체 하나님의 작정과 경륜’이다(고전 2:7). 그럼 왜 ‘복음’은‘비밀’인가?

◈하나님이 적극적으로 그것을 감추신 때문이다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고전 2:7)”. 여기서 ‘감취었다’, ‘만세 전에 미리 정하셨다’는 등의 말씀엔 ‘복음의 비의성(秘意性)’이 하나님의 의도에 의한 것임을 엿보게 한다.

따라서 하나님이 ‘복음’을 사람에게 알게 하기 전까지 그것은 베일(veil)에 싸였고, 때가 되어 그가 그것을 나타내 보여주셨을 때 비로소 그들은 그것을 알 수 있었다. 다음 말씀은 그것을 더욱 공고히 해 준다.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취었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골 1:26).”

심지어 그것을 선지자와 사도들에게 전해 준 ‘천사들’에게까지 그 내용이 감춰져 그들이 그것을 살펴보길 원할 정도였다면(벧전 1:12), 두말 할 필요가 없다. 이는 마치 우체부가 수취인에게 편지를 전해주면서도 그 내용을 모르는 것과 같다.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고한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벧전 1:12).”

그러나 ‘그리스도 복음’이 ‘비밀’이라고 해서 그것의 개봉(開封) 시까지 전혀 알 수 없도록 완전 밀폐했다는 것은 아니었다. 만일 그랬다면 ‘비밀의 실체이신 그리스도(골 1:27)’가 출현하시기 전의 구약 성도들은 구원을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계시의 점진성(Progressive revelation) 원리’에 의거해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시기 전까진 그가 어떻게 성육신하고, 누구의 아들로 태어나고, 어떻게 죽으시고 부활하실 것 등이 완연(宛然)하게 계시되진 않았지만, 그들은 ‘제사·율법·만나·반석’ 등의 표상(表象)을 통해 그를 믿어 구원받게 했다. 다음은 그 구체적 예시들이다.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 그러므로 세상에 임하실 때에 가라사대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히 10:1)”.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일이나 명절이나 초승달 축제나 안식일 문제로, 아무도 여러분을 심판하지 못하게 하십시오 이런 것은 장차 올 것들의 ‘그림자’일 뿐이요, 그 ‘실체는 그리스도’에게 있습니다(골 2:16-17)”.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요 6:48-51)”.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전 10:4)”.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이 적극적으로 그리스도 복음을 비밀에 부친 이유는 그가 만세 전에 작정하신 ‘복음’이 성취될 때 까지 원수로부터 그것을 훼방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고육지책(苦肉之策)이었다.

심지어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셔서 공생애를 시작하신 후까지도 그는 ‘자신의 실체’, 곧 ‘그가 구약에 예언된 그리스도이심’을 드러내지 않으셨다. 십자가 죽음 직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자신이 누구인지를 밝히셨다. 다음의 ‘아직 때가 이르지 못했다’는 구절들이 그것을 시사한다.

“너희는 명절에 올라가라 ‘나는 내 때가 아직 차지 못하였으니’ 이 명절에 아직 올라가지 아니하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갈릴리에 머물러 계시니라 그 형제들이 명절에 올라간 후 자기도 올라가시되 나타내지 않고 비밀히 하시니라(요 7:8-10).”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인에 청함을 받았더니 포도주가 모자란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요 2:2-4).”

◈‘하늘의 지혜’로만 알려지는 ‘복음’

‘복음’이 가진 ‘천상적(天上的) 속성’은 ‘땅의 지혜’로는 해득되지 않는다. 그것에 ‘천국 복음(마 4:23; 9:35; 24:14)’이라는 별명이 붙은 것도 그러한 ‘복음’의 속성을 말한 것이며, 이 ‘천국 복음’은 오직 ‘하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성령의 가르침’으로만 알려진다.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의 없어질 ‘관원의 지혜’도 아니요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고전 2:6-7).”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고한 것이요(벧전 1:12).”

개, 돼지로 상징된 ‘육(肉)에 속한 거듭나지 못한 이들’이 ‘진주인 천국 복음을 발로 짓밟고 그것을 전하는 자에게 덤벼드는 것(마 7:6)’은 그것이 ‘하늘에 속한 신령한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기독교인이라 자처하는 이들이 설교 시간에 ‘인문학’이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주면 혹(惑) 하고, ‘복음’엔 도리질하는 것은 그들의 육적 본성(the carnal nature)의 발로이다.

누가 아무리 많은 세상 지식을 가졌어도 그것으로 ‘복음의 비밀’을 이해할 수 없고,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박학무식자’도 성령의 가르침을 받으면 그것을 알 수 있다. 사도 바울은 이런 ‘복음에 대한 인간 지혜(지식)의 무용함’을 성경 곳곳에서 설파했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전 1:21).”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미련한 것이니 기록된바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궤휼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또 주께서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 하셨느니라(고전 3:19-20).”

이렇게 오직 성령으로만 깨닫는 ‘복음’은 모든 ‘인간 지혜’를 헛것으로 만든다.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요일 2:27).”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요 15:26).”

이러한 ‘복음의 비의성(秘意性)’은 우리로 하여금 오직 ‘복음의 교사이신 성령’의존적인 태도로 그것(복음)에 접근하도록 만든다. 여기서 ‘성령 의존적(a Holy Spirit-oriented)’이라 함은 ‘계시 의존적(a revelation-oriented)’이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이는 ‘성령’은 오직 ‘계시(성경)’에 의존하여 가르치시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복음’을 비밀에 붙이신 것은 ‘하나님의 진리의 사랑을 받지 못한 불택자’로 하여금 (그것을 알아듣지 못해) 구원을 받지 못하게 하려는 ‘그의 의도’ 때문이다.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사 6:10).”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살후 2:9-12).”

오늘 우리가 ‘그리스도 복음’이 믿어지고 깨달아 지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 택정을 받은 사람(행 13:48)’이고, ‘하나님의 진리의 사랑을 받은 자’이기 때문이다. 할렐루야, 하나님께 영광!

이경섭 목사(인천반석교회, 개혁신학포럼 학술고문, https://blog.naver.com/PostList.nhn?blogId=byterian ) 저·역서: <이신칭의, 값싼 은혜가 아닙니다(CLC)>,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CLC)>, <개혁주의 영성체험(도서출판 예루살렘)>, <현대 칭의론 논쟁(CLC, 공저)>, <개혁주의 교육학(CLC)>, <신학의 역사(CLC)>, <기독교신학 묵상집(CLC, 근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