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하나님의 아들
▲최후의 만찬. 예수는 마지막 만찬의 자리에서 빵과 포도주를 나눠주며 자신이 받는 고난에 담긴 의미를 제자들에게 가르친다. 이미 예수를 팔기로 결의한 유다는 매우 불안한 표정으로 자리를 지키다 예수로 부터 빵을 받은 후 그 자리를 뜬다. 부활 이후 베드로는 이 가르침을 기억하고 빵과 포도주를 나누고, 이후 부활한 예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신다. ⓒ sharesonofgod.com
본문: 요한복음 8:13-14

주님의 자기증언에 대한 장면입니다. 주님은 자기선언에 대해 자기증거를 하십니다. 주님의 자기선언이 틀리지 않고 정당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주님의 자기증언를 문제 삼고 있습니다. 주님이 스스로 증언하는 것은 신빙성이 없다는 이유입니다. 갈수록 주님과 바리새인 간의 논의가 깊어지고 있습니다. 본문을 배경으로 ‘내 증언은 참되니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증언의 내용이 중요하다
증언은 형식의 문제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나를 위하여 증언하여도 내 증언이 참되니(14절)”.

이 구절은 잘못하면, 상당이 논란이 될 수 있는 부분입니다. 5장 31절에서 주님은 “내가 만일 나를 위하여 증언하면 내 증언은 참되지 아니하되” 라고 말씀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근거로 바리새인들은 자기증언의 부당성을 지적합니다. “당신 말대로라면 당신이 지금 말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문제를 삼은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내가 나를 위하여 증언하여도 참되다”고 대응하십니다.

겉으로 보면 주님이 억지를 부리시는 것 같습니다. 증언은 물론 형식의 문제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내용의 문제입니다. 알맹이 없는 껍데기를 아무리 모아 두어도 내용이 되지는 않습니다.

물론 어떤 경우에는 내용보다는 형식이 중요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는 내용의 정당성과 중요성을 가리지 못할 때입니다. 숫자가 많다고 반드시 옳은 것도 아닙니다. 여러 명이 얼마든지 짜고서 편한 대로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비자의 내저설(內儲說) 편에는 삼인성호(三人成虎)라는 말이 있습니다. “세 사람이면 없던 호랑이도 만든다”는 말입니다. 진리의 주님을 대면하고서도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눈을 감은 사람이 태양을 보이라는 것이나 같은 원리입니다. 자신의 까막눈을 모르고 있는 이유입니다.

2. 사람의 판단 대상이 아니다
사람이 주님을 판단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나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거니와(14절)”.

주님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안다”는 사실입니다. 반면 바리새인들은 자신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릅니다. 판단의 한계를 넘어선 바리새인의 모습입니다.

주님 말씀을 바리새인들이 알아듣지 못해서 그렇지, 사실 매우 중요한 차원입니다. 인간의 차원과 신의 차원을 극명하게 구분하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정말 인간과 신의 다른 차원은 하나입니다. 존재의 근원을 아느냐 모르느냐의 차이입니다.

철학을 동원하여 “인간은 어디서 왔는가?”를 규명하려 무척이나 노력했습니다. “인간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인가?” 이를 수천 년 동안이나 연구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그 정답을 모릅니다. 그래서 인간은 이 세상에 와서 왜 죽어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죽게 되는 존재입니다.

인간이 어디서 어디로 가는지를 모른다는 사실이 바로 인간의 한계입니다. 인간은 자신이 누구인지 전혀 알 수 없고, 전혀 알지 못하는 존재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 말은 주님이 어리석은 인간이 만든 법치주의의 대상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인간이 만든 법으로 주님을 판단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인간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이 어떻게 피조물인 인간에게 심판을 받습니까? 그 말을 아무리 돌려서 말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영적 까막눈이 주님을 알아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3. 판단할 자격이 없다
바리새인은 주님을 판단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주님은 지금 “너희들은 내가 누구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고 하십니다. 굉장히 의미심장한 말입니다. 자신의 주제도 모르면서 “감히 나를 판단하려 하느냐”와 같은 말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깊이 들여다보면, 이 말씀에는 엄청난 반문이 들어 있습니다.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알고 있다. 그런데 너희들은 알고 있는가 하는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존재의 근원도 알지 못하고 살면서 감히 나를 판단할 수 있느냐?”는 말입니다.

한국의 치맥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졌습니다. 그래서 한국에 관광을 오면, 치맥을 꼭 먹어보겠다는 사람이 증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축구할 때는 치킨과 맥주를 반드시 마시기 때문입니다. 그때 수많은 닭들이 수없이 죽어나갑니다. 그러면 인간이 그런 닭과 다를 바 없다는 말이 됩니다.

존재의 근원을 알지 못하고 마지막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만 아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도 무슨 말인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옛말에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낫’을 옆에 놓고도 그것이 ‘기역자’인지 모른다는 말입니다. 너무 답답한 말입니다. 이 말은 생각할수록 너무나 우스운 말이기도 합니다. 매우 희화화된 말이기 때문입니다.

김충렬
▲김충렬 박사.
4. 정리

우리는 살면서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서입니다. 이는 물론 주님을 만날 때만 가능해집니다. 주님의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가는 인생 길에 주님을 만나 존재의 해답을 얻는 축복을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십시다!

“주님! 우리는 주님의 증언이 중요함을 알게 하소서. 우리는 주님이 판단의 대상이 아님을 믿게 하소서. 그리고 우리는 주님을 판단할 자격이 없음을 믿게 하소서.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주님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축복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충렬 박사
전 한일장신대 교수
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