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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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옥은 줄리어드 음대와 대학원을 거쳐, 1989년 스폴레토 페스티벌에서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의 수잔나 역으로 데뷔했다. 1990년 메트로폴리탄 콩쿠르에 입상한 후부터 지금까지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그는 주역으로 무대에 섰다.

외유내강이라는 말이 신영옥만큼 잘 어울리는 사람도 없다. 여린 인상에 가냘픈 몸매, 맑고 부드러운 음색. 저 몸으로 어떻게 몇 시간 동안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고 연기를 할까, 걱정이 될 정도다. 그러나 그는 강하다. 노래를 위해서라면, 무대를 위해서라면 엄청난 에너지가 몸에서 솟아난다. 음악에 있어서 신영옥은 지독한 악바리다.

소프라노 신영옥은 자기 색깔과 영역을 지키며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왔다. 아무리 유명한 작품이라도 자기와 맞지 않으면 거절했고, 무대와 지휘자, 함께 공연하는 성악가들의 명성보다는 자기가 최고로 잘할 수 있는 무대만을 골라서 섰다.

메트로폴리탄 콩쿠르에 입상한 후, 매니지먼트 회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파바로티가 나오는 <사랑의 묘약>에 출연하지 않겠냐는 제안이 왔어요. 그런데 역이 조역인 '쟌네타'였어요. 매니저는 좋은 기회라고 꼭 하라고 했지만 거절했어요."

조역을 하면 계속 조역만 맡지 않을까 두려워서였다. 그 작은 몸 어디에 그런 고집이 있는지 모르겠다. 신영옥은 나를 제대로 알아주는 무대, 내가 주역일 수 있는 무대만을 지금까지 고집했다.

그는 주변에서 철저하다, 깐깐하다, 프로페셔널하다는 평을 받는다. 그는 그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여긴다. "성악가는 몸이 악기니까 스스로 엄격하게 컨트롤하지 않으면 안 되요. 그런데 나이가 먹으니까 예전처럼 스스로를 닦달할 힘이 없어요. 그래도 음악을 할 때는 깐깐하고 프로페셔널하게 하려고 항상 노력합니다. 생활적으로는 좀 느긋하게 변한 것 같아요."

신영옥을 지탱하는 또 하나의 힘, 신앙
신영옥의 인생은 노래, 가족, 그리고 신앙이 지탱한다. 그가 부른 'Mother of Mine'을 듣고 눈물을 흘렸다고 하는 사람이 많다. 어머니에 대한 끊을 수 없는 그리움을 노래한 그 노래는 어머니에 대한 그의 사랑을, 그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을 짐작하게 한다.
신앙은 그가 가장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언덕이다. 유학 시절, 수없이 오디션에 떨어졌을 때도 그는 새벽 기도를 했고 지금도 하루에 한 번은 꼭 짬을 내서 성경책을 가까이 하려고 노력한다.

"저는 제가 신앙인으로 누구에게 말할 만큼 충분히 성숙하지 않았어요. 그런 질문을 받으면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제일 고민이 돼요. 누가 저더러 굉장한 신앙인이라고 하면 부끄럽죠. 제가 힘들 때 일방적으로 하나님께 의지하고 투정하고 위로 받고 그래요."

그의 기도는 단순하다. 오늘 미운 사람을 용서하고, 오늘 건강함을 감사하고, 내일도 건강할 수 있음을 허락 받고, 배고프고 상처받은 아이들을 구해달라는 소원을 덧붙인다.

"나는 이렇게 행복하고, 배부르고 따뜻하게 사는 데 지구 어딘가에는 고통 받는 아이들이 있잖아요. 참 가슴이 아파요. 신앙은 저를 겸손하게 하고, 낮추게 하고, 주변을 돌아볼 수 있게 해요. 어느 날, 거울에 비친 제 얼굴을 가만히 봤어요. '세상엔 천재라고 불리는 사람도 많고, 나보다 노래를 잘하는 사람도 많은데, 이 정도 달란트 밖에 가지지 않은 내가 어떻게 세계적인 성악가가 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아, 내게는 노래를 통해서 뭔가를 나눠줘야 하는 사명이 있는 거구나'를 깨달았어요. 그래서 좋은 음악이 있으면 장르에 관계없이 제 능력이 닿는 한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요. 음악뿐만 아니라 다른 것들도요."

한편, 신영옥은 1961년생으로 나이 58세이다. 서울 출신으로 미국 줄리아드 음대와 대학원을 졸업한 후, 1990년 3천 여 명이 출전한 메트로폴리탄 콩쿠르에서 뉴욕타임즈로부터 가장 뛰어난 우승자라는 호평을 받으며 세계 음악계의 주목을 받아왔다. 결혼은 여부는 아직 미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