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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 박석무 편역 | 창비 | 330쪽 | 12,000원

자녀들 앞날 걱정하는 아버지 정약용
공부에의 강조와 강요로 드러낸 마음

다산 정약용. “한자가 생긴 이래 가장 많은 저술을 남긴 학자”, “18세기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한국 최대의 실학자”.

이렇게 뛰어난 학자인 정약용. 그는 집에서 어떤 남편, 어떤 아버지였을까? 정약용은 저녁 먹은 후, 거실 소파에 앉아 자녀들과 어떤 대화를 했을까?

책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에서 그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이 책에는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가 잘 정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편지에는 자녀들을 삶과 앞날을 걱정하는 ‘아버지 정약용’의 모습이 있다. 까마득 먼 곳, 유배지에서 집을 생각하는 ‘가장 정약용’의 마음이 들어 있다.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는 제목 그대로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있을 때 보낸 편지다. 원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라는 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여유당전서>에 실린 정약용의 편지 중 두 아들에게 보낸 것과 형에게 보낸 것, 몇몇 제자들에게 보낸 편지만 따로 묶어 출판한 책이다.

<여유당전서>는 정약용의 저술을 총 정리한 문집이다. <목민심서>, <흠흠신서>, <경세유표> 등 정약용이 지은 책들과 그가 지은 시와 편지 등이 들어 있다(여유당은 정약용의 당호(堂號)다).

이 책은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 ‘두 아들에게 주는 가훈’, ‘둘째 형님께 보낸 편지’, ‘제자들에게 당부하는 말’ 등이 묶여 있다.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와 가훈에는 자녀들의 삶과 미래를 걱정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특히 자녀들의 앞날을 걱정하는 그의 마음은 공부에 대한 강조와 강요로 나타난다.

본인도 늘 공부하는 사람이었던 정약용. 그는 자녀들에게 공부에 대한 강조가 대단했다. 그의 편지를 읽으면서 한편으로는 ‘정약용의 아들로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폐족으로서 잘 처신하는 방법은 오직 독서하는 것 한 가지밖에 없다.’
‘이른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부지런히 책을 읽어 이 아비의 간절한 소망을 저버리지 말아다오.’

단지 공부하라는 권면으로 그치지 않았다. 유배지에 있으면서도 아들들의 공부를 구체적으로 지도하고 점검했다.

‘역사책을 읽고 자신의 견해를 몇 편이나 지었느냐?’
‘내가 지금까지 너희들 공부에 대해서 글과 편지로 수없이 권했는데도 너희는 아직 경전이나 예악에 관해 하나도 질문을 하지 않으니 어찌된 셈이냐? 내 말을 무시한단 말이냐’
‘<고려사>에서 초록(鈔錄)하는 공부는 왜 아직 안했느냐?’
‘궁금한 부분이 있으면 왜 질문하지 않느냐?’

그는 조선시대에 이미 원격 수업을 하고 있었다. 단지 인터넷이 아니라 인편으로 보낸 편지가 그 통로였다.

그것도 마음에 차지 않아, 심지어 자녀들을 유배지까지 불러서 공부를 시키려 했다.

‘내년 봄이 화창해진 뒤 온갖 일을 과감히 떨쳐 버리고 내려와서 같이 공부하자.’
‘공부하는 수준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 이곳에 와서 내 가르침을 받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정약용의 아들로 산다는 것은 큰 복이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가 이렇게까지 아들들에게 공부를 강조한 이유가 있다. 새로운 희망을 주기 위해서다.

환경이 힘들 때 좌절하지 않는다
희망이 없을 때 좌절하게 된다

정약용이 유배생활을 하는 동안, 자녀들은 관직에도 나갈 수 없었다. 이 현실에 아들이 좌절하지 않기 원했다. 오히려 길을 막은 현실의 벽이 미래를 여는 새로운 문이 될 수 있음을 말해주고 싶었다.

‘폐족이라 벼슬은 못하지만 성인이야 되지 못하겠느냐, 문장가가 되지 못하겠느냐?’

사람은 환경이 힘들 때 좌절하지 않는다. 희망이 없을 때 좌절한다. 정약용이 아들에게 공부를 말하는 것은, 지식을 가지라는 것이 아니다. 희망을 가지라는 것이다.

그는 자녀들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뿐 아니라 현실적인 삶도 강조한다. 공부뿐 아니라 행실이 바른 사람이 되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효(孝)와 제(第)를 강조했고, 옳은 신하가 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부모님께 효도 하게 되면 반드시 나라에 충성하게 되어 있고, 형제끼리 우애하게 되면 반드시 공손한 모습이 되고, 힘쓰지 않아도 부부는 화합하게 되고, 친구들 사이에 신의를 지킬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임금을 섬기는 데는 임금의 존경을 받아야지 임금의 총애를 받는 사람이 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또 임금의 신뢰를 받아야지 임금을 기쁘게 해주는 사람이 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다산 정약용
▲다산 정약용.
삶에서도 실제적인 지침이 될 만한 교훈을 알려 주었다.

