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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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

“마귀는 가장 마귀스럽지 않게, 가장 인간적으로 다가올 것”

부패가 만연한 작금의 교계를 보며, 사람들은 교회사의 고비마다 등장했던 신앙 영웅의 출현을 고대하는 듯하다. 기다림에 지친 어떤 이는 ‘그 많던 영웅들은 대체 다 어디로 갔는가?’라며 불평을 쏟아놓는다. 영웅의 등장이 작금의 교회 오염들을 단번에 정화시…
이경섭

[이경섭 칼럼]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완전함을 허락하지 않는가?

기독교 신앙을 도덕과 동일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모든 판단 기준은 오직 도덕성이다.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당시에도 이런 사람들이 있었다. 왜곡된 중세의 기독교는 어쩌면 다 그런 부류가 아니었던가 한다. 그들이 보기엔 종교의 본질(?)인 ‘도덕’ …
이경섭

[이경섭 칼럼] 아담이 약속을 지켰다면, 우리는 영생을 얻었을까?

사람들은 ‘선악과(善惡果) 언약(창 2:17)’을 떠올리면, ‘아담이 선악과를 안 따먹었으면 영생(永生)을 얻게 됐을까?’ 라는 단순한 질문으로부터, 작금에 뜨거운 논쟁이 되고 있는 “영생이 그리스도의‘능동(能動) 순종’의 결과물인가 ‘수동(受動) 순종’의 결…
방언 은사 성령 불꽃

성령 하나님… 터부시하거나, 관심이 없거나, 열광적이거나

어떤 교회들은 말끝마다 ‘성령 하나님’, ‘성령님’ 운운하며 지나치게 성령에만 ‘올인’한다. 소위 성령파(聖靈派, 오순절파)교회들이다. 정반대로 어떤 교회들은 성령이라는 단어를 터부(taboo)시하여, 아예 교회 안에서 ‘성령’이라는 단어 사용 자체를 엄…
이경섭

[이경섭 칼럼] 낯선, 너무도 낯선 믿음의 의(義)

‘예수 믿으면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예수 신앙’ 혹은 ‘믿음의 의(義)’는 미중생(未重生)한 자연인(the natural)에겐 낯선 의(義)이다(고전 2:9). 아니 낯섦 정도가 아닌 적대적이기까지 하다(롬 8: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
이경섭

불륜… 타인 잘못에 ‘날선 비판’ 했던 이들의 실족을 보며

사람들은 ‘인격(人格)’에 지나친 가치 부여를 하는 경향이 있다. 누가 ‘그 분은 참 인격자야’하면 껌벅 하고, ‘그는 이중 인격자야'하면 그냥 몹쓸 사람으로 낙인찍어 버린다. 그러나 그 단어의 개념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 용어에 그리 신뢰를 주지 않을 것…
이경섭

[이경섭 칼럼] 거듭남과 하나님 나라(天國)

◈거듭남과 하나님 나라 성경은 ‘거듭남’과 ‘하나님 나라’를 연결짓는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요 3:5)”며, ‘거듭남’을 천국 입성의 자격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는 단지 미래에 입성할 …
이경섭

[이경섭 칼럼] 마음과 영(靈)

‘마음’과 ‘영(靈)’의 경계선을 쉽게 구분 짓기 어렵다. 때론 둘이 뚜렷이 구분되기도 하고, 때론 구분이 모호해지기도 한다. ‘2분설(dichotomy, 二分說)’, ‘3분설(trichotomy, 三分說)’ 하는 것도 이 구분의 ‘모호성’과 ‘확실성’으로 인해 생겨났다. ‘마음’…
이경섭

[이경섭 칼럼] 구원이 상실될 수 없는 이유

◈구속으로 된 구원이기에 구원을 접근하는데 구속론적(救贖論的)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도덕론적(ethical)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이 있다. 전자는 구원을 오직 ‘그리스도의 피’에 의존시키는 반면 후자는 ‘도덕(선행)’에 의존시키는데, 후자는 모…
이경섭

[이경섭 칼럼] 시청각적 신앙인가, 성령의 신앙인가?

신념은 인간의 심리영역에 근거를 둔 심리의 산물, 믿음은 그리스도의 대속에 근거를 둔 성령의 영역 신앙은 보고 듣고 만지는 감각적인 것에 의존되지 않는다. 성경에서 종종 하나님을 비롯해 영적 실재(實在)들을 오감적 체험방식으로 표현한 것은 하나의 상징…
이경섭

[이경섭 칼럼] ‘큰 믿음’이란?

‘큰 믿음’은 양이 아니라 무게이다 4복음서에서 예수님이 믿음이 크다고 칭찬한 사람들이 종종 등장한다. 믿음이 크다는 것은 과연 어떤 것일까? 그것은 단지 뜨거운 신앙 열정을 보인다거나 신앙적 활동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눅 10:39-42). ‘선지자 …
이경섭

설교를 이데올로기로 만들지 말라

교회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오(마 16:16)”라는 베드로의 신앙고백 위에 세워져 있다. 이 고백은 기독교 2천년 어간 그리스도의 교회를 지탱시켜 온 근간(根幹)이며, 이 고백이 교회를 교회답게 했다. 이 표지가 상실되거나 희미해졌을 …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이경섭 칼럼] 율법의 채무자인가, 사랑에 빚진 자인가?

성경은 두 가지 ‘채무 의식(意識)’을 말한다. ‘율법적 채무 의식’과 ‘사랑의 채무 의식’이다. 전자는 인간의 의(義)로 구원을 이루려는 자에게서 나온 의식이라면, 후자는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은 자가 사랑의 강권을 받아 나온 의식이다. 구태여 둘을 …
이경섭

[이경섭 칼럼] 거듭난 자만 믿을 수 있는 예수

거듭남, 복음의 영광 볼 수 있는 능력 거듭나 그리스도의 영광 보는 자만이 복음에의 복종, 곧 예수 믿을 수 있어 ‘예수 믿고 구원 받으라’는 복음 전도가 종종, ‘제발 예수 좀 믿고 구원 받아달라’고 애원하는 것처럼 오해받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상대방…
이경섭

[이경섭 칼럼] 성령 강림 때 방언이 임한 이유

오순절 성령 강림시 수반된, 소위 ‘거룩한 혼돈(holy disorder)’으로 곧잘 명명되는 ‘요란한 현상’에 대해 고찰하고자 한다. 그것은 한 마디로 ‘내가 지금 여기 왔다’는 성령 강림의 표적(sign)이었다. 알다시피 ‘성자 강림(the advent of the Son)’은 육체를 입은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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