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아름다운 칸타타와 수난곡
바흐의 예술정신, 경건성에 기초
음악과 가사, 언어 선명하고 완벽
하나님께 말로 표현 못할 찬양을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알베르트 슈바이처 | 강해근·나진규·장견실 역 | 풍월당 | 1,344쪽 | 68,000원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슈바이처의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와 슈바이처의 바흐 오르간 연주 음반. ⓒ풍월당
“바흐에게 음악은 예배다. 바흐의 예술정신과 인격은 바로 그의 경건성에 기초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한의 바흐는 항상 여기에서 출발한다.”

“중세의 문학과 음악을 연구하다 보면, 어느 길로 가더라도 우리는 바흐와 만난다. 12세기에서 18세기 사이에 만들어진 교회음악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곡들은 바흐의 칸타타와 수난곡 안에 자리잡고 있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는 알버트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 1875-1965)가 써내려간 ‘음악의 아버지’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 평전이다. 우리가 아는 아프리카로 봉사를 떠난 의사, 노벨평화상(1952)을 수상한 ‘아프리카(밀림)의 성자’가 맞다.

젊은 날 바흐 음악 권위자였던 오르가니스트 슈바이처는 나이 서른 살에 이 1,344쪽(한글판)에 달하는 대작을 6년 동안 써서 발표했다고 한다. 슈바이처는 “서른 살까지 신학과 음악을 위해 살고, 남은 30년은 남을 위해 봉사하기로” 결심하고, 그 결심대로 살았다고 한다.

알버트 슈바이처
▲알버트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 ⓒ위키
‘밀림의 성자’가 ‘음악의 아버지’를 만나 1908년 출간된 이 책은 단숨에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이 책이 오랜 기간 베스트셀러 자리를 유지한 덕에 슈바이처는 아프리카에서 봉사활동을 계속할 수 있었다. 그는 칸트 철학 및 신학박사이기도 했다.

슈바이처의 이 책은 발표 한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각국 언어로 번역되며 애호가들에게 널리 읽히고 있다. 일본어판은 1950년, 중국어판은 2017년 각각 출간됐는데, 한글판은 2023년에서야 나왔다.

슈바이처는 무게 2kg가 넘는 차원 다른 이 ‘벽돌책’에서 ‘교회음악의 아버지’이기도 한 바흐의 전 작품을 해설했고, 바흐 음악의 본질을 전해주고 있다. 그는 시작부터 바흐를 ‘천재, 궁극적 정신’ 등으로 극찬한다. “바흐는 하나의 끝이다. 바흐로부터 나아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이 바흐만을 목표로 발전해 왔기 때문이다.”

슈바이처는 바흐 이전 시대의 음악부터 소개한다. 바흐가 무엇을, 어떻게 바꿔놓았는지 알려주기 위해서다. 그리고는 그의 삶과 음악을 하나씩 잘게 쪼개 분석해 준다. 슈바이처의 안내를 따라가다 보면, 바흐의 위대함과 천재성, 그리고 (기독교) 음악사에서 그의 위치를 자연스럽게 그릴 수 있다.

“이 오류의 시대에, 그리고 이 오류와 함께하면서도 불멸의 예술을 창조했다는 사실만큼 바흐의 위대함을 증명해 주는 것은 없다.” 물론 이러한 칭찬만 늘어놓은 것은 아니다. 다음처럼 우아하지만 냉정한 평가도 곁들인다.

“그러나 우리는 결국 서글픈 생각에 잠기게 된다. 바흐는 자기 자신을 구할 수 있을 만큼은 위대했지만 자신의 시대까지 구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으며, 시대에 몸을 던져 이탈리아식 레치타티보(말하듯이 노래하는)와 다카포 아리아(A-B-A 형식)의 상투적 문체와 공허한 형식을 버리고, 참되고 소박하며 진실로 극적인 교회음악을 회복하기 위해 씨름하지 않았다.”

바흐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슈바이처는 “사실 그는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 아니라 한 시대의 끝이었다”며 “이 시대는 수 세기 동안 이어 온 지식과 혼돈이 이 천재에 의해 함께 구원받기를 바라기라도 하듯이 최후의 진술을 하던 시기였다. 바흐는 침묵했고, 내심 낯설어하면서도 겉으로는 시대의 흐름에 동승했다”고 종합평가를 내렸다.

그래서 “결국 그의 작품은 그 시대의 다른 작품들을 갖다 버린 공동묘지에 함께 묻혀 부활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바흐는 사실 동시대인들에게조차 독일 최고 작곡자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지 못했다. 심지어 그의 차남 에마누엘 바흐(Carl Philipp Emanuel Bach, 1714-1788)보다도 덜 알려졌다.

이 성실한 작곡가는 한 시대를 완성했지만, 그를 발판삼았던 또 다른 천재들에 의해 완전히 잊혔다가, 19세기가 돼서야 재발견됐다. 슈바이처는 이러한 바흐 음악의 ‘죽음과 부활’도 상세히 그려내고 있다.

많은 ‘괴짜’ 예술가들과 달리 그는 공정함을 넘어 호의적이었고, 누군가 자기 도움이 필요하면 거절하거나 주저하지 않았으며, 소박한 가치관에서 비롯된 진실하고 떳떳한 선한 겸손함을 갖추고 있었다. 동시대인들에게 자신과 비교 대상이었던 작곡가 헨델에게서도 무언가를 배우고자 했고, 실제로 헨델의 수난곡을 필사하기까지 했다. 이는 그가 그 수난곡을 연주한 증거라고 한다.