‘남이 알지 못하게 하려거든 그 일을 하지 말고, 남이 듣지 못하게 하려면 그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제일이다.’
‘편지 한 장 쓸 때마다 두 번 세 번 읽어보면서 이 편지가 번화가에 떨어져 나의 원수가 보더라도 내가 죄를 얻지 않을 것인가 생각하면서 써야 하고, 수백년 동안 전해져서 안목있는 많은 사람들의 눈에 띄더라도 조롱받지 않을 만한 편지인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자녀 마음 만져주고 위로해 주기도
검소, 부지런하라며 전하는 미안함

하지만 마냥 엄하기만 아버지는 아니었다. 자녀들의 마음을 만져주고 위로해 주는 따뜻한 아버지이기도 했다. 친척 어른 중에서 정약용의 자녀들의 행동을 보고 꾸짖었다.

‘아버지가 유배지에 있는데 어떻게 웃으면서 생활하느냐?’ 라는 내용이었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정약용은 이렇게 자녀들을 위로했다.

‘마음대로 웃고 행동하는 것을 어찌 나무랄 수 있으랴? 아버지가 귀양살이하는 것을 근심하여 초췌한 모습으로 밖으로 나타나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너희들도 평범한 사람이니 때로 마음대로 웃고 행동하는 것도 역시 자연스러운 일상이어야 한다. 그런 일 때문에 너희들을 생각할 때마다 슬프고 쓰라린 마음 견딜 수가 없구나.’

또한 검소하고 부지런하게 살라고 권면하는 편지 속에도 아버지로써 미안함이 묻어 있다.

‘내가 벼슬하여 너희들에게 물려줄 땅을 남기지 못했으니, 오직 정신적인 부적 두자를 마음에 지녀 잘 살고, 가난을 벗어날 수 있도록 이제 너희에게 물려주겠다. 너희들은 너무 야박하다고 하지 마라. 한 글자는 근(勤)이고 또 한 글자는 검(儉)이다. 이 두 글자는 좋은 밭이나 기름진 땅보다도 나은 것이니 일생 동안 써도 다 닳지 않을 것이다.’

부모는 마음에 빚을 짊어진 채 산다. 부모는 자녀들을 보며 책임감을 넘어 죄책감을 가진다. 어학연수 보내주지 못한 것도 내 탓인 것 같고, 자녀들 삶에 조금만 문제가 생겨도 내 탓인 것 같다.

하나님 가장 닮은 것이 부모 마음
먼저 아파하면서 소망 잃지 않기를
시험 이겨내고 승리하는 삶 살기를
정약용의 편지에서 아버지의 사랑을
남겨주신 성경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정약용은 유배지에서 아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 편지를 보며, 아버지의 사랑을 만난다. 하나님은 성도에게 성경을 주셨다. 성도는 그 성경에서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만난다.

이런 부모의 마음은 정약용에게도 있었다. 18년간 유배 생활도 강하게 견딘 그도 자녀에 대한 안쓰러운 마음은 숨길 수 없었다.

자녀들을 향한 그런 미안함과 사랑을 잘 표현해 주는 것이 ‘하피첩(霞帔帖)’이다. 정약용은 하피첩에 대해 이렇게 소개한다.

“내가 강진에서 귀양살이할 때 몸져누운 아내가 헤진 치마 다섯폭을 보내왔다. 아마도 그녀가 시집올 때 입었던 옷인가 본데, 붉은색이 이미 바래서 담황색이 되었다. 그래서 글씨 쓰는 재로로 딱 좋았다. 그것을 재단하여 조그만 첩을 만들어 훈계해주는 말을 써서 두 아들에게 물려 주고, 나머지는 작은 족자를 만들어 딸아이에게 물려준다.”

귀양간 남편에 대한 그리움과 고달픈 삶을 하소연할 데 없어, 시집 올 때 입은 치마폭을 보내온 아내. 그 아내의 마음까지 담아 자녀에게 귀한 글과 시를 써 보낸 아버지.

붉은 치마는 세월에 빛이 바래 색이 옅어지지만, 부모의 마음은 세월이 지날수록 더 깊어진다.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통해 자녀를 향한 아버지의 마음을 엿본다. 힘든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말기를. 유혹의 상황에서도 바른 마음을 놓치지 않기를. 부모라는 이유만으로 이미 미안하고, 그냥 아픈 사랑을 하고 있는 아버지의 마음. 그 마음을 엿볼 수 있다.

“한자가 생긴 이래 가장 많은 저술을 남긴 학자” 정약용도, 단지 자식을 사랑하는 아버지였다.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통해 부모님의 사랑을 다시 생각한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다시 생각한다.

하나님의 마음을 가장 닮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성도가 힘든 상황에 놓여 있으면 먼저 아파하시는 하나님. 그 속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시험을 이겨내고 승리하는 삶을 살기 원하는 하나님. 그냥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정약용은 유배지에서 아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 편지를 보며, 아버지의 사랑을 만난다. 하나님은 성도에게 성경을 주셨다. 성도는 그 성경에서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만난다.

박명수 목사
사랑의침례교회 담임. 저서 <하나님 대답을 듣고 싶어요>

출처: 아트설교연구원(대표 김도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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