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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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도상

[이경섭 칼럼] 예수 믿으면 구원받는 이유

대개 사람들은 ‘예수를 믿으면 구원 받는다(이신득구, 以信得救)’는 것만 알면 되지, 왜 그런지에 대한 복잡한 과정은 몰라도 된다고 말한다. 비유컨대 스위치만 누르면 방 안에 불이 켜지는 것만 알고, 그것이 어떤 과정을 통해 그렇게 되는지 자세히 몰라도 된다…
이경섭

[이경섭 칼럼] 왠 예수 아닌 인문학 예찬인가?

요즘 기독교 안팎에서 인문학(人文學, humanities)이라는 화두가 넘쳐나며, 인문학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외침들이 자자하다. 그 동안 실용 학문만 우대받던 분위기 속에서, 소위 ‘문사철(文史哲)’로 대변되는 인문학이 이제 제대로 대접을 받게 되는가보다 라는…
십자가 은혜

[이경섭 칼럼] 당신의 구원은 어떤 구원입니까?

◈법적인 심판, 법적인 구원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은 율법의 심판, 그리고 심판의 결과인 죽음에서 건짐을 받는 것이다. ‘심판’이라는 단어가 법적인 용어이듯, 심판에서의 ‘구원’ 역시 법적 용어이다. 따라서 구원을 받으려면 법적인 충족 요건 곧, 완전한…
새신자 친구 책 도서 전도 새가족 제자훈련 우정 제자도 사역 멘토링 양육 멘토

[이경섭 칼럼] 전도, 화려한 언변입니까, 복음과 성령입니까?

전도란, 강태공이 낚시를 던져 운 좋게 물고기가 걸리면 잡고 아니면 말듯이, 불특정 다수에게 감언이설(甘言利說)하다, 어쩌다 걸려들면 포획하는 마구잡이식의 수렵(狩獵)이 아니다. 그리스도가 위하여 죽은 자(롬 14:15), 곧 ‘구원에의 부름(calling to salvation)’을…
이경섭

[이경섭 칼럼] 성경 난독증은 어문력이 아닌, 마음의 완악함 때문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말씀을 가르칠 때 천편일률적이지 않았다. 대상이나 그 때의 정황에 따라 어법(語法)을 달리했다. 사소한 것들부터 구원, 영생, 율법, 믿음 같은 기독교의 본질적 문제에 이르기까지, 내용은 다양하다. 물론 내용의 본질은 동일했지만, 때론 …
이경섭

[이경섭 칼럼] 사람의 증거에 의존하지 않는 하나님

주지하듯 ‘기독교 변증사(辯證史)’는 기독교 포교를 위한 공격적 방도로서가 아닌, 이교도들의 박해에 대한 소극적인 자기 방어에서 시작됐습니다. 기독교 최초의 변증가는 아테네 감독 콰드라투스(Quadratus, 2세기 초)였는데, 그의 최초 변증은 124년- 129년경 박…
이경섭

[이경섭 칼럼] ‘24시간 주님 바라보기’, 어떻게 볼 것인가?

예수를 의식화의 수단으로 만들지 말라 예수는 신비주의의 몰입 대상이 아니다 요즘 24시간 예수를 바라보고 동행하는 훈련을 강조하는 어느 교회가 있다. 분주하고 혼란한 시대에 성도들로 하여금 세상에 매몰되지 않고 깨어 있게 하려는 충정이 엿보인다. 그…
이경섭

[이경섭 칼럼] 성령의 아이콘, 말씀

비유컨대, 말씀은 인터넷의 아이콘(icon)과 같다고 할까요? 아이콘을 클릭하면 아이콘 너머 그것의 실체와 연결되듯, 말씀은 우리를 말씀 너머에 있는 영적 세계와 연결시켜 줍니다. 우리가 말씀을 읽으면 다만 활자로 된 말씀에만 접촉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
이경섭

[이경섭 칼럼] 그리스도의 죽음으로만 되는 삼위일체 하나님 체험

구약에서 짐승의 피를 하나님께 바친 것은, 장차 그리스도가 오셔서 우리 죄 값으로 자신의 피를 하나님께 바친다는 것을 예표합니다. 예표의 성취인 동시에 거기서 더 진일보한 것이 신약의 ‘그리스도의 피뿌림을 받음(벧전 1:2)’입니다. 이는 단지 죄 값으로 …
방언 은사 성령 불꽃

[이경섭 칼럼] 성령의 부으심이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의롭다 함을 받고, 의롭다 함을 받으면 하나님과 화목해져 그 사람 안에 성령이 거하기 시작하십니다. 이는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이 ‘예수’이며 ‘임마누엘’이신 것도(마 1:21, 23), 예수 믿고 …
이경섭

[이경섭 칼럼] 무엇을 위한 강함, 무엇을 위한 능력인가?

성경에는 ‘강하라(수 1:6, 시 31:24)’, ‘강한 자가 되라(롬 15:1)’는 말씀들이 나옵니다. 이것들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우선 ‘강(強)함’에 대한 정의(定義) 규정이 필요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강함은 그의 타고난 성향이나 혹은 후천적으로 습득된 근성이 아닙니…
이경섭

[이경섭 칼럼] 우리의 종교적 열심, 존재적 불안에서 나온 것인가?

인간을 얽매고 불안하게 하는 원인이 신(神)에 대한 두려움이기에, 평안을 누리려면 신을 부정하고 인간을 궁극의 존재로 만들어 신의 예속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하는 무신론적 실존주의(實存主義, existentialism)가 있다. 니체(F. W. Nietzsche, 1844-1900), 사르트르(Sartre…
이경섭

[이경섭 칼럼] 1등만 구원하는 하나님? 구원은 투쟁의 산물 아니다

구원은 우리가 하나님이 정하신 어떤 기준 안에 들어감으로써 획득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 얻은 14만 4천명의 무리는(계 14:1) 수많은 경쟁을 통해 열종(劣種)은 탈락되고 최종적으로 남은 우종(優種)들의 집합체가 아닙니다. 성경에 의하면 구원은 인간 노력의 산…
이경섭

[이경섭 칼럼] 그리스도의 참 죽음만이 생명을

기독교에서는 생명의 가치도 중시하지만, 죽음의 가치도 중시합니다. 죄인은 오직 죽음을 통해서만 살아나기 때문입니다. 곧 율법이 요구하는 ‘죄삯 사망(롬 6:23)’ 지불로 이룬 ‘율법의 의(義)’가 생명을 갖다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미 죄로 죽은 죄인은 …
기도, 신앙, 노을,

이단들이 가장 잘 쓰는 말이 ‘성경적’이라는 역설

‘정통과 이단’, ‘신학과 이데올로기’는 한 끗 차이다. ‘정통(正統)’이 삐끗하면 ‘이단(異端)’이 되고 ‘신학(theology)’이 삐끗하면 ‘이데올로기(ideology)’가 된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자. 하나님의 유일성(唯一性, only oneness)이 삐끗하면 ‘단일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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