슈바이처는 바흐만의 유일한 특성으로 ‘언어의 선명성과 완벽성’을 꼽는다. “바흐의 음악과 가사의 관계는 다만 상상에서나 가능할 만큼 실로 생동적이다”, “그의 음악에서 문장은 음이 울리자 마치 지존한 생명의 힘에 의해 이끌리듯 남루한 의상을 벗어 던지고 스스로 참모습을 드러낸다”, “바흐의 음악에 들어 있는 어떤 성경 구절을 한번 자신 안에 받아들인 사람은 그 구절을 더 이상 다른 리듬으로는 상상할 수 없다”.

특히 ‘음악의 회화성’에 주목한다. “음악 안에서 베토벤과 바그너는 시를 짓고, 바흐는 그림을 그린다. … 그는 사건을 하나하나 차례로 묘사하지 않고, 사건의 전체 그림이 보이는 함축된 순간을 포착하여 그것을 음악적으로 표현한다. … 바흐의 음악은 어떻든 허용된 범위 안에서 그 주제와 모티브가 항상 어떤 회화적 연상을 통해 규정되어 있다는 의미에서 회화적이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1,344쪽에 달하는 책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풍월당
바흐는 궁정 악장 이후 28년간 라이프치히 성토마스 교회에서 교회음악 최고 책임자이자 사실상 라이프치히의 음악감독으로 많은 교회음악들을 남겼다. 그래서 책에는 그의 신앙적 면모들도 잘 소개되고 있다.

“바흐는 토마스 학교 학생들이 자신의 작품을 연주할 수 있을지, 사람들이 교회에서 이 작품들을 이해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고민하지 않았다. 그는 오로지 자신의 경건함을 그 안에 넣었고, 그리고 한 분, 즉 하나님만이 그것을 이해했다. 그에게 자신의 총보를 장식하는 알파벳 ‘S. D.G.’ 즉 ‘Soli Deo Gloria(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또는 ‘J.J.’ 즉 ‘Jesu Juva(예수여 도우소서)’는 어떤 상투어가 아니라 그의 전 작품을 관통하는 신앙고백이었다.”

“예술은 그에게 종교였다. 그래서 예술은 세상이나 세속의 성공과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예술은 목적 그 자체였다. 바흐에게 종교는 항상 예술 일반의 정의 안에 포함되어 있다. 모든 위대한 예술은, 세속적 예술까지도, 그에게는 종교적이었다. 바흐에게 음향이란 울리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찬양으로 신을 향해 오르는 것이었다.”

“그러나 결국 정통 루터교 신앙도 바흐의 진정한 종교는 아니었다. 그의 본질적 종교는 신비주의였다. 가장 깊은 내면의 본질에 따르면, 바흐는 독일 신비주의 역사의 한 현상이다. … 바흐의 내면적 종교가 가장 잘 나타나는 음악은 예수공현축일 칸타타와 몇 곡의 베이스 솔로칸타타다. 이 음악들은 고통스럽고 지친 동경이 음으로 표현되다가 이내 꿈꾸듯 밝게 미소 짓는-그가 작곡해 낼 수 있는-최상의 자장가로 나타난다.”

“그 가사로 작곡하기 위해 가사의 의미를 따라가는 음악가가 아니라, 언젠가는 밝히겠다며 가슴속에 간직해 온 것을 가사 안에 불어넣기 위해 다만 그 가사가 필요했던 한 음악가를 보게 된다. 이것이 칸타타에 나타나는 바흐의 종교이고, 이 종교가 그의 삶을 승화시켰다. 밖에서 보기에는 투쟁, 싸움, 실망으로 가득했던 그의 삶은 사실은 평화와 즐거움이었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슈바이처는 악보까지 그러가며 바흐 음악을 분석했다. ⓒ풍월당
이후에는 방대한 분량으로 오르가니스트로서 바흐 각 곡의 특징들과 그의 의도, 효과 등을 구체적으로 분석하면서 그의 노력을 평가하고 있다. “바흐가 예수의 발언을 표현하려고 들인 수고와 노력은 실로 컸다. 그런데 정말 경탄스러운 점은 바로 그가 사용한 수단의 단순성이다(마태수난곡)”.

“신비한 코랄 절들을, 그 사이에 같은 분위기의 로마서 8장을 끼워 넣어 설명하는 그 방식이 실로 심오하고 놀랍다. 이 가사는 삶과 죽음에 관한 바흐의 설교라고 해도 좋다(모테트 <예수, 나의 기쁨(Jesu, meine Freude)>)”, “곡 전체를 연주하려면 이틀 밤이 필요하다. 가능하다면 첫 번째 연주는 대림절이나 성탄절기에, 두 번째는 예수공현축일(주현절)에 하면 좋다. 만약 하룻밤에 다 연주하고 싶다면, 곡들을 과감히 솎아내는 것이 좋다(<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Weihnachts-Oratorium)>).”

슈바이처는 바흐라는 꿈을 가진 일선 교회 합창단에 대한 격려도 잊지 않았다. “바흐의 칸타타에는 평소에는 감히 바흐에 다가가지 못하는 교회 합창단들도 능히 연주할 수 있는 소박한 예배음악들이 의외로 많아 단순한 전례적 예배에서 지금보다 훨씬 더 자주 이용할 수 있다. … 바흐 음악의 효과를 결정짓는 핵심은 연주의 완벽함이 아니라 그 연주의 정신이다. … 누구든지 바흐의 감정 세계에 몰입하여 그와 함께 살고 생각하고 그처럼 단순하고 겸손해진다면, 그는 바흐를 바르게 연주할 수 있을 것이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풍월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