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눅 9:13)”.

‘주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 다음 날이면 죽음을 앞두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사랑 때문이었기에 마지막까지 이를 실천하려 하셨습니다.

빵과 포도주를 당신의 몸과 피로 변화시키신 것도 사랑 그 자체였고, ‘이를 기억하고 기념하며 행하라’고 유월절 저녁 만찬에서 당부하신 것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성찬식에서는 먹고 마시는 행위 자체에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랑을 기억하고 실천해야 사랑이 완성되는 것임을 성찬을 통해 몸소 일러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성찬을 받은 우리 성도들이 주님께로부터 받은 사랑을 나누지 아니하면, 우리가 행하고 있는 성찬 예식은 무용지물이요 이곳은 곧 황량한 사막과 같은 곳이 됩니다.

정녕 우리가 누리며 예배드리는 교회 공동체마저 황량한 곳이 되어서야 되겠습니까? 꼭 양식을 사 와야만 영적 배고픔이 해결되는 것입니까?

교회 공동체를 황량한 곳으로, 인간적인 계산이 우선 되도록 만든 것은 바로 성찬 예식에서 하나가 되어야 할 나 자신을 나누지 않았기 때문이었음을 회개해야 합니다.

어떤 시인은 ‘나눔의 신비’라는 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빛은 나누어줄수록 더 밝아지고, 꽃은 꿀을 내 줄수록 결실을 맺어가고, 미소는 번질수록 더 아름답다. 자신의 것을 잃지 않으면 누구에게도 나누어 줄 수 없고, 자신을 나누지 않는 사람은 시간과 함께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주님께서 나누어 주셨듯, 우리 신앙인들 또한 나누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성경 속 나눔의 대명사라면, 많은 성도들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떠올릴 것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한 어린아이의 나눔과 배려의 덕분에 일어났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아이가 내놓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명을 먹이시고 열두 바구니를 남기셨습니다. 이 사건은 오직 하나님의 크신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겠습니까?

이스라엘 디스커버리
▲오병이어교회 내부 바닥의 모자이크. 지금껏 선명하게 보존되어 있다. ⓒ홍성사 제공
오병이어의 기적을 낳은 장소에 대해 마태복음은 마을, 마가복음은 두루 촌과 마을, 누가복음도 두루 마을과 촌이라고 기록합니다. 제자들에게 그곳으로 가서 먹을 것을 구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곳은 잔디가 있는 들판이며, 마을과는 떨어진 곳이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당시 예수님 말씀에 얼마나 큰 권세가 있었기에, 온종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주님의 말씀에 귀를 쫑긋 하며 기울였을까요? 가히 짐작이 갑니다.

그러다 모두들 배가 고팠습니다. 그때 한 어린아이가 도시락에 넣어온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선뜻 주님께 내어놓았습니다. 아이의 이 나눔 정신은 성경을 통해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혼자 그 적은 음식을 다 먹어도 모자랄 것 같은데, 이 많은 군중들 앞에 내어놓은 것입니다. 자신도 먹지 못할 수 있지만 의심 없이 선뜻 주님께로 내어놓은 그 나눔의 정신을 본받아, 우리 신앙인들도 나눔을 실천하는 복음의 군병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행 4:32)”.

당시 초대교회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당시 믿는 이들은 서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면서, 새로운 공동체를 통한 평등한 삶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인간의 현실적인 고통들 중 하나인 가난의 문제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안에서 해결한 것으로, 오늘날에도 귀감이 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들을 특별히 아끼십니다. 특히 초대교회인 예루살렘 교회의 특징은 ‘교제’였습니다. 교인들의 사귐이 매우 아름다웠다는 것입니다.

본문에 나타난 것은 물질의 공유입니다. 밭이나 집이 있는 사람은 팔아 그 값을 사도들의 발 앞에 뒀고, 사도들은 그들의 필요에 따라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럼에도 제 물건을 제 것이라 하는 자가 없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초대교회의 정신은 바로 나눔의 정신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므로 교회 공동체는 나눔의 실천을 항상 함께 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조차 나눔의 배려가 없다면, 그 교회는 주님의 교회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람을 키우지 않는 교회 역시 복음과는 무관한 교회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셨던 일들을 추억해 보면서, 주님께서 걸어가셨던 그 행함을 우리 신앙인들도 배우고, 친구를 위해 목숨까지도 내어줄 수 있는 아름다운 나눔의 신앙인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늘 따뜻한 이웃이 되어야 주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주변을 살피며 스스로 약한 자들을 찾아가 돕고 복음을 전하는 아름다운 천사의 날개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이효준 장로(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