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석 목사
ⓒ새에덴교회
내 사무실 창가 한쪽에는 크고 작은 난(蘭)들이 따사로운 가을 햇살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청정해지는 화분들은 대부분 다른 사람들에게 선물로 받은 소중한 식물들이다. 그동안 나는 대통령을 비롯하여 수많은 저명인사들로부터 난을 선물 받았지만 난 사실 난보다도 저명인사들의 이름이 적힌 리본에 더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우리 교회에 다니는 '용인난문화재단' 안금환 이사장을 통해 매혹적인 향기를 품은 난에 대해 알게 되면서 전보다 더 애정어린 시선을 주게 되었다.

난은 깊은 골짜기에서 홀로 향기를 품고 있는 꽃이라 하여, 예로부터 고고한 선비의 기개에 비유되곤 했다. 그래서 군자향이라고도 불리는 난향이 만리까지 멀리멀리 퍼져나가는 특성을 두고 '난향만리'라는 표현이 생겨나기도 했다.

공자도 꽃향기에 이끌려 은곡이라는 계곡을 걸어가다 소나무 밑에서 고고하게 꽃을 피운 난을 발견하고는 이렇게 속삭였다고 한다. "아, 너는 아무에게도 자신의 향기가 좋다고 뽐내지 않지만 이 깊은 계곡에까지 사람을 끌어들이는구나! 그러니 나도 한 시라도 빨리 낙향하여 학문을 더욱 익혀 나의 인향이 천리, 만리까지 퍼지도록 해야겠구나."

깨달음을 얻은 공자는 그 즉시 고향인 노나라로 돌아가 난을 옆에 두고 학문에 정진했다. 난량보다 더 아름다운 공자의 깨달음이 세상 사람들에게 이때부터 난은 사람들의 반려식물이 되었다고 한다. 개나 고양이를 반려동물로 키우는 것처럼 유일하게 식물 가운데는 난이 반려식물이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난은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주인의 사랑을 받아야 자란다고 하지 않는가.

또한 난은 사랑과 존경의 증표이기도 하다. 옛날 중국에서 사랑하는 부부가 산에서 귀한 난을 캤다. 그런데 그 나라에 전쟁이 나서 남자는 전쟁터에서 죽고 말았다. 그러자 여인은 난을 남편처럼 여기며 온갖 사랑과 애정을 쏟았다. 난을 볼 때마다 남편을 생각하고 남편이 그리울 때면 난을 바라봤다. 그러다가 여인이 죽자, 난 역시 향기가 그윽한 꽃을 피운 후에 주인을 따라 죽고 말았다.

그래서 동네사람들이 그 난을 '송매'라고 이름을 지어주었다. 지금도 주인이 죽으면 난도 함께 죽는다는 속설이 있다. 그만큼 난은 사랑의 상징이라고 한다. 그러기에 좋은 일이 있을 때 뿐만 아니라 정말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에게 귀한 난을 바친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가 받는 대부분의 난은 서양난이다. 일반적으로 서양난은 아열대성에서 잘 자라고 동양난은 삼한사온에서 잘 자라는 식물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더 큰 차이점은 서양난은 식물학자들이 계속 교배를 시켜 꽃이 크고 화려하고 동적이지만, 동양난은 자연미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채 오직 주인의 사랑과 관심을 받으며 자라기에 정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난의 소중함과 가치를 아는 사람은 거의 중독 수준에 빠진다고 한다. 하루종일 난을 바라보고 물주고 온도를 맞춰주며 적당한 햇빛과 바람을 불게 해 주는 것을 낙으로 삼는다. 나도 난을 알면서부터 사무실에 있는 난들을 볼 때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가끔 창가에도 두고 물도 주면서 애틋한 사랑의 눈길로 이렇게 속삭인다. "예쁘고 귀한 난아, 내가 섬기는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하고 축복한다. 아름다운 꽃으로 필 뿐만 아니라 너의 향기를 멀리멀리 보내거라."

그리고 난을 바람이 통하는 창문에 두고 라는 노래를 불러주기도 한다. "J 스치는 바람에 J 그대 모습 보이면 난 오늘도 조용히 그댈 그리워하네 J 지난밤 꿈속에..." 이처럼 난과 교감하며 노래하다보면 분주했던 마음도 고요해지고 차분해진다. 그리고 나도 정말 존경하고 사랑하는 몇 분들에게 존경과 사랑의 마음을 담아 난을 보내 드렸다. 단순히 하나의 화초를 선물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에토스(진심)를 드린 것이다. 그러니 내 마음이 더 행복하고 사랑의 의미가 더 깊이 느껴졌다.

정현종 시인의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는 시처럼, 난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은은하고 향기로운 꽃이다. 화려하진 않지만, 고고하고 청초한 아름다움을 자아내는 난을 통해서 사람과 사람, 마음과 마음들이 이어지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꾼다.

소강석 목사
ⓒ새에덴교회

* 이 글은 소강석 목사가 샘터 11월호 '소강석 목사의 행복 이정표'